만남 아닌 이별을 얘기하는 '최고의 이혼'

“조석무씨에게. 조석무씨라니 이렇게 적고 놀랬어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른 게 언제지? 너무 오랜만인 거 같아 왠지 긴장이 되네요. 일단 보고 드립니다. 저 집을 나갑니다. 방을 보고 놀랐습니까? 입 벌리고 있지 않나요? 지금 설명한 테니 입을 닫아 주세요. 있잖아요. 조석무씨 아무래도 이대로 같이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이혼하고 시간도 꽤 흘렀잖아요.”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강휘루(배두나)는 전 남편 조석무(차태현)에게 편지를 쓴다. 이미 이혼을 했지만 당분간 같은 거처에서 머물며 지냈던 그들이었다. 강휘루는 이혼의 사유로 조석무가 “너무 몰라서”라고 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뭐가 꿈인지 그런 것들을 조석무는 알려 하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 하지만 강휘루는 뒤늦게 자신 역시 조석무에 대해 제대로 알려 한 것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가 홀로 음악노트를 쓰고 있었고, 그의 후배 임시호(위하준)가 부르는 곡이 사실은 조석무가 만든 곡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강휘루는 드디어 조석무와 이혼한 것이 온전히 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진짜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

조석무는 자신의 속내를 굳이 드러내는 일을 너무나 싫어했다. 그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진유영(이엘)에게 자신이 딱 한 번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안 좋을 일을 당한 여직원에게 회사 상사가 “힘내”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 상사를 때렸고 결국 해고당했다는 것. 그 이야기를 했지만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힘내”라고 그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조석무에게 진유영은 “고맙다”고 말한다. 표현을 잘 하지 않던 그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고 그 마음이 전해질 때 갖게 되는 기쁨을 경험한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을 정리하듯 편지를 통해 강휘루는 조석무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적어나간다. “당신한테 사과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미안해요. 어쩌면 나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모두 당신한테 전가했는지도 모릅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무심하고 이기적이라고. 같은 꽃을 보고 같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탓했지만 생각해보니까 누구보다 이상한 사람은 나일지도 모릅니다.” 강휘루는 이제 헤어짐의 이유가 상대방의 잘못만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여러 가지로 조절이 잘 안돼요. 좋아하는 사람과는 생활하는 데서 마음이 맞지 않고 마음이 맞는 사람은 좋아지지 않아요. 애정과 생활은 항상 부딪치고 뭐랄까. 그건 내가 쭉 안고 가야하는 성가신 병처럼 느껴집니다. 당신과 함께 영화를 보며 항상 10분씩 늦었잖아요.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약속장소에 항상 당신이 서 있었어요. 아 이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었어요. 그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멋진 풍경이었거든요. 당신을 몰래 보는 게 좋았습니다.”

함께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강휘루는 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라고 말한 바 있다. 부부든 연인이든 사랑은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그래서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면 모든 게 맞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점들이 있어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일 지도. 강휘루는 그 다른 것들을 이제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상대방에 대한 자잘한 고마운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맛있는 밥 고마웠어. 따뜻한 침대도 고마웠어. 무릎위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훔쳐보고 자세히 보고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소중한 행복이었습니다. 석무씨. 고마웠어요. 헤어지는 건 내가 결정한 거지만 조금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당신을 몰래 보고 싶을 때는 또 어딘가에서...”

이렇게 길게 써나가던 편지를 강휘루는 끝내 조석무에게 남겨주지 못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걸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강휘루는 편지를 남기는 대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오므라이스를 챙겨먹으라는 쪽지를 대신 남긴다. 때론 밥 한 끼를 챙겨주는 일 속에 더 많은 속말들이 담기기도 하는 법이다. 

<최고의 이혼>은 특이하게도 헤어지는 법을 말하는 드라마다.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들이 ‘만남’을 이야기한다. 우연히 어떻게 만났고 그 만남의 순간은 얼마나 빛이 났으며 설레었던가를 말한다. 하지만 만남만큼 사랑을 완성시키는 건 어쩌면 ‘잘 헤어지는 법’은 아닐까. 헤어짐이 서툴러 때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 우리네 사회에서 만나는 법만큼 중요한 건 헤어지는 법이다. 서로의 소소한 일들조차 고맙게 느끼며 헤어질 수 있다면.(사진:KBS)

‘1박2일’, 먼저 떠난 김주혁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들

‘제2회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으로 마련된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은 알고 보니 ‘영원한 구탱이형’ 故 김주혁을 위한 1주기 특집이었다. 김주혁이 특히 낙지와 돼지갈비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는 멤버들은 그 날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저마다 김주혁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한 바닷가 카페에 마련된 ‘특별한 사진전’에서 멤버들은 사진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김주혁의 모습을 보며 먹먹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생전 김주혁의 육성. “잘 지내고 있냐 동생들”이라는 그 목소리에 울컥해졌다. 아마도 <1박2일>을 떠나고 나서 보내온 육성이었을 그 목소리가 이렇게 고인이 된 1주기에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박2일>에 처음 김주혁이 출연했던 그 시절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회고하고 추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청자들이 모두 기억하는 그 모습들이 새록새록 다시금 떠올랐다. 집에 급습해 잠자는 김주혁을 깨우며 장난치던 모습과, 그렇게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서먹해했던 모습, 그리고 그 유명했던 어느 시골에서 벌어진 인지도 대결에서 단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해 당했던 굴욕의 순간들... 그러면서 조금씩 <1박2일>이 익숙해지고, 멤버들과 형 동생 사이로 끈끈해지는 그 과정들이 다시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그는 김준호가 그리 웃기지도 않다 여겼던 이주일, 서영춘 선생님의 성대모사에도 자지러지듯 웃어주었고, 늘 의지했던 동생 데프콘에게 잘 해주라며 <1박2일>을 떠나서도 챙겨주려 했으며, <1박2일>의 선배격인 김종민의 아버지 빈소에 가서는 맏형답게 동생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막내 정준영과도 점점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형 같은 사람이었고, 배우로서도 큰 선배인 그는 유작을 통해서도 차태현을 극장에서 펑펑 울게 만든 사람이었다.

김주혁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대목은 매일 함께 동고동락해온 멤버들은 물론이고 <1박2일>을 하며 인연을 맺게 된 어느 시골의 어머니나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게 된 후배와도 그저 지나치는 관계가 아닌 늘 기억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어느 시골에서 인연을 맺은 어머니와 사진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그 어머니가 “아들”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고, 함께 출연했던 후배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축하해줬다는 김주혁에게서 그 마음이 느껴진다. 삶이 힘들고 짧으며 어느 순간 갑자기 꺼지는 것일지라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바로 이런 따뜻한 마음이 그 후에도 계속 남아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1박2일>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떠날 때, 늘 함께 했던 카메라맨이 눈물을 보이는 걸 보고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는 김주혁에게서 ‘아름다운 사람의 온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 <독전>에서 그 독한 악역을 소화해냈지만, 그 속에서도 특유의 김주혁의 면모들을 발견해내는 친구에게서 삶이 짧고 그렇게 끝나는 것이라 슬플지라도 누군가 진가를 기억해줄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김주혁이 처음 <1박2일>에 출연해서 하차하기까지의 짧다면 짧은 그 과정은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생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세상에 나오게 되어 어색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그 따뜻한 온기들 속에서 웃고 울고 즐거워했던 시간들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은 누구나 끝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보면 누구나 한 순간처럼 느껴져 더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삶이 아니던가. 먼저 간 김주혁은 마치 ‘1박2일’처럼 짧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사진:KBS)

이엘·배두나에게 버림받은 차태현 통해 '최고의 이혼'이 하고픈 이야기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 첫사랑 진유영(이엘)이 갑자기 내뱉은 이 말에 조석무(차태현)는 충격에 빠진다. 조석무는 진유영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목격한 후, 그 찜찜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진유영을 찾아가 생각해준답시고 그 사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진유영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우리가 흔히 이혼이나 헤어짐에서 상상하는 그런 극적인 이유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계기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고 끔찍한 사건들을 그 헤어짐의 이유로 제시하듯이. 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그 사유가 자잘한 일상의 누적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혹은 하필이면 상대방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기막힌 타이밍’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첫 회 만에 이혼을 하게 된 조석무와 강휘루(배두나)의 이혼 전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어지자”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강휘루의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아주 자잘한 일상 속에 담겨진 무수한 상처들이 느껴진다. 강휘루의 앞에서 습관처럼 나오는 조석무의 한숨이나,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걸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해대며 치우고 또 치우는 조석무의 행동은 강휘루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물론 조석무는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출동해야 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고객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힘겨워한다. 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요구처럼 보이지만 조석무는 그걸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래서 조석무는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비관주의자가 됐다. 젊은 날에는 꿈도 있어 기타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고양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산골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에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즐기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강휘루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한다. 

그런 일상들이 오래도록 겹치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해가 깊어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동화작가가 꿈인 강휘루는 자신이 쓴 원고를 조석무가 한번쯤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식탁 위에 흩어 놓지만, 실수로 물을 흘려 젖은 원고를 조석무는 정리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잡동사니 정도로 여긴다. 결국 폭풍우가 치던 날, 문을 두드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 때문에 두려워 조석무에게 빨리 와 달라 보낸 문자의 답변으로, 문밖에 있는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문자를 받게 된 강휘루는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조석무가 첫 사랑인 진유영과 헤어지게 된 이유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는가의 이유는 진유영의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였던 아버지에 그토록 의지했던 이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도 음악의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유영이 작곡한 곡을 조석무는 그가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표절”이니 “쓰레기”니 하는 지독한 표현으로 폄하해버린다. 물론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지만, 그 말은 아마도 진유영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상처로 남았을 게다. 그리고 심지어 밴드부에서 진유영이 만든 곡에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싸구려 꽃무늬 변기 커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보면서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사람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러니 조석무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 진유영의 마음이 이해될 밖에.

물론 여기에는 일본 원작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일본인들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정서가 깔려 이런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석무가 충격을 받는 건, 그가 무심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몰라서다. 알고 보면 조석무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린 반려견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린 일 때문에 지금껏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경험은 조석무에게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깔끔한 것에 대한 집착, 부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이혼>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본래 비극이 가진 가장 큰 기능은 위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그들이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 관계의 비틀어짐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갖게 되는 ‘연민’의 감정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가 아니라 한 치 눈앞의 비극적 상황들을 모른 채 그 속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의 소소함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 

<최고의 이혼>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선택들이 굉장한 사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뒤늦게 그 이유들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알아가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은 그래서 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결혼’의 반대말처럼 다가온다.(사진:KBS)

이미 완성된 ‘거기가 어딘데’ 시즌2로 빨리 돌아오길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가 시즌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오만의 사막과 스코트랜드 스카이섬의 습지를 간 시즌1으로 <거기가 어딘데>는 이미 그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어느 정도는 완성한 면이 있다. 그러니 그 구성으로 또 다른 낯선 곳으로의 탐험을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가 어딘데>가 갖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의미는 먼저 그 소재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니 해외의 어떤 지역이든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심지어 정글까지 찾아들어가는 상황이 아닌가. <거기가 어딘데>가 시도한 오만의 아라비아 사막은 그런 점에서는 과거 교양 프로그램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공간을 예능 또한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시킨 면이 있다.

사막이라고 하면 막연히 끊임없이 펼쳐지는 모래만이 있어 그 스토리가 단순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또 다른 스토리들이 무궁무진했다. 50도까지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그나마 햇볕을 피하며 갈 수 있는 나무들을 중심으로 루트를 개척해가며 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고, 걷고 또 걷는 그 단순한 풍경 속에서도 저마다 갖게 되는 소회와 느낌들이 있어 생각할 여지를 더 많이 주었다. 특히 우리에게 물 한 모금, 맥주 한 캔처럼 너무나 흔해 별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스레 소중한 행복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면도 있었다. 

중요한 건 <거기가 어딘데>의 인물 구성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저마다의 캐릭터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오만편에서부터 대장 역할을 톡톡히 한 지진희는 <거기가 어딘데>만이 갖는 ‘탐험 예능’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실제로 탐험을 즐기고, 동료들을 챙기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조세호는 자칫 고행이 될 수 있는 탐험 예능에 ‘웃음’이 가진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 인물로, <거기가 어딘데>가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색깔을 더해준 인물이다. 자신 역시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함께 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했다. 그 웃음이 있어 고행은 즐거운 도전이 될 수 있었다. 

배정남은 오지에서도 낭만을 찾는 인물로서 조금 현실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즐기려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조세호와 합을 맞춰 개그 듀오가 된 그는 ‘의욕’과 ‘현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탐험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그는 충실하게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차태현은 ‘보통의 기준점’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오지 탐험이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것 자체가 도전으로 다가올 정도였던 그는 이번 탐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회를 얻었다. 그 보통의 기준점이 있어 시청자들은 그 곳이 오지라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그걸 넘어서는 모습에 감동 같은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탐험예능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고, 거기에 인물 구성까지 완성된 상황이니 이제 좀 더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을 떠날 일만 남았다. 물론 탐험이라는 특성이 ‘한계상황’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맞춰줘야 하는 중요한 숙제를 남기고 있지만, 바로 그런 경계들이 예능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교양과 예능의 경계 사이에 뛰어들어 탐험예능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듯이. 그 의미 깊었고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지속될 수 있게 어서 시즌2로 돌아오길...(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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