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도 꽃이 핀다’, 드디어 꺼내놓은 이 드라마의 찐한 매력

모래에도 꽃이 핀다

“그래 내 니한테 물어볼 거 있다. 내가 그 날 경기 끝나고 나서 바로 니한테 물어볼라 캤거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김백두(장동윤)는 오유경(이주명)과 함께 임동석(김태정)을 찾아온다. 거산군청에서 형 동생 하며 김백두와 지냈던 임동석은 씨름 유망주로 다른 팀에 스카웃됐다. 그런데 거산군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김백두와의 시합으로 갖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그 때 임동석을 지도했던 코치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코치가 죽은 것이 불법 도박에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즉 김백두와 한 그 경기에서 코치는 임동석에게 일부러 져 달라는 승부조작 요구를 했고 그것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국 임동석이 이기면서 다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수사하는 오유경과 함께 임동석에게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김백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놓는다. 

 

“니 어금니 괘안나? 와! 아니 단오전 시합 때 니 진짜로 이 갈면서 하데? 니 이 가는 소리가 내한테 들렸다, 임마! 와, 니 평소에는 뭐 내한테 형, 형 거리면서 따르는 척 하더만은 야, 니 어금니 나가는 소리에 내가 억수로 배신감을 느꼈어, 임마!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마!” 모두가 승부조작이라 생각하는 걸 당시 경기를 같이 했던 김백두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내는 니 믿는다. 샅바를 잡아 본 놈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어? 니 헛짓거리 안 한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임동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출렁인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섣불리 자신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떠들어대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코치가 자신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치가 그렇게 진짜 죽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그 때 차라리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그러자 김백두의 일침이 또 날아든다. 

 

“야, 임동석이! 내 딱 한 번만 말한다이? 니 잘 들어. 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커면은 아끼는 제자 끌어안고 불구덩이 뛰어든 그 코치 잘못이지, 안 그러나!” 잘못 한 게 없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어찌 자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백두는 그런 임동석에게 분명한 어조로 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준다. 

 

김백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임동석은 돌아서는 길에 굳이 김백두에게 그 날 막판 애매했던 경기결과에 대해 털어놓는다. “형! 형도 알지? 형이 사실 그 날 이겼다는 거. 막판에 내가 먼저 닿었잖아. 형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정작 김백두는 판정까지가 경기라며 그가 이긴 게 맞다고 선을 긋는다. “아 이 됐다 마. 야,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렀고, 심판 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거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인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모래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불법 도박에 승부조작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씨름판은, 그 위에서 승패를 떠나 공정한 승부를 통해 꿈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는 청춘들 앞에 놓이기도 하는 불공정하고 부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승자는 기회를 잡고 패자는 쓸쓸하게 모래판을 떠나기도 해야 하는 이 현실의 축소판에서 김백두와 임동석이 보여주는 모습은 심지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여지는 순수함이다. 경기에서 진 김백두가 오히려 승자인 임동석을 위로해주는 이 역전된 상황은 그래서 거꾸로 저 비정하고 부정한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김백두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밍밍한 듯 보였던 드라마 역시 진가를 드러낸다. 

 

“니 맹탕이지. 남 생각한다고 자기 실속 못챙기고 허허실실 니가 좋으면 내도 좋다 주의에 만사가 천하 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절친이자 김백두의 첫사랑이었던 오유경(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건 핀잔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에둘러 하는 칭찬에 가깝다. 비정한 현실의 관점으로 보면 ‘맹탕’으로 여겨질지 모르는 김백두의 이런 말과 행동들은 따뜻한 휴머니티의 관점으로 보면 ‘진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맹탕으로 보였던 김백두의 변함없는 따뜻함에 빠져드는 오유경이다. 마치 밍밍해보였던 드라마에 점점 빠져드는 시청자들처럼.(사진:지니TV)

728x90

<소년시대>로 또다시 청춘의 날개 편 완생의 배우

소년시대

“14살 된 내 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함을 보일 때 짠한 마음이 있는데 임시완에게서 그런 연민을 느낀다.”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작가가 한 매체와 인터뷰 중 했던 이 말은 임시완이라는 배우에게 왜 대중들이 마음을 빼앗기고야 마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그에게서는 어딘가 이면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내력 같은 게 풍겨나온다. 세월을 거꾸로 먹는 듯한 초절정의 동안이지만, 끝없는 노력을 통해 그 안에 쌓인 만만찮은 내공이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그것이다. 일찍이 세상의 어려움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갖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가 이번에는 <소년시대>라는 작품에서 1989년 충청도 출신 고등학생 장병태라는 인물로 분했다. 폭력이 일상이던 시대, 장병태는 매일 안 맞고 지나는 날을 꼽을만큼 두들겨 맞던 온양 찌질이다. 하지만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산 백호라는 전설의 싸움꾼으로 오인받는다. 16대1 전설의 싸움꾼이 왔다는 소식에 부산농고 일진들의 무조건적인 추앙을 받지만, 진짜 아산백호 정경태(이시우)가 같은 반으로 전학오면서 화려했던 봄날은 가고 처절한 응징을 당하는 겨울을 맞이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부여 소피마르소 강선화(강혜원)를 정경태에게 빼앗기고, 가족까지 해코지를 당하게 되자 각성한 장병태가 죽을 각오로 복수혈전을 치르는 이야기다. 

 

학원 액션물로서 시원시원한 액션은 기본이고, 부여 흑거미로 불리는 여고 짱이지만 장병태를 좋아하는 박지영(이선빈)과의 달달한 멜로도 들어있다. 또 부여 농고의 대표 찌질이인 조호석(이상진)과의 티격태격하는 우정스토리에, 춤바람난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엄마와의 훈훈한 가족서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압권은 코미디다. 충청도 사투리 자체가 주는 정감 가득한 해학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데, 임시완은 찰떡같이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특유의 찌질이 캐릭터를 너무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표현해냈다. 

 

여기서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라는 표현이 중요한데, 그것이 이 작품을 연출한 이명우 감독이 원했던 <소년시대>의 톤 앤 매너이기 때문이다. <소년시대>는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멍이 들고 피가 튀며 뼈가 부러지는 참혹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키득키득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웃음이 묻어난다. “하나도 안아프다니께. 어차피 지난주에도 맞고 저번 달에도 맞고 맨날 맞고 사는 인생인디 뭐가 별다를 게 있겄어?” 장병태의 이 대사처럼 맞는데 이력이 나 포기한 듯한 동네북 아이들이 늘 멍을 달고 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는 웃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이력이 다 나버린 이 청춘들의, 속으로 타버린 내면이 느껴져 짠해진다. 그래서 마치 무협지 활극을 우리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학원물로 옮겨놓은 듯한 <소년시대>에서는 희비극이 겹쳐진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임시완이 풍기는 ‘연민’의 정서는 그래서 이 장병태라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찌질하면서도 어딘가 신뢰가 생기는 캐릭터를 제대로 빚어낸다. 그러면서 <해를 품은 달(2012)>로 데뷔해 연기자로서 어언 10년의 내공을 다져온 임시완의 또 다른 스펙트럼으로 자리한다. 그 사이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고, 그만한 삶의 경험치들로 더 단단해진 내면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고등학생 얼굴로 등장하니 저 윤태호 작가가 얘기한 연민의 강도 또한 짙어졌다. 

 

이처럼 변함없는 동안은 그를 청춘을 대표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미소년의 얼굴에 가녀린 몸은 <변호인(2013)>에서는 용공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는 대학생으로 분해 보는 이들마저 괴로울 정도로 아픈 80년대 청춘의 초상을 그려냈고, <미생>에서는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사회초년생 장그래를 통해 2010년대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는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는 극중 대사처럼 ‘혁신적인 또라이’ 역할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9년 군복무를 마치고 나와서는 이제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복귀작이었던 <타인은 지옥이다(2019)>에서는 고시원에서 사는 작가지망생 역할을, <런온(2020)>에서는 순수하고 따뜻하며 정의감 넘치는 단거리 육상선수 역할을, 또 영화 <비상선언(2022)>이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2)> 같은 작품에서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호칭을 얻은 사이코패스와 스토커 역할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 역사를 새로 쓴 서윤복의 이야기를 그린 <1947 보스톤(2023)>에서는 완벽히 빙의된 마라토너의 면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의 얼굴 이면에 단단해진 내면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임시완이 이같은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갖게 된 건 그 이면에 숨겨진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치열함은 함께 작업을 한 감독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랄 정도로 준비되어 나타난 임시완의 이야기를 꺼내놓곤 한다. 예를 들어 <1947 보스톤>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은 처음 임시완을 마주하고는 저런 가녀린 몸으로 마라토너 서윤복을 연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몇 달도 되지 않아 나타난 임시완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완벽한 마라토너(그것도 그 가난했던 시절의)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또 <소년시대>의 이명우 감독 역시 부산 출신인 임시완이 과연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잘 구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 한 달 정도만에 나타난 임시완이 구사하는 부여 사투리는 말만이 아니라 감성, 뉘앙스까지 살려낼 정도로 실감이 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자라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배우라는 것이다. 

 

실로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청춘들은 사회에 나오기도 전부터 치열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아픔이 있지만 안으로 꾹꾹 씹어 내공을 만들고, 밖으로는 해맑은 척한다. 아 이토록 조숙한 청춘의 처연함이라니. 임시완의 얼굴에는 끝없이 이들을 ‘미생’으로 만드는 이 시대와 공유하는 청춘의 초상이 느껴진다. 부디 완생하기를.(사진:쿠팡플레이 글: 국방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728x90

‘연인’, 존버 시대 안은진이라는 독보적 캐릭터의 탄생

연인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종종아 일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도 우린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 벼랑 끝에 몰린 조선인 여성들은 그 곳에서 치마로 얼굴을 감싼 채 뛰어내린다. 더럽혀진 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거라며. 그러자 길채(안은진)는 그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상관없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다. 병자호란이라는 극단적인 전쟁 상황을 가져와 그 곳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초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담았다. 파트1이 병자호란 상황 속에서의 살아남기라면, 파트2는 전쟁은 끝났지만 그 배경을 중국 심양으로 옮겨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길채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때론 철부지처럼 살아오던 이 인물은 위기 속에서 변화한다. 병자호란 속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종종이(박정연)와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심지어 그 사지에서 아이까지 받아내며 끝내 버텨 살아남는다. 전쟁이 끝나고 사랑하는 연인 이장현(남궁민)과 엇갈려 구원무(지승현)와 혼례를 치르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도망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돈에 팔리고 노리개처럼 핍박받는 노예의 처지가 된 조선인들은 도망치다 발뒤축을 잘리거나 상전의 질투로 손목이 잘리거나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는 참혹한 처지가 된다.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절망하게 되는 건,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주홍글씨 같은 꼬리표다. 길채를 구하러 나선 남편 구원무 역시 그렇게 끌려갔다면 ‘볼 짱 다 본 몸’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은 살아 돌아왔어도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된다. 역시 노예로 끌려왔다가 이장현에게 구출된 양천(최무성)은 그 자신 또한 노예의 처지를 잘 알면서도 다른 조선인 여성이 아이의 젖을 주려 하자 ‘원수에게 물린 젖’을 물릴 수 없다며 밀쳐낸다.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예들은 다 같이 참혹한 상황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핍박받는다. 

 

그래서 조선인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는 그 지옥 같은 현실 속이지만, 길채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는 ‘살아남자’고 손을 내민다. 절개니 부모님이 하는 그런 유교적 사고관 따위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밀쳐낸다. 죽으려 하는 종종이에게 내미는 손이, 자신이 끝까지 지켜주겠다 하는 그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연인>은 이른바 ‘존버’ 시대의 가치관이 투영된 사극이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대단한 꿈이나 이상보다 일단 ‘살아남기’가 더 중요해졌다. 쉽지 않은 취업현실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무엇보다 ‘생존’하는 일이 우선이고,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져온 <연인>은 그 시대 그 어떤 손가락질에도 끝내 살아남았던 길채 같은 인물을 통해 지금의 ‘존버’하는 청춘들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중이다. 

 

이것은 길채를 잊지 못하고 심양에서도 줄곧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는 이장현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 곳에 끌려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치욕이라고 말하는 소현세자(김무준)에게 이장현은 이렇게 말한다. “소인은 포로시장의 조선 포로들인 치욕을 참고 있다 생각지 않습니다. 저들은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옵니다. 배고픔과 매질, 추위를 이겨내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삶을 소망하고 있나이다. 하루를 더 살아낸다면 그 하루만큼 싸우면서 승리한 당당한 전사들이 되는 것이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인가. 이장현의 말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보여주는 길채라는 인물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노예 시장에 끌려 나와 몸값 흥정을 당하는 처지 속에서도 끝내 생존하겠다는 의지만은 꺾지 않는 이 인물 앞에 이장현이 드디어 나타나 “도대체 왜?”라고 분노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피투성이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처럼 느껴진다. 길채라는 사극 속 인물이 존버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져서다. (사진:MBC)

728x90

코다 소년 려운에 담은 청춘들에 대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응원

반짝이는 워터멜론

“제가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님이 욕을 먹어요.” 은결은 비바 할아버지(천호진)에게 숨겼던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는다. “장애인이라 애를 제대로 못 키웠다고. 두 분 다 농인이시거든요. 제가 잘못하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욕을 들으세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돼요.” 은결은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는 물론이고 형 은호의 입과 귀가 되는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은결의 아버지는 가족이 모두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은결이를 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는 가족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빠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수도 있다”며 은결이는 분명 “뛰어가서 아빠를 도와줄 누군가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어린 은결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빠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이 은결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자 책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코다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더 가족을 위해 노력해온 은결이 비바 할아버지를 통해 기타를 알게 되고 배우는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수화를 통해 침묵의 세계에 살아가는 가족과 소리의 세계인 세상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온 은결에게 불쑥 등장한 기타라는 음악의 세계. 비바 할아버지는 음악의 세계가 수화와 비슷하다며 “손으로 말을 걸고 음으로 돌려받는 것”이라고 했다. 

 

또 코드의 세계는 인생과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코드에는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라는 게 있는데, 메이저 코드가 밝은 느낌을 준다면 마이너 코드는 좀 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내지. 메이저와 마이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멋진 곡이 완성된단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시련도 있고 기쁨도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인생이 완성되는 법이지.”

 

하지만 음악의 세계 깊숙이 빠져들던 은결은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나는 사건을 겪으며 기타를 내려놓는다. 그 화재로 형과 아버지가 죽을 뻔 하고 집은 잿더미가 됐다. 은결이 그 안에 있다 생각한 아버지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은결은 알았을 게다. 아버지가 아니 나아가 이 가족이 얼마나 자신을 의지하는가를.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알쏭달쏭한 제목에도 담겨 있지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짝임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그 이야기를 은결이라는 코다 소년으로부터 시작하는 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접어두고 살아가는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가끔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에서 기타 버스킹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족을 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이 청춘은 이 족쇄를 벗어나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 단서는 이미 비바 할아버지가 어린 은결에게 코다를 설명하며 전한 바 있다. 그는 은결이 가족 중에서 혼자서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코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코다가 하는 수화와 음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줬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들이지. 말과 손으로. 그리고 때로는 너처럼 음악으로.” 

 

간만에 느껴지는 따뜻함과 청량함이 있는 드라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비바 할아버지가 은결에게 전하는 음악처럼, 그가 해온 코다로서의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가족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존재가 되기를 응원한다. 그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청춘들에게 뭐든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어른의 시선이 있고, 그게 뭐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량한 청춘들이 있다. 이 드라마가 첫 회부터 꺼내놓은 진심은 그래서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사진:tvN)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