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존버 시대 안은진이라는 독보적 캐릭터의 탄생

연인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종종아 일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도 우린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 벼랑 끝에 몰린 조선인 여성들은 그 곳에서 치마로 얼굴을 감싼 채 뛰어내린다. 더럽혀진 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거라며. 그러자 길채(안은진)는 그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상관없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다. 병자호란이라는 극단적인 전쟁 상황을 가져와 그 곳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초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담았다. 파트1이 병자호란 상황 속에서의 살아남기라면, 파트2는 전쟁은 끝났지만 그 배경을 중국 심양으로 옮겨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길채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때론 철부지처럼 살아오던 이 인물은 위기 속에서 변화한다. 병자호란 속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종종이(박정연)와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심지어 그 사지에서 아이까지 받아내며 끝내 버텨 살아남는다. 전쟁이 끝나고 사랑하는 연인 이장현(남궁민)과 엇갈려 구원무(지승현)와 혼례를 치르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도망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돈에 팔리고 노리개처럼 핍박받는 노예의 처지가 된 조선인들은 도망치다 발뒤축을 잘리거나 상전의 질투로 손목이 잘리거나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는 참혹한 처지가 된다.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절망하게 되는 건,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주홍글씨 같은 꼬리표다. 길채를 구하러 나선 남편 구원무 역시 그렇게 끌려갔다면 ‘볼 짱 다 본 몸’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은 살아 돌아왔어도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된다. 역시 노예로 끌려왔다가 이장현에게 구출된 양천(최무성)은 그 자신 또한 노예의 처지를 잘 알면서도 다른 조선인 여성이 아이의 젖을 주려 하자 ‘원수에게 물린 젖’을 물릴 수 없다며 밀쳐낸다.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예들은 다 같이 참혹한 상황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핍박받는다. 

 

그래서 조선인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는 그 지옥 같은 현실 속이지만, 길채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는 ‘살아남자’고 손을 내민다. 절개니 부모님이 하는 그런 유교적 사고관 따위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밀쳐낸다. 죽으려 하는 종종이에게 내미는 손이, 자신이 끝까지 지켜주겠다 하는 그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연인>은 이른바 ‘존버’ 시대의 가치관이 투영된 사극이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대단한 꿈이나 이상보다 일단 ‘살아남기’가 더 중요해졌다. 쉽지 않은 취업현실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무엇보다 ‘생존’하는 일이 우선이고,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져온 <연인>은 그 시대 그 어떤 손가락질에도 끝내 살아남았던 길채 같은 인물을 통해 지금의 ‘존버’하는 청춘들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중이다. 

 

이것은 길채를 잊지 못하고 심양에서도 줄곧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는 이장현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 곳에 끌려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치욕이라고 말하는 소현세자(김무준)에게 이장현은 이렇게 말한다. “소인은 포로시장의 조선 포로들인 치욕을 참고 있다 생각지 않습니다. 저들은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옵니다. 배고픔과 매질, 추위를 이겨내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삶을 소망하고 있나이다. 하루를 더 살아낸다면 그 하루만큼 싸우면서 승리한 당당한 전사들이 되는 것이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인가. 이장현의 말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보여주는 길채라는 인물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노예 시장에 끌려 나와 몸값 흥정을 당하는 처지 속에서도 끝내 생존하겠다는 의지만은 꺾지 않는 이 인물 앞에 이장현이 드디어 나타나 “도대체 왜?”라고 분노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피투성이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처럼 느껴진다. 길채라는 사극 속 인물이 존버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져서다. (사진:MBC)

코다 소년 려운에 담은 청춘들에 대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응원

반짝이는 워터멜론

“제가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님이 욕을 먹어요.” 은결은 비바 할아버지(천호진)에게 숨겼던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는다. “장애인이라 애를 제대로 못 키웠다고. 두 분 다 농인이시거든요. 제가 잘못하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욕을 들으세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돼요.” 은결은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는 물론이고 형 은호의 입과 귀가 되는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은결의 아버지는 가족이 모두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은결이를 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는 가족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빠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수도 있다”며 은결이는 분명 “뛰어가서 아빠를 도와줄 누군가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어린 은결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빠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이 은결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자 책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코다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더 가족을 위해 노력해온 은결이 비바 할아버지를 통해 기타를 알게 되고 배우는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수화를 통해 침묵의 세계에 살아가는 가족과 소리의 세계인 세상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온 은결에게 불쑥 등장한 기타라는 음악의 세계. 비바 할아버지는 음악의 세계가 수화와 비슷하다며 “손으로 말을 걸고 음으로 돌려받는 것”이라고 했다. 

 

또 코드의 세계는 인생과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코드에는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라는 게 있는데, 메이저 코드가 밝은 느낌을 준다면 마이너 코드는 좀 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내지. 메이저와 마이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멋진 곡이 완성된단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시련도 있고 기쁨도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인생이 완성되는 법이지.”

 

하지만 음악의 세계 깊숙이 빠져들던 은결은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나는 사건을 겪으며 기타를 내려놓는다. 그 화재로 형과 아버지가 죽을 뻔 하고 집은 잿더미가 됐다. 은결이 그 안에 있다 생각한 아버지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은결은 알았을 게다. 아버지가 아니 나아가 이 가족이 얼마나 자신을 의지하는가를.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알쏭달쏭한 제목에도 담겨 있지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짝임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그 이야기를 은결이라는 코다 소년으로부터 시작하는 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접어두고 살아가는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가끔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에서 기타 버스킹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족을 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이 청춘은 이 족쇄를 벗어나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 단서는 이미 비바 할아버지가 어린 은결에게 코다를 설명하며 전한 바 있다. 그는 은결이 가족 중에서 혼자서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코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코다가 하는 수화와 음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줬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들이지. 말과 손으로. 그리고 때로는 너처럼 음악으로.” 

 

간만에 느껴지는 따뜻함과 청량함이 있는 드라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비바 할아버지가 은결에게 전하는 음악처럼, 그가 해온 코다로서의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가족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존재가 되기를 응원한다. 그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청춘들에게 뭐든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어른의 시선이 있고, 그게 뭐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량한 청춘들이 있다. 이 드라마가 첫 회부터 꺼내놓은 진심은 그래서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사진:tvN)

‘사냥개들’, 우도환, 이상이의 액션과 감정 연기가 살렸다

사냥개들

우도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사실 차가운 이미지가 강해 주인공보다 악역이 어쩐지 더 잘 어울리는 것만 같던 우도환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사냥개들>에서의 우도환은 완전히 다르다.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왜인지 모르게 슬프고 먹먹해진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할 때면, 그 속에서 활활 타고 있을 불길을 억누르고 있다는 게 느껴져 가슴 아프다. <사냥개들>에서 우도환은 건우라는 역할을 통해 완전히 다른 연기의 영역을 보여줬다. 

 

사실상 <사냥개들>을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전적으로 이 건우라는 ‘착함’이 캐릭터화한 인물에서 나온다. 물론 건우와 함께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우진이라는 캐릭터의 힘도 만만찮고, 그 역할을 연기한 이상이의 연기변신도 우도환만큼 박수 받을 만하다. 어찌 보면 건우와 우진이라는 이 청춘 캐릭터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전해지는 그런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애틋하고 응원하고픈 마음이 그들을 위협하는 현실과의 대결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두 사람은 복서다. 하지만 건우와 우진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복싱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우진은 메이웨더가 갑이라고 하지만, 건우는 그가 너무 비즈니스맨 같다며 그보다는 ‘복서의 심장’을 가진 파퀴아오가 짱이라고 한다. 즉 돈이 중요하다는 우진은 보다 현실적인 형이고, 건우는 가난해도 복싱 선수로서의 자부심이 큰 이상을 꿈꾸는 동생이다. 하지만 이렇게 달라도 이들은 지켜야할 건 지켜야 한다는 선한 마음으로 통한다. ‘복서의 심장’을 이야기하는 건우의 말에 우진이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 그걸 보여준다. 

 

복서는 링 바깥에서는 주먹을 들어서는 안되지만, 건우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도와준다는 식으로 다가와 사기를 치는 명길(박성웅) 같은 사채업자 때문에 주먹을 든다. 액션물이 그저 치고받는 이야기로만 흘러가면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사냥개들>에는 건우와 우진의 서사를 담음으로써 주먹 한 방에도 마음이 움직이게 만든다. 

 

코로나19 시절, 그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어려움을 마주했던 그 현실을 가져와,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더 악랄하게 사기를 치는 명길 같은 빌런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공분하게 만든다. 심지어 길바닥에 나앉은 노숙자들의 신분증을 훔쳐 사채를 빌려 돈을 모으는 그런 악당들이다. 게다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명길은 정관계는 물론이고 경찰들까지 장악해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명길이 악의 대명사라면, 그와 대결하게 되는 건우와 우진은 가난해 그저 몸뚱어리 하나만 갖고 살벌한 현실과 부딪치는 청춘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 청춘들은 이 살벌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들이 갖고 있던 마지막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목표를 위해 과정을 희생시키는 걸 당연히 생각하는 비정한 세상에서 건우는 이렇게 말하는 인물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는 그 대표보다 더 나쁜 놈이에요. 그건 아니에요.”

 

이 착한 마음은 이들 건우와 우진이 형제 같은 브로맨스로 끈끈해지고, 시련 앞에서도 더더욱 단단해지며 끝내 저들과 맞서 이겨내는 그 과정들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진 역시 건우처럼 복수나 돈을 위한 주먹이 아니라 지킬 건 지키는 ‘복서의 심장’으로서의 주먹을 들게 된다. 극악한 세계와 정반대되는 스포츠의 세계. 건우와 우진이 명길의 조직과 맞서 싸우는 과정 역시 이들이 몸을 만들어가는 스포츠처럼 준비된다.

이제 K콘텐츠에서 액션은 K액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독특한 하나의 색깔과 완성도를 갖게 된 듯하다. <범죄도시3>에서 마동석의 복싱 액션이 시원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준 것처럼, <사냥개들>은 우도환과 이상이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복싱 액션이 두 명이 하는 두 배의 강도로 펼쳐진다. 액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에 이들의 감정 연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6위에 올라온 <사냥개들>은 더 높은 성취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안타까운 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새론에 의해 만들어진 진입장벽이다. 작품 내용 상 분량을 완전히 덜어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고, 그래서 최대한 덜어내려 했던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는 김새론의 사적인 문제들이 이 작품에 먹구름을 드리워 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문제들만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우도환과 이상이가 보여주는 기대 이상의 연기는 충분히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지만.(사진:넷플릭스)

사냥개들

우도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사실 차가운 이미지가 강해 주인공보다 악역이 어쩐지 더 잘 어울리는 것만 같던 우도환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사냥개들>에서의 우도환은 완전히 다르다.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왜인지 모르게 슬프고 먹먹해진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할 때면, 그 속에서 활활 타고 있을 불길을 억누르고 있다는 게 느껴져 가슴 아프다. <사냥개들>에서 우도환은 건우라는 역할을 통해 완전히 다른 연기의 영역을 보여줬다. 

 

사실상 <사냥개들>을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전적으로 이 건우라는 ‘착함’이 캐릭터화한 인물에서 나온다. 물론 건우와 함께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우진이라는 캐릭터의 힘도 만만찮고, 그 역할을 연기한 이상이의 연기변신도 우도환만큼 박수 받을 만하다. 어찌 보면 건우와 우진이라는 이 청춘 캐릭터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전해지는 그런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애틋하고 응원하고픈 마음이 그들을 위협하는 현실과의 대결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두 사람은 복서다. 하지만 건우와 우진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복싱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우진은 메이웨더가 갑이라고 하지만, 건우는 그가 너무 비즈니스맨 같다며 그보다는 ‘복서의 심장’을 가진 파퀴아오가 짱이라고 한다. 즉 돈이 중요하다는 우진은 보다 현실적인 형이고, 건우는 가난해도 복싱 선수로서의 자부심이 큰 이상을 꿈꾸는 동생이다. 하지만 이렇게 달라도 이들은 지켜야할 건 지켜야 한다는 선한 마음으로 통한다. ‘복서의 심장’을 이야기하는 건우의 말에 우진이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 그걸 보여준다. 

 

복서는 링 바깥에서는 주먹을 들어서는 안되지만, 건우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도와준다는 식으로 다가와 사기를 치는 명길(박성웅) 같은 사채업자 때문에 주먹을 든다. 액션물이 그저 치고받는 이야기로만 흘러가면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사냥개들>에는 건우와 우진의 서사를 담음으로써 주먹 한 방에도 마음이 움직이게 만든다. 

 

코로나19 시절, 그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어려움을 마주했던 그 현실을 가져와,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더 악랄하게 사기를 치는 명길 같은 빌런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공분하게 만든다. 심지어 길바닥에 나앉은 노숙자들의 신분증을 훔쳐 사채를 빌려 돈을 모으는 그런 악당들이다. 게다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명길은 정관계는 물론이고 경찰들까지 장악해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명길이 악의 대명사라면, 그와 대결하게 되는 건우와 우진은 가난해 그저 몸뚱어리 하나만 갖고 살벌한 현실과 부딪치는 청춘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 청춘들은 이 살벌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들이 갖고 있던 마지막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목표를 위해 과정을 희생시키는 걸 당연히 생각하는 비정한 세상에서 건우는 이렇게 말하는 인물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는 그 대표보다 더 나쁜 놈이에요. 그건 아니에요.”

 

이 착한 마음은 이들 건우와 우진이 형제 같은 브로맨스로 끈끈해지고, 시련 앞에서도 더더욱 단단해지며 끝내 저들과 맞서 이겨내는 그 과정들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진 역시 건우처럼 복수나 돈을 위한 주먹이 아니라 지킬 건 지키는 ‘복서의 심장’으로서의 주먹을 들게 된다. 극악한 세계와 정반대되는 스포츠의 세계. 건우와 우진이 명길의 조직과 맞서 싸우는 과정 역시 이들이 몸을 만들어가는 스포츠처럼 준비된다.

이제 K콘텐츠에서 액션은 K액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독특한 하나의 색깔과 완성도를 갖게 된 듯하다. <범죄도시3>에서 마동석의 복싱 액션이 시원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준 것처럼, <사냥개들>은 우도환과 이상이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복싱 액션이 두 명이 하는 두 배의 강도로 펼쳐진다. 액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에 이들의 감정 연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6위에 올라온 <사냥개들>은 더 높은 성취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안타까운 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새론에 의해 만들어진 진입장벽이다. 작품 내용 상 분량을 완전히 덜어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고, 그래서 최대한 덜어내려 했던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는 김새론의 사적인 문제들이 이 작품에 먹구름을 드리워 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문제들만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우도환과 이상이가 보여주는 기대 이상의 연기는 충분히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지만.(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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