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청춘>에서 느껴지는 이우정 작가의 진가

 

<꽃보다 청춘>을 보니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들이 새롭게 보인다. <응답하라 1994>의 해태 손호준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정도의 촌놈 기질이나, 칠봉이 유연석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착한 모습, 그리고 빙그레 바로의 나이는 어려도 의젓한 모습은 <꽃보다 청춘>이 보여주는 그들의 진짜 모습에서도 묻어나왔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비행기 기내식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는 토종 손호준은 이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얼떨떨한 표정이 역력했다. 먹는 것조차 토종 한국식만을 고집해온 탓에 라오스에 도착해서도 입맛에 맞지 않아 아무 것도 챙겨먹지 못하는 손호준은 <응답하라 1994>에서 보여줬던 촌놈 캐릭터 그대로였다.

 

반면 유연석은 손호준과는 정반대로 뭐든 잘 먹고 어떤 상황에서든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 것도 못 먹는 절친 손호준을 챙기기 위해 과일을 챙겨 먹이는 유연석에게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속 깊은 자상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 역시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보여주던 그대로다. 능력자지만 타인을 바보처럼 묵묵히 챙기는 그런 캐릭터.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와 실제의 모습이 같은 건 바로도 마찬가지. 가장 나이 어린 막내지만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는 유연석과 손호준에게 싸우지 마세요라며 중재를 하고, 때로는 서먹해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의젓한 막내. <응답하라 1994>에서 남다른 고민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빙그레의 모습이 그 진짜 모습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팬이라면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반색했을 것이다. 그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면면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와 진짜 실제 모습이 늘 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꽃보다 청춘>3인방의 경우에는 그 드라마 속 캐릭터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마치 <응답하라 1994>에서 막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응답하라 1994> 이우정 작가의 남다른 드라마 캐릭터 작법 덕분이다. 사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들의 가장 큰 장점이 캐릭터라는 옷을 배우들에게 그저 입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가진 실제 모습에서 캐릭터를 찾아낸다는 점이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작가들의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자연스럽고 또 그 매력이 드러나는 건 바로 이런 작가의 세심함 덕분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더욱 흥미로워진 건 그래서 상당부분 <응답하라 1994>를 쓴 이우정 작가의 공이 크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우리는 손호준과 유연석, 바로의 드라마 속에서 봤던 모습을 실제 리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캐릭터들이 그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진 모습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가능해진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면서 출연자를 살펴 그 실제 모습을 캐릭터화 하는 이우정 작가가 가진 고유의 영역. 그것이 아니었다면 <꽃보다 청춘>의 완결편이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벌써부터 막 입고 막 먹어도 막 멋있는 이들의 여행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꽃보다 청춘>, 회고담 속에 담긴 청춘의 기억

 

윤상, 유희열, 이적이 함께한 <꽃보다 청춘>의 페루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실 중년의 나이에 어느 날 훌쩍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중년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나이라서 그렇다. 회사를 다니는 중년이라면 위로 아래로 챙겨야할 일들이 산적해 개인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그렇다. 가족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자신 따위는 살짝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바로 중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꽃보다 청춘>은 바로 이 현실에 꽉 막혀 있는 중년들을 어느 날 납치하다시피 비행기에 태워 그것도 남미 페루에 떡 하니 갖다 놓는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상하게 그것은 그들을 설레게 만든다. 유희열은 남녀가 함께 혼숙하는 도미토리에서의 불편한 하룻밤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하나하나 계획하기 시작하고, 이적은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부터 일어, 중국어 등등 각종 언어들을 급조해 섭렵(?)하며 여행의 소통을 책임진다. 갑작스런 출발에 부대끼는 몸을 달고 온 윤상은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동생들을 배려하며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여행 자체를 싫어하던 윤상은 동생들과 여행에서 여행의 묘미를 찾아낸다.

 

여행의 목적지인 마추피추 앞에서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것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그 성취감과 현실에 묻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런 역사적인 문명 앞에 서 있다는 감흥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시간은 그 무구한 세월을 버텨온 유적 앞에서 다시금 의미를 되찾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채워가듯 일에 쫓겨 살아가던 중년들은 세월이 무상한 유적 앞에서 자신들이 보낸 현실의 안간힘이 마치 먼지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거쳐 남미까지 들어가는 데만도 20시간이 꼬박 걸린다. 거기서부터 또 마추피추까지 가는 여정은 버스로도 하룻밤 이상을 더 가야 하는 거리다. 그러니 중년의 그들에게 이동거리만으로도 도전이 됐을 터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이들은 동료로서 선후배로서의 끈끈한 관계를 재확인한다. 아픈 윤상을 무심한 척 살뜰히 챙기는 유희열의 마음이 보이고, 그런 윤상의 사연을 들으며 왈칵 울어버린 이적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윤상이 보인다.

 

중년 남자 셋이 마음을 통해 가까워지니 이제 그들은 소년이 된다. 마치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로 돌아간 듯, 현실 바깥으로 나와 적응된 그들은 점점 청춘이 되어간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왜 중년들의 여행을 소재로 하면서 <꽃보다 청춘>이라 이름 붙인 이유가 될 것이다. 여행은 우리 모두를 청춘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기억은 영원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그들이 납치되듯 여행을 시작했던 자유로 김치찌개 식당에서 후일담을 나눈다. 그 후일담에는 세 사람의 여행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은 여행과 청춘에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여행이든 청춘이든 다시 가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꽃보다 청춘>이라는 특별한 여행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청춘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떠나라. <꽃보다 청춘>은 그런 말을 전하고 있다.

 

여행과 잃어버린 청춘, 감회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영석 PD가 새롭게 들고온 tvN <꽃보다 청춘><꽃보다 누나>의 남자편 같은 성격으로 어찌 보면 <꽃보다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남자의 자격>의 아저씨들이 보여줬던 나이 들어감과 그럼에도 여전한 청춘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이것을 <꽃보다 청춘>이라고 지칭하고 그들 속에 숨겨진 소년을 여행을 통해 깨어내는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꽃보다> 시리즈 3부작이 본래 배낭여행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들이 결국은 모두 청춘에 닿아있다는 걸 말해준다. ‘배낭여행은 마치 청춘들의 전유물처럼 불리워진 여행의 한 종류다. 그러니 그 틀 안에서 어르신을 넣어보고 또 누나들을 넣어보고 그리고 여전히 청춘의 소년을 갖고 있는 아저씨들을 넣어보는 여행 실험이 나영석 PD가 본래 하려던 그림이었던 셈이다.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은 우리가 그의 음악을 통해 생각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왔던 자신을 드러내주었다. 술 없이는 지낼 수 없었던 나날들을 조용히 고백하고 지금은 우울증 치료제로 대신하며 술을 끊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술도 우울증 치료제도 떨궈내고 싶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청춘을 찾아가는 여행일 것이다.

 

이적은 그런 윤상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용히 눈물을 떨궈냈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살아왔던 그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고 또 같이 나이 들어감을 공감 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지만 그런 배려를 받아주지 않을 때는 마치 아이처럼 화를 내는 이적은 감정에 솔직하다. 유희열은 늘 밝고 어떤 환경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며 스스럼없는 행동을 하는 소년처럼 보이지만 그 나이라면 익숙해질 만도 한 심각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윤상은 담담하고 이적은 솔직하며 유희열은 리더십이 강하다. 이처럼 잘 맞는 조합이 있을까. 유희열이 길을 찾고 계획을 세우면 이적은 그 길 위에서 행동하고 윤상은 옆에서 그들이 놓칠지도 모르는 것들을 조용히 지켜낸다. 그들에게 짐꾼이 없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들 스스로 재미와 의미 모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툭탁대고 셀프 카메라를 들고 그 나이에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기면서도 짠한 느낌을 준다.

 

이런 여행의 특징은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가 3연타 홈런을 날린 가장 큰 이유다. 그의 여행은 특별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대감과 그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이것이 재미에 끝나지 않고 대중정서를 자극하는 의미망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있다. <꽃보다 할배>도 그랬고 <꽃보다 누나>도 그랬던 것처럼 왜 하필 청춘이라는 키워드일까.

 

우리에게 여행이란 한때는 계속되는 일 속에서 잠시 떠나는 것이었고 멈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젊어서 일만 하다 나이 들어버린 이들에게는 여행이란 마치 잃어버린 청춘과 비견되는 어떤 것일 게다. 그러니 여행을 통해서 그 청춘을 확인하는 건 즐겁고 설레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일이다. <꽃보다> 시리즈가 지금껏 배낭여행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휴가시즌, 이제 맘만 먹으면 해외로 나가는 일이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닌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 무리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그 한 자락의 추억을 가슴에 부여안고 한 해의 힘겨움을 버텨내는 건 이제 우리 사회의 한 삶의 패턴이 되었다. 우리 삶의 꽃 같은 시간들은 그렇게 빠르게도 지나가고 시들어간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도 기억은 남는 것. 나영석 PD의 여행은 그 청춘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저들처럼 한번쯤 청춘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기를.

 

<꽃청춘>, 뜬금없이 떠난 여행의 패닉? 혹은 즐거움!

 

<꽃보다 청춘>. 이것이 청춘의 여행이다.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것. 현실의 족쇄들이 점점 견고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아채는 중년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뜬금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특히 해야 될 일이 있고 만나야 될 사람들이 있고 게다가 가족까지 있다면 이런 여행은 심지어 무책임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청춘이야 치기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중년이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내야 하는 어떤 시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아무 준비도 없이 미팅을 한다며 모인 윤상, 유희열, 이적이 그 날 바로 갑자기 페루로 떠나는 여행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러고 가란 말야?”하고 맨발을 내밀며 웃는 유희열처럼 약간은 즐겁고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패닉과 설렘. 중년이라는 견고한 책임감과 그걸 살짝 벗어버린다는 데서 오는 들뜸.

 

공항패션은커녕 거지꼴을 하고 출국하는 공항에서 이적은 어 이상해 왜 자꾸 웃음이 나지?”하고 말했다. 아마도 그런 치기어린 여행을 했던 청춘에서 이제 꽤 멀리 걸어온 중년이 갑자기 떠나면서 느끼는 현실과의 거리감이 그런 이상한 웃음을 만들어냈을 게다. 프로그램이 자막을 통해 보여주듯, 그들은 나이 들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소년이 살아있었다. 다만 숨겨져 있었을 뿐.

 

혼자가 아닌 마음 맞는 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더더욱 그 소년의 치기를 밖으로 끌어낸다. 일종의 공모의식. 다 같이 업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선후배지만 그걸 다 뒤로 남겨두고 훌쩍 떠난다는 그 같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공범(?)의식이 그들을 더욱 현실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의 관계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의외의 능력과 개성들을 발견한다.

 

비행기에서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여행을 준비하는 유희열은 의외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런 형이 믿음직스런 이적은 이 형이 이런 형이라니까하고 든든해하며, 윤상은 희열이만 믿어하고 신뢰를 보낸다. 장소 찾는데 능력을 보이는 지리맨 유희열은 돈데 에스타...’라는 한 마디 할 줄 아는 스페인어로 시장을 찾아낸다.

 

꼼꼼하게 경비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이적은 페루라고 새겨진 작은 지갑 하나를 사고는 어린애처럼 즐거워한다. 유희열은 작은 지갑 하나의 의미를 되새긴다. “카드가 없는 삶은 이걸로 되더라구... 가죽지갑을 사면 신분증이니... 뭐든 꽂아야 되잖아. 다 필요 없던 거야.” 좁은 공간에서 수건 하나로 함께 샤워를 하는 경험이나 미처 챙겨가지 못한 속옷을 현지에서 사고, 혼성 도미토리에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혼숙을 하는 체험은 아마도 갑자기 떠나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의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건 오히려 청춘이었다. 할배 신구는 유럽까지 날아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청춘을 찬양했고, 누나들은 크로아티아까지 날아가 여전히 젊고 소녀 같은 감성이 그 속에 살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꽃보다 청춘>은 그래서 이 배낭여행 프로젝트의 일관된 메시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그건 바로 청춘이다. 여행을 통해 다시 찾는 청춘의 나. 언제든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소년, 소녀가 여전히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 특별한 여행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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