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케5>, 어쩌다 이들은 무표정이 되었을까

 

<슈퍼스타K5>의 탑3는 송희진, 박재정, 박시환에게 돌아갔다. 김민지는 결국 탑4에서 하차하게 됐다. <슈퍼스타K5>의 출연자들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송희진과 김민지가 함께 부른 브르노 마스의 ‘원 모어 나잇(One more night)’은 실로 압권이었다. 음정이 불안하다는 평을 자주 듣고 또 발라드에만 장르적으로 머물러 있던 박시환의 록커 변신은 무난하게 여겨졌고, 복고적이면서도 늘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박재정의 무대도 나쁘지 않았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실로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유독 많았던 <슈퍼스타K5>였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이하늘의 심사는 대부분이 혹평에 가까웠고 점수도 90점 이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출연자들의 역량 부족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혹평을 받은 출연자들의 의기소침은 무대에서의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탑4 무대 정도가 된다면 출연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렇질 못했다.

 

아마도 시즌5를 지나오면서 점점 높아진 기대감이 주는 착시현상도 있을 게다. 노래실력이 아직 아마추어에 머물고 있다고 평을 받지만 탑4까지 온 출연자들은 충분한 매력이 있다 여겨진다. 프로로서의 실력과 끼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어쩌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순수한 맛을 상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송희진이 가진 시원시원한 고음과 박재정이 가진 안정적이고 세련된 느낌, 박시환의 듣는 이를 슬프게 만드는 음색이나 김민지의 어쿠스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저마다 괜찮은 가능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이들을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들게 만드는 점이 있다. 그것은 흔히들 끼 혹은 스타성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간 박시환과 박재정이 샤이니를 만나 선보인 춤을 보라. 생방송 무대에서도 ‘매너 부족’ 혹평을 들을 만큼 이들의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실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것은 송희진도 마찬가지고 김민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녀들은 각각 파워보컬과 포크라는 특색을 갖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대에서의 액션이 약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지 액션만이 아니고 그들의 표정에서도 묻어난다. 노래 역시 감정을 실어 관객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노래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게 얼굴의 감정연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허세 섞인 표정의 매력을 가진 박재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은 사실상 데드 마스크에 가깝다. 박시환은 늘 똑같은 표정이고 심지어 웃을 때조차 어색한 느낌이다. 송희진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노래하고, 김민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가창력이 가진 힘이 100%라면 여기에 얹어진 표정과 감정은 노래를 200%로 만들어줄 것이다. 결국 제 아무리 고음을 잘 지르고, 슬픈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 출연자였던 허각이나 존박, 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이나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 그리고 로이킴, 정준영 같은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얼마나 자신의 끼와 스타성을 마음껏 보여주었던가.

 

어째서 이번 출연자들은 무표정한 느낌을 주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심사위원이나 제작진들이 이들 출연자들을 충분히 북돋워주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고, 그 감정과 표현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출연자들 스스로 자신의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틀을 벗어던지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표정하게 만들었을까.

 

이번 출연자들은 특히 어려움을 많이 겪은 흔적이 역력하다.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중장비 이동 정비사를 하며 노래방에서 노래의 꿈을 키워왔다는 박시환이나, 가정형편이 안 좋아 아빠랑 떨어져 그룹 홈에서 지낸다는 송희진은 대표적이다. 이들의 무표정은 어쩌면 상처받은 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이제 겨우 스물여섯의 나이에 일자리를 전전하고, 열아홉에 집이 없어 그룹 홈에 지내는 청춘이 취할 수 있는 자기 보호 본능 같은 것일 게다.

 

이들에게 오디션이라는 현실의 또 다른 재연은 누구보다 혹독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번 오디션에서 무엇보다 바라게 되는 것은 누가 우승하고 누가 떨어지는가가 아니다. 이들이 오래도록 숨겨왔던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내고 웃는 모습. 더 이상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그동안 유예되어왔던 그 나이의 밝은 표정을 갖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우리 시대의 한 어두운 구석에서 잉여라 치부되며 힘겨운 현실을 무표정으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에 대해서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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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작지 않은 질문

 

현재의 미래(윤은혜)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가 이길 것인가. <미래의 선택>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관점은 사뭇 새롭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들이 주로 주인공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 드라마는 그것이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명적으로 결정된 대로 이뤄진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다룬다.

 

'미래의 선택(사진출처:KBS)'

그래서 <미래의 선택>이라는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현재의 주인공인 미래(윤은혜)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의 의미와 말 그대로 ‘미래의 선택’ 즉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긍하며 살아갈 것인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전자가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능동적인 입장을 말해준다면 후자는 운명론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는 현재를 바꿔 미래 또한 바꾸려는 능동적 입장처럼 보이지만 이 판타지적인 설정에는 이미 운명론이 개입되어 있다. 즉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미래에서 온 미래가 바꾸려는 선택이 남편감이라는 점은 그 운명론적인 입장을 잘 말해준다. 그녀는 한 여자의 앞날이란 어떤 남편을 만나는가에 달려 있다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미래(윤은혜)는 생각이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서른두 살이 먹도록 꿈같은 건 접어둔 채 콜센터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 그녀의 절박함이 들어있다. 늦은 나이지만 그녀는 방송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나이도 많고 학벌도 변변찮은데다 집안도 그저 그런 그녀의 스펙과 그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작금의 취업난을 겪는 청춘들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나이 먹고 앵커자리에서 좌천되어 아침방송 진행자가 된 김신(이동건)과 이 방송국을 소유한 이미란 회장의 손자이지만 이 아침방송의 막내 VJ로 일하는 박세주(정용화)라는 캐릭터 역시 이 운명론과 미래 개척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김신은 과거에 얽매여 있어 여전히 자신이 앵커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방송을 위해 물벼락을 맞을 각오도 되어 있는 현실 개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박세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벌2세라는 위치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방송 말단직을 하며 현실을 알려고 한다.

 

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은 그들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단순한 멜로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는 운명론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재의 미래(윤은혜)는 비로소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삶 대신 보다 나은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삶을 선택한다.

 

과거에 얽매여 있던 김신에게 미래는 현실을 알려준다. 아침방송의 진행자면 거기에 맞게 망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신은 그 말에 수긍하고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인다. 박세주는 팍팍한 방송 생활에 지친 미래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한편, 그녀를 통해 재벌가의 2세로 있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치열한 샐러리맨들의 삶을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관계는 멜로로 엮여있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다.

 

잘 나가는 리포터인 서유경(한채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떻게든 방송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PD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인물. 하지만 그녀에게 박세주가 “당신은 이미 방송을 할 때 멋진 프로다”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괜스레 눈물을 흘린다. 윗선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던 그에게 박세주가 어떤 변화의 동인을 제공한 셈이다.

 

물론 <미래의 선택>은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의 정서를 충분히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만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어딘지 허허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게다. 사실 요즘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치열해진 현실 속에서 멜로니 결혼이니 하는 얘기는 때로는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미래의 선택>이 괜찮은 드라마라는 건 바로 이 현실적인 문제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제대로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 이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태생적으로 이미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가 주는 그 암담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미래의 운명을 보기 위해 점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결국 그 점집 문을 나서면서 다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래가 어떻든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실컷 살아보는 건 어떤가. 즉 미래란 결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가 하나하나 쌓여 생기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선택>은 이 결코 작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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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의 준이, <꽃보다 할배>의 신구

 

<꽃보다 할배>에서 구야형 신구가 홀로 유럽에 배낭여행 온 한 청년에게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한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할배들이 주인공이지만 프로그램이 손을 내미는 쪽은 젊은이들이라는 점.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신구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그 순간에 젊은이와 소통하는 어르신의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이것이 가능한 것은 ‘청춘’이라는 공유점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그 청춘을 지금 현재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중이고, 할배는 한 참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있는 청춘을 새삼 느끼며 그 젊은이를 부러워하는 중이다. 그가 던지는 청춘 예찬은 그래서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된다.

 

“제일 부러운 것이 청춘이야. 아름답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리는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 그는 에펠탑이 지어지던 시기에 흉물스럽다 손가락질 받던 이야기를 끌어와 청춘들의 등을 두드려준다. “나는 요지경에서 끝나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앞을 내다보는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 인정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보면 훗날에는 더 크고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구의 말이 특히 감흥을 준 것은 그가 살아낸 78년의 세월이 그 말에 묻어났기 때문일 게다. 또한 어떤 말을 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에 담겨진 청춘에 대한 자애로움과 심지어 겸손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신구의 태도다. 그저 권위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어르신이 이런 할아버지의 얼굴로 내미는 소통의 손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까.

 

78세 구야형이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가치를 알려주었다면 이제 갓 7살 먹은 준이는 어른들의 세상에 살면서 잊고 있었던 약속과 배려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사실 뭐 특별하다고 할 것도 없는 행동이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아침거리를 아이가 챙겨오는 미션이 주어졌는데 조금 일찍 일어난 준이가 먼저 재료를 구하러 가지 않고 기다리는 장면이 그 하나고, 약속시간에 재료를 구하러 갔을 때 아직 오지 않은 지아의 몫을 챙겨주는 장면이 다른 하나다.

 

그다지 특별하다 여겨지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 반향은 컸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과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의 가치를 준이가 그 순수한 행동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흔해서 대단할 것 없다 여겨진 가치들은 그래서 종종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은 가치들인가. 실제로 현실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런 원칙이 무시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따라서 준이가 보여준 작은 행동이 그 자체로 어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7살 아이 준이의 행동에 대해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의 소통에 대한 욕구가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지점에 도달해있다는 걸 말해준다. 7살 아이의 행동이든 78세의 어르신의 한 마디든 그것이 순수한 가치를 보여줄 때 누구든 귀는 열려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 소통이 중요한 이 시대의 정치인이나 지도층들에게 절실한 자세라 여겨진다. 그 순수함과 열린 마음으로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진심이 소통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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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에 다시 행진하는 들국화

 

들에서 모진 바람을 버텨온 탓일까. 국화 향은 더 진해졌고 더 강렬해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들국화. ‘인제는 돌아와 대중 앞에 선’ 들국화는 서정주의 절창만큼이나 원숙해졌다. 젊은 시절 거칠었던 야성은 그 긴 시간을 거치며 그 강렬한 힘 속에 부드러움을 갖추게 되었고, 그들이 노래하는 가사는 도발적이면서도 인생의 깊이가 더욱 느껴졌다. 합정동 인터파크 아트홀에서 열린 ‘다시 행진’이라는 콘서트(4일-14일)는 그 제목처럼 들국화를 27년 만에 돌아와 다시 출발점에 서게 했다.

 

'들국화'(사진출처:컴퍼니F)

가사의 진정성이란 가수의 삶이 거기에 그대로 겹쳐질 때 담겨지는 법.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콘서트의 첫 곡 ‘행진’은 그들이 살아낸 삶을 미리 예시한 곡처럼 그 가사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아마도 1985년 발표됐던 젊은 시절 들국화의 이 노래에 발을 동동 굴리며 그 행진의 설렘을 느꼈던 팬들이라면 그 가사가 들국화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여겼을 것이다. 30여 년의 세월을 단숨에 꿰뚫는 힘. 그것이 바로 노래의 힘이 아니던가. ‘헤어진 후에’, ‘제발’, ‘사랑일 뿐이야’,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명곡들은 그 세월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20대 청춘들에게나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중장년들에게나 들국화의 노래는 여전히 청춘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꿈이 있으면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전인권은 여전히 꿈꾸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꿈을 꾸고 다시 모여 다시 무대로 돌아오고 다시 행진하는 데는 긴긴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강렬한 힘을 가진 와인은 바로 따면 거칠고 쓰기만 하지만 오랜 시간 묵혀두고 꺼내면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깊어지는 것처럼, 들국화는 어쩌면 그 대기만성의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보였다.

 

전인권의 목소리는 여전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읊조리는 듯한 저음에서 쇳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고음까지 단번에 치솟아 오르는 쾌감을 선사했고, 최성원의 부드러움은 여전히 속삭이듯 관객의 귀를 간지럽혔으며, 주찬권의 드럼은 여전히 마치 장작을 쪼개듯 강렬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전히’ 속에는 원숙미가 더해졌다. 공연 중간 중간 툭툭 던지는 농담 속에마저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듯.

 

“예전에 다투고 헤어졌던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한 관객의 질문에 주찬권이 던진 “헤어진 후에, 이별이란 없는 거야.”라는 답이나, 한 젊은 관객이 “젊었을 때 꼭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게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전인권이 “고생하세요”라고 던진 답변이 관객들을 공감시킨 것은 거기에 자신들의 삶을 통과한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말 뿐이랴. 들국화의 곡들은 마치 부흥회의 연설처럼 강하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겨있었다. 27년만의 신곡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그래서 우리네 가요계에 던지는 도발이면서도 그 안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꿈과 희망이 들어있었다.

 

다시 돌아와 행진하는 들국화의 이 노래를 요즘 시쳇말로 떠도는 ‘힐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너도 나도 ‘힐링’이라 떠드는 탓에 그 단어가 가진 힘이 희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들국화의 노래 속에는 넘어진 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위로이고 힘이고 격려이며 도전이고 꿈이다. 들에서 오래도록 시간을 기다려온 국화꽃이 피었다. 그 향기는 더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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