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리에게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번갈아 나타내는 정신질환. 이것이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흔히 ‘다중인격 장애’라고도 부른다. 한 사람 안에 두 명의 다른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지만, 왜 그런 장애를 겪게 됐는가를 들여다보면 그저 신기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충격적인 스트레스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그 ‘해리’는 바로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그것을 뜻한다.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인 주은호(신혜선)는 이 장애를 통해 주혜리라는 새로운 인격이 발현된다. 

 

잠을 경계로 주은호는 PPS 아나운서지만 주혜리는 미디어N 주차관리소의 아르바이트일을 한다. 자고 나면 주은호가 되지만 또 자고 일어나면 주혜리가 되는 삶. 주은호가 이 장애를 겪게 된 건 자신을 유달라 따랐던 동생이 실종되는 사건 때문이다. 사망도 아니고 실종됐다는 사실은 남은 이들의 삶을 바짝바짝 말라들게 만든다. 주은호는 자신을 동경하던 동생이 아나운서가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방송국 주차장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꿈이라고 적은 일기를 보고는 주차관리소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동생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주은호로 하여금 동생의 삶을 이어가려는 열망을 만들어 내고 결국 주혜리의 정체성 또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해리에게’는 왜 해리성 정체성 장애 같은 소재를 가져온 것일까. 물론 이 작품은 이렇게 두 개의 인격체로 나뉜 주은호와 주혜리가 각각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맨스의 재미를 담고 있다. 주은호는 8년 간 사귀었다 헤어진 같은 회사 아나운서 정현오(이진욱)와 다시 사랑을 이어가게 되고, 주혜리는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강주연(강훈)과 사랑에 빠진다. 이러니 정체성 간의 대결구도가 생겨난다. 강주연과 사랑에 빠진 주혜리는 행복을 느끼며 그 정체성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주은호는 정현오와 관계를 이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건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을 지워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해리에게’가 이러한 색다른 멜로 구도를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소재를 통해 가져오고 있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로맨스에만 머물러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결국 상처 입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주은호가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의 등장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을 통해 그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금 자신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혜리라는 다중인격은 사실상 동생을 흉내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주은호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창출해낸 존재다. 그래서 주혜리가 하는 행동이나 말들은 주은호와는 상반되어 있는데, 그건 사실상 주혜리가 주은호에게 하는 위로에 가깝다.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거거든요.... 그럼요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따뜻하다는 건 좋은 거예요. 왜냐아면 그건 살아있는 거니까.” 주혜리가 누군가를 만나 건네는 말들은 그들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고 그래서 죽음의 그림자를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주은호에게 주혜리는 삶이 너무나 좋은 것이라고 애써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에게 던지는 위로 같은 이 말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며 차라리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있고, 그래서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거나 하는 그 순간이 주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주혜리(주은호 깊숙이 자리한 내면의 목소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두 사람의 인격을 넘나들며 이를 통해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기적 같은 드라마지만, 이 작품을 진짜 기적으로 만드는 건 신혜선의 연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성격을 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연기가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특히 주혜리 역할은 엉뚱하면서도 의외의 감동을 주는 이런 면모들을 신혜선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싶다.(글:일간스포츠, 사진:ENA)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김남주는 끝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

“저는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그 아이를 잃었어요. 별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 아이는 이제 저에게 별이 됐습니다. 매일 같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픕니다.”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은수현(김남주)은 남편 강수호(김강우)와 함께 방송에 나와 아픈 심경을 어렵게 꺼내놓는다. 

 

집밖으로 나간 아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구할 수 있었던 아이를 방치한 채 도주했던 가해자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자 결국 사적 복수를 하고 감옥에까지 갔다 오게된 은수현이다. 하지만 차로 치어 가해자인 권지웅(오만석)을 살해했지만 그것으로 은수현의 가슴 깊숙이 남은 상처는 치유되었을까. 아니다. 아이는 이미 사망했고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늘 은수현의 눈에 어른거린다. 그의 말대로 그의 시간은 여전히 자식을 잃은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루이 암스토롱이 불렀던 ‘What a wonderful world’에서 따온 제목 <원더풀 월드>는 반어적인 의미다. 은수현이 마주한 세상은 결코 원더풀 하지 않다. 아이가 뺑소니를 당했지만 권지웅과 관계된 김준(박혁권) 같은 정치인의 사주로 법정은 가해자 편을 들어준다. 오히려 아이가 사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은수현의 책임이 있다는 걸 부각시킨다. 현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해자측 변호사의 주장은 비수처럼 은수현의 가슴에 박힌다.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까지 심어버린 것이다. 

 

6년이 지나 출소한 은수현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상은 과거 아이와 행복했던 기억들이 오히려 아픈 상처로 남은 공간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남편마저 힘겹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강수호는 끝내 은수현의 손을 놓지 않는다. 함께 부부로서 어려운 시간들을 버텨내기로 한 것.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누군가 이들 부부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은수현에 의해 보복 살해된 권지웅의 아들 권민혁(임지섭)일 것으로 보인다. 

 

은수현의 사적 복수는 피해자였던 그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러니 그에 의해 가족이 파탄나버린 권민혁은 또다른 피해자가 된다. 이같은 가해와 피해의 반복은 이 정의의 문제가 결코 사적 복수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말해준다. 이 문제는 어쩌면 김준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는 강수호에게도 딜레마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은수현이 권지웅에게 복수를 했던 것처럼, 강수호 역시 김준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에는 또한 은수현이 감옥에서 만나 마음을 나눴던 장형자(강애심)가 겪었던 딜레마와도 연결되어 있다.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분노한 나머지 불을 질렀지만 그 불이 엉뚱하게도 다른 일가족을 죽게 만들었다. 거기서 유일하게 생존해 살아남은 권선율(차은우)에게 사죄하고 싶었지만 장형자는 병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하고 자신이 쓴 참회를 담은 일기장을 그에게 전해달라고 은수현에게 부탁한다. 장형자의 복수 역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을 뿐, 그를 구원해주지는 못했다. 

 

<원더풀 월드>가 그리고 있는 건 그래서 이런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생겨났을 때 그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이미 은수현이 권선율을 찾아가 했던 말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저도 비슷한 아픔이 있어요. 자식을 잃었어요.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나는 사과받고 싶었어요. 그랬다면 적어도 용서까지는 아니어도 잊어는 보려고 했는데 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요. 그래서 그쪽을 찾았어요. 나처럼 고통 속에 갇혀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그쪽은 꼭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은수현의 목소리를 통해 <원더풀 월드>가 대신 전하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닐까. 그걸로 고통이 치유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는 아픔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걸로 잊어는 보려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이 벌어졌던 사건, 사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처벌은 물론이고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결코 ‘원더풀’하지 않은 세상 앞에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는 이러한 정의의 문제와 더불어, 가족을 잃은 고통스런 상처에 대한 치유에 대한 희망으로서 은수현과 권선율이 나누는 공감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이 다가설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로서의 공감대였다. 은수현과 권선율이 엮어가는 이야기로 극화되어 있지만 드라마는 바로 그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MBC)

'영혼수선공',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깨는 드라마가 된다면

 

"선생님도 병이 있으시네요. 직업병. 사람들을 죄다 환자로 보시나 봐요. 근데 저는 아픈 거 아니에요. 그냥 성질이 더러운 거지. 호의는 고맙지만 제 성격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KBS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에서 한우주(정소민)는 정신과 의사 이시준(신하균)에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한우주는 사귀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걸 보고는 격분해 주차장에서 차를 부실 정도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화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그런 그에게 이시준은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한우주는 또 화가 난다. 자신을 정신병 환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에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를 터트려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자신의 문제를 '성격' 때문이라 치부한다.

 

아마도 이 상황은 정신과를 바라보는 편견과 선입견을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일 게다. 어느 날부터인가 거식증을 갖게 된 환자는 마치 자신이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인형처럼 마음대로 키웠다는 것. 그래서 거기에 자신이 반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상담해 치료해주려는 의사를 거부한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건 드러난 현상이니 맞지만, 그렇다고 정신과 환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혼수선공>은 그래서 어찌 보면 시청자들도 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상에서의 어떤 행동들이나 말들이 '정신 질환'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드라마 속 한우주가 그런 것처럼 우리는 정신과 하면 "미쳤다"는 표현에 담겨 있듯이 아프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반대로 어떤 환자가 저지른 다소 심각한 사건들이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기 쉽다. 이 드라마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자신이 경찰이라고 착각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결국 병원을 탈출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는 한우주를 음주운전을 한 것처럼 오인시켜 버린다. 이로서 한우주는 이제 막 날개를 펴려던 찰나 그 날개가 꺾여버린다.

 

그건 분명 그 환자의 망상장애가 원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치의인 이시준이 한우주를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하고 선처를 해달라 고개를 숙이는 장면에서 다소의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건 그저 정신질환이라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한 사람의 일상이 너무나 크게 파괴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수선공>은 정신질환이 마음에 병이 든 것일 뿐 그 이상의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정신적 아픔이 있으면 찾아야 할 곳이 정신과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요즘처럼 정신 질환이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중요한 편견의 극복일 수 있다.

 

굉장히 특이한 어떤 일들도 들여다보면 우리네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상처가 원인일 수 있다는 걸 애써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종이로 주택의 모형을 만드는 회사에서 모형 중 집 한 채를 입 안에 넣어 병원에 실려온 한 환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위 속에 있는 종이조각들을 꺼내는 수술을 받은 그는 정신과 상담을 하라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해하지만 거기서 이시준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편애가 심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원인이었다. 어려서 가출해 일주일 후 돌아왔는데도 자신이 집 나간 사실 조차 몰라서 혼자 화장지를 먹었던 과거가 환자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영혼의 상처는 환자가 아닌 의사도 똑같이 갖고 있다. 이시준은 유명한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그 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시준이 환자들의 집을 찾아 나설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열성적인 건 아버지의 인정을 끝까지 받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한우주 역시 어려서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경험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그의 분노조절장애가 어쩌면 이 때의 상처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한우주는 파양한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이시준을 찾아와 말한다. "지금 아니면 절대 말 못할 것 같아서 왔어요.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저 환자에요. 저 좀 치료해 주세요. 치료해 줄 수 있죠?" 그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치료를 요구한다.

 

아마도 <영혼수선공>이 하려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공감되기 위해서는 저 한우주가 스스로를 환자라 인정하고 치료를 해달라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누구나 선선히 정신적인 병을 앓을 수 있고 그럴 때면 정신과를 찾아가 도와 달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할 것이다. 그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적이고 또 하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다소 괴짜처럼 보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시준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시청자들까지 치유해줄 수 있을까.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KBS)

‘포레스트’ 박해진·조보아의 숲 로맨스, 첫 방에 드러난 강점과 약점

 

굴지의 투자회사 본부장으로 잘 나가는 마이더스의 손 강산혁(박해진). 나름 솜씨 있는 외과 레지던트 정영재(조보아). 화려해 보이는 사업가에 의사인데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고 결코 기죽지 않는 성격들을 갖고 있어 겉보기엔 누군가의 워너비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있다. 강산혁은 팔에 극심한 화상통을 느끼는 ‘환상통’ 증상을 앓고 있고 정영재는 어린 시절 물에 빠졌다 살아남으며 생긴 트라우마가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KBS 새 수목드라마 <포레스트>는 그저 그런 뻔한 설정의 멜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목이 <포레스트>인 것처럼, 이 뻔한 설정 위에 뻔하지 않은 숲을 통한 치유라는 색다른 설정이 더해진다. 강산혁과 정영재는 어쩌다 산골 오지 미령숲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 사이의 멜로와 그 특수한 공간에서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아직 첫 방이라 모든 걸 예측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트라우마는 이 미령숲에서의 경험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겪지 않을까.

 

도시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오가는 뻔한 사랑의 이야기는 그래서 미령숲이라는 자연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서 과연 어떤 변주를 만들어낼 지가 기대된다.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는 일은 어쩌면 저마다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상처들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상처는 서로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고리가 되고 그 상처가 치유되는 숲이라는 공간은 그들이 사랑하게 되는 또 다른 고리가 되어주기도 할 것이니.

 

이처럼 <포레스트>가 보여줄 색다른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진짜 이야기는 이 미령숲을 처음에는 경쟁자를 밟아주기 위해 내려와 119특수구조대 항공구조대원까지 된 강산혁이 그 구조대 사람들과 얽히며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 명성대학병원에서 쫓겨나 어쩌다 유배되듯 이 산골에 있는 미령병원으로 오게 된 정영재가 그 곳 의사, 간호사와 주민들 그리고 구조대원들과 엮어지며 벌어지는 사건들에 있다.

 

물론 이런 기대감이 충분하지만, 첫 방에 담긴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일단 정영재가 미령병원이라는 산골 오지 병원으로 내려오게 된다는 설정은 너무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익숙하다. 부모의 동반자살을 경험한 뒤로 갖게 된 트라우마 이야기는 지금 현재 <낭만닥터 김사부2>의 서우진(안효섭) 캐릭터와 겹치는 면이 있다. 정영재가 내려오게 된 미령병원이라는 오지 병원에서 돌담병원이 떠오르듯이.

 

하지만 이건 초반 설정이고 그것이 그리 중요한 부분이라 보긴 어렵다. 다만 숲이라는 자연 공간이 주는 치유라는 이야기와 병원에서 의사가 하려는 치료의 이야기가 더해지게 되면 이런 유사점을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거라 여겨진다. 다만 마치 경제 기계 같은 냉혈한 강산혁이 굳이 미령숲 개발 사업을 알아보기 위해 미령 119 특수구조대에까지 들어오게 된다는 설정은 좀 더 자연스러운 개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순식간에 본부장에서 구조대원으로 바뀌는 그 과정이 납득되기가 쉽지 않아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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