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야구단'의 야생의 캐릭터들

'천하무적 야구단'이 야구를 소재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자리를 잡게 된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것은 야구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힘일 수도 있고, 예능에 집착하기 보다는 오히려 리얼한 장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프로그램 연출의 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만든 것은 특유의 헝그리 정신이 돋보이는 캐릭터들이 아닐까.

그 중심에 선 인물은 들짐승 마르코다. 야구는 해본 적도 없는 이 앞뒤 안 가리고 덤비는 캐릭터는 특유의 동물적인 운동신경으로 순식간에 야구에 적응한다.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연상케 하는 인물. 들짐승이라는 별명답게 마르코는 야생이 제격인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처음이면서도 마치 제물을 만난 듯 펄펄 날고 있다.

마르코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을 야생의 초원으로 만드는 인물은 늙은 사자 이하늘이다. 품행제로에 막말까지 거침이 없는 이하늘은, 여전히 강인한 인상을 주면서도 그것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예능감까지 갖추고 있다. 늙은 사자라는 별명은 바로 그의 이렇게 균형 잡힌 캐릭터를 잘 표현한 것이다.

방망이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김창렬은 그 스트리트 파이터의 이미지를 '야구하는 창렬이'로 바꾸고 있다. 구릿빛으로 탄 얼굴과 실제 경기에서 보여주는 좋은 모습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결혼 후 유한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거친 남자의 면모를 숨길 수는 없다.

오지호는 수염을 기르면서 터프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보며 팀원들은 그를 야만인,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렀다. 에이스로 '천하무적 야구단'에 들어왔지만 어딘지 허당의 냄새를 더 풍겼던 오지호. 하지만 그런 오명을 날려 버리고 대신 강한 인상으로 변모하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밖에도 임창정은 특유의 깐죽대는 캐릭터로 팀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한민관은 바짝 마른 몸과는 다르게 경기에서 선전하며 다부진 인상을 주고 있다. 김준은 F4의 꽃미남 이미지에서 점차 빠져나와 남자들의 세계에 적응하고 있고, 마리오는 과묵하지만 든든한 외인구단의 백두산 같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팀에 나이를 책임지고 있는(?) 동호 역시 야구라는 경기를 통해 점차 형들처럼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감독으로 자리한 김C는 이미 '1박2일'을 통해 보았던 것처럼 그 자체가 야생이자 다큐라고 할 수 있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캐릭터들이 조금은 거친 짐승남의 느낌을 주는 것은 처음부터 그들 스스로 A급이 아닌 B급이라고 얘기해왔던 그 자세에서 비롯된다. B급이라고 자신을 세우는 순간, 뭐든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헝그리 캐릭터들이 만들어진 것. 이 매력적인 짐승남들의 탄생은 성장 버라이어티로서의 '천하무적 야구단'의 미래를 밝게 만든다. 좌충우돌의 짐승들이 야구라는 경기를 통해 가다듬어지고 또 강해지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볼거리만 있고 스토리는 없는 '태삼'의 문제

'태양을 삼켜라'는 애초에 기대만큼 불안감도 컸던 드라마다. 그리고 그 기대와 불안감은 같은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대작, 이른바 블록버스터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가 기대만큼 불안감이 큰 이유는 그것이 볼거리에 지나치게 치우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왜 위험성을 내포할까. 그것은 드라마라는 장르와,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TV라는 매체를 이해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는 영화처럼 볼거리가 주는 영상체험보다는 스토리에 더 치중되는 장르다. 우리가 과거 연속극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드라마는 그 끊임없이 찾아보게 만드는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끊임없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시키는 것은 따라서 드라마가 가진 책무이자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드라마에 만들어주는 힘은 그다지 크지 않다. TV라는 매체 자체가 집중보다는 분산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영상만으로는 영화만큼의 몰입도를 가져오기가 어렵다. 폐쇄된 공간에 불이 꺼진 채 대형 화면과 실감 음향을 통해 온 몸으로 전해지는 극장의 볼거리는 같은 영상이라고 해도 TV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드라마의 몰입을 만들어주는 것은 볼거리가 아니라 스토리(그 속의 캐릭터들)가 만들어내는 감정이입으로서의 몰입이다.

물론 스토리도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면서 볼거리까지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차라리 볼거리는 조금 차치하고라도 일단 스토리가 탄탄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더 경제적인 방법이다. '찬란한 유산'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스토리가 매번 시청자들의 눈을 홀리게 만들었다. 결과는 4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나타났다.

'선덕여왕'은 대작으로서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볼거리에 치중하지는 않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다. 백제와의 전쟁 신에서는 훌륭한 볼거리를 보여주었지만, 그 외에는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왜 전쟁 같은 스펙타클이 또 안 나오냐고 불평하기보다는, 덕만(이요원)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그 스토리나 비담(김남길)처럼 스토리성을 그 안에 갖고 있는 캐릭터의 등장이 주는 몰입감에 열광하고 있다. 결과는 시청률 30%를 넘어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태양을 삼켜라'는 수목드라마들이 모두 주춤하는 사이에 시청률 1위를 여전히 기록하고는 있지만 대작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 1위는 오히려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스토리가 눈에 띄도록 매력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주인공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마저 잘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거의 기초적인 것이다.

주인공 김정우(지성)의 탄생배경을 보여준 초반 1,2부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현란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 초반 스토리를 장악했던 정우의 아버지 일환(진구)의 모험담은, 다만 정우와 혈연적 관계를 말해줄 뿐, 스토리로는 아무런 연결고리를 보여주지 못한다. 즉 주인공 정우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나 목적, 욕망과는 상관없는 드라마의 볼거리만을 나열한 셈이다.

이것은 그나마 드라마 초반에 있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방법적인 선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떨까. 정우는 일환과의 연결고리 없이 그저 가난하고 거친 삶을 살았다는 뉘앙스로 불쑥 등장하고, 갑작스레 장민호 회장(전광렬)의 휘하로 들어간다. 정우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상투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수현(성유리)이 갑자기 서커스 공연을 기획한다고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것과 정우와 그 친구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리카에서 망명한 갑부의 경호팀으로 역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것은 그 둘은 라스베이거스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하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무리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드라마의 애초 기획의도에 들어가 있는 해외로케의 정당성마저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그 곳에서 잭슨리(유오성)가 도박을 하고 동시에 교차편집되어 보여지는 그의 여자가 선정적인 스트립쇼를 하는 장면은 도박과 섹스를 연결한 자극을 보여주지만, 스토리의 맥락과는 역시 떨어져 있다.

스토리가 잘 구축되지 않는 볼거리란 때론. 캐릭터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볼거리를 위해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맥락 없이 돌아가는 라스베이거스의 풍광들이나, 비키니 입은 여인들,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들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캐릭터의 심리와 깊게 와 닿지 않을 때, 그저 지나치는 파편적인 영상으로 전락한다. 계속 반복적으로 이미지가 삽입되는 '태양의 서커스'는 물론 볼거리로서는 압도적일지 몰라도, 왜 그게 그렇게 등장하는지 드라마는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캐릭터는 당연히 살아나기가 어렵다. 모든 행동이 맥락을 찾지 못하는 캐릭터에 어떻게 시청자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되는 미국 드라마에서도 볼거리는 스토리보다 중요하지 않다. 치밀한 스토리가 있고 그 위에 볼거리는 덧씌워질 뿐이다.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지향했던 '로비스트'가 스토리는 없이 볼거리만 나열하고 추락했던 것처럼, '태양을 삼켜라' 역시 마찬가지 길을 가고 있다. 볼거리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스토리에 소홀하게 되면 상황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볼거리가 드라마를 잡아먹는 것이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기대감

'선덕여왕'에 비담(김남길)이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든 시간은 얼마일까. 짧게 말하면 1초도 걸리지 않았고, 길게 말한다 해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맨발만 살짝 드러냈을 때, 그리고 빛으로 나와 예사롭지 않은 얼굴로 하품을 해댈 때, 덕만(이요원)을 향해 찡긋 윙크를 했을 때 그는 이미 범상치 않은 고수의 캐릭터로 우리들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다. 후에 덕만을 해치려는 무리들을 향해 무차별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이미 시청자들의 마음에 구축된 캐릭터를 확인시켜 주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선덕여왕'의 제작진이 비담을 비밀병기라고 공공연히 발표한 시점은 작품이 시작하기도 전부터였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 얘기는 그저 지나가는 얘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20회가 지난 시점에서 비담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비밀병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선덕여왕'이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하고 활용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선덕여왕'은 주제를 함축하고 스토리를 굴러가게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고는, 그것을 특유의 미션식 스토리텔링 속에서 가장 극대화되는 지점에 순차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선덕여왕'이 만들어내 첫 번째로 선보인 캐릭터는 미실(고현정).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모든 갈등과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사극의 뼈대에 해당하는 캐릭터다. 강력한 악역으로서의 미실이 구축된 후, 그녀로 인해 중국으로 도망친 어린 덕만이 고개를 내민다. 당돌하면서도 착하고 때론 대담하면서도 남다른 영민함이 보이는 이 캐릭터는 미실과의 격차를 드러내면서 차츰 대립각을 만들어낸다. 덕만이라는 캐릭터가 미실에게 근접하고 그 미실을 누르는 과정이 이 사극의 전체 얼개라면 이때 이미 이 사극의 방향성은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천명(박예진)과 유신(엄태웅)으로 이들은 각각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어 보이는 미실과 정면승부를 예고하며 부각되었다. 즉 미실의 캐릭터를 통해 구축된 이 캐릭터들은 정치적인 상황 보다는 대의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으로 미실의 정치 장악력을 벗어난다. 한편 미실 측은 그들대로 새로운 캐릭터들을 구축하며 진영을 갖춘다. 백제와의 전쟁을 통해 그 카리스마를 보여준 설원공(전노민)이 무인이면서도 동시에 지략을 갖춘 캐릭터로 등장하고, 미생(정웅인)은 미실의 일식을 이용한 깜짝쇼를 구상해내고 때론 미실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내는 면모를 보이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부차적인 인물들이 다만 부차적으로만 활용되지 않는 것은 '선덕여왕'이 가진 캐릭터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사막에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소화(서영희)와 칠숙(안길강)이 궁으로 돌아와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궁의 인물들과 그들이 가지는 일련의 만남들에 극적인 상황을 제공했다. 칠숙과 덕만의 만남, 칠숙과 미실의 만남, 미실과 소화의 만남... 이런 식으로 극은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극의 감초로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는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극을 만들어가는 역할도 수행해낸다.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캐릭터들이 덕만을 중심으로 잘 꿰어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덕만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덕만을 위기로 몰거나, 혹은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덕만을 움직이게 만든다.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이처럼 이 사극이 가진 캐릭터 장악력과 거기서 비롯되는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다. 사실상 캐릭터들은 창조되는 그 순간부터 저마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이상은 갖고 등장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비담의 등장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그 캐릭터 속에 내장된 앞으로의 이야기를 첫 등장에서부터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사에 무심한 듯 보이며, 뛰어난 무공을 갖추고 있지만 어느 편에 붙을 지 종을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아군이라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 되지만, 적이라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덕만의 입장에서 사극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비담이란 존재가 주는 무게감은 따라서 클 수밖에 없다. 그가 미실의 버려진 아이라는 점은 이 상황을 더 흥미진진하게 한다. 혈육으로서의 입장은 버려졌다는 입장과 상충하며 비담이라는 캐릭터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선덕여왕'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바로 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의 운용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가장 적확한 스토리의 시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성격의 캐릭터라면, 그것이 구축되는 데 드는 시간은 어쩌면 단 1초면 충분한 지도 모른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속에 척척 달라붙는 캐릭터의 힘, 그것이 '선덕여왕'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시티홀',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다

준비된 연기자가 좋은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은 '시티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티홀'은 정치 풍자가 담겨진 코미디에 멜로가 섞여 있는 드라마다. 따라서 정치적인 면을 보일 때는 가벼운 듯 하면서도 진지함을 유지해야 하고, 본격적인 멜로에 들어가면 행복감과 절망감을 오가는 웃음과 눈물 연기를 해내야 한다. 연기자로서 '시티홀'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차승원이나 김선아처럼 준비된 연기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밋밋한 캐릭터보다는 이처럼 복합적인 면을 소화해내야 하는 연기가 그들에게는 도전이면서도 또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시티홀'은 그들에게 바로 그 무대를 마련해주었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마음껏 춤을 추었다. 그 결과 이 드라마를 통해 차승원은 재발견되었고, 김선아는 삼순이의 옷을 벗어버리고 신미래라는 새로운 옷을 입음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차승원이 연기해낸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만 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판타지남의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를 잇는 인물로 조국을 거론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국이 이들의 계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나 태봉씨는 드라마 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전지전능한 캐릭터지만, 조국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앞에는 늘 난관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 신미래를 보호하면서 그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조국이 이들 판타지남들보다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의 계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조국은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고, 신미래라는 여성을 만남으로 해서 그 힘을 낮은 자들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즉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멜로의 판타지뿐만 아니라 서민들을 꿈꾸게 하는 판타지까지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그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게다가 그 카리스마는 코믹함을 가미하면서 강마에가 가졌던 괴팍하면서도 친근한 인상을 덧붙인다.

차승원은 사실 코미디와 정극 양쪽을 오간 경력의 소유자다. 코믹의 웃음은 그의 장기이고, 정극의 우수와 슬픔은 그의 특기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의 조국은 이 양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차승원은 지금껏 상대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조국을 통해 얻었다. 정치 소재가 갖는 강인한 리더십의 면모를 조국을 통해 갖게 된 것이다.

한편 김선아가 연기한 신미래는 처음 삼순이 캐릭터에서 시작했다. 10급공무원으로서 밴댕이 아가씨 대회가 나가고 거기서 조국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김선아의 연기는 여전히 삼순이에 머물러 있었다. 캐릭터가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미래가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행보를 하게 되고 시장 선거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김선아는 조금씩 삼순이의 아우라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신미래는 돈키호테적인 신념을 가진 순수 정치초심자로서의 강인한 모습과 함께, 사랑 앞에서는 가녀린 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게다가 신미래 역시 조국처럼 코믹을 바탕에 깔고 있는 캐릭터. 그러니 이 인물의 스펙트럼은 저 삼순이가 갖는 단순함에 비할 바 없이 넓다 할 수 있다. 김선아는 신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굳이 삼순이를 넘어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미래를 통해 삼순이의 캐릭터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폭의 새로운 면모들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티홀'이 재발견한 연기자는 차승원과 김선아에 머물지 않는다. '온에어'에서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등장해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이형철은 이 드라마를 통해 유하고 귀여운 면모를 갖게 됐으며, 지적인 이미지의 추상미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귀여운 악녀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 이밖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자는 강인한 정치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최일화, 신미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정부미를 연기한 정수영, 그리고 국장삼총사들인 류성현, 신정근, 임대일이 될 것이다. 특히 지국장으로 분했던 신정근은 코믹 연기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적인 힘을 갖고 있는 연기자로 주목된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연기자들을 발견해낸다. 그만큼 캐릭터가 좋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은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믹을 바탕에 깔고 정치와 멜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드라마를 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티홀'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마음껏 준비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에게도, 또 그 연기가 뿜어내는 행복과 슬픔을 공감한 시청자들에게도 '시티홀'은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