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는 없고 장밋빛 계획만 무성한 <디워2>

 

“100억을 투자하지만 1,000억이 돼서 돌아 올 수 있는 상황이다.” JTBC <연예특종>에 나와 심형래 감독이 영화 <디워2>의 제작준비를 하고 있다며 밝힌 말이다. 심형래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제작 첫 단계에서부터 돈 얘기부터 나오는 건 어딘지 섣부른 느낌이다. 영화감독이라면 돈 얘기보다는 영화 얘기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연예특종(사진출처:JTBC)'

심형래 감독에 따르면 최근 <디워2>는 제주 비스타케이호텔그룹과 100억 원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투자 결정 이유는 중국에서 <디워>가 보인 흥행이 <디워2>로 이어지면 투자 수익은 물론이고 홍보효과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란다. 역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다.

 

그는 또 현재 “<디워2>1차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이며 CG감독으로 <고질라><스파이더맨3>의 시각효과를 맡은 데이비드 에브너와 함께 작업하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오는 7월 중순에는 미국에서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영화의 제작 방향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데이비드 에브너와의 계획은 구두 협의된 상황이라고 한다.

 

또 캐스팅에 있어서도 영화에 아시아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일본의 유명 여배우와 중국 여배우를 포함해 여러 배우들이 물망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캐스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 논의 사항이고 결정된 건 없다는 얘기다.

 

심형래 감독의 이야기는 대부분 얼마를 투자받을 계획이고 그것이 얼마의 수익을 낼 것이며 또 누구와 작업할 것이고 어떤 연기자를 캐스팅할 것이라는 얘기에 집중되어 있다. 정작 <디워2>가 어떤 영화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1969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과학기술경쟁을 벌이던 시대에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실체는 없고 주변 얘기만 무성하다.

 

사실 <디워2>에 회의적인 것은 <디워>를 그다지 성공작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애국주의와 논란이 뒤섞인 마케팅으로 국내에서 흥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관객들은 그 실체를 보았다. 전작에 실망감을 갖는 관객이 속편을 찾아볼 까닭이 있을까. 아니 실패한 전작의 속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심형래 감독의 말대로 1000%의 수익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거대 투자사들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거대 투자사가 <디워2>에 투자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심형래 감독의 이야기들은 실제 이루어진 것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미리 1000%의 수익을 예상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계획은 넘쳐나지만 실제 성사된 구체적인 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100억대, 아니 그 이상의 투자가 오고가는 작품이라면 향후 실패하거나 엎어졌을 때 그 파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CG 작품은 지금의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정교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투자비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정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직원 임금과 퇴직금 체불 혐의로 기소되고 파산신청까지 한 심형래 감독이다. 그는 왜 이렇게 <디워2>에 집착하는 것일까.

스타 없이 스타 만든 <응답하라1994>, 조연들의 전성시대

 

스타가 없어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응답하라1994>가 그렇다. 생각해보라.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가 정우라는 배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또 꽤 많은 작품에 조연으로 나왔었지만 그에 대해 대중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KBS <최고다 이순신>에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빵집 사장으로 등장한 정우는 대중들에게 괜찮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지는 못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하지만 <응답하라1994>는 달랐다. 첫 회부터 쓰레기라는 강렬한 캐릭터로 등장하다더니 어느새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무뚝뚝하지만 때론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정우라는 배우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실로 꽃미남이라 부를 수는 없는 외모지만 정우의 투박하고 서글서글한 이미지는 그저 비슷비슷한 꽃미남들과는 차별화된 그만의 개성을 부여했다. 특히 그의 투박한 사랑법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응답하라1994>가 끄집어낸 정우의 가능성이다.

 

조연들의 재발견은 어쩌면 <응답하라1994>의 핵심적인 캐스팅 전략이라고도 여겨진다. 김성균은 대표적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이웃사람> 등에서 보여준 미친 존재감은 분명했지만 어찌 보면 악역에 어울리는 외모를 심지어 사랑스럽게까지 보이는삼천포라는 캐릭터로 만든 건 놀라운 일이다. 그의 강한(?) 외모는 촌놈의 어눌함으로 바뀌면서 웃음 코드로 전환되었고, 그 어눌함이 찾아낸 사랑의 감성은 타이니지의 도희라는 새로운 인물과의 조합으로 더 아기자기해졌다.

 

칠봉이로 나온 유연석은 어떤가. 그 역시 <건축학개론><늑대소년>을 통해 주로 악역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 나정(고아라)을 짝사랑하는 순애보를 보여준다. 해태 역할의 손호준이나 빙그레 역할의 바로 역시 드라마에서의 존재감을 그다지 드러내지 못했던 인물들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정이 가는 캐릭터로 부각되었다. 조연들, 특히 그 중에서도 악역으로 이미지화된 배우들을 끄집어내 멜로를 그려낸다는 발상은 결국 주효했다. <응답하라1994>가 캐스팅으로 보여준 건 조연들의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특히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고아라에게 있어 이 작품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결코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고아라는 예쁘장한 외모가 오히려 가려버리는 연기의 폭을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넓혀 놓았다고 보인다. 이렇게 된 데는 이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이 여성적인 면으로만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킨 데 있다. 방송 전까지는 누군지도 몰랐던 도희가 구수한 사투리에 시원시원한 욕을 얹어 곱상한 외모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드러냈던 것도 마찬가지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흔히들 드라마를 얘기할 때 누가 주인공이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스타 캐스팅은 때로는 그 자체로 드라마에 한계를 지우기도 한다. 스타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크면 클수록 드라마 속 캐릭터와의 조합에는 그만한 이미지의 부딪침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라는 인지도를 통해 드라마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를 통해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무수히 많은 스타 캐스팅 드라마들이 스타의 이름값도 못한 채 빛이 바랬던 일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도 봐왔지 않은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스타 파워가 제작진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타가 자기 배역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대본을 고치게 함으로써 결국은 작품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종종 생겨난다. 또한 몇몇 스타 캐스팅에 집중된 비용은 고스란히 제작진과 스텝들이 떠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스타 캐스팅은 작품의 성패와도 점점 관계가 없어지고 오히려 부담만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응답하라1994>가 던진 조연들의 재발견은 드라마 제작 관행에 있어서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진다. 먼저 탄탄한 대본과 연출력이 갖춰졌다면 차라리 대중들에게는 백지상태인 발견되지 않은 배우들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새로운 캐스팅 성공방정식에 앞으로 여타의 드라마들이 얼마나 응답할 것인가. 실로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목소리>, 캐스팅에 담긴 혼합장르의 열쇠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흔한 멜로라고 생각한 시청자라면 지금 스릴러로 치닫고 있는 이 드라마에 심지어 당혹감마저 느낄 만하다. <내 딸 서영이>로 국민 딸로 자리매김한 이보영과 <학교 2013>으로 여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이종석의 조합, 여기에 <시크릿가든>의 윤상현까지 가세하면서 드라마는 삼각 멜로의 달달한 이야기를 예상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수하(이종석)의 능력은 멜로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소통의 가능성까지 만들어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보영과 이종석의 달달한 멜로가 그만큼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스릴러의 요소를 깔아놓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국(정웅인)이라는 범죄자 때문이다. 수하와 혜성(이보영)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 바로 민준국(의 범죄의 피해자인 수하와 그것을 증언하는 혜성)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의 혼합 장르적 성격을 명확히 말해준다. 이종석의 풋풋한 눈빛과 이보영의 좌충우돌 명랑함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해줬지만, 정웅인의 잔인한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 드라마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이 변곡점은 민준국이 혜성의 어머니인 춘심(김해숙)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방영되는 순간부터다. 춘심의 치킨 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은 민준국이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감금하고 몽키스패너를 휘두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7회 마지막까지도 설마 실제로 춘심이 죽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8회 첫 장면에서 춘심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라마는 급격히 법정극과 스릴러의 장르 속으로 그 흐름을 바꾸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정웅인이다. 왜 민준국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자 역할에 정웅인이 캐스팅되었을까. 사실 정웅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르가 시트콤 혹은 코미디일 정도로 코믹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다. 잔뜩 경직된 얼굴 속에서 엉뚱하고 음흉한 모습이 살짝 드러날 때 그것이 웃음을 만들어냈던 기억을 대중들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러니 그가 범죄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캐스팅이다. 여기에는 이 혼합장르의 드라마가 가진 신의 한수가 들어가 있다.

 

이 드라마를 함께 세팅해온 SBS 김영섭 CP는 정웅인 캐스팅에 대해서 ‘반전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즉 코믹 캐릭터가 진짜 살벌한 범죄자로 변신했을 때 오히려 그 공포감은 더 커질 거라는 것. 그 반전 효과는 실제로 주효했다. 물론 초반부터 수하의 아버지를 죽이는 살인자로 등장하지만 그 배우가 정웅인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스릴러 장르라 여겨지지 않았던 면이 있었던 것. 초반 멜로로 충분히 수하와 혜성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스릴러의 색채를 상당부분 줄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웅인이 진짜 범죄자의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섬뜩함은 오히려 배가 되는 효과를 만들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가진 특별한 매력은 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복합장르에서 비롯된다. 즉 청소년 판타지물처럼 보이던 것이 로맨틱 코미디로도 이어지고 멜로로도 엮어지다가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까지 아우른다. 하지만 차츰 이 현실감 없을 것만 같은 판타지물은 점점 스릴러적인 요소를 강화하면서 무게감을 찾아간다. 비현실적인 판타지에서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스릴러로의 자유로운 전환. 바로 여기에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기는 지점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이 드라마의 캐스팅은 다양한 장르적 성격들을 각자 구현해낼 수 있을 만큼 적절했다 여겨진다. 이종석이 그리는 청소년 판타지물의 성격과 이보영이 만들어내는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드라마, 법정 장르의 요소, 그리고 윤상현이 여기에 부여하는 멜로와 휴먼드라마적인 색채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웅인이라는 배우가 있어 멜로에서 범죄물과 스릴러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여겨진다.

 

수하의 어머니가 죽고 1년이 지난 시점, 갑자기 떠오른 정웅인의 손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향후 전개가 도무지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수하가 정웅인의 살인피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혜성과 차관우(윤상현)가 그를 변호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무수한 변수들이 남아있다. 수하는 과연 민준국을 죽인 것일까. 왜 수하는 기억을 잃게 된 것일까. 민준국은 죽기는 죽은 것일까. 또한 수하와 혜성 그리고 차관우의 멜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이러한 다양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기는 건 복합장르를 절묘하게 엮어내면서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캐스팅의 묘수가 숨겨져 있다.

<장옥정>의 끝없는 추락, 그 이유는 뭘까

 

역시 김태희의 사극 캐스팅은 무리수였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의 시청률이 7%대까지 추락하면서 그 원인으로 김태희의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색한 표정 연기와 어려운 사극 톤에 어울리지 않는 발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장옥정>의 부진은 과연 온전히 김태희의 연기력 부족 때문일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물론 김태희의 연기력은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되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극 특유의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극의 대사 톤은 현대극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인 발성으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사극 특유의 연기 톤을 자기 특유의 색깔과 맞춰 자기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김태희의 목소리는 복색만 한복을 입었을 뿐, 현대극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자들 사이에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옥정>의 유아인과 김태희 캐스팅은 극중 캐릭터와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멜로 드라마의 경우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캐스팅된 배우들의 조합 그 자체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이 많은 김태희와 한참 어려보이는 유아인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멜로의 결을 만들어내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남녀 연기자들 사이의 조합 문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 조합이나, <구가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의 조합을 생각해보라. 그 캐스팅 자체가 기대감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대한 대로 김혜수는 카리스마와 코믹과 슬픔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오지호는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에서 보여줬던 코믹하고 과장된 캐릭터를 잘도 소화해내고 있다. 또 <구사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는 그 확실한 비주얼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 만들어내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본래 연기력 논란은 캐스팅 논란이나 캐릭터 논란과 겹쳐져 나타나곤 한다. <장옥정>은 사극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현대극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제목을 장옥정으로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 다른 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옥정은 심지어 그 시대에 패션쇼를 여는 패션 디자이너다.

 

만일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들이대지 않았다면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을 수 있다. 실제로 군복 디자인을 하기 위해 이순(유아인)의 친위대 비밀야영지로 들어온 장옥정이 군복을 직접 입어보고 군영을 체험하는 장면은 사극으로서는 이색적이다. ‘옷을 만드는 여인’이 그저 미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그 패션 디자이너를 세우자 충돌이 생겨난다. 장희빈으로 기억되는 그 강렬한 이미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악녀로 낙인찍히기는 했어도 그 절절함과 절실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장옥정>에 등장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기존 장희빈이 갖고 있던 그 절실함이 빠져 있다.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여인이라도 역사적 인물로서 장희빈을 내세웠다면 적어도 그 절절함만큼은 가져갔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장옥정>은 기존 장희빈을 기억하는 사극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사랑타령이 되어버렸고, 또 새로운 사극을 희망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옷(무려 장희빈이라는!)을 입은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마치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를 그리는 퓨전사극에 어색하게도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억지로 꿰어 덧댄 느낌이다. 작품이 이렇게 어정쩡한 선에 서 있으니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입은 캐릭터라는 옷이 잘 맞을 리 없다. <장옥정>의 추락은 물론 김태희 연기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바로 현대극인지 사극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작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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