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걸>이 살 길과 <무도>에 대한 예의

 

<무한걸스>의 지상파 입성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첫 방송에 쏟아지는 반응들은 <무한걸스>가 앞으로 갈 길이 평탄치 만을 않을 거라는 걸 예상케 한다. 호평과 혹평이 갈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그 이면에 <무한도전>이라는 거대한 예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한걸스'(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을 무려 20주 동안 보지 못한 팬이라면 <무한상사>를 그대로 패러디한 <무한걸스>의 첫 방송인 <무걸출판사>가 반가웠을 수 있다. 즉 <무걸출판사>를 보면서 <무한도전>의 공백을 잠시나마 채울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내놓고 패러디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한걸스>가 <무한도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또한 실망할 수밖에.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의 여성판으로 기획된 전형적인 케이블형 프로그램이다. 즉 <무한걸스> 독자적으로 서 있다기보다는 본래 <무한도전>의 패러디 성격이 짙기 때문에 지상파, 그것도 주말 저녁이라는 황금시간대에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어디서 본 듯한 아이템들을 여성판이라는 미명 하에 반복 생산하는 것을 경쟁이 치열한 주말 저녁에 굳이 챙겨볼 시청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케이블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한도전>의 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무한걸스> 역시 <무한도전>의 곁가지로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무한걸스>를 보면서 우리는 <무한도전>을 늘 떠올린다. 이것은 <무한걸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또한 가장 약한 단점이기도 하다.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을 업고 있을 때 도드라지지만, 홀로 서야할 때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내용 그 자체보다도 그 매번 시도되는 소재나 형식 실험에 더 열광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무한걸스>의 첫 아이템이 <무한도전> 패러디라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이 아니라, 이미 <무한도전>이 시도했던 것들을 가져와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 <무한도전>을 비교점으로 가진 팬들에게 지상파 프라임타임대에 들어온 <무한걸스>가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발을 딛는 그 시기도 좋지 않았다. <무한걸스>가 <무한도전> 20주 결방으로 인한 팬들의 갈증을 채워주기보다는 마치 빈 자리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듯한 인상을 만든 것. 물론 <무한걸스>의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 그런 의도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편성이란 그 자체로 때론 모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기왕에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들어오겠다고 했다면 더 도전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무한도전>이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갖고 와 마치 짝퉁이 진짜를 넘어서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면 오히려 흥미로웠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케이블에서 보여주었던 <무한걸스>를 싹 잊게 만드는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면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재 <무한걸스>는 두 가지 시선에 붙잡혀 있다. 하나는 <무한도전>의 공백이 주는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도 없이 대충 따라하면서 <무한도전>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 두 시선 어느 것도 <무한걸스>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무한걸스>는 좀더 <무한걸스>만의 세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에서 빠져나온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무한도전>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본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도전'이라는 하나의 주제만 같을 뿐, 매번 거의 완전히 다른 형식들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한도전>을 제대로 여성판으로 만들어내는 입장에서도 지상파에 입성한 <무한걸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독자적인 형식과 소재의 실험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무한걸스>가 살 길이고, 또한 <무한도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보이스 코리아', '더 로맨틱', 지상파보다 나은 이유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mnet)

Mnet '보이스 코리아'가 첫 회부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낸 것은 그 참신한 형식 때문이다. '보이스 코리아'는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불편한 문제들을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장치로 손쉽게 넘어섰다. 외모도 춤도 아닌 오로지 가창력 하나만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코치들은 무대를 등지고 앉아 오로지 귀에만 의지해 참가자를 자신의 팀으로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그 판정기준은 다분히 직관적이고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음정이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하는 논리적인 심사에 의해 참가자의 노래가 난도질당하는 상황은 그래서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의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의 팀으로 들어오라고 애원을 하는 '역 오디션'의 상황은 지금껏 고압적인 심사위원들의 선택만을 동아줄처럼 바라봐야 했던 참가자나 시청자 모두에게 반전의 쾌감을 선사한다.

물론 '보이스 코리아'는 포맷을 수입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참신한 시도나 형식 그 자체가 Mnet의 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기획의 성공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고전적인 형식들, 예를 들면 참가자들이 일제히 무대에 올라 한 명씩 부르고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당락을 결정하면서 마지막 생존자들이 최후의 생방송 무대를 펼치는 식의 형식들은 어딘지 식상해진 게 사실이다. '슈퍼스타K'의 성공 이후 지상파에서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이 그 소비를 더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케이블에서 '보이스 코리아' 같은 차세대 오디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는 상황에, 지상파의 '위대한 탄생2' 같은 프로그램이 애초 차별점으로 내세운 멘토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점점 '슈퍼스타K'의 형식을 거의 따라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부턴가 케이블이 전방위에 서서 다양한 프로그램 형식들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지상파들은 적당히 그런 형식을 가져와 지상파 버전으로 방영하는 느낌이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특성에 있어서 누가 누구를 따라하고 무엇이 원조인지를 묻는 것은 이제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제 프로그램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호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참신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위대한 탄생2'의 형식이 어디서 많이 본 어딘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보이스 코리아'가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프로그램의 자극성에 있어서도 '보이스 코리아'는 좀 더 진심에 닿아 있는 인상이 짙다. 오로지 노래가 전하는 그 진정성에 기울이게 만드는 형식 때문이다. 과거 케이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어딘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이라 여겨졌었다면, 이런 작금의 변화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 때문인지, 최근 들어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자극과 선정성은 케이블 못지않은 게 사실이다.

'짝'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리얼리티쇼 버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그램의 전형이다. 일반인 사생활 노출에 대한 논란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조작논란까지 나오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진정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자극들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였다. 스펙이나 외모에 경도되는 일반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tvN이 새롭게 시작한 '더 로맨틱'은 여러모로 '짝'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같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더 로맨틱'은 자극보다는 설렘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결혼을 굳이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일상 바깥으로 나가 여행이 주는 새로운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치열한 삶 속에서 이젠 없는 것이라 여겼던 한 편의 영화 같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주는 그런 느낌. 그 설렘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모든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보다 참신하고 더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 들어 케이블 프로그램들의 참신한 시도들이 눈에 띄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어디서 본 듯한 형식을 가져와 구태의연한 반복을 하고 있거나, 또 지상파 프로그램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자극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자칫 젊어지는 케이블과 노회하는 지상파로 시청세대가 구분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의외로 큰 '슈스케' 효과, 지상파까지?

'슈퍼스타K3'(사진출처:Mnet)

'슈퍼스타K2'의 성공은 신호탄에 불과했던가. '슈퍼스타K3'는 단 3회만에 10% 시청률을 넘겨버렸다. 많은 이들이 엄청난 수치의 시청률에 놀라지만, 그 시청률이 함의하는 것은 사실 더욱 놀랍다. 이것은 늘 한계로 지목되던 케이블이 지상파를 뚫는 것이 가능한 일이며, 또 그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말 그대로 역발상이다. 케이블이 가진 한계를 장점으로 바꾸는 것. 그 마니아적인 속성을 특성으로 만드는 것. 이것은 '슈퍼스타K3'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슈퍼스타K2'의 엄청난 성공은 '슈퍼스타K3'의 변신을 예상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즉 그 정도의 시청률이라면 마니아적이고 케이블적인 특성을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이고 지상파적인 점잖음(?)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래야 지상파 시청자들의 유입을 좀 더 끌어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슈퍼스타K3'는 '슈퍼스타K2'보다 더 케이블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편집을 통한 연출은 더 독해졌고, 따라서 지상파라면 분명 피했어야 하는 자극적인 상황은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 "독설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한 이승철의 심사는 딱히 독설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여전히 강했다. 즉 독한 직설이지만 너무나 공감가는 지적이기에 듣는 사람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심사였다. 이만한 자극과 재미를 대체할 수 있는 지상파 프로그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슈퍼스타K3'는 케이블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그러면서도 아낌없는 제작비를 쏟아 부음으로써 프로그램이 지상파 못지않은 세련됨을 유지하려 애썼다. 즉 이것은 케이블이 지상파가 되려한 것이 아니라, 지상파가 못하는 부분을 해냄으로써 지상파를 넘어서려 한 것이다. 지상파의 보편적인 시청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지상파를 흉내 내기보다는, 이미 보게 된 지상파 시청자들을 거꾸로 케이블에 중독시키는 방식이다. 이 도전의 성패는 이미 '슈퍼스타K2'를 훌쩍 넘겨버린 '슈퍼스타K3'의 시청률이 말해주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미 '슈퍼스타K3'를 통해 케이블적 감성이 주는 묘미를 체감하고 있다.

이것은 '슈퍼스타K3'라는 프로그램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딘지 자극적이고 어딘지 싸 보이기도 하지만 어딘지 계속 보고 싶은 그 케이블적 감성으로 보편적 시청층들(지상파 고정 시청자들 같은)을 끌어오려는 CJ E&M의 행보는 이미 시작되었다. 종편시대에 접어들면서 벌어진 스카웃 전쟁 속에 종편도 아닌 케이블인 CJ E&M이 뛰어든 것은 그저 시류에 편승한 포석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종편보다도 더 거시적인 CJ E&M의 야심이 숨겨져 있다.

CJ E&M이 KBS의 간판급 예능 PD들, 예를 들면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세팅한 이명한PD나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PD, 그리고 '개그콘서트'의 김석현PD를 영입한데는 단지 그들의 능력을 높이 샀다는 통상적인 선택의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른바 스타PD다. 즉 자신의 이름으로 시청자층까지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KBS라는 보수적인 고정 시청층을 확보한 방송사의 PD였다. 그들이 케이블로 온 것이다. tvN이라는 케이블 자체제작방송사의 대명사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상파 시청자들의 유입은 이들 스타PD들의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담보될 수 있는 상황이란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렇게 지상파에서 익숙했던 이명한PD나 신원호PD의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온 시청자들은 거기서 과연 지상파스러운 그들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 곳은 이미 CJ E&M이라는 케이블 소속이 아닌가. 게다가 이것은 '슈퍼스타K'가 준 교훈이기도 하다. 오히려 가장 케이블적인 방송이어야 케이블에서 더 먹힌다는 것. 그러니 지상파에서 이적한 스타PD들은 지상파의 시청자들을 끌고 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케이블적인 감성을 전파하게 될 공산이 더 크다. '슈퍼스타K'가 그런 것처럼.

지상파보다 더 강하고 자극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격조를 담보한 케이블의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그 첨병에 '슈퍼스타K'가 서 있고, 새로 이적한 지상파 스타PD들이 그 뒤를 준비하고 있다. 이것을 촉발한 프로그램이 바로 '슈퍼스타K'다. 즉 '슈퍼스타K'는 시청률만으로는 추산할 수 없는 효과를 케이블에 가져온 셈이다.


명불허전, 역시 '슈퍼스타K'인 이유

'슈퍼스타K3'(사진출처:Mnet)

과연 케이블은 한계일까. '슈퍼스타K3'를 보면 케이블은 한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려 8.5%의 첫 방송 시청률에 이어 2회에 10%를 간단히 넘겨버린 이 금요 오디션의 최강자는 케이블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히려 케이블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다.

사실 첫 회에 난동녀로 나와 논란을 일으켰던 최아란은 지상파라면 감히 내보내지 못했을 장면들이다. 자신이 떨어졌다며 욕을 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는 장면은 그러나 케이블이라는 매체에 대한 상대적인 관대함(?) 때문에 논란 자체도 화제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단적인 예이지만, 편집과 연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로 케이블만이 가능한 과감함을 엿볼 수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하늘이 합격 티셔츠를 나눠주는 여성을 두고 하는 농담은 어찌 보면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슈퍼스타K3'는 이마저도 재미요소로 연출해버린다. 즉 이하늘의 농담을 통해 이 여성의 캐릭터를 만들어놓은 후, 오디션 참가자가 나왔을 때 이하늘의 반응에 이 여성의 리액션을 살짝 끼워 넣는 식이다. 이 절묘하면서도 독하기 그지없는 연출은 지상파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적어도 '슈퍼스타K'에서는 가능하다. 케이블에 대한 대중들의 암묵적인 허용치가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적인 독한 연출은 심사위원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서인영은 마치 잘 생긴 남자들만 나오면 '합격'을 주고, 예쁜 여자가 나오면 '불합격'을 주는 것처럼 연출되는 것도 그것이 서인영 당사자의 이미지에는 어떨 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묘한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승철이 '슈퍼스타K'의 대표적인 심사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케이블적인 허용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선택과 지적에 있어 과감하고 또 그러면서도 정말 괜찮은 가능성의 후보자가 나타났을 때 한 발 물어날 줄도 아는 심사위원이다. 이 독설가의 이미지와 멘토로서의 이미지가 모두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역시 과감한 케이블의 연출 덕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지상파가 좀체 버리지 못하는 '품격'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인데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이미 지상파를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힘을 주는 연출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엔터테이너들의 세상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좀 더 본성에 솔직한 그림들을 잡아낸다.

이것은 어쩌면 B급의 '저렴한' 프로그램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그 외관으로서의 규모를 강조하고 세련된 영상을 위한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다. 헬기와 리무진이 동원되고, 엄청나게 운집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진다. 총 상금 5억 원, 오디션 참가자 수 197만 명, 제작비 100억 원, 제작 기간 1년. 이런 스케일 속에서 B급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휘발되어버린다. 지상파도 선뜻 만들어내기 어려운 특 A급의 스케일에, 역시 지상파가 그려내기 어려운 B급 정서의 연출. 이것은 케이블에 자리한 '슈퍼스타K'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슈퍼스타K3'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도저히 지상파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을 이 프로그램이 개척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는 그래서 케이블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대체불가능의 프로그램이 된다. 김용범 PD의 "우리의 경쟁자는 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스타K 시즌1, 시즌2"라는 말이 단지 수사가 아닌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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