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발광 오피스’, 청춘 희비극이 제대로 먹히려면

웃프다. 아마도 MBC의 새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이것이 아닐까. 시작부터 한 회사 건물 창을 부순 채 돌진해 들어가 소화기를 쏘며 “왜 그랬어요!”를 외치는 취준생 은호원(고아성)의 모습은 그녀가 처한 절실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어딘지 과장된 절실함은 이 비극적인 청춘의 현실을 담은 드라마가 그 겉면으로는 코미디를 차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한 바퀴 휘돌아 다시 그 건물 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창을 부수며 돌진하는 것이 그저 그녀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100번째 면접시험에서 면접관 서우진 팀장(하석진)에게 “백번이나 떨어지면 병신 아냐?”라는 말까지 들으며 굴욕을 참아냈던 은호원이 결국 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는 걸 확인한 후 한강 다리 위에서 “삐뚤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슬프기 그지없다. 남들 스펙 준비할 때 생활고에 시달리며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말이 고작 “졸업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뭐하셨나 그래”라는 비아냥이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그녀에게는 그래서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 살아가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취업현실은 누구에게나 취업 자체가 평범 그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중심을 잃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강물에 빠졌다 구조되어 한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녀의 귀에 들리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 기껏 살아남았는데 시한부라는 것. 하지만 그 날 응급실에 자살시도를 하고 들어온 청춘이 자신만이 아니라 기택(이동휘)과 장강호(이호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한부의 확률이 3분의 1이라는 상황은 이 비극 속에 희극적 요소를 심어놓는다. 병원비가 없어 기택과 함께 응급실에서 도망치고 바깥에서 만난 세 사람이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절망 속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웃음을 준다. 

청춘들의 취업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미생>의 장그래(임시완)가 떠올려지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미생>의 진지함과는 달리 조금은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나 인물들의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감을 주면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그 웃픈 현실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비극적 현실을 희극적 상황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자체발광 오피스>의 첫 방 시청률은 고작 3.8%(닐슨 코리아)에 머물렀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걸까. 물론 가장 큰 건 경쟁작인 KBS <김과장>이 떡 하니 버티고 있고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중장년층 시청층을 넓히고 있는 상황일 게다. <자체발광 오피스>만 놓고 보면 공감 가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경쟁작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시청층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나 상황이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생>은 장그래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상식 과장(이성민)이라는 중년층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적어도 첫 회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김과장> 역시 김과장(남궁민)은 물론이고 추부장(김원해) 같은 중년들이 공감할 캐릭터가 세워져 있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초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을 최대한 줄이고 사극에 집중함으로써 중장년 시청층을 끌어들였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그래서 그 작품 자체로는 빛이 나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보편적인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면들이 많이 드러난다. 웃픈 청춘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가지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캐릭터나 상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남궁민의 ‘김과장’이 이영애의 ‘사임당’보다 호평 받는 까닭

이쯤 되면 중국 발 사전제작드라마의 저주라고 해도 될 듯싶다. <태양의 후예> 이후 쏟아져 나온 중국을 겨냥한 100% 사전제작드라마들이 잇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예상 외로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여기에는 몇 가지 그럴만한 내적, 외적 이유들이 얽혀 있다. 그 내적 이유는 이 드라마가 이미 일찌감치 사전제작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동시방영을 준비하면서 너무 방영시기를 늦추게 됐다는 외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한령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예정됐던 작년 말 <사임당>이 방영되었다면 상황은 지금처럼 전개되지만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임당>이 취하고 있는 현재와 과거가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은 작년 말만 해도 참신한 코드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푸른 바다의 전설>과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등 연달아 타임리프 판타지를 접한 시청자들로서는 “또?”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대극과 사극을 오가는 설정이 이제는 그리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사임당>의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은 그 내적 개연성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즉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역사적 인물인 사임당과 현재의 워킹맘 서지윤(이영애)이 중첩 되어야 하는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이유가 그리 강렬하게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물론 <사임당>이 하려는 이야기가 ‘여성’, 그것도 워킹맘에 대한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강산도’가 화두처럼 던져지는 건 산에 오르는 것조차 금지되던 시대에 열심히 산을 오르며 그 산세를 화폭에 담으려 노력하는 사임당의 면면을 통해서 당대의 성적 차별의 벽을 넘어 예술의 세계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워킹맘 사임당을 그려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재의 서지윤이라는 인물과 중첩됨으로써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반복되는 차별의 역사를 드러내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중대하고 거창한 의도들이 가진 무게감은 오히려 <사임당>을 너무 짓누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3회의 이야기는 그래서 사임당이 말하는 “왜 여인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이리도 많답니까?”라는 그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 이외에 드라마적인 극적 요소들이나 재미요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랜만에 드라마 출연을 하고 있는 이영애지만 이 드라마 3회 동안 그만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는가가 의문시되는 건 드라마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사임당>이 이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기대감이 적었던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한 마디로 펄펄 날고 있다. <사임당>의 소문에 밀려 1,2회를 7%대에서 시작한 <김과장>은 3회에서 12.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내며 추락한 <사임당>의 시청률 13%의 목전까지 다가섰다. <사임당>이 대작으로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것과 달리, <김과장>은 말 그대로 입소문에 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 향후 판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사임당>이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에 여성, 예술 같은 의도의 무게감에 짓눌리고 있을 때, <김과장>은 제목이 담고 있는 것처럼 소시민적인 인물 김과장(남궁민)의 유쾌한 풍자 블랙코미디를 그려냈다. 경리과장으로 한탕 해먹기 위해 대기업에 들어오게 된 김과장이 어쩌다 보니 부조리와 비리에 물든 회사와 한바탕 싸우게 되는 소시민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가벼워 보이고 실제로도 과장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코미디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메시지 같은 것들이 남는 드라마. 

애초에 그 누가 <사임당>과 <김과장>이 대결구도를 그려낼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째 <사임당>으로 지난 2004년 <대장금>이 종영된 후 1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이영애보다 <김과장>으로 제대로 망가지는 서민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남궁민에 더 열광하는 듯하다. 역시 드라마는 작품의 내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방영되는 시기의 현실적 상황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느냐도 중요하다는 걸 상황이 역전된 <사임당>과 <김과장>은 보여주고 있다.

남궁민이 하니 다르네, 속시원한 풍자극 <김과장>

왜 하필 경리과장일까. 드라마에서 경리라는 직책은 어떤 사건의 보조적인 인물 정도였던 게 사실이다. 드라마로서 그다지 판타지를 줄만한 요소가 없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KBS 새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아예 대놓고 TQ그룹 경리과장이 된 김성룡(남궁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가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 건 그 자리를 지키던 경리과장이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TQ그룹의 회계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그는 협박을 받았고 결국 자신으로서 모든 걸 덮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TQ그룹의 비리는 그래서 그 일개 경리과장의 사적 비리로 치부된다. 그가 떠나간 빈자리에 채용된 김성룡은 자신 역시 회사에서 이용되다 버려질 운명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하지만 TQ그룹 역시 이 새로 온 김과장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있다. TQ그룹의 재무이사인 서율(준호)은 새로 올 김과장이 군산에서 조폭사장의 경리 일을 해주면서 적당히 삥땅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덴마크 이민을 준비하는 적당히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라는 걸 간파하고 그 사실을 이용해 그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하지만 김과장은 그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속 시원한 사이다 풍자극의 핵심이니까. 

결국 이 드라마가 경리과장을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뜻은,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비리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기업의 돈이 오고가는 곳. 그 곳에서 빚어지는 많은 비리들과 그걸 몇몇 희생자를 만들어 덮으려는 기업의 음모. 우리네 현실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그 돈의 잘못된 흐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김과장>은 기업의 회계 비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드러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 주인공이 검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게 된 김성룡이라는 경리과장이다. 이 선택은 이 드라마가 사회 비리에 대항하는 사이다 드라마를 지향하면서도 그 방식으로서 유쾌하고 코믹한 풍자극을 지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무거울 수 있는 스토리는 그래서 김과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코믹함으로 한껏 가벼워진다. 한편에서는 회사의 모든 비리를 한 몸에 떠안은 채 나무에 목을 매는 비정한 무게감이 드리워지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TQ그룹의 경리과장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 면접관들 앞에서 눈물의 연기를 선보이는 김과장의 모습은 과장된 코미디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건 김과장의 진지함을 숨긴 채 한껏 무너지고 망가지며 가벼운 면면들을 드러내는 과장된 코믹함으로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남궁민의 연기다. 이미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 강렬한 악역 연기를 보여주고는 또 이와는 정반대 이미지의 코믹한 캐릭터를 SBS <미녀 공심이>에서 선보여 확실한 연기파 배우의 면면을 세운 그다. 

이번 <김과장>의 과장된 코믹 캐릭터는 이제 남궁민이 다양한 연기의 결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믿고 보는 연기자가 됐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자칫 잘못하면 엉성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그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기대하고 지지하게 만드는 캐릭터로 그려내고 있다. 그로 인해 <김과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속 시원히 건드려주는 풍자 사이다 드라마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개콘’, 풍자는 더 이상 그저 용감한 발언이 아니다

“대체 어느 나라 장관입니까? 우리도 일본에 십억엔 주고 야스쿠니 신사 철거하라고 하세요.” KBS <개그콘서트>의 ‘대통형’은 매주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후 <개그콘서트>의 달라진 모습이긴 하다. 물론 예전에도 정치권에 대한 날선 풍자를 했다가 개그맨이 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는 대놓고 현 시국을 비난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유라, 우병우와 김기춘, 조윤선에 이어 반기문까지 ‘대통형’은 대중들의 입에 회자되던 논란거리들을 조목조목 코너로 가져왔다. 이번에는 대권 행보를 공식적으로 내걸고 국내에서 본격 활동에 들어간 반기문 전 총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서민을 위한답시고 나섰지만 정작 서민 살이는 잘 모르는 것처럼 보여 논란이 되었던 행동들을 그대로 개그 소재로 갖고 온 것. 

뿐만이 아니다. 소녀상 철거와 위안부 합의 문제에 있어서도 ‘대통형’은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덜컥 합의를 했다는 발표를 하고는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외교국제부 장관 홍현호에게 대통형 서태훈은 거듭해서 “할머니들께서 합의에 동의했냐?”고 물었다. 결국 아니라는 답변을 내놓는 홍현호의 모습을 통해 당사자의 합의 없이 이뤄진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처럼 매주 현 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거리들을 소재로 가져와 거침없는 비판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대통형’에 대한 반응은 그리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건 풍자가 아니라 그저 현실의 재연이라며 게으른 코미디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나아가 이처럼 현 시국이 담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그저 단순해 재연하는 코미디는 정치 혐오만을 부추긴다는 지적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단 1년 전만 해도 <개그콘서트>에서 이러한 시국에 대한 ‘용감한 발언들’은 그 자체로 ‘사이다’라며 대중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었다. 과거 ‘동혁이형’이나 ‘용감한 녀석들’을 떠올려 보라. 그 때 그 코너들은 개그맨들이 대놓고 직설적으로 당대 현실에 대한 날선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큰 호응을 얻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대통형’은 더 센 소재와 대상을 두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반응이 영 시원찮은 걸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상황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어떤 정치나 시사 문제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용감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개그콘서트> ‘대통형’이 주말에 이르러 그 주에 있었던 사안들을 갖고 어떤 비판을 가하는 건 이제 더 이상 새롭거나 용감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그런 정도의 발언들은 뉴스는 물론이고 시사 프로그램 그리고 <썰전>이나 <말하는 대로>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고, 나아가 인터넷만 열면 너무 많이 들어서 심지어 식상해질 정도가 된 이야기들이다. 그러니 그걸 뒤늦게 반복 재연하는 건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이런 경우 중요해지는 건 풍자 본래의 색깔이 그러하듯,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걸 담는 참신한 형식적 틀이나 시도들이다. 그런 형식적 틀이 한 차례 에둘러 이야기해줄 때, 그리고 그 틀 자체가 새로움으로 다가올 때 그 풍자가 게으르다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SBS <웃찾사>의 ‘뿌리 없는 나무’ 같은 코너가 그렇다. 이 코너는 소재로서 당시의 어떤 사안들을 갖고 와 녹여내더라도 그 형식적 틀(조금은 모자란 듯 목소리를 내는 왕)은 온전히 ‘뿌리 없는 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풍자와 비난은 다르다. 그저 비판 의식을 코미디라는 본연의 신선한 형식적 틀에 넣어야 비로소 비난이 아닌 풍자가 된다. 또한 이러한 무언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선 이들은 무엇보다 조심해야할 것이 그 타깃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병신년’ 운운하며 하는 풍자라는 것이 엉뚱하게도 시국을 비판하는데 ‘여성 혐오’가 덧씌워지는 건 이런 조심성이 결여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든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저 시국을 소재로 담는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풍자라는 평가로 이어지는 건 아닌 시점에 들어섰다. 코미디적인 완성도와 시국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시선을 담아내지 못하는 단순한 재연은 자칫 시국에 발을 얹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풍자의 진정성을 얻는 길. 그건 결국 그 코미디가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독자적인 색깔을 완성도 높게 그려내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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