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따위론 평가할 수 없는 <원티드>의 가치

 

드라마는 적당한 멜로에 코미디를 섞고 때로는 자극적인 설정을 반복해 시청률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아마도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제작자는 없을 게다. 하지만 막상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실제로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가 의외로 많고 그래서 주제의식 따위는 잘 보이지도 않고 또 추구하지도 않는 드라마들이 마치 공해처럼 방영되고 있는 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원티드(사진출처:SBS)'

그런 점에서 종영한 SBS <원티드> 같은 드라마는 대단히 참신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저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가 어떻게든 리얼리티쇼를 통해 범인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함으로써 아이를 찾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방송과 미디어의 선정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었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 테면 아동학대나 불법적인 임상 실험, 모방범죄 나아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같은 사안을 이 드라마는 정면으로 끌어들여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의 절규는 우리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 사안의 충격적인 심각성을 절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던가. 가해자는 분명히 눈앞에 있는데 피해자들만 눈물 흘리고 있는 현실이 아니었던가. <원티드>가 주목되는 건 이러한 현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드라마로 풀어내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리얼리티쇼는 선정성으로 시작했지만 진정성 있는 정혜인(김아중)의 각성으로 끝을 맺었다. 사안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관심했고,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타인의 아픔을 쳐다보지 않았던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는 어찌 보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고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원티드>는 문제의식을 단순한 판타지 결말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법적인 무죄를 주장하고 아무런 사과도 없는 현실이 아닌가. 그러니 드라마가 나서 섣부르게 그들을 단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건 실제 피해자들에게는 더 큰 아픔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드라마는 과연 현실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당한 판타지에 빠뜨려 잠시 현실을 지워버리는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어떤 것만이 과연 드라마의 역할일까. 때로는 현실 문제에 과감히 뛰어들어 그 문제를 각성시키는 것도 드라마의 또 다른 기능이 아닐까. 그저 시청률 따위만 추구하는 드라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원티드>는 그 가치를 보여주었다

한효주, 이종석만큼 흥미진진한 <W>의 세계

 

역시 송재정 작가의 판타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인>을 통해 독특한 타임워프의 세계를 보여줬던 그녀가 이제는 <W>라는 판타지의 세계를 들고 왔다. 그 세계는 웹툰과 현실이 교차되는 세계다. 풋내기 의사인 현실 세계의 오연주(한효주)와 웹툰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의 만남. 혹은 가상 세계인 웹툰 ‘W’와 그 웹툰을 그리는 현실세계의 부딪침. 어찌 보면 너무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 판타지를 실감나는 흥미진진한 세계로 바꿔 놓았다.

 

'W(사진출처:MBC)'

송재정 작가는 어떻게 이 만화적인 세계를 실감나는 몰입감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는 오연주라는 캐릭터의 성공이다. 결국 현실과 웹툰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인물로서 오연주라는 캐릭터가 그 과정을 제대로 납득시켜야 시청자들 역시 <W>의 세계에 대한 공감이 생긴다. 오연주를 어딘지 허술하고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는 코믹한 캐릭터로 세운 건 그래서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녀는 웹툰 W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황당함이나 놀라움을 약간은 코믹하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줘 가상에 대한 몰입에 진지함을 덜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웹툰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그 이야기를 유머 섞인 농담처럼 던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별 심리적 저항감 없이 그 설정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게다가 <W>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웹툰의 세계가 가진 흥미로운 설정들을 연달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이 이 세계를 즐기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웹툰 바깥에서 그림을 바꾸면 그 안의 세계가 바뀌는 설정이나, 주인공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연주에게는 한 30분 정도 지난 시간이 웹툰 속에서는 두 달이 훌쩍 가버리는 설정. 또 연재물이기 때문에 어떤 엔딩에 걸맞는 극적 상황이 나와야 그 회가 끝나 오연주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정 같은 것들이 주는 흥미진진함이다.

 

이 웹툰 세계의 흥미로운 설정은 그대로 오연주와 강철이 가까워지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 웹툰을 꼼꼼히 다 챙겨 본 오연주로서는 강철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강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오연주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또 극적 상황을 만들어 빨리 회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려고 오연주가 강철의 뺨을 때리고 그래도 안되자 키스를 하는 장면도 은근슬쩍 웹툰 세계의 설정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W>의 세계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되는 건, 이 허구성 짙은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일 게다. 결국 이 드라마는 W라는 웹툰을 창조해낸 오연주의 아버지 오성무(김의성)와 강철-오연주의 대결구도를 다룬다. 오성무는 W와 강철이라는 피조물을 만든 신의 위치에 서려한다. 그래서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능동적으로 살아가려 하는 강철을 그는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거꾸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 손길을 의식하고 강철이 그에게 당신 누구야라고 질문하는 장면에서는 신에 대항하는 피조물의 서사가 느껴진다. 이 대목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크다. 예술은 절대적 신의 위치에 서 있는 작가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일단 주어지면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그 내적인 개연성의 룰에 의해 흘러가는 세계인가. 나아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존재들은 운명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존재인가.

 

이런 다소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 있어 <W>의 세계는 그저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놓은 듯한 그 가벼운 드라마로 여겨지지만, 그걸 통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까지를 담아낸다는 것. <W>의 세계가 볼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잠시 숨고르기를 했던 송재정표 판타지가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싸우자 귀신아>, 멜로-공포-액션에서 길을 잃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는 도대체 장르의 정체가 뭘까. 귀신과 인간 사이의 멜로? 공포? 퇴마 액션? 그것도 아니면 코미디? 물론 요즘처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복합장르의 시대에 이런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로와 공포와 액션 그리고 코미디가 엮어지는 복합장르라면 그 모든 장르적 요소들이 살아나야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싸우자 귀신아>는 그런 복합적인 장르들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을까.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이질적인 요소들로 보여도 공포는 멜로와도 또 코미디나 액션과도 잘 어울리는 장르다. <스위니 토드> 같은 작품은 대표적이다. 공포가 주는 긴장감은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더 절절하고 쫄깃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론 <무한도전> 귀곡성 특집이 보여주듯 공포에 절절 매는 모습만으로 폭소를 유발해내기도 한다. 물론 <퇴마록> 이후 많은 퇴마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액션과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는 어딘지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이다. 박봉팔(옥택연)과 김현지(김소현)의 멜로는 그리 강렬하지 않고, 또한 둘 사이에서 이뤄지는 코미디적 요소도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CG를 통한 공포와 액션에 상당히 공을 들인 면이 잇는데 이렇게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강화된 공포와 액션이란 사실 볼거리에 치중되기 마련이다. 결국 남녀 주인공 간의 케미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는 <싸우자 귀신아>는 눈요기는 돼도 감정이입은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옥택연이 연기하고 있는 박봉팔이라는 캐릭터다. 웹툰이 그리고 있는 박봉팔은 드라마와는 달리 찌질함과 외로움 같은 요소들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어딘지 귀신 소녀 김현지 앞에서 조금은 어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점은 공포와 멜로, 코미디에서 모두 괜찮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즉 그 찌질함과 외로움이 하나의 장애요소가 되어 상황과 관계들을 더 흥미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박봉팔은 이미 퇴마 능력을 갖춘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다. 사실 귀신과 싸우거나 남녀 간의 멜로에 있어서 그다지 어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첫 회 박봉팔과 귀신 소녀 김현지가 만나는 장면은 그래서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했고 대신 무협을 보는 듯한 액션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악플에 상처받아 자살한 원귀와 싸우는 대목에서도 박봉팔은 귀신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완력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캐릭터와 그 심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멜로와 코미디에서 확실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싸우자 귀신아>는 공포 액션물처럼 보여지는 면이 있다. 이것은 많은 시청자들이 <싸우자 귀신아>에서 보기 원하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전작이었던 <또 오해영>이 거둔 성과를 생각한다면, 그 차기작으로서 그 편성시간대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을까.

 

첫 회 시청률이 4.055%(닐슨 코리아)나 나왔다는 건 여러 모로 <또 오해영>이 만들어낸 tvN 월화드라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던 시청률은 3회 만에 3%대로 떨어진 것은 기대만큼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볼거리가 아니라 좀 더 심리적인 요소들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싸우자 귀신아>의 원작 웹툰 팬들도 또 <또 오해영>으로 tvN 월화드라마를 기대하는 팬들도 다시 끌어 모을 수 있다.

<봉이 김선달>의 신스틸러들,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봉이 김선달이라는 민담이 나오게 된 데는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가 선달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과거에 급제 했지만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당대의 현실이 그 캐릭터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셈이다. ‘봉이라는 호가 붙게 된 연유 역시 닭을 봉황이라 팔아먹는 당대 사회의 물욕에 대한 풍자가 들어가 있다.

 

사진출처:영화<봉이 김선달>

물론 이 소재를 지금 굳이 가져온 데는 당대의 사정과 지금의 현실이 어느 정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일 수 있다. <봉이 김선달>이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탐관오리들과 양반들 뒤통수를 침으로써 잠시나마 통쾌함을 선사할 김선달이란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에 충실하게 진지함을 빼고 가벼운 코미디 속에 세태 풍자를 끼워 넣는다. 호란 이후 조선인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화살받이 노릇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러나 그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 곳에서 김선달(유승호)은 보원(고창석)과 견이(시우민)를 만나 어차피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몸 마음껏 누리며 살겠다고 선언한다.

 

양반들을 대상으로 닭을 봉황이라 속여 팔고, 여장을 한 채 사내를 꼬드겨 돈을 뜯어내고, 그저 평범한 칼을 충무공의 칼이라 속여 팔아먹는다. 그렇게 번 돈을 김선달은 하룻밤 풍류로 날리고 나눠가지라며 저잣거리에 돈을 뿌린다. 물론 이러한 유쾌한 사기극은 중간 지점부터 변곡점을 만들어 후반에는 복수극으로 돌변함으로써 영화의 극성을 높여놓는다.

 

이미 많이 알려진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사기극은 그 자체로는 기발하다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코믹 연기가 그것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승호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때로는 꽃미남으로 아낙들의 마음을 빼앗고, 때로는 여장을 한 채 뭇사내의 마음까지 빼앗으며, 심지어 왕 행세를 하기도 한다. 그 옆을 지키며 그와 함께 사기극의 연기를 돕는 보원은 살벌한(?) 외모와 정반대의 귀요미 모습으로 끊임없이 웃음을 준다. 보원과 케미를 만들어가는 윤보살(라미란)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보여준다.

 

후반부에 대동강으로 중심으로 하는 스펙터클보다 사실 <봉이 김선달>을 유쾌하게 만들어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유승호는 물론이고, 고창석, 라미란 같은 이들이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그들이 왜 신 스틸러라 불리는가를 제대로 증명해보여주었다. 특히 여장한 김선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양반으로 등장한 최귀화는 이 영화가 주목시킨 연기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봉이 김선달>은 그 민담이 갖고 있는 풍자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를테면 그가 선달로 불리게 된 이유를 영화에서는 그와 공조해 역적들을 몰아낸 왕이 이야기 해준다. 즉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렇다고 체제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봉이 김선달>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 오락물이 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인 듯 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는 조금 밋밋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여름 시장을 겨냥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신스틸러들의 활약 덕분이다. 그것은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같은 인물을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데서 확인된다. 그들이 있어 <봉이 김선달>은 그나마 충분히 유쾌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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