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참시’, 세상 사회관계가 박성광·임송 매니저 같기만 하다면

보면 볼수록 가슴이 따뜻해진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배려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의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의 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유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수줍은 듯 임송 매니저가 ‘정사원’이 된 사실을 말한다. 그러자 마치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는 박성광은 그걸 축하해주고 싶어 밥이라도 사주려 하지만, 그 제안을 하는 목소리는 조심스럽기 이를 데 없다. 말을 더듬어가며 오늘 저녁에 다른 일 없냐고 조심스레 묻고, 특별한 일이 없다는 임송 매니저에게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말한다.

그 조심스러움에서 박성광이 얼마나 타인의 입장을 들여다보는 인물인가가 드러난다. 사실 자신의 어떤 말이든 이제 새내기 매니저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의향을 묻는 일도 어떨 때는 그대로 ‘명령’처럼 다가가기도 하는 게 사회생활이 아닌가. 박성광의 극도로 조심스러운 질문에는 그 입장을 한껏 들여다보려는 배려가 담겨져 있다. 

한껏 기뻐하며 그러자는 매니저에게 박성광은 그에게 특별한 날이니 메뉴는 그가 정하라고 한다. 그런데 송이 매니저는 “오빠 드시고 싶은 거”라고 말을 흐린다. 자기보다는 박성광을 더 챙기려는 매니저로서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자 박성광은 이전에 그가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상기하며 역시 조심스럽게 삼겹살 어떠냐고 묻는다. 

삼겹살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송이 매니저. 그런데 박성광이 말하는 그 삼겹살집이 왠지 비쌀 것 같은 게 영 마음에 걸린다. 송이 매니저는 박성광이 그렇게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단다. 자신이 뭘 대단히 잘한 게 없어서 그렇단다. 나중에 자신이 진짜 잘 하게 되면 그 때 더 좋은 걸 먹겠단다. 결국 송이 매니저가 제안한 곳은 1인당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의 무한리필 삼겹살집이다.

조금은 값싼 무한리필 삼겹살집이지만, 폭풍 먹방을 선보이는 송이 매니저의 행복한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그런 행복한 웃음을 본 박성광이 그걸 기억해둬야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매니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늘 웃어야 할 수도 있는 직업이다. 그러니 진짜 행복한 그 얼굴을 기억해두고 되도록 그런 웃음이 나올 수 있게 해주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방송이 나간 후 박성광은 유명해진 임송 매니저에게 자칫 방송 출연이 가져올 상처받을 일들을 걱정한다. 자신이야 연예인이니 그런 일들조차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매니저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네가 불행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말해라.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임송 매니저는 물론이고 이 방송 분량을 보는 스튜디오의 출연자들을 모두 감동하게 만들었다. 

아직 미숙한 새내기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박성광을 챙기는 임송 매니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인터뷰를 하는 박성광을 위해, 폭염을 뚫고 편의점에서 자양강장제를 사가지고 와 “마시면서 하세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모습이나, 인터뷰 장소로 가는 길과 주차까지 미리 사전답사를 하는 세심함에서 부족해도 그 부족함을 채우기에 충분한 성실함과 배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임송 매니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말 한 마디에도 조심하는 박성광의 모습은 더더욱 인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타와 매니저 사이의 자칫 ‘권력구도’처럼 생겨날 수 있는 위계는커녕, 사회 선배가 후배를 진심으로 챙기는 마음이 거기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전지적 참견시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숨겨진 비결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회관계란 그 직급이나 위치에 따라 정해지는 수직적 위계가 대부분이 아닌가. 물론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암묵적인 상명하복의 권력적 체계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의 이야기는 심지어 마치 한 편의 동화나 우화 같은 판타지처럼 다가온다. 보기만 해도 절로 훈훈한 미소가 피어나오는.(사진:MBC)

바꿔보니 아니더라? ‘아는 와이프’ 호평과 혹평을 가르는 건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 이혜원(강한나)의 남편이 된 차주혁(지성)이 서우진(한지민)의 진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멜로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코미디를 더 좋아하는 서우진. 그가 멜로를 좋아한다 여겼던 건, 울고 싶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차주혁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서우진을 괴물로 만든 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즉 <아는 와이프>는 ‘만일 ...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판타지를 통해 담아내면서 우리가 현실에 치여 놓치고 있던 것들을 그 체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조금 뻔한 면이 있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지만 ‘지금 당신 옆에 있는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가상 체험일 수 있어서다.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저 <구운몽>의 이야기처럼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다고 끝나는 건 아닐는지.

가상 체험은 자못 자극적인 코드들을 담을 수 있다. 이를테면 남편이 아내를 바꿔 살아보는 이야기나, 아내가 미혼상태로 돌아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아는 와이프>에도 이런 코드들이 들어간다. 차주혁이 과거를 바꿔 깨어났을 때 그의 침대 옆에서 함께 자고 있는 와이프는 이혜원이라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이혜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차주혁의 품에 안긴다. 바로 몇 분 전 서우진의 남편이었던 차주혁이 몇 분 후 이혜원의 남편으로 살아보는 것. 자극적일 수 있다. 

이는 서우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주혁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긴 하지만, 자신에게 대시하는 윤종후(장승조)와의 관계에서도 싫지 않은 감정을 갖는다. 물론 서우진의 경우 진짜 판타지는 독박육아에서 벗어나 싱글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일 것이다. 차주혁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벗어나 있다는 그 사실. 

그런데 이런 ‘가상 체험’ 판타지를 더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것이 마치 스와핑 같은 불륜적 코드들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가상 체험 판타지지만 느끼기에 따라 그것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적 의미’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저 자극적인 불륜 코드의 정당화로 느껴지는 분들도 있다. <아는 와이프>는 이 아슬아슬한 양극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호평도 나오지만 혹평 역시 쏟아지는 이유다. 

즉 과거를 바꿔 현재를 바꿔 살아보는 가상 체험 판타지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분들에게 <아는 와이프>는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가 너무 상투적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아는 와이프>가 너무 뻔한 주제를 내세워 사실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주혁이 과거를 바꿔 현재의 아내를 바꿔 살아가는 그 선택을 하고는, 이제 와서 서우진의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대시하는 윤종후를 막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시퀀스는 이 인물의 ‘찌질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어서다. 선택을 했으면 그만한 책임 또한 따른다는 걸 그는 왜 모를까. 차주혁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라도 시켜주겠다는 듯, 그의 아내인 이혜원이 정현수(이유진)라는 가짜 대학생과 불륜적 상황을 보이는 이야기도 그렇다. 그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자극적 코드를 위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일 ...었다면’이라는 판타지 코드가 가진 양극단의 느낌을 그나마 상쇄해주는 건 지성과 한지민의 연기다. 지성은 자칫 욕먹을 수 있는 차주혁의 우유부단함과 찌질함을 적당히 망가지는 캐릭터 연기를 통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한지민은 ‘하드캐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귀여움과 절절함과 털털함을 넘나들며 누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더해준다. 그래서 이즈음에서 한번쯤 이 드라마가 하는 방식의 가정을 떠올리게 된다. 만일 지성과 한지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사진:tvN)

‘아는 와이프’, 한지민을 보면 우리의 착각이 깨진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가 맞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때가 있다. 지금 삶의 맥락 바깥으로 살짝 벗어났을 때 우리가 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사람이나 삶은 의외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진 세속적인 욕망과 클리셰에 빠져버린 일상 속에서 진짜를 보지 못했던 삶이 그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건 서우진(한지민)이라는 인물이 다른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인물로 다가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 차주혁(지성)에게는 분노조절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숨 막히는 아내였지만,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에 성공함으로써 재벌가 딸인 이혜원(강한나)과 결혼해 살아가게 된 차주혁이 다시 만난 그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물이다.

그렇게 바뀐 운명을 살게 된 차주혁의 시선을 통해 <아는 와이프>는 과거의 서우진과 현재의 서우진이 어째서 그리도 다른가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서우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차주혁이 현실에 지쳤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것들이 그를 달라보이게 하는 것이다. 흔해져버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일터에서의 갑질과,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자신만이 전담해야 하는 일처럼 의무가 되어버린 독박육아. 남편은 자신도 힘들다고 자그마한 숨 쉴 공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지고 볶는 워킹맘으로서 숨막혀하고 있던 서우진이었다. 

그 때 차주혁은 서우진이 얼마나 힘겨워 하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과거의 운명을 되돌려 이혜원과 결혼하게 된 그가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서 다시 서우진을 만나고 그가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가를 새삼 발견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본래 서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드라마는 차주혁이라는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지금 현재 평균치 남성들의 시선을 가진 차주혁은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한계를 가진 인물로 시작한다. 차주혁은 돈 많은 아내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가는 드라마 속 남성들의 로망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그는 조금씩 그것이 허망한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재벌가 장인 댁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살아왔던 배경이 완전히 달라 이혜원의 삶의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상경해 집을 찾은 자신의 부모에게 호텔을 잡아주겠다는 혜원의 말은 이해는 되지만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사서 내놓은 듯한 스테이크보다 그는 우연히 찾았던 서우진의 집 어머니가 싸준 갓김치가 더 당긴다. 그는 문득 서우진과 함께 갔었던 분식집의 떡볶이와 돈가스 그리고 빙수가 그립다.

<아는 와이프>는 틀에 박힌 막연한 판타지들이 가진 허구성과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 체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불평등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재벌가 사위로 살아가는 차주혁이 게임 전용 소파까지 구비된 거실의 풍경이나, 은행에서 여직원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커피 심부름을 하는 그런 일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허구와 불편한 풍경들이 등장하는 건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판타지들이나 불편한 풍경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차주혁의 시선에서 가장 그 편견을 깨는 인물은 바로 서우진이다. 어떤 진상 고객 앞에서도 당당하고, 분노 조절 장애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뒷얘기에조차 뒤끝 없이 풀어내는 털털함이 있고, 무엇보다 명랑하고 밝아 주변 사람들까지 밝게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차주혁은 그를 보며 그가 알고 있던 그 아내가 맞나 다시금 눈을 의심하게 된다. 

서우진의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와 연결된다. 그래서 서우진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한지민은 우리가 알던 그 한지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귀여운 고등학생과 삶에 찌든 억척스런 워킹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밝고 사랑스러운 직장인의 모습을 넘나들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다 착각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는 와이프>는 그 이야기를 차주혁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채 살아온 남성의 시선을 통해 질문한다. 그가 봐왔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표피적인 것들이었으며, 비뚤어진 것인가를 그가 서우진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통해 담아낸다.(사진:tvN)

‘친애하는’이 던지는 질문, 누구를 위한 법인가

“법이 무슨 자격이 있어요. 사람 앞에서.” 한강호(윤시윤)는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장정수(문태유)에게 그렇게 말했다. 임산부였던 장정수의 아내는 음주운전을 한 배민정(배누리)의 차에 치여 사망했다. 하지만 배민정은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법정에서 가짜 눈물 연기를 하며 변호를 통해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 후에도 배민정을 따라다닌 장정수는 그가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술 마시고 웃는 모습에 분노했다. 법정에서 그가 “저 여자는 악마”라고 외친 건 그래서였다. 

장정수는 1인 시위를 통해 ‘판사의 자격’을 물었다. 그가 들고 있는 피켓에는 ‘판사의 자격은 겸허하고 언제나 선행을 거듭하고 무언가 결정을 내릴 만큼의 용기를 가지며 지금까지의 경력이 깨끗한 사람이라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강호가 그에게 다가가 사람 앞에 법은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 건 법의 무력감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피켓 하나 들고 땡볕에 서서 무언가를 항변하는 1인 시위자들을 어디서든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항변하고 있었던 걸까. 얼마나 억울한 사정들이 있었으면 그 뜨거운 날씨에도 누군가를 향해 그 답답한 마음을 외치게 됐던 걸까.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이 뒤바뀐 현실을 계속 보여준다. 처음 등장한 재벌가의 갑질 폭행 사건에서도, 연예인의 음주운전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법 뒤에 숨어 웃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법이 피해자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에 의해 유용되는 현실. 가진 자들은 돈의 힘으로 법을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피해자들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또 다른 가해를 당한다. 

게다가 가진 자들은 변호사는 물론이고, 검사, 판사까지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 뒷돈이 오가고 거기에 휘둘리는 판결에 의해 그들은 사적인 치부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시력을 잃어버렸지만 그 권력 앞에 싸울 힘조차 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아내와 아이를 잃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분노한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홀로 저 땡볕에 나와 피켓 하나 들고 시위를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 1인 시위에 그 누가 눈 하나 깜짝하는가. 어쩌다 형의 판사복을 입게 된 한강호는 배민정 재판에 내린 판결에 대한 장정수의 분노어린 일갈에 공감한다. 초범이라 낮춰진 형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에 법이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해주냐고 묻는 그의 항변. 결국 한강호는 1인 시위를 하는 장정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나 같은 놈이 재판을 맡아서.”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가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판사에게 항변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졸지에 판사가 되어버린 한강호가 그 사연들을 들어주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이 못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무수히 많은 억울한 사건들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거기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사과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런 법이 과연 사람 앞에 자격이 있다 말할 수 있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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