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어’, 위선적인 세상에 날리는 고경표, 강한나의 로맨틱 팩트 펀치

비밀은 없어

“정신 차렷!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자기 일 하러 온 거야. 갑질 당하러 온 사람? 여기에 아무도 없어!” 송기백(고경표)은 약한 스텝들만 골라서 지능적으로 괴롭히는 갑질 아이돌 피엔(장원혁)에게 그렇게 일갈한다. 잘 나가는 아이돌이라 그가 없으면 프로그램이 굴러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늘 갑질을 당해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가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기 감전을 당한 후 속에 있는 말을 숨기지 못하고 꺼내놓게 된 송기백의 일갈에 모두가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소해한다. 

 

이 장면은 JTBC 수목드라마 ‘비밀은 없어’가 가져온 코미디와 판타지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사회생활에서 어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갑질이 일상인 세상에서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송기백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인이지만, 전기충격 후 갑자기 생겨난 후유증(혹은 능력이라 해야할까)은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마구 쏟아놓는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챙겨주는 척 하면서 자기 일을 떠넘기는 선배들에게 “귀찮은 건 후배들 다 시키면서 뒤에선 일 못한다고 욕하는 거 모를 줄 아냐?”고 쏘아대고,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고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제 안위만 생각하며 이 김에 푹 쉬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뭘 자꾸 쉬라고 하시냐”며 그건 쉬는 게 아니라 “벌 받는 것”이고 “결국 귀찮은 일은 다 시킬 것 아니냐”고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는다. 

 

송기백에게는 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는 부유한 집안 자제인 것처럼 알려져 있고(그것도 송기백이 그렇게 한 건 아니다) 그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에 그런 척하며 살아왔지만 송기백의 가족들은 그가 보내주는 생활비에 용돈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가족에게 한 마디 못하고 살았던 송기백이지만, 그는 전기충격의 후유증으로 드디어 속내를 토로한다. “솔직히 내가 죽든 말든 지금 내가 주는 용돈에 생활비에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물론 거짓말을 할 수 없게된 공인의 코미디를 담은 작품은 이미 있다. 라미란이 출연한 ‘정직한 후보’가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정직한 후보’가 신뢰를 잃은 정치권에 돈키호테처럼 등장한 거짓말 못하는 정치인을 통해 진실한 정치에 대한 판타지를 담는 작품이라면, ‘비밀은 없어’는 할 말은 있지만 차마 꺼내놓을 수 없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순 투성이 사회에 대해 후유증으로 헐크 혓바닥을 갖게 된 송기백이라는 아나운서를 통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시원하게 풍자하는 작품이다. 

 

송기백이 아나운서이고 그 직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풍자적 코미디의 양면을 드러내는데 최적이다. 어딘지 바른 모습으로만 방송을 통해 비춰지지만 어디 그게 진짜 모습일 수 있을까. 그것이 깨지는 지점에서는 방송사고라는 형태로 드라마는 코미디의 웃음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아나운서의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나테이너’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 

 

어째서 최근들어 많은 아나운서들이 프리를 선언하고 나와 아나테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그건 방송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공적 영역이라 여겨졌던 것들조차 사적인 리얼함을 요구하기 시작한 변화와 맞닿아있다. 즉 아나운서들의 신뢰는 이제 그 기계 같은 공적 업무의 영역만을 보여줄 때 생겨나는게 아니고 오히려 사적인 차원에서의 인간적 면모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공고해진다. 그것이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방송에 생겨난 변화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비밀은 없어’를 보면 왜 송기백이라는 아나운서가 후유증을 통해 점점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그 과정에 온우주(강한나)라는 예능 작가와의 로맨틱 코미디적 관계가 필요했는가가 납득된다. 온우주는 예능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송기백이라는 단단한 아나운서의 껍질 이면에 예능적(인간적)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아본다. 그래서 온우주와 송기백이 궁극적으로 그려나갈 멜로적 관계는 송기백의 벗겨진 껍질 안의 실체를 온우주가 매력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걸 또한 타인들에게도 납득시키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비밀은 없어’는 코미디의 밀도가 높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웃기는 상황들에 정신없이 웃으면서 때론 설레는 멜로 감정을 토핑처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껏 사회생활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삶 때문에 벗어버릴 수 없었던 껍질을 온우주와 함께 하나씩 벗어가며 그걸 인정해가는 송기백의 모습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의 감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JTBC)

소설보다 팩트, ‘검법남녀’ 정재영의 묵직한 존재감

좋은 인물 하나는 작품 전체를 살려낼 수도 있다고 했던가.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에서 “소설 쓰지 마”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백범(정재영)이 바로 그런 캐릭터다. 검사인 은솔(정유미)이 사건을 접하고 정황에 따라 추정을 하곤 할 때 백범은 그걸 ‘소설’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오로지 팩트만이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는 법의관. 어찌 보면 직업적으로 당연한 태도라 생각되지만, 이 캐릭터는 <검법남녀>라는 드라마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냉철하게 오로지 팩트로만 판정해 진실에 다다른다는 그 캐릭터의 매력.

이를테면 백범의 라이벌인 법의조사과장 마도남(송영규)의 아들이 사체로 발견되고 자살보다는 타살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증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은솔은 그것이 늘 전교 1등자리를 빼앗겼던 친구들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자들의 심증이기도 하다. 5명의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고 내려올 땐 4명의 아이들만 내려왔으며 몇 시간 뒤 그 한 명의 아이가 아파트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건 누가 봐도 4명의 아이들이 저지른 타살을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에 4명의 아이들 중 전교 2등을 하던 아이의 아빠가 굴지의 로펌의 대표변호사라는 사실이 더해지고, 그 힘을 빌어 은솔의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아이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그 심증은 점점 굳어진다. 이 사건에서 은솔이 그러한 것처럼 시청자들도 똑같이 학내 성적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 간의 갈등과 왕따 그리고 힘 있는 부모의 개입 같은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추정들에 대해 백범은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건 ‘소설’일뿐이라고 일축하고 사체가 얘기하는 팩트들을 모아 진실에 접근해간다. 사체 검시를 통해 사망 당일 하얀 음식물만이 있다는 걸 확인한 백범은 그 날 마도남의 아들이 급식을 먹지 않았고 대신 백설기와 우유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음식을 먹고 음식물의 이동시간을 체크하면서 사망 추정시간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다음 회 예고편으로 살짝 등장한 것이지만 결국 아이의 사망은 타살이 아닌 자살로 판정된다. 물론 자살의 동기로서 아이들이 저지른 왕따사건이 있을 거라 여겨지지만.

<검법남녀>의 특별한 점은 사건 속에서 단지 시청자들이 보고픈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내 왕따 문제와 자살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힘 있는 부모의 아이가 등장하는 사건에서 시청자들은 은연 중에 가해자로 추정되는 아이의 단죄를 욕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백범이 등장해 이를 가로막는다. 막연한 추정이 아닌 사체가 말해주는 팩트를 들고서. 

<검법남녀>가 흥미진진해지는 건 사건이 추정에 의한 소설들(?)로 인해 한 방향만으로 흘러갈 때 이를 뒤집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다름 아닌 사체가 자신의 몸으로 남긴 메시지를 통해서 이뤄진다. 백범은 그 어떤 정황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체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마치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믿을 수 있는 팩트를 전해준다는 것처럼.

법의학은 사체가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체들에는 저마다의 아픈 사연들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죽은 후라도 그 마지막 메시지를 성실하게 읽어내는 백범 같은 법의관의 존재는 그 냉정함 속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기 마련이다.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어쩌면 그 냉정함이야말로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나아가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사체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 <검법남녀>의 이례적인 성공은 사건전개의 쫄깃함과 반전에 더해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담아내는 백범이라는 캐릭터와 이를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는 정재영의 존재감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MBC)

‘아르곤’, 짧아도 묵직한 여운으로 남은 까닭

우리가 희망하는 언론이 이런 것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아르곤>은 아쉽게도 8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끝을 맺었지만 여러모로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엔딩까지 바른 언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줬다. 

'아르곤(사진출처:tvN)'

미드타운 비리 보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이 됐던 건 그것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미드타운의 건물이 붕괴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현장소장을 희생양 삼아 넘기려는 이들. 그들은 정관계와 경제계, 검찰, 언론까지 뒤얽힌 게이트로 결국 부실공사로 인해 미드타운이 붕괴된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았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한다.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와 삼품백화점 붕괴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비리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참담한 결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사고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 데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던 언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다. 언론 또한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드타운 비리를 보도하려 하자 HBC 사장이 나서서 모든 방송들을 사전 검열하려 한다. 그리고 아르곤은 방송 자체가 중단됐고, 기자들은 아르곤 스튜디오 출입이 금지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드타운 건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백진(김주혁) 역시 자기감정에 휘둘려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 일에 일조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실을 보도하면 그가 지탄받을 일은 뻔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상 시상식장에서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과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언론이 잘못한 것은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제대로 고치고 가야 한다는 그 소신을 지킨 것. 결국 그의 자성으로부터 미드타운 비리는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한 적폐청산의 문제가 결국은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아르곤>은 보여줬다. 물론 그는 방송사를 떠나야 했지만. 

<아르곤>은 진실을 보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섬양식품의 신제품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런 거대기업과 맞서는 일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 보도를 주도했던 신철 기자(박원상)는 내부고발을 한 직원의 자살로 인해 오히려 강압적으로 취재를 한 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딛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래도 꿋꿋이 진실을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는 김백진의 소신이었다. 그는 섬양식품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것이 설혹 자신들의 과오를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언론을 소재로 했고 또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르곤>이 달랐던 건 보다 치열한 방송보도의 현장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은 바로 김백진이었다. 그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네 대중들이 원하는 언론인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론인상을 거부하지만 그래서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에게 마음속으로 상을 주었을 것이다. <아르곤>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이병헌 이야기에 대중들이 진저리를 치는 까닭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해 벽두의 빅 이슈로 떠오른 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병헌 이야기. 디스패치가 단독 보도한 내용은 진위여부를 떠나 이 사안이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양파 껍질 같다는 걸 잘 보여줬다. 하지만 새해 벽두에까지 이런 듣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는 대중들을 진저리치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밤의 TV연예(사진출처:SBS)'

디스패치가 문자 메시지를 재구성해서 보여준 이병헌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해 보여도 사실 팩트로만 보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 이미 이민정과 결혼해 유부남인 이병헌이 이지연을 여러 차례 만났고 그 집에도 갔으며 선물도 하는 등 마치 연애라도 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 만나기도 했던 김다희는 그의 성적인 농담을 촬영했고 이 동영상으로 이병헌에게 50억 협박을 했으나 그는 도리어 이를 경찰에 신고해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 이병헌 측에서는 문자 메시지 공개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렇다할 반박은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피해자는 이병헌이고 피의자는 이지연과 김다희지만 그것은 협박에 관한 법적인 문제에 관한 것일 뿐, 그 과정에서 벌어진 관계들이 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이지연이나 김다희가 성적 농담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느껴 이를 성희롱으로 고소했다거나, 아내인 이민정이 이들의 관계를 부적절하다고 여겨 고소했다면 상황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무엇 때문인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법적인 상황은 이병헌이 피해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이병헌 이야기가 불쾌감을 주는 건 여기 관계된 인물들 대부분이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먼저 첫째, 유부남이 스무 살 연하의 여자들과 그런 사적이고도 은밀한 자리를 계속 했다는 것이 그렇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대중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둘째는 이런 유부남과 여러 차례 자리를 함께 한 여자들이 비상식적이고, 셋째는 그 여자들이 동영상을 찍고 50억을 요구하는 협박을 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런 상황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내 이민정도 상식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보이고 있어서인지 이 사안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이병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점점 증폭되고 있는데, 그가 아무런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남게 된다는 것은 오히려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라리 합당한 벌이라도 받는다면 그런 분노가 어느 정도 삭혀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할리우드를 오가며 심지어 아내와의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법적인 판단은 공판에 의해 결정되도록 놔두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병헌의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을 과연 대중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적으로 피해자임을 떠나서 이미 일부 대중들은 이병헌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며 손가락질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반복되어 터져 나오는 사안들은 이제 듣는 것조차 피곤한 공해 수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병헌은 대중들의 지지기반으로 세워진 스타다. 그런데 그 기반이 자신의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 그가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을까. 대중문화는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상식은 과도한 걸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지켜야할 어떤 것일 뿐이다. 그 상식이 깨졌을 때 대중들이 등을 돌리는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최소한의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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