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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과 유아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흥미로운

도올 김용옥과 유아인의 조합. 누가 봐도 이질적이고, 과연 이 조합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철학가이자 사상가로서 고전을 현재적 의미로 들여다보는 작업에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는 도올 김용옥. 가끔 엉뚱한 진지함을 보여 대중들을 깜짝 놀라게도 만들지만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모습에 박수를 받기도 하는 유아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섰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만남을 기획했던 걸까.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도올과 유아인의 만남이 그러한 것처럼, 너무나 달라 잘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한 자리에 올려놓고 그것이 어떤 어우러짐을 보이는가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하이브리드 버라이어티쇼’라고 지칭된다. 그 거창해 보이는 지칭이 그저 요란한 수식어만이 아니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첫 회부터 보여준다.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걸로 이야기의 문을 연 이 프로그램은 “그런데 왜 그게 지금 중요한가”라는 유아인의 도발적인 질문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게 바로 그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됐다는 도올의 답변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우리의 체제가 그 때를 뿌리로 두고 있다는 것.

하지만 유아인은 여기서 또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트럼프가 남북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 정세에서 “우리는 과연 자주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당혹스런 유아인의 질문에 도올은 우리가 군사 강국은 아니지만 “문화 강국”이라는 걸 강조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말로 답변을 가름했다.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특히 큰 역할을 해내는 건 유아인이다. 평상 시에도 SNS를 종종 뜨겁게 만드는 그는 여기서도 의외의 도발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가 도올의 강의들을 방송을 통해 볼 때 늘 ‘경청’하는 자세로만 봤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포인트를 유아인이 만들어낸다.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통일은 손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는 얘기를 던진 것도 유아인이었다. 경제적 관점으로 보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유아인은 다른 걸 다 떠나서 “내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면 내 가족 다시 만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라며 통일은 “회복”이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공감하게 만들었다.

‘편 가르기’에 대한 솔직한 심경은 아마도 유아인이 직접 SNS를 통해 겪은 경험이 묻어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견을 내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에 대해 그는 “우리는 사실 한편”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이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편 가르기에 대한 이야기는 ‘빨갱이’라는 말이 탄생한 과정을 통해 도올에 의해 설명됐다. 그것이 가져온 비극적인 현대사의 결과들까지.

유아인의 역할이 돋보인 건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연관관계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려는 질문들 때문이었다. 지금 이 프로그램이 다시 역사를 들여다보려 하는 건,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던지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헬조선’으로까지 불리게 됐는가에 대한 질문에 한 관객이 그 연원으로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라진 정의와 공정성이 만든 결과라는 지적은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지금의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일파 청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다소 당혹스런 질문에 대해 도올은 재치 있고 의미 있는 답변을 던졌다. 가만 놔둬도 그들의 죽음은 임박했다는 것. 다만 중요한 건 지금의 세대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깨인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 속에는 이 프로그램이 지금 왜 역사를 들여다보려 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그 기획의도가 들어 있었다.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의 하이브리드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수 있다.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도올과 유아인 같은 전혀 다른 개성과 세대와 생각이 만난다. 여기에 오방신으로 자리한 소리군 이희문의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한 민요가락이 더해진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의 의미를 가진 ‘오방간다’가 유아인이 말하는 “뿅간다”는 의미와 합쳐지는 지점. 전혀 새로운 어떤 생각과 색깔들의 소통을 우리는 여기서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동상이몽>, 균형감각 유지가 관건이다

 

SBS <동상이몽>은 어떤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한 욕쟁이 소녀의 이야기는 엄마의 관점으로 보면 심지어 집안에서도 쉴 새 없이 욕을 해대며 그것이 그냥 일상어라고 말하는 소녀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자 그녀가 중3 때 눈이 작다고 놀림을 받았으며 그것 때문에 욕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게다가 잘못한 남동생을 오히려 두둔하며 소녀가 욕하는 것만을 나무라는 엄마의 모습도 살짝 드러난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사실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동상이몽>은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편집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소녀의 행동을 먼저 부각시키고 나중에 그 이유를 편집된 부분을 보여줌으로 해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악마의 편집처럼 보이지만 결코 <동상이몽>은 그런 자극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당사자들이 가족인데다, 그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함께 자리해있기 때문이다.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보여주는 편향은 극적인 편집을 사용하긴 해도 그것이 거기 서 있는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틱한 구성은 그 자체로 극적인 효과를 낸다. 소녀가 욕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자 엄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묻어나고, 결국 숨겼던 속내를 털어내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녀는 눈물을 터트린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그 개구진 남동생 역시 눈물을 터트리고 사안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은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종의 소통 단절이 가져온 오해가 관찰카메라의 관찰을 통해 소통의 물꼬를 여는 것. 그것이 <동상이몽>이 갖고 있는 재미이자 의미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달라지고 있는 예능의 경향들을 기막히게 연결한 하이브리드의 성격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이 있지만 또한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게 보이는 스튜디오물이 존재한다. 토크쇼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토크는 마치 TV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주제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재석과 김구라 같은 톱 MC들이 자리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연을 갖고 무대로 올라오는 일반인들이다. 즉 최근의 예능이 갖고 있는 일반인 트렌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연예인 MC가 합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재석과 김구라의 조합도 특이하다. 김구라가 욕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과거의 욕 때문에 존경받지 못한다고 경험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역할이라면, 유재석은 이 서로의 입장이 첨예한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예능 프로그램이 웃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 사회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제공해준다는 사실이다. 욕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학교의 왕따 문제나 학생들의 언어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실 그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토론보다 이런 여러 입장을 드러내주고 거기에 대해 각자의 의견들을 더하는 형식이 더 효과적이다.

 

<동상이몽>은 이처럼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끌어안아 융합시킨 새로운 예능 형식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관찰카메라도 있지만 스튜디오의 안정감이 있고 일반인들의 놀라운 사연들이 있지만 연예인들의 재치 있는 입담도 곁들여진다. 재미와 의미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것은 <동상이몽>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지만 만만찮은 도전도 있다. 이 많은 요소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욕쟁이 소녀의 사연은 <동상이몽>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강호동 복귀 첫 새 형식, <달빛프린스>가 성공하려면...

 

작년 말에 복귀했지만 첫 번째 새로운 예능 도전으로서 <달빛프린스>는 강호동에게는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콘셉트만 두고 보면 나쁘지 않다. ‘북 토크쇼’라고 지칭한 것처럼 교양과 예능을 한데 묶어내려는 시도는 꽤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강호동의 첫 도전치고는 시청률이 5.7%(agb닐슨)로 너무 낮다. 지난 주 종영된 <승승장구>의 시청률 9.3%에서 꽤 많이 하락한 수치이고, 경쟁 프로그램인 <강심장>이 9.1%로 오히려 시청률이 상승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지표는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달빛프린스'(사진출처:KBS)

그 이유는 아무래도 <달빛프린스>라는 토크쇼가 가진 양면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양과 예능의 하이브리드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갖고 있는 형식이다. 장점으로 보면 ‘책을 읽는다’는 대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책 속의 구절을 갖고 퀴즈 형식으로 내는 문제는 사실 문제 자체라기보다는 거기 출연한 MC들과 게스트들의 사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기 위한 훌륭한 장치로 기능한다.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첫 키스의 구절을 가져오면서, 이서진과 MC들이 농도 높은 첫 키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한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 흥미로움은 예능의 관점으로 보는 시청자들에 한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만일 책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관점을 갖고 있는 시청자라면 소설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결국은 MC들의 신변잡기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달빛프린스>는 본질적으로 교양이 아니라 예능이라는 점에서 웃음과 재미에 더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능적인 토크들이 너무 강하게 진행되다 보면, 마치 책 이야기는 저 뒤로 물러나고(그저 이용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책을 면죄부 삼아 더 강한 사생활 토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첫 회이기 때문에 그 적절한 균형과 조율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달빛프린스>는 사적인 이야기가 폭로와 신변잡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다가가게 하려는 장치들을 이미 갖추고 있다. 시청자들이 참여해 책을 읽고 문제를 낸다는 점이 그렇고 게스트가 문제를 맞출 때마다 얻은 상금을 좋은 일에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책이 갖고 있는 교양적인 이야기들이나 종종 뜬금없이 올라오는 명언 자막도 수위 높은 토크들을 눌러주고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교양과 예능이 가진 양면성은 결과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해 긍정 혹은 부정으로 반응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변수로 작용하는 건 새 프로그램에 등장한 강호동과 그와의 새로운 조합을 이룬 탁재훈이다. 그들이 가진 이미지는 프로그램에 역시 양면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이들 MC들에 대해 평상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시청자라면 그 이미지를 통해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프로그램마저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강호동은 여러 모로 이 부분에서 약점을 안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 세금 문제로 잠정은퇴라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은 강호동에게는 치명적인 이미지의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과거처럼 강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간 방송 트렌드가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미지의 타격으로 인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화요일 밤 경쟁 프로그램이, 자신이 갑자기 잠정은퇴하면서 힘겨워졌던 <강심장>이라는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강호동과 탁재훈의 조합은 토크쇼의 역학관계로 보면 괜찮은 시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애드립의 소유자인 탁재훈의 독주는 강호동처럼 강한 캐릭터와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해지는 특징이 있다(과거에 이 역할은 신정환이 해주었다). 하지만 이 토크쇼만의 특징인 교양과 예능의 접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호동과 탁재훈의 조합은 이 토크쇼 콘셉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식한 콘셉트로 시청자들을 휘어잡았던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이었고, 시종일관 변죽을 때리는 것으로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탁재훈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예능은 웃기는 재주가 아니라 진정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시대가 되었다. 탁재훈이 그토록 절정의 예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만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그의 캐릭터가 좀체 진지해질 수도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세금 문제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강호동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어찌 보면 탁재훈과 강호동은 이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달빛프린스>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달빛프린스>가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교양과 예능의 균형점을 잡아내야 하고,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좀 더 실질적인 과제를 <달빛프린스>는 갖게 된 셈이다. 또한 타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탁재훈과 강호동의 이미지 변신이 가능해져야 프로그램도 살아날 수 있다. <달빛프린스>는 여러모로 숙제가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 숙제들을 넘어설 수 있다면 예능의 새로운 장을 개척해내는 성취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강호동과 탁재훈에게도 하나의 큰 전기가 될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제중원'이라는 시공간은 기막힌 구석이 있다. 먼저 시간적으로는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구한말이다. 이것은 장르적으로는 사극의 시간이다. 여기에 '제중원'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는 공간을 세웠다. 장르적으로는 의학드라마의 공간이다. 즉 '제중원'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간을 제중원이라는 근대문명이 들어오는 공간 속으로 포획함으로써, 장르적으로는 사극과 의학드라마의 하이브리드를 가능하게 만들어낸다.

이것은 두 차원의 볼거리를 하나로 결합해낸다. 조선이라는 시기에 처음으로 우뚝 세워지는 근대적인 병원공간인 제중원은 그 자체로 신기한 볼거리이면서, 동시에 사극이라는 장르적 공간 속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의학이 침투해 들어가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안에는 갓 쓰고 가마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조선의 양반들과, 기와집 안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며 브랜디를 마시는 양인들이 공존한다. 또한 그 곳에는 사극의 가장 기본적인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계급적으로 나뉘어진 공간이 있는 동시에, 중인이든 환쟁이든 모두 의생으로 불리는 제중원이라는 공간도 존재한다.

의학 사극 '제중원'은 500년 전통으로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조선의 체계와 공간이 허물어져 내리고, 그 혼란 위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세워지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시공간 위에 서 있는 소근개 황정(박용우)은 그 변화를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다. 백정 소근개가 황정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은 과거 계급사회의 껍질을 깨고 나와 미래를 향해 힘겹지만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이다.

소근개에서 황정으로의 이행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소근개(개의 새끼라는 뜻이다)라고 태생적으로 백정의 운명으로 한계 지워져 태어난 인물이, 그 한계를 벗어던지고 저 스스로 선택한 황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으로서의 의학이다. 마마를 귀신으로 생각하고 부적을 붙이거나 굿을 하고, 마마로 죽은 아이를 귀신이 노한다며 매장하지 않고 나무에 매놓는 풍습은 중세적 사고방식으로서 비합리적이다. '제중원'이 우두백신을 만들어 예방접종을 하는 것은 근대적 사고방식, 즉 과학적 사고방식을 조선사회에 접종하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 생채기가 남겠지만 그것은 결국 합리적인 근대적 이성을 형성해낼 것이다.

재미있는 건 소근개가 황정이 되는 과정에 이 과학이라는 기술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소를 잡는 일을 하는 백정이라며 한 인간을 개 취급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그 백정이 하는 일을 합리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상당부분 쓸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사람 몸에 칼을 대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던 시대에 소 잡는 백정은 이미 동물 해부 실험을 생활 속에서 해온 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백정이 천시되는 이유는 바로 그 육신에 칼을 댄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서양의학을 바라보는 조선인들의 시각과도 일치한다. 제중원 의생들은 필요하면 아기를 받아내야 한다는 말에도 천하다며 펄쩍 뛰는 위인들이다.

즉 조선인들에게 백정과 서양의학은 그 거부감에 있어서 동일하다. 다만 다른 것은 백정은 소에 칼을 댄다는 것이고 서양의학은 사람에 칼을 댄다는 것이며, 백정은 소를 죽이지만 서양의학은 사람을 살린다는 점이다. 소근개는 그 칼을 댄다는 그 천대받는 기술을 갖고 서양의학 속으로 들어가, 그 용도를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자신을 황정이라는 근대적 인간으로 구원해낸다. 소 잡는 백정이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제중원'의 구한말이라는 독특한 시공간 속에서나 가능해지는 이야기다.

'제중원' 의생들을 통한 다양한 근대적 인물의 조명
황정은 따라서 '제중원'이 다루려는 이야기의 가장 중심 모티브와 골격을 잡고 있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근대적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려는 황정 주변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배치되면서 이야기는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도양(연정훈)은 황정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근대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즉 사대부 양반가의 자제에서 제중원 의생이 되는 것. 그는 엄격한 사대부가의 관습을 깨고, 실용적이지 못한 성균관 교육을 박차고 나온다. 양반의 습속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의학이라는 하나의 뜻 아래서는 고개를 숙인다. 석란(한혜진)은 이미 서양문화에 익숙하고, 영어에 능통할 정도로 개화되어 있는 인물이지만 여성이라는 성 차별과 그 성에 따라 요구되는 행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즉 그녀 역시 황정이나 도양처럼 이 구한말이라는 시간이 부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인물이 자신을 넘어서 근대적 인간이 되는 과정이 이들이 엮어내는 멜로의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계급적으로 보면 도양이 양반으로 맨 위에 서고, 석란이 중인으로 중간에 서며 황정이 백정으로 맨 아래에 서는데, 멜로는 계급과는 정반대의 흐름으로 엮여있다. 즉 백정인 황정을 중인인 석란이 흠모하게 되고, 그런 석란을 도양이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멜로가 황정과 석란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만일 도양이 인정해준다면 그 각각의 선택은 이들이 근대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한계 하나씩을 넘어서는 것이 된다. 즉 백정인 황정은 자기 비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중인인 석란은 늘 선택받는 여자라는 입장에서 선택하는 능동적인 인물로 바뀌며, 양반인 도양은 스스로 벗어버리지 못하는 양반이라는 계급의식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황정이 갖고 있는 이야기 골격과 목표의식은 이처럼 도양과 석란으로까지 확장되고, 그것은 또 제중원 의생들로까지 퍼져나간다. 황정과 같은 방에서 기거하는 고장근(송영규)은 화원으로 천대받지만 황정처럼 그 특유의 기술을 의학을 하는데 활용한다. 생생한 해부도를 그려내는 것이다. 미령(김태희)은 관기로 천대받으며 살아오지만 제중원에 들어와 차츰 간호사로서의 꿈을 펼친다. 미령의 몸종으로 있던 낭랑(신지수)은 거꾸로 선 아기를 제왕절개로 출산시켜 산모와 아기 모두를 살리는 것을 도우면서 간호사의 꿈을 갖는다. 동생을 낳다가 죽게 된 엄마로 인해 간호사의 꿈을 키우는 낭랑의 이야기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죽게된 어머니로 인해 황정이 의사가 되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제중원의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근대적 인간이 되어가는 황정의 또 다른 버전들로 그려진다. '제중원'이 황정을 위시하여 그 주변 인물들의 집단적인 성장드라마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은 개화를 향해 달려간다.

'제중원', 사극으로서의 한계 의드로서의 한계
'제중원'은 이처럼 매력적인 시공간 위에 매력적인 인간을 세워놓는데 성공한다. 저마다 성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들은 이 구한말이라는 과도기적 시간 속으로 들어가 제중원이라는 공간으로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극이 갖추어야 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로 잘 설정된 드라마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구한말의 제중원이라는 시공간을 붙여놓음으로서 사극과 의학드라마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점은 가치를 인정받아야할 덕목이지만, '제중원'은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한다. 성공적인 봉합술로 만들어진 '제중원'이라는 생명체는 살아있기는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아 보인다.

'제중원'은 사극이 갖는 계급적인 문제를 드라마의 힘으로 잘 살려내지 못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제중원이라는 공간 때문에 생겨난다. 이 사극에서 알렌 원장이라는 서구적 의식에 의해 경영되는 제중원이란 공간은 계급이 지워지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천시 받던 백정도 화원도 양반가 자제와 똑같이 의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물론 그렇다 해도 신분적인 차별은 여전하지만, 황정은 그 백정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있다. 그가 의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도양의 아버지를 수술 중 죽게 했다는 윤제욱의 누명 때문이지 신분적 차별 때문이 아니다. 황정이 신분을 숨긴 채, 제중원이라는 안전지대에 머무는 한, 이 사극이자 황정이라는 인물이 넘어서야 하는 그 계급이라는 한계는 첨예화될 수 없다.

'제중원'은 또한 의학드라마의 결과를 알 수 없는 그 수술대 위의 긴박감을 드라마 속으로 끌고 오지 못했다. 의학드라마가 극적인 것은 그 수술대 위의 생명이 과연 수술을 통해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주목할 때다. 하지만 구한말의 제중원에서 벌어지는 수술과 처방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긴장감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상식적이다. 여기서 긴장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의학적 정황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을 갖고 온 인물들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죽어나가는 민초들을 위해 백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흐뭇한 일이고, 구한말에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들었을까 살피는 것은 분명 볼거리지만 그것이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드라마 '제중원'은 이 제중원이라는 매력적인 시공간에 붙박여 있음으로 해서 사극이 갖는 장점인 계급이 유발하는 힘과, 의학드라마가 갖는 긴박감을 살려내지 못했다. '제중원'은 황정의 어눌한 목소리처럼 극적인 상황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긴장감을 높여주지 못하고 있다. 설정은 완벽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못하다. 과정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설정만 반복될 때, 드라마는 예정된 길로만 걸어가는 단조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역사책을 통해서 마마를 어떻게 우두백신으로 예방했는지 잘 알고 있으며, 죽어가는 환자를 어떻게 수술했고, 거꾸로 선 아기를 어떻게 제왕절개로 안전하게 출산시켰는지 다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제중원'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이 드라마가 갖는 현재적인 의미일 것이다. 사극은 단지 과거의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거기서 발견할 때 의미를 갖는다. '근대적 인간의 탄생'은 학문적으로는 의미 있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무엇을 보여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왜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 '제중원'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제중원'이 갖는 사극으로서의 한계(계급적인 문제는 현대재 의미를 획득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다)와 의학드라마로서의 한계(초기 의학 도입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가질 때 긴박감을 확보할 수 있다)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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