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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 드라마, 하지만 육아 예능 그 의미

 

적어도 우리네 드라마 상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다. 흔하디흔한 가족드라마들이 파경을 다루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해지만 재혼한 여자가 겪는 또 한 번의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드라마에서 결혼한 이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재혼한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재혼한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아이를 심지어 질시하는 미성숙한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국 김수현 작가가 하려는 얘기는 타인과 함께 살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한 이들은 예정된 파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전언.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 세 번 결혼할 여자의 언니는 아직까지 미혼인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등장하는 싱글턴(혼자 사는 삶)을 표징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그다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아니면 미혼으로 혼자 살거나 그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는 파경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부부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 주고받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당연한 선택지로 내세워지던 이혼이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의 문제가 그렇고, 양가 가족들의 문제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한 발 물러서고 나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되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을 묶어내는 틀로서 얼마나 불안한 제도인가를 잘 드러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으니 싱글턴의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드라마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 콘텐츠들이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혼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제 아무리 선택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TV만 켜면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결혼이 선택이 되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책임 없는 과실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상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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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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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없는 <출생의 비밀>, 그 진면목은

 

왜 제목을 굳이 <출생의 비밀>이라 했을까. 최근 막장드라마하면 바로 떠오르는 코드가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그런데 그것을 제목으로 세웠으니 <출생의 비밀>은 막장일까.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출생’의 문제가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비밀’이다. 정이현(성유리)에게서 어느 날 사라져버린 10년 간의 기억. 그 속에 담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드라마가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출생의 비밀'(사진출처:SBS)

자고 일어났더니 10년 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설정은 파격적이다. 무언가 엄청난 충격을 겪은 후, 정이현은 스스로 기억을 봉인해버렸던 것. 깨어나 보니 굴지의 예가그룹 총수 최석(이효정)이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에게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삶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남편 홍경두(유준상)가 찾아오고 그는 딸 해듬(갈소원)을 그녀가 낳았다는 걸 인정하라고 종용한다.

 

즉 이 드라마는 기억으로 나눠진 두 개의 인생 사이에서 정이현이 갈등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두 인생이 완전히 상반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홍경두와 해듬이로 대변되는 잊혀진 기억 속의 삶은 가난해도 인간적인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세계다. 홍경두는 가난하지만 순박한 진심을 가진 남자. 거칠어도 인간 냄새가 풀풀 나는 인물이다.

 

반면 예가그룹 최석의 집안은 부유하지만 가족의 정이 전혀 없는 세계다. 정이현의 친구로 예가그룹의 장남 기태(한상진)와 결혼한 선영(이진)은 정이현에게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남편 기태는 그녀를 유령인간 취급하고 시어머니 조여사(유혜리)는 그녀를 사사건건 무시하며 시아버지 최석은 걸핏하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아 그녀를 극도의 불안 증세에 빠뜨린다. 즉 부유하지만 불행한 현재의 기억 속의 삶과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잊혀진 기억 속의 삶 사이에서 정이현은 갈등하게 된다.

 

정이현이 모든 것을 보기만 하면 다 외워버리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소유자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모든 걸 기억해내는 그녀지만 10년 간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은 기억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모든 걸 기억해내는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처럼 여겨지지만 그 망각 없는 기억은 어떤 삶의 충격에 있어서는 잊혀지지 않는 천형이 되기도 한다는 것. 정이현이 10년 간의 기억을 스스로 지웠다는 건 그래서 그녀의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의 반작용인 셈이다.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인생의 행복은 결국 기억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질문하는 드라마다. 우리는 결국 기억이라는 가녀린 능력에 의지해 삶의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은 추억들이 모여서 행복한 삶이 기억되는 것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모여 불행한 삶이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터질 듯한 홍경두의 바보 같은 진심은 그래서 정이현이 누리고 있다 생각하는 행복의 허상들을 사정없이 부수고 있는 중이다.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화려한 부의 허상 앞에 행복의 실체를 놓치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경두의 진심을 보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잊고 있던 행복을 다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목이 <출생의 비밀>이지만 이 드라마에 이른바 막장드라마에서 활용하는 ‘출생의 비밀’ 코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대신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비밀이다. 정이현의 잃어버린 기억처럼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그 ‘행복의 비밀’을 우리는 어쩌면 <출생의 비밀>에서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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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13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그 겨울>과 버스커버스커의 '벗꽃엔딩'

 

그것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새드엔딩이었을까.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엔딩은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어딘지 동화적인 공간 속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게 된 오수(조인성)와 오영(송혜교)의 키스로 끝이 났다. 겉으로 보면 해피엔딩처럼 보여지지만, 그 장면이 가진 동화적인 느낌은 그것이 모두 한 자락 꿈 같은 아련함을 남기기도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열린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드라마의 스토리구조 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되는 이유’ 혹은 ‘사랑이라는 삶의 존재 근거’ 같은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라는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어떤 삶은 죽음만도 못한 비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수와 오영이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살아온 삶처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인물들이 저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또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그 입가에 미소를 지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삶의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과 삶은, 또 비극과 희극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 희비극의 관점을 통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엔딩을 바라보면 그 선택이 얼마나 절묘하고 적절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결국 동생처럼 따르던 박진성(김범)의 칼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오영에게 가야한다고 발걸음을 떼던 오수가 쓰러지는 장면은 어쩌면 이 드라마의 진짜 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면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듬해 봄의 이야기들은 죽어가던 오수 혹은 오영의 짧은 판타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심지어 죽음을 향해 스스로를 내던질 정도로 원했던 만남일 테니 말이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오수의 상황, 가능성이 10%에 불과하다는 오영의 수술을 앞두고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행복감을 안겨준다. 여전히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혹독했던 ‘그 겨울’의 바람이 따스할 수 있었던 것은 잠 못 이루는 오영의 방에 오수가 걸어준 풍경처럼 그 바람이 아름다운 소리로 전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아름다운 소리로 바뀐 것처럼, 그들의 판타지 같은 재회에서는 따스한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렇게 겨울에서 봄으로 오면서 바람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바뀌는 마법을 선사한다.

 

사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일 게다.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기억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슬픈 끝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겨울의 바람조차 따스한 추억이 될 수 있으니. 그렇게 겨울의 끝자락을 채워준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봄바람에 벚꽃 잎이 살랑살랑 흩날리는 계절에 끝을 맺었다. 마치 1년이 지나 다시 들려오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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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07 16:28 BlogIcon عبدلله@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O 사람들 말 : 더 신이하지만 알라가 영원한 구원을 달성 )))

    단어의 의미 - 더 신이하지만 알라가

    1. 알라를 제외하고 예배의 가치가 아무도 없습니다.

    2. 알라를 제외하고 순종의 가치는 아무도 없습니다.

    http://farm9.staticflickr.com/8368/8433052973_21f3316071_z.jpg

    http://www.blogger.com/profile/00783655376697060967

    http://farm9.staticflickr.com/8522/8454712892_d0bc7eb12e_z.jpg

유재석의 스트레스, 우리를 웃게 하는 힘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 나온 유재석은 자신의 장점을 ‘열심히 한다’, ‘잘 웃는다’로 표현했고, 단점을 ‘다소 우유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잔소리로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크게는 없었는데요. 이번 주 녹화 이거 재밌었나..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한다는데 이건 어떨까...”라고 답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장점과 단점 심지어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재석의 스트레스가 모두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의 장단점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그가 고민거리로 말한 방송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열심히 하고 잘 웃으며 때론 우유부단함(캐릭터로 나오는)을 볼 수 있었고 종종 그가 멤버들에게 잔소리를 해 잔소리꾼이라는 핀잔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이 장단점과 고민거리 토로에는 유재석이 가진 시청자에게 어떻게든 웃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잔소리꾼’이 된 것은 그가 말하듯이 ‘잘하자고’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자신에 대해 그만큼 엄격한 그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만큼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진단한 정신과 전문의는 심지어 문진표 “체크란에 동그라미 어느 하나가 경계를 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의 성격을 설명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거라 말했고, 그가 파란 풍선을 선택한 것을 통해 “본인 스스로는 사교성이 풍부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면에 외로움과 고독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정형돈이 “맞아 친구 없잖아”하고 맞장구를 치자 하하가 “하지마. 하지마. 나 그랬다가 6개월 욕먹었잖아. 있어, 있어. 대한민국.”이라고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이 짠하게 느껴진다.

 

유재석이 보이는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우유부단함은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피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 그의 유일한 친구가 ‘대한민국’이라는 하하의 농담 속에는 그가 가진 부담감과 책임감이 들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방송 때문에 해외에 나간 적은 있지만 신혼여행을 빼놓고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여행 같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아닌가. 일주일 내내 <무한도전>, <런닝맨>, <해피투게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놀러와>까지 소화해내던 그에게 개인 시간이나 여유 같은 건 사치가 아니었을까.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서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선택한 유재석과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뭉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 자신들의 스트레스가 비로소 사라진다는 것. 이 지독한 시청자 강박증이야말로 유재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면서 그가 최고의 MC로 지목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한껏 무너뜨리는 <무한도전>의 유재석이나 잔뜩 바보 분장을 한 채 바보 연기를 하는 <런닝맨>의 유재석은 어쩌면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유재석은 말 그대로 ‘유느님’이라 불리는 게 맞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했다. 너무 잘 통하고 선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재석의 시청자 강박증의 강도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유재석의 완벽함을 ‘방송 바깥에서 더 철저한’ 모습에서 찾으며 “자기는 그렇게 살라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통해 우리의 웃음이 빵빵 터질 수 있는 것이 유재석의 남다른 시청자(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증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 뜬금없이 불거진 유재석 태도 논란은 너무 악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의 말대로 “전반적으로 경직”된 유재석이 “조금만 본인에게 느슨하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에게 관대해야 남들한테 관대할 수 있다는 정준하의 말도 맞지만, 그것은 또한 무엇보다 좀 더 오래도록 도전하고 달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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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21 20:30 BlogIcon stationery supplier in gurga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찮아서 파하고 고추는 쌀 때 사서 냉장고 두었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서 저렇게 넣어

  2. 2013.03.21 20:31 BlogIcon office stationery dealers in gurga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면 물을 자작거릴 정도로 붓고 약간 끓을 때 파, 풋고추랑 같이 넣어도 됩니다. 혼

  3. 2013.03.21 20:31 BlogIcon housekeeping material supplier in Gurga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따로 섞어 두었다가 약간 끓을 때 넣어도 되고요,

  4. 2013.03.21 22:59 BlogIcon Gurgaon Stationer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쿄역 다음으로 많은 유동인구를 가진다는 시나가와역 주변은 에도시대때부터 숙박시설로

  5. 2013.03.21 23:04 BlogIcon stationery wholesaler in gurga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했던 곳이다. 그 이유는 교토로 향하는 대표 교차로가 바로 이곳

  6. 2013.03.21 23:05 BlogIcon Housekeeping material supplier in gurgao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에 따르면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는

'MBC 스페셜'이 전한 진정한 행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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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사진출처:MBC)

지리산 동래마을에 사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은 자장면 하나를 먹으면서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고생만 하면서 사냐"고. "이런 호강도 가끔은 가져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리산 중기마을에 사는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는 말한다. "몇 십 억씩 가진 사람들 많지만 자기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저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고, 친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최도사로 불리는 최현은 목욕을 하면서 "4500원 주고 이렇게 행복한 게 없잖아"하고 말한다. 이런 호사가 없다는 얘기다.

아마도 도시의 욕망에 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장면 한 그릇과 내려다보이는 섬진강 풍경이나 친한 친구들, 그리고 4500원짜리 목욕을 가지고 호사라고 표현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최도사가 겨울 한 복판에서 햇볕 한 자락을 맞으며 겨울에 빨리 지는 햇볕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 되었다. 아마도 욕망 없이 가벼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도사의 삶'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그런 까닭일 게다.

'MBC 스페셜-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편이 지리산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일간지 기자로 살다가 시인의 길로 들어선 이원규 시인은 "최저로 조금 벌어도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10분의 1 정도로 살 수 있다"며 심지어 "가난함을 견디는 재미"도 있다고 말한다. 박남준 시인은 "도시에서 살다보니 삭막하고 황폐해져 가는 자신을 느꼈다"면서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젊은 날엔 외항선도 타보고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최도사 최현은 "마음이 비워지면 힘들게 없다"며 "힘들다는 건 뭐냐면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근원은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낸 공지영 작가는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행복해지기를 위해서 고민하는 이 사람들의 "얽매이지 않는" 삶이 너무나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고립되어 얻는 그런 행복이 아니다. 박남준 시인의 집 보일러가 고장 나자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뚝딱뚝딱 고쳐주고는 막걸리 한 사발에 그 수고로움을 나누는 삶이 주는 공동체적 행복감처럼, 그들의 행복은 세상과의 고리를 끊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세상과 나누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이다. 지리산 학교와 동네 밴드는 바로 그런 그의 실천이 담겨진 문화운동의 일환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MBC 스페셜' 역시 그들의 행복 나눔을 영상으로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하고 싶은 걸 다하고 갖고 싶은 걸 다 갖는 게 행복은 아니다.-박남준 시인" "지금 행복하고 내일 불행한 게 낫다-최도사" "내가 내 자신을 밀어붙이다 보면 시는 발자국처럼 남을 것이다-이원규 시인" 도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들의 가난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 전하는 울림은 크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터진 보일러를 고쳐주고는 갑작스런 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난 고 안차종씨의 부음 앞에 오열하던 박남준 시인이 봄바람에 복수초 새싹이 피어난 걸 보고 누가 밟을까 저어하며 푯말까지 만들어 세우는 그 소박한 삶이 깊은 여운을 주는 건 어쩌면 거기서 진정한 행복의 한 자락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MBC 스페셜-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편은 그 가난하지만 부자인 행복을 전해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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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5 12:06 BlogIcon 패러홀릭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부자이면서 얻는 삶 보다는 가난하지만 빼앗길게 없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얻는 것 보다는 빼앗기지 않는게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에 빼앗기지 않는 것, 건강을 빼앗기지 않는 것, 부를 빼앗기지 않는 것 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난해서 행복한 이유는 빼앗길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 만약 가난때문에 빼앗길게 생긴다면 불행해지는 것도 같아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2. 2011.03.05 13:12 BlogIcon TV여행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그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데도 그들이 저보다 더 행복하게 보이더군요~~^^

'제빵왕 김탁구', 빵으로 시대를 풀어내다

굶주린 아이가 빵집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배고팠던 70년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에 씹을수록 말랑말랑한 질감의 기억은 당대의 가난을 향수할 수 있을 만큼 아련하게 다가온다. '제빵왕 김탁구'가 처음 그려낸 정서는 바로 이 가난한 시대에 맡았던 빵의 향기처럼 유혹적이면서도 처절하다. 가난은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김탁구(아역 오재무) 모자를 삶의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런 탁구를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배고팠던 시절에 코를 자극했던 빵의 기억이다. 그가 팔봉빵집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세월은 가난이 몸에 배어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는 뭐든 했던(그래서 그것이 심지어 '생활의 달인'을 만들었던) 시대를 함축한다.

김탁구(윤시윤)가 경합에서 첫 과제로 받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김탁구는 자신의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장통의 한 아이를 위해 빵을 만든다. 팔봉(장항선)선생의 말처럼 이 과제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시험하는 것. 이 과제에서 탁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옥수수 보리밥 빵은 기억 속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가난했던 보릿고개의 기억 한 자락을 끄집어 올린다.

그렇게 돌아온 김탁구는 차츰 다양한 빵을 실험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적당하게 숙성시켜야 맛을 내는 발효과정이나, 적절한 습도를 조절해야 빵을 제대로 구울 수 있다는 노하우를 배워나가면서 김탁구는 빵 만드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드라마의 시대로 80년대를 상정하는 이 시기에 김탁구는 이제 일이 그저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저 배고픔을 없애는 빵에서 이제는 건강까지 생각하는 빵을 만들면서 그 도전이 가진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라는 경합에서의 두 번째 과제는 이 시대의 감성을 담는다. 생존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은 이 과제에서 탁구와 마준(주원)으로 하여금 이스트 없는 빵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그 도전은 좀 더 좋은 빵(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성공에 몰두하던 8,90년대 경제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당대에 사람들의 소비가 단지 기능적인 것 이외에 부가적인 가치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듯이.

그리고 팔봉 선생이 죽은 후 유지처럼 남겨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가치를 빵에 담아낸다. 이제 이 시대의 가치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도 아니고 성공을 위한 도전도 아닌 스스로 느끼는 행복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자신 스스로가 즐거워야 그 마음이 온전히 빵에 담겨져 맛을 낸다는 것을 김탁구는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팔봉 선생의 부고에 영업정지까지 맞은 팔봉 빵집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빵을 굽는다. 팔봉 빵집 식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담소하며 먹는 빵, 그것이 문제로 제시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팔봉 선생이 낸 세 가지 과제는 우리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첫 번째 과제는 가난의 시대를 담고, 두 번째 과제는 도전의 시대를 담았다면 마지막으로 제시된 과제가 담아낼 것으로 요구하는 것은 행복의 시대다. 이것은 빵으로 시대를 풀어낸 '제빵왕 김탁구'만의 독특한 시대극이 거둔 성과다. 그저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기보다는 빵이라는 맛과 향으로 그 시대를 맛보게 한 것. '제빵왕 김탁구'가 꺼내놓은 빵들에서는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의 향기가 느껴진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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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7 10:56 BlogIcon 발의향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참 맛있게 쓰시네예~ 트랙백걸고 갑니더~!

  2. 2010.08.27 19:04 애독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읽을 때마다 "이야~" 하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고,
    때론 전율을 느끼게도 합니다.
    멋진 해석 감사하고 잘 읽었습니다.
    정말 멋지네요.

    그동안 쓰신 글들을 모아 책은 안내시나요?
    혹시나 그동안 출간핸 책이 있나 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없는 것 같은데요...
    꼭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자이언트'하면 떠오르는 건 제임스딘과 록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으로 나왔던 동명의 영화입니다. 텍사스의 목장에서 석유왕이 되는 제임스딘, 그러나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의 욕망과 좌절의 드라마죠. 당시 이 영화는 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여한 블록버스터였습니다. 다분히 미국의 성장을 아련한 노스탤지어로 그려내는 시대극이었죠.

SBS에서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제목이 거대해서인지 예고편만봐도 이건 저 영화 '자이언트'를 그대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기획의도를 읽어보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시대극이 가지는 코드들을 모두 버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 복수, 가족... '에덴의 동쪽'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띕니다. 다른 것은 강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시대에 벌어지는 성공과 좌절, 복수와 배반, 사랑과 애증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한 것이 되었죠. 아버지를 죽인 원수 밑에서 성장하고, 그 원수의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뒤늦게 그가 원수임을 깨닫고 성공과 사랑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어딘지 이제는 조금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가 되었죠.

이 드라마를 가지고 벌써부터 정권 찬양용의 드라마라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권을 찬양하기 위해 드라마를 만들 정도의 시대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의 정서가 개발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공과 성장에 대한 집착.

하지만 이제 성공과 성장을 향한 질주로 달리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이 행복을 준다는 환상은 깨진지 오래며, 오히려 행복이 성공을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대함에 대한 추구는 과거 개발시대의 잔재입니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 누구나 벌이려면 크게 벌여야 한다는 것은 성공의 기본 공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이 비어 있는 거대함은 이미 여러 번 고꾸러지면서 그 실체를 보였고, 이제는 세세하면서도 정교한 것들 속에 성공의 비법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세세함과 정교함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드러내놓지 않고 거대할 것 없는 그 소소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이 거대한 성공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거죠.

'에덴의 동쪽', '태양을 삼켜라'... 최근 일련의 거대함을 내세우는 욕망과 성공의 드라마들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그 치열한 삶 속에 소소한 행복이 묻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저런 처절한 삶을 우리가 봐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행복의 길을 제시해주지도 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시대의 노스탤지어? 이제 아파트 숲 속에 앉아 지내게 된 마당에 향수란 시간적인 의미 그 이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시작도 안한 드라마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자이언트'가 기존 시대극들이 걸어갔던 그 성공과 야망의 드라마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의 행복을 어떻게 얘기해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저 고꾸라진 여타의 거인 드라마들의 길을 따라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심 기대하는 것은 '대조영'의 그 아기자기한 반전의 반전의 묘를 살렸던 장영철 작가의 역량입니다. 그라면 혹 좀 다른 시대극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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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사이, 사랑과 행복

변심한 애인 때문에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나버린 분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희망을 읽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어 사랑이란 언감생심이었던 분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 낮은 자리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면서 도시가 제공하는 욕망에 허우적대다가 어느 날 아침 “이게 뭔가? 이렇게 사는 게 재밌나?”하고 반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행복’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명제들이지만 너무나 흔하게 취급되어온 사랑, 행복 같은 것들에 대한 대부분의 질문에 답을 주는(그것이 정답일지 아닐지는 관객의 몫이지만) 영화다. 도시생활에 찌들어 병을 앓게 된 영수(황정민)가 요양원에서 은희(임수정)를 만나 사랑하고, 그러다 몸이 낫게 된 영수가 변심해서 다시 도시로 떠나온다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라인은 오히려 섬세한 감독의 손길을 거쳐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짧은 행복에 대한 감독의 담담한 시선은 거기에 숨겨진 흔해빠진 사랑과 행복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게 만든다.

‘행복’은 전작이었던 ‘외출’보다는 그 이전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와 맥을 같이 하는 영화다. 첫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 영화에 죽음이라는 벽 앞에 선 남녀의 사랑과 행복이라는 모티브를 제공했다면, ‘봄날은 간다’는 도시와 자연이라는 틀 속에서 변화하는 사랑이라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행복’은 허진호 감독이 거의 10년이란 세월을 에둘러 도착한 첫 번째 기착지인 셈이다. 그는 늘 삶의 시간이라는 불변의 축 위에서 변하는 사랑의 양상을 포착해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그것이 시한부인생으로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정원(한석규)이라는 불가항력과 그의 사진관에 놓여진 가장 밝은 모습으로 웃는 다림(심은하)의 사진으로 대변된다. 허진호 감독은 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사랑)을 사진(영화)이라는 틀 속에 영원히 잡아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변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은수(이영애)와 거기에 집착하는 상우(유지태)의 도시적인 사랑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연의 흐름을 포착해낸다. 허진호 감독은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를 통해 바로 그 자연의 소리로 대변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영원히 담아내려 한다.

그 연장선 위에서 ‘행복’은 변하는 것을 대변하는 영수와 변하지 않는 것을 대변하는 은희를 대비시킨다. 놀라운 것은 감독이 이 두 캐릭터 속에 남성과 여성, 도시와 자연, 소비와 창조 같은 다양한 대비되는 코드들을 녹아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화는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사랑으로 읽히기도 하고, 도시생활이 주는 피폐함과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읽히기도 한다. 소비적이고 중독적인 삶이 만들어내는 불건강과 불행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만들어내는 건강과 행복으로 대비되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양한 메타포가 관념적인 영상이 아닌 영수와 은희의 캐릭터를 통해 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화의 감상 폭을 무한히 확대시킨다. 그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은 아련함을 선사한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유머로 한껏 웃다가, 또 그들의 예쁜 사랑으로 한껏 가슴이 설레는 감정에 휩싸이다, 슬픔을 넘어서 관조적인 입장이 주는 즐거움까지 영화는 다양한 각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니 ‘행복’은 가을날 한 때의 분위기 있는 멜로 영화로 봐도 충분한 영화다. 그리고 그 멜로 영화를 보면서 혹여나 우리 삶이 가진 조건, 즉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미묘하게 떨리면서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리네 삶을 유한한 육체적 조건과, 그걸 넘어서기 위한 (이를테면 사랑이나 행복 같은) 무한한 정신적 조건의 끝없는 동거라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제대로 그 삶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런 삶 속에서 고통스럽거나 혼돈에 빠진 현대인들이라면 ‘행복’은 거기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감동으로써 전해줄 것이 틀림없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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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사랑 사이, 당신은 행복한가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쳐 며칠 쉬러 내려간 시골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늘 그 자리에 앉아 언젠가는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묵묵히 한 때의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에게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은 바로 그 때 느꼈던 포근함, 피폐해진 몸을 다시 되살려놓던 창조적인 힘, 잔뜩 중독된 생활 속에서 날카로워진 신경을 보듬는 해독의 손길, 그런 것들로 인해 충만해지는 생명감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클럽이 망하고, 술 담배에 몸도 망가진(간경변이다) 영수(황정민)는 도시생활에 지쳐 시골 요양원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서 자연을 닮은 은희(임수정)를 만난다. 그녀는 폐 질환 환자로 8년 째 요양원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사랑을 한다. 허진호 감독이 캐릭터들의 몸을 병으로 망가뜨리고 이토록 먼 길을 떠나 시골 한적한 곳에서 둘을 만나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 직전에 가서야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욕망이 아닌 사랑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어 두려우면서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 하루 하루가 소중해지는 시간, 영수는 도시에서는 잊고 있었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종종 도시적 삶의 재미로서의 쾌락과 혼동되어 왔던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은희가 주는 자연의 사랑 속에서 영수는 회복된다. 그리고 회복된 몸은 제멋대로 소비적이고 중독적이며 파괴적인 도시의 삶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된다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욕망의 존재가 가진 얄궂은 운명으로 제시된다.

시골에 눌러앉아 이제는 시골 일도 하면서 살아가던 영수(황정민)는 어느 날 아저씨가 일당을 주면서 권하는 맥주를 단번에 비워내고는 말한다. “술 담배 어렵게 끊었는데.” 그러자 아저씨가 담배까지 권하며 말한다. “건강에는 좋은데 재미가 없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영수는 그 순간 자신이란 존재의 가벼움에 픽 웃어버린다. 도시에서 찾아온 친구 동준(류승수)은 사랑과 행복감이 깃든 영수와 은희의 보금자리를 “한 평에 얼마냐”고 재단해 놓는다. 함께 온 옛 애인 수연(공효진)은 은희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예쁘시네요”라며 “오빠는 복도 많다”고 함부로 말한다. 그래도 영수는 그들에게 뭐라 대들지 않는다. 그저 함께 웃으며 유희적 삶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시골집 자연처럼 질박하지만 정성스런 사랑을 담아 낸 어머니의 밥 한 끼에 원기를 회복한 철부지 아들들이 다시금 뒤편에 자연을 두고 무정하게 도시로 떠나가듯 영수도 은희를 떠난다. 그리고 비로소 시골집과 자연과 사랑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은 파괴된 몸에서 욕망의 끝을 보았을 때이다. 도시에서 옛 애인인 수연(공효진)과 동거하면서 방탕하게 살던 어느 날, 영수는 수연에게 말한다. “이렇게 사는 게 넌 재밌냐?” 재미를 좇던 삶이 파탄날 즈음, 영수는 그때서야 저 시골집이 주었던 진정한 행복감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영화 ‘행복’은 도시적 삶을 살아온 남자, 영수와 자연적 삶을 살아가는 여자, 은희의 사랑을 통해 단순한 남녀간의 멜로의 틀을 넘어선다. 영수와 은희는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 욕망으로서의 술, 담배와 그것을 회복시키는 약초처럼, 도시와 자연, 소비와 생산, 중독과 해독, 욕망과 사랑,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쾌락과 행복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된다. 영화는 이로써 욕망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여자의 전형적 멜로드라마를 통해 “당신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가”하고 묻는다.

도시로 친구와 애인을 만나러 왔을 때 영수에게 친구가 말한다. “우리 나이에 노후자금이 얼마가 필요한 지 알아? 4억 7천만 원이래.” 그 이야기를 은희에게 전하자 그녀가 말한다. “난 내일 없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안돼?” 감독은 아마도 이 대사를 통해 행복이 어디 있는가를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란 이름으로 경박한 수치의 돈 액수만큼의 두려움과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하루 하루를 그 자체로 행복하게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것은 어쩌면 죽음을 달고 살기에 본질에 가까워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은희 같은 이들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결국 대지모(大地母)에 한 점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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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5 09:22 BlogIcon lyzch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카피와 트레일러만 보고서는 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더랬는데, 더키앙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영화를 볼 마음이 들었네요. 그래도 허진호 감독이 보여주는 사랑방식은 보고 나면 너무 쓸쓸해져서 쉽게 볼 엄두가 안 납니다만...잘 읽고 갑니다.
    더키앙님만의 매력적인 글에 항상 감탄하고 소리없이 돌아가곤 했었는데, 궁금했던 영화인지라 반가워서 불쑥 흔적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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