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혁오 매력 뽑아내는 정형돈의 마력

 

<무한도전> 가요제는 정형돈이 늘 대세다? 정형돈 스스로 이렇게 얘기하고 다니지만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닌 사실이 되었다. 그와 함께 했던 지 드래곤이나 정재형이 단박에 예능에서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그것을 통해 음원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가요제에서 그와 함께하는 밴드 혁오는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들의 곡은 음원차트 역주행을 시작했고 지금껏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던 혁오의 노래들이 여기저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힘은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 출연부터 영 방송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혁오. 그런데 바로 그 어색함조차 캐릭터로 만들어낸 게 <무한도전>이지 않았던가.

 

혁오와 파트너가 된 정형돈은 왜 그가 가요제만 되면 주목받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는 밴드 혁오의 어떤 점이 강점이고 어떤 점이 약점인가를 정확히 파악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눠도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 어눌함은 사실 방송으로서는 대략난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형돈은 이런 약점을 오히려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마치 프로듀서가 된 것처럼 거침없이 지적을 하고, 가져온 음악에 대해서도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며 그런 곡은 너네 앨범에나 내라고 말하기도 했다. 떼창을 할 수 있는 곡을 원한다는 정형돈과 오리엔탈리즘을 얘기하며 자신들의 노래 색깔을 강조하는 혁오는 의견대립을 보였다. 정형돈은 갈라서자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농담이다. 하지만 정형돈이 혁오와 각을 세우면서 그들의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음악들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정형돈은 마치 진상을 부리는 듯한 캐릭터로 혁오의 노래를 너무 대중적이지 않다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혁오의 노래에 대한 집중도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정형돈이 굳이 혁오의 보컬 오혁의 집을 방문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선택이다. 그것은 단지 새로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기 위함이 아니라 좀 더 원활한 토크를 통해 오혁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꼈던 부자연스러움은 오혁의 집으로 정형돈이 찾아오자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정형돈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연출해내며 오혁의 냉장고와 그의 집을 터는 것으로 그 친근함을 만들었다.

 

물론 혁오의 인기는 그들의 실력과 음악적인 매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형돈은 그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는 즉석에서 제안한 게릴라 콘서트를 통해 밴드 혁오가 가진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조용하지만 모든 관객들이 떼창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정형돈의 모습은 고스란히 혁오에 대한 매력으로 이어졌다.

 

혁오의 인기는 단지 <무한도전>만의 힘은 아니다. 이미 혁오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노래 또한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들의 존재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없었을 뿐.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역할을 해주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정형돈은 그 어느 누구보다 그들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가요제만 되면 펄펄 나는 정형돈. 이번 혁오 밴드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그는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무도>의 혁오와 <마리텔>의 김영만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에서 정형돈은 함께 파트너가 된 밴드 혁오를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밴드 혁오를 만나러 간 정형돈은 왜 방송에서 말을 잘 하지 못했냐며 편안하게 하라고 그들의 등을 두드린다. 하지만 정형돈은 밴드 혁오가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소통하기 힘들다는 걸 발견한다. “도대체 너희들 정체가 뭐냐고 묻자 혁오요라는 당연하고 단순하지만 엉뚱한 답변이 돌아온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가요제 특집의 첫 방송에서 유재석은 혁오의 보컬 오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10여 년 인터뷰 중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고, 박명수는 왜 말을 안 하냐며 게스트에게 버럭 호통을 치기도 했다. 밴드 혁오는 그러나 진심으로 어색해했다. 예능 아니 TV와는 어울리지 않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어색하고 어눌한 혁오의 답변은 그들에 답답해하고 힘겨워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리액션과 함께 오히려 주목받았다.

 

그리고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방송으로 보면 가장 적응을 못하는 인물들처럼 보이는 밴드 혁오가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그들은 단 한 번 출연으로 자신들의 노래를 차트에 역주행시켰다. 그들의 노래 와리가리위잉위잉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음악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음원차트 10위권에 랭크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역시 <무한도전>의 힘이다. 혁오의 노래는 결코 쉽지 않다. 아니 그간 귀를 즉각적으로 사로잡는 후크가 있는 노래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단 듣다보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느껴진다. 그들의 음악은 충분히 매력이 있지만 그러려면 일단 여러 번 들어봐야 한다. <무한도전>은 그 마중물 역할을 해줬을 뿐이다. 혁오의 노래는 본래 매력적이지만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그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다. <무한도전>의 정형돈과 유재석 그리고 박명수를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그들의 매력이 드러났던 것처럼.

 

혁오의 음악 스타일은 지금의 2,30대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상당부분 닮아있다. 음악은 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련되어 있지만 그 노래의 감성은 밖으로 감정을 터트리거나 폭발시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읊조리면서 조곤조곤 자신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가사도 어딘가 우울하고 소외되었지만 거기에 담담함을 드러내는 그런 이야기들이 주로 실려 있다.

 

그것은 마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감정과 태도들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좌절시키는 세상에 대한 능동적인 포기와 대신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쌓아놓은 일종의 안전 막 같은 그들만의 세계가 거기서는 느껴진다. 혁오는 지금의 청춘들, ‘그들이 사는 세상을 표징하는 듯한 모습이다.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이 혁오를 보여주던 그 날 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는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이 출연했다. 김영만은 방송에 나오자마자 그 때는 코딱지 만했던 아이들많이 컸다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을 순식간에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MBC <뽀뽀뽀>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보고 자랐던 청춘들이라면 그가 말하는 그 때는 종이접기를 따라하는 게 어려웠어도 이제는 커서 잘할 거예요라는 말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영만은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당대의 종이접기를 따라했던 코딱지 만했던 그들을 열광시켰다. 댓글 창은 온전히 그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김영만은 역시 단 한 번의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간계 1위를 기록했고, 이미 지상파 본방이 되기도 전에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만들었다.

 

김영만의 말처럼 이제는 커서 잘할 수 있는그들이지만 어쩌면 현실은 냉혹했었는지도 모른다. 혁오가 그렇듯이 충분히 기량과 실력을 갖춘 그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땠나. 삼포니 사포니 오포니 하며 세상은 그들에게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 그들에게 김영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위로 그 자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또한 종이접기 세대와 부침을 함께 했던 김영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초등학교만 가도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시대에 종이접기는 지난 세대의 향수로 점점 기억되어간다. 오랜만에 방송에 나와 흥분된 목소리로 과거 그와 함께 했던 세대들을 만나는 김영만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의 눈물은 단지 인간계 1위를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했던 세대들을 다시 만나 소통한다는 그 사실이 그를 먹먹하게 했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혁오 세대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김영만에 열광하는 세대와 겹쳐지는 면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실력을 갖춘 어른이 되었지만 어딘가 현실에 좌절된 상처들과 아픔이 느껴진다. 그 현실에 치여 자신들만의 문화를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읊조리고, 때로는 저 아잇적 시절의 문화 속으로 푹 빠져든다.

 

무엇이 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마주하지 못하게 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윗세대들이 잘못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어떤 기회조차 쉬 주어지지 않았던 탓이 크다. 혁오와 김영만에 대한 열광은 그래서 마음 한 편으로는 흐뭇하고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먹먹한 아픔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무한도전>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그것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주었다는 점일 게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도>가 혁오밴드를 단번에 주목시킨 방법

 

혁오밴드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물론 음악을 좀 듣는 사람이라면 다를 것이다. 확실한 자신들만의 질감과 우울한 듯 경쾌하기도 한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음악은 척 들으면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특히 보컬 오혁의 목소리는 그 읊조림에서부터 순식간에 절규로까지 바뀌며 귀를 집중하게 만든다. 아이유가 팬이라고 한 건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혁오밴드의 노래를 듣는 것과 이들을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무한도전>10년을 달려오면서 아마추어의 시대를 훌쩍 지나쳐버렸다. 지금은 뭐든 척척 웃음으로 만들어내는 웃음의 프로페셔널이 되어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예능감은 마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혁오밴드는 그런 것 자체가 없다. 아니 방송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질문을 던졌을 때 몇 초 이상 답변을 하지 않으면 그건 NG가 된다. 만일 생방송이라면 방송사고. 혁오밴드의 보컬 오혁은 유재석의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해야 할 지 몰라 한참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또 던지는 이야기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엉뚱한 답변(물론 웃기려는 예능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을 내놓았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이건 방송이 불가한 것이었을 게다. 편집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에 한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이상 편집되어 나갈 방송분이 없게 된다면 그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이 오혁의 모습을 오히려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먼저 유재석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한 표정을 리액션으로 보여줬고, 실제로 인터뷰하기 가장 힘든 인물로 오혁을 꼽았다. 빨리빨리 답변을 주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제작진은 오혁의 캐릭터에 마음의 소리콘셉트를 덧붙였다. 오혁이 머뭇머뭇 대는 그 순간에 마음의 소리를 통해 성우가 대신 답변을 해주는 장면은 실로 <무한도전>의 센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박명수는 자신의 버럭 캐릭터로 오혁에게 면박을 주는 것으로 오히려 그 캐릭터를 더 공고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 버럭 끝에는 유재석이 원래 저런 분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던져 박명수를 배려하는 모습까지 덧붙여졌다.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에는 박진영, 아이유, 자이언티, 윤상, GD&태양까지 누구 하나 쟁쟁하지 않은 참가자가 없었다. 그 안에 혁오밴드처럼 음악적으로도 또 캐릭터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 들어 있다는 건 <무한도전> 가요제에 보다 넓은 스펙트럼과 다양성을 드러내준다. 방송에 아직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캐릭터화시켜 보여준 <무한도전>은 그 짧은 몇몇 장면만으로도 혁오밴드라는 존재를 단박에 주목시켰다. 실로 베테랑다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어색한 출연자에게 마음의 소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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