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세대 다른 드라마와 시청률

방송 3사 드라마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물론 각 방송사별로 성공하는 드라마를 만든 주력 세대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세대를 나눌 수는 없지만 대체로 MBC는 3,40대가 주 시청세대이며, SBS는 4,50대로 그보다 시청세대가 높다. 반면 KBS는 3,40대에서부터 5,60대까지 고른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이건 10대와 20대는 이제 TV 시청률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닥본사’보다는 TV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현재 방송사별 드라마들의 나이에 따라 주중과 주말에서 시청률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주로 3,40대의 시청층이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고 있는 반면, 주말에는 그 보다는 윗세대인 4,50대의 시청층이 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이산’이나 ‘뉴하트’ 같은 MBC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반면 주말에는 SBS ‘황금신부’나 KBS ‘대왕 세종’같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중 드라마 3,40대가 좌우
주중 드라마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MBC 드라마들의 최근 특징은 그 타깃을 3,40대 여성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AGB 닐슨의 세대별 시청률 백분율 자료(1월1일∼1월20일)에 의하면 주중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이산’과 ‘뉴하트’ 모두 3,40대 여성의 분포도가 가장 높았다. ‘이산’은 3,40대 여성이 30%(30대 16%, 40대 14%)였고, ‘뉴하트’는 31%(30대 17%, 40대 14%)였다. 여기에 같은 세대 남성들까지 포함하면 ‘이산’은 총 51%(30대 남성 11%, 40대 남성 10% = 21%), 즉 반 이상의 시청자가 3,40대라는 얘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뉴하트’도 총 48%(30대 남성 9%, 40대 남성 8% = 17%)로 반 수에 육박한다.

SBS의 ‘왕과 나’는 이에 비해 시청층이 더 높은데, 최근 들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청률이 14% 내외를 유지하는 비결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년층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SBS의 ‘불한당’ 역시 주 시청층이 4,5,60대 여성으로 이 시청세대가 41%(남성까지 포함하면 무려 61%다)나 되는 반면, 30대는 10%(남성 포함해도 16%)에 불과했다. 역시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주 시청층이 3,40대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주중 드라마로서 MBC의 아성을 공략하는 유일한 드라마는 KBS의 ‘쾌도 홍길동’이다. 이 사극의 세대별 시청률은 특이한데, 남성 시청층은 적은 반면(40대 10%가 최고치), 여성 시청층은 3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30대 12%, 40대 12%, 50대 9%, 60대 9%)하고 있다. 여러 모로 사극의 진화와 맞물려 시청층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주말 드라마 4, 50대 이상이 좌우
주중 드라마에서 3,40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수위를 차지한 MBC 드라마. 하지만 주말 드라마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무한도전’이 드라마만큼의 시청률을 얻고 있는 것에 반해, 정작 드라마는 시청률 경쟁에서 멀어져 있다. 과거에 주말 드라마 하면 MBC를 떠올릴 정도로 강세였지만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깍두기’가 종영한 ‘며느리 전성시대’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겨울새’는 조기종영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반면 주중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SBS는 주말 드라마에서 활짝 웃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황금신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4,5,60대(전체의 38%)여성으로 이 세대의 남성 시청자까지 합치면 59%나 된다. 한편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KBS 대하사극 ‘대왕 세종’은 주 시청층이 40대 이상 남성(33%)으로 여성 시청층까지 합치면 61%를 차지하고 있다. ‘대왕 세종’ 의 특이한 점은 시청률의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60대 시청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남 11%, 여 10%)이다.

시청률과 달라진 생활 패턴의 상관관계
이처럼 주중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선호 세대가 다르고, 각 방송사별 드라마의 나이가 다른데서 현재의 시청률 등락을 이해할 수 있다.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3,40대 시청층과 잘 맞아떨어진 주중 MBC 드라마들의 나이는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게 하는 힘이며, 상대적으로 드라마 나이가 높은 주중 SBS 드라마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반면 이런 상황은 주말에 와서는 역전된다. 그만큼 달라진 주말 생활 패턴과 맞물려 주말 드라마 시청층의 주 세대가 장년층이 되었다는 걸, SBS 드라마나 KBS 사극이 말해준다.

방송사의 드라마 성격이 특정 세대를 공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방송사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한 세대에 국한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특정 세대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깃 세대가 고정되면 당장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향후에는 비슷비슷한 톤의 드라마들이 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 방송사에서도 여러 세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다양하게 포진되길 기대한다.

드라마 극과 극, ‘황금신부’와 ‘태사기’

AGB 닐슨의 지난주 주간시청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29.8%로 전체 4위. ‘황금신부’는 24.1%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규모 등을 두고 봤을 때, 거의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완성도가 못 미치는 드라마라고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말은 적어도 ‘황금신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또한 그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완성도나 규모에 있어 거의 극점에 달해있던 ‘태왕사신기’가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것도 언뜻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RPG라면 ‘황금신부’은 대전게임
‘태왕사신기’는 게임으로 친다면 주인공이 아이템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RPG 게임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황금신부’도 ‘태왕사신기’처럼 게임의 대전모드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될까. 그러나 ‘황금신부’는 서로 얽히고 설킨 두 집안 사람들이 끝없이 대결하는 드라마로 게임으로 치면 대전게임을 닮았다.

먼저 상류층과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두 집안의 환경 자체가 계층 간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준우(송창의)네는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을 가족들끼리 꾸려나가는 반면, 영민(송종호)네는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인 웰빙푸드를 경영한다. 전통의 떡을 생산하는 영세업체와 프랜차이즈 음식을 유통하는 대기업은 전통적 가치와 현재의 세태를 병치시킨다.

이런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 가족들 간의 계속 연결되는 악연으로 대전 모드로 전환된다. 준우의 어머니인 한숙(김미숙)은 옛친구이자 영민의 어머니인 옥경(견미리)에게 성일(임채무)을 빼앗기고 이 악연은 대물림된다. 한숙의 아들 준우가 사랑하던 옥지영(최여진)이 옥경의 아들 영민과 결혼하면서 준우는 그 상처에 공황장애까지 겪게 된다. 물론 공황장애는 베트남 신부인 진주(이영아)의 극진한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진주가 찾으려는 친아버지인 성일은 진주가 딸임을 부정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숙의 딸인 세미(한여운)는 옥경의 아들인 영수(김희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물론 이런 관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 번의 우연은 이해될 수도 있지만 두 번 이상 계속되는 우연은 그것을 의도로 보게 만든다. 그러니 ‘황금신부’의 대결구도는 드라마적으로 완결된 구조 속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황금신부’를 리얼리티의 잣대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드라마를 권선징악과 죄와 벌의 당위의 구조로 만든다. 그 안의 인물들은 리얼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향해가는 이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의 재미있는 말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보면 ‘황금신부’의 구조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 스테이지가 진주를 통해 준우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스테이지는 다시 회사를 나가게된 준우가 진주와 얽혀 겪게되는 사회적 편견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며, 세 번째 스테이지는 준우의 동생인 세미와 시동생인 영수의 결혼을 반대하는 옥지영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스테이지는 끝없이 계속된다. 하다 못해 옥지영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도 하나의 스테이지이며, 그녀가 진주와 전통떡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떡 배틀’을 벌이는 것도 또 하나의 스테이지다. 스테이지의 대미는 결국 성일이 진주의 친아버지임이 밝혀지는 것이 될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는 때론 강점이 된다
또한 ‘태왕사신기’와 ‘황금신부’는 스토리에 있어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태왕사신기’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복잡한 게 사실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어 한두 회를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황금신부’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두 집안의 대결구도 정도만 알고 있으면 중간에 몇 회 빼먹더라도 다시 보기만 하면 금세 이해가 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대결구도라는 것은 사실상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가졌던 대부분의 관습적 설정들을 다 모아놓은 것들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저 남자가 버린 딸이래”, “저 여자가 버린 남자래” 하는 말 하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한 이야기 설정은 누구나 쉽게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태왕사신기’같은 거의 처음과 마지막의 조각퍼즐이 딱 들어맞는 듯한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가질 수 없는 단순함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황금신부’가 이런 역설적인 장점(떨어지는 완성도와 단순한 스토리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방영시간이 주중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주중 드라마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주말 드라마의 기대치는 낮다. 요즘처럼 주5일 근무제에 금요일에 집을 비우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밀도 높은 연속성을 가진 드라마는 오히려 시청자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황금신부’의 시청률 상승은 리얼리티보다는 시청자들이 익숙한 소재로 그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의 당위성을 게임이란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컨대 ‘황금신부’는 시청자의 예측을 깨는 스토리전개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것이 깊은 공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깨려는 황금만능주의와 계층 간의 편견들이 실제 현실 사회에서 그만큼 두텁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태왕사신기’처럼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또 느슨한 스토리라도 시청자들이 준우와 진주의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은 이유가 될 것이다.

‘황금신부’가 전하는 우리들의 오만과 편견

그녀는 바보다. 사진 한 장 달랑 보고 이역만리에 시집와서는 그제야 남편 강준우(송창의)가 공황장애라는 걸 알게된다. 필요 없다고 돌아가라는 강준우 말에 그녀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남편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치료일지를 쓰고 기도를 한다. 그렇게 3년 병 수발에 남편은 장애를 극복하고 직장까지 갖게 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저녁시간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요즘 시대, 여성으로 치면 바보 중에 바보인 사람, 바로 ‘황금신부’의 그녀, 누엔진주(이영아)다.

그래서 그녀를 진짜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 주제를 알고 남편 앞길이나 막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주제’라고 말하는 범위에는 그녀가 베트남 여성이라는 국적차별에 대한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학력차별, 그리고 가난하다는 빈부차별, 나아가 그녀의 문화를 형성하는 베트남 문화를 낮은 것으로 보는 문화적인 차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남편의 옛 친구였다는 차인경(공현주)은 번번이 진주를 찾아와 정말 주제에 걸맞지 않은 충고를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표현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국은 “당신이 남편 성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강준우를 잊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 진주가 베트남 여자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인경의 ‘주제넘은 충고’는 그 자체로 베트남 여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차인경의 상황은 사랑에 눈멀어 그랬다 쳐도 강준우의 사업파트너로서 등장한 민이사의 편견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안하무인식으로 진주에게 베트남 여성으로서의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거기에는 국적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빈부에 대한 차별의식이 더 짙게 깔려져 있다. 민이사의 태도는 ‘가난한 자들’을 비루하다 여기는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이 깔려있다. 내세우는 것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칼자루인 ‘황금’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만 좇는 사람들이니 그 눈에 진주 같은 진짜 황금이 눈에 뜨일 리가 없다.

반면 그런 바보를 황금으로 여기는 남자가 있다. 차인경은 진주를 위해 앞길을 포기하는 강준우에게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듯 이렇게 여러 차례 묻는다. “당신 인생을 가로막는 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이야.” 때론 그도 진주에게 화를 낸다.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요.” 자신은 그녀를 황금으로 여기는데 그녀는 정작 자신을 바보로만 생각하니 답답할 밖에.

‘황금신부’는 순애보적이 사랑이 바보의 사랑의 되어버린 시대에 그 바보에 대해 던지는 현대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극화되어 도저히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사건들이 그 안에 포진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거기에는 이런 순애보적인 이야기가 비현실이 되어버린 현 세태를 꼬집는 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부에 베트남 여성으로 등장한 진주는 그 말투와 행동 하나 하나에서 좀 구닥다리라거나 세련되지 못했다고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씩 바뀌고 있고 그것이 이 드라마가 의도하려는 이야기의 진짜다. 황금만 보며 달려가는 물질만능주의의 세상 속에서 정작 황금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렇게나 사랑한다 말하고 정작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차인경과 민이사의 오만과 편견은 그저 드라마 속의 남 얘기로만 치부하고 가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황금신부’는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을 황금으로 볼 줄 아는 아저씨(강준우)를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차인경이, 진주를 만난 후에 ‘자신의 사랑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황금신부’가 가진 두 가지 의미

‘황금신부’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이 그 첫 번째 조건이 되어야할 결혼에 ‘황금’이란 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로서의 ‘황금신부’다. 드라마 상으로 봤을 때, 거기에 부합하는 캐릭터는 강력한 신분상승 욕구로 사랑마저 저버린 옥지영(최여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황금신부’는 물질적 가치로서의 ‘황금’이 아닌 ‘황금처럼 귀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대단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것이지만 우렁각시 같은 남편 뒷바라지에 시부모 공경하는 신부라는 뜻의 ‘황금신부’를 뜻하기도 한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라고 작가 스스로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맞는 캐릭터로 베트남에서 데려온 진주(이영아)를 설정하니 말이다.

‘황금신부’는 그러니까 이 서로 다른 두 캐릭터와 가치가 부딪치는 드라마다. 옥지영이 결혼한 김영민(송종호)과, 진주가 결혼한 강준우(송창의)의 두 집안은 계층에서부터 생활환경, 사고방식, 가치관까지 첨예하게 다르다. 영민이네가 운영하는 웰빙푸드라는 회사가 표준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이라면, 준우네가 운영하는 소망식품은 가내수공업에 가깝다. 웰빙푸드가 케이크를 만든다면 소망식품은 떡을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는 현재와 과거, 현대와 전통이 부딪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영민이네가 성공지향적이라면 소망식품은 행복지향적이다. 작아도 거기서 어떤 행복을 찾아내는 것. 드라마는 종종 시청자들에게 “돈이 다는 아니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리고 이 두 집안을 악연으로 엮어내면서(이건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구조적인 역학관계 같은 것을 암시해 보여준다.

영민이네집 사람들은 대부분 준우네집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 양옥경(견미리)은 정한숙(김미숙)의 남자였던 김성일(임채무)을 가로챘고, 김성일은 자기가 버린 딸인 진주를 부정하며, 옥지영은 강준우를 버려 공황장애에까지 빠뜨린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상류사회라는 곳에 편입되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했고 부자가 되었다. 한숙이 자기 딸인 세미와 양옥경의 아들이 결혼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자, 옥경이 가족들을 모아 놓고 하나하나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죄의식과 허위에 얼룩진 얼굴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구도에 최근에는 새로운 인물이 가세했다. 바로 과거에 강준우를 사랑했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차인경(공현주)이란 인물이다. 이 인물은 이미 더 이상 왠만한 시련에는 끄덕 없게 되어버린 진주 앞에 약해져버린 옥지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그것은 국적과 학력, 계층 같은 것에 대한 보다 강한 차별의식을 무기로 진주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녀의 도를 넘어선 차별의식 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대변되는 편견은 종종 특권의식을 가진 상류층들의 전형적인 악덕으로 그려지곤 했던 소재들이다.

‘황금신부’는 이러한 사회적인 차별의식과 계층 간의 갈등을 두 가족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대립각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우리네 사회가 가진 상당 부분의 갈등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대결양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구획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자칫 성공, 현대적 가치 같은 것은 죄악이고 행복, 과거적 가치만이 옳은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왕에 사회극 같은 설정을 가진 이 드라마가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 진정한 답을 주기 위해서는 ‘황금신부’의 두 가지 의미, 즉 성공이라는 현대적인 가치와 더불어 인간적인 정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한 캐릭터 안에서 구현시켜야 하지 않을까. 진주가 그런 의미에서의 황금신부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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