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승리커플 위대한 사랑, 처음엔 눈 의심했다

눈을 의심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박항승씨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4살 때 8톤 트럭에 치여 오른팔 오른 다리를 잃은 그였지만 그 얼굴에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활짝 웃고 있었고, 자신의 장애를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늘 웃으며 그를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권주리씨가 있었다.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승리 커플’로 불리는 이 부부는 정말 이름처럼 사는 것 같았다. 항상 승리하려 하는 항승씨와, 그에게 주고 또 주는 주리씨.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우리가 더 많이 본 건 ‘눈물 가득한 사연들’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금메달!’편은 눈물보다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 그들의 웃음 뒤에는 남다른 아픔과 상처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뛰어넘어 웃게 하고, 그 웃음을 통해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건 바로 ‘사랑’이었다.

첫 만남부터 30분이나 지각한 주제에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고 가버린 항승씨.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나갔던 주리씨는 장애사실보다 연락처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주선자에게 항의를 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로 지내다 연인이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모두 주리씨가 먼저 하자고 했다.

장애 사실 때문에 결혼 반대가 있었을 성 싶지만, 주리씨의 아버지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며 그의 선택을 믿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장애를 갖고 있는 주리씨 동생을 통해 이 가족은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놓여진 현실의 벽을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승부욕이 강해 못하는 운동이 없다고 했지만 항승씨가 물이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했던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건 주리씨 때문이었다. 팔, 다리 없이도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한 주리씨는 수영장에서 함께 데이트를 하며 항승씨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또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야 한다는 주리씨의 말에 항승씨는 절단된 다리로 스노보드 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항승씨는 스노보드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하고픈 것을 함께 하려 노력했던 것이 그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기적 같은 일까지 만들었던 것. 이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 사랑을 통해 얼마나 우리가 서로를 북돋워줄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한계를 긋고 넘어서려 하지 않는 마음이 진짜 장애가 아닐까 싶었다.

항승씨와 주리씨가 함께 서로를 내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의 부부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의 장애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한 손으로 야채들을 잘라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항승씨나, 3년 간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며 항승씨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고 그 후에는 90년 간 자신의 노예로 살라며 유쾌하게 웃는 주리씨에게서 부부 간의 흔한 역할 구분에 얽매인 마음의 장애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박항승씨와 권주리씨 부부의 이야기는 눈물보다는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삶의 편린들이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말하는 항승씨의 모습에서 묻어났지만, 그래도 더 이들을 가득 채워주는 건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다.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당신은 나에게 금메달이라며 자신이 만든 종이 메달을 항승씨의 목에 걸어주며 환하게 웃는 주리씨의 모습에서 어떤 금메달로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 느껴졌다.(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꽃보다 예쁜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딸

“어머니 꽃 같으세요. 꽃 같아요.” 시어머니 김말선씨의 105세 생신날, 며느리 박영혜(68)씨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곱게 단장하신 시어머니에게서는 젊어서 특히 단정했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신을 축하하듯 영혜씨의 친정엄마 홍정임씨가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청춘을 돌려다오-” 이제 웃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나이지만, 시어머니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다시 돌아온 MBC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이 예쁘게도 담아낸 사랑과 사람의 풍경이다. 

며느리이자 딸 영혜씨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엄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신도 혼자 하지 못하시고 밥숟가락도 혼자 들기 버거워 하시는 시어머니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자꾸만 손으로 파고 뭉개놓는다. 그런 삶을 벌써 10여 년째 살아내고 있는 며느리지만, 속상한 마음이 자꾸 시어머니의 속을 긁는 소리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105세의 연세라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며느리가 고생하는 걸 안타까워하는 시어머니는 밥을 더 이상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래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 결국 시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와중에 항상 뒷전이 되어버리는 친정엄마가 나선다. 친정엄마는 당신도 허리가 안 좋으시지만 시어머니의 입에 연신 숟가락을 넣어주고, 기분 좋아지라고 노래도 불러준다. 

물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사이가 늘 좋은 건 아니다. 친정엄마의 사소한 말 몇 마디에 시어머니는 아이처럼 토라져 대꾸 한 마디 않고 돌아눕는다.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을 풀어주는 건 흥 많고 쌓아두지 않는 성격인 친정엄마다. 친정엄마는 들꽃 몇 개를 꺾어 병에 꽂아 가져와서는 “할머니꽃은 어떤 거야?”하고 묻는다. 그 화해를 신청하는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에서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이 세 사람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영혜씨는 한 때 몸이 아파 요양원에 시어머니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결국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영혜씨에게서는 인간으로서의 어떤 숭고함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그런 딸을 보는 친정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친정엄마는 가타부타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대신 딸의 부담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 생각하고, 시어머니와 말동무도 되어주고 딸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쓴다. 그런 친정엄마를 시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의지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사돈이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어머니는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라져야 저 두 사람이 그래도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게 일상인데다, 표정조차 별로 드러내지 않는 시어머니지만 그래서인지 며느리와 사돈에게 종종 높임말이 흘러나온다. 그 마음이 또한 먹먹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 그들은 젊어서 어쩌면 친정엄마, 시어머니, 딸, 며느리 같은 호칭으로서 살았을 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런 호칭이 중요하지 않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서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삶을 축약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운신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친정엄마가 뒤에서 밀어주지만, 어찌 보면 허리가 좋지 않은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의 휠체어에 의지해 함께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서 딸이자 며느리인 영혜씨가 지팡이를 집고 함께 걸어간다. 그 장면은 마치 함께 지지하며 걸어가는 동행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그 무엇보다 예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그 아픈 사랑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여러 권에 이르는 엄마의 노트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노트 안에는 성준이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담겼다. 의사 선생님은 그 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준이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 엄마는 그 성준이를 끼고 살았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성준이의 상태를 살피고, 성준이와 놀고, 학교를 가서도 교실 문 밖에서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 들여다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MBC <휴먼다큐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와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 그 엄마가 보여주는 성준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그것이 왜 기적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연습을 통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날 촛불도 끄지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삶 따위는 모두 지워버린 채 온전히 성준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엄마. 그 빼곡한 노트에 채워진 글씨들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안전하다는 문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가습기 살균제. 그래서 믿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 줄이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다민이 아빠는 “이건 부모가 자식을 서서히 죽인 것”이라고 그 비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들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는 부모 같아야할 나라가 자식 같은 국민을 내버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겼다. 

성준이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어른거리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의 이야기에 담겨진 특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파양에 학대 그리고 추방까지 당한 신성혁의 사연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며 3년 간 딸들이 유해로나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해온 다윤, 은화 엄마들의 사연이 그랬다. 

그들은 마치 그 가슴 아픈 일들이 자신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무거운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 잘 살라고 입양시켰지만 결과적으론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신성혁의 부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다윤, 은화 엄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성준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지만 그 가슴 절절한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줘야 할 국가의 부재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부모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그 부채감을 부모가 온전히 떠안고 알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질문들까지 담아내는 기존과는 다른 면들이 주목되었다. 

사랑은 그래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었고,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정의를 묻는 그 질문들이 그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만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상식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안에서 눈물 속에 그 희생어린 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 우리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보며 느낀 먹먹함과 아픔과 함께 그 안에 어른거리던 분노의 실체가 아닐까.

파양·학대·추방...‘휴먼다큐 사랑’이 신성혁 통해 전하려한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저는 언제나 엄마의 아들이에요.”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번의 입양과 파양 그리고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는 끔찍한 학대,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노숙자들이 있는 거리에 버려진 유일한 동양인.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은 치즈버거가 따뜻했었다고 말하는 아담 크랩서(우리 이름으로 신성혁)는 벌써 42세다. 하지만 그 성장한 아담에게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저 아이의 그것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첫 번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담과 그의 엄마였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아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고.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미국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아들과 화상통화로 첫 대면을 하는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무나 가난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다리가 불편해 운신도 자유롭지 않은 그녀는 결코 고생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입양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엄마와 아들. 하지만 그 긴 세월의 간극은 그들 사이에는 없어 보였다.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곤궁했던 삶에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었지만, 엄마와 아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여전히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이역만리에 떨어져 화상으로 만나는 얼굴이지만 그 얼굴에 새겨진 삶의 힘겨움을 읽어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헤어져 잘 살기를 바랐지만 차라리 같이 살며 고생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후회. 그들의 얼굴에는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입양 간 아담에게 미국은 이름그대로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첫 입양됐던 양부모의 집에서는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체벌을 당하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으면 같이 입양왔던 누나가 슬쩍 문을 열어놓고 가곤 했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 동생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 누나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결국 파양되면서 아담은 누나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입양된 집은 더 심각했다. 12명의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성적학대와 폭력은 일상이었고 노예처럼 자신들을 부렸다고 했다. 

양부모는 아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양부모는 결국 발각되어 감옥에 갔지만 금세 풀려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 집에서 살던 아이 중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재판 때 아담은 양부모의 편을 들어주었다. 유일한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자 그들은 아담을 길거리에 버리고 가버렸다. 16살에 아담은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인 노숙자가 되었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서 아담은 시민권조차 없었다. 식당, 건축일, 조경, 자동차 수리, 뭐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그는 꽤 일을 잘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왔던 물건을 찾기 위해 입양됐던 집을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무단침입죄로 감옥 생활을 했고,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된 아담은 점점 피폐되어갔다. 

결국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엄마는 아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했다. “미국에 계신 대통령님.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미국에 계신 시민 여러분. 우리 아담 크랩서 좀 도와주세요.” 서툰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통해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여전히 가난하고 몸도 성치 않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운 엄마. 그렇게라도 엄마는 어떻게든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구치소에서 피폐해져가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그 몸을 이끌고 기다시피 부석사 계단을 올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결국 열린 추방재판. 결과는 추방 결정이었다. 많은 증거들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울었다. “우리 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마흔이 넘어 아들이 쫓겨온다는 소식. 그 결정을 들은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다. “돈 많은 사람처럼 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100% 너를 사랑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처음 화상통화를 통해 했던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안아줄게.”

2016년 11월17일 아담은 그 37년 간의 타국 생활을 끝내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게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긴 세월, 그가 걸어왔던 건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고국도 낯선 땅이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은 37년 전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그가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은 어째서 이처럼 기구한 삶을 산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기에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힘겨워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가난함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37년 후 여전히 가난한 그들은 그래도 함께 하려 하고 있다. 적어도 서로의 힘겨움을 넉넉히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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