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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가진 자들의 웃음과 못 가진 자들의 웃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조커>의 흥행이 심상찮다. 우리에게는 배트맨의 적수로 알고 있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탄생과정을 담은 영화지만, 이 영화는 결코 슈퍼히어로물의 단순명쾌한 선악대결을 담지 않는다. 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다. 그건 조커라는 안티히어로가 되어가는 아서 플렉스(호아킨 피닉스)의 고통스런 삶이 전편에 공기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 4일 만에 170만 관객을 돌파했을 정도로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높은 화제성과 평점을 통한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흥행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도대체 이 DC의 안티히어로를 다룬 영화에 어째서 우리네 관객들이 이토록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걸까.

 

먼저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물에서 캐릭터를 가져왔고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고담시를 소재로 쓰고 있지만 오히려 지극히 현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해피’라 불리며 세상에 늘 기쁨과 웃음을 주는 존재로 키워졌고 그래서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그의 조크는 세상 사람들을 웃기지 못한다. 정신 질환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과 약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서라는 인물. 여기서 슈퍼히어로물의 비현실적 판타지를 찾기는 어렵다.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서의 모습은 그가 처한 현실을 상징화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크를 던지고 함께 웃음으로 공감하고 싶지만 웃음보다는 배려와 예의 없는 편견어린 시선과 심지어 아이들까지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에서 눈물을 웃음으로 애써 감추고 있다. 우울감을 약에 의지해 버텨내며 애써 웃는 그 모습은 그만의 현실이 아니었을 게다. 가진 자들은 우아하게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복지예산 삭감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쳐지는 게 고담시의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 아서의 유일한 낙은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의 TV코미디쇼를 보는 것이다. 그 쇼에 낄낄 대며 웃던 아서는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어눌하게 클럽에서 했던 조크를 담은 동영상이 그 쇼에 소개되는 걸 보며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건 사실 머레이가 웃기지 못하는 아서를 비웃고 모욕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었지만, 아서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 것에 놀라워한다.

 

늘 모욕당하면서도 그럭저럭 순응해가며 살아가지만 그가 우연히 저지른 살인사건은 그를 각성시킨다. 광대 분장을 했던 아서의 살인은 고담시에 커다란 화제가 되고 가난해 핍박받아온 이들은 조금씩 그를 영웅시하기 시작한다. 아서가 쏜 총은 그래서 자신만 각성시킨 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처지를 살아가는 못 가진 자들을 각성시킨 게 되었다.

 

아서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왜 자신의 조크에 저들이 웃지 않고 비웃었는지를. 그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로 자신의 세계와 저들의 세계가 유리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머레이의 쇼는 저들의 세계의 웃음을 던지며 저들 세계만이 세상의 모습이라 그려내고 있지만, 아서는 그 세계에 편입될 수 없다. 그는 매일같이 노트에 자신의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조크를 적어 놓고 들려주지만 저들은 그 조크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또 저들의 삶이 마치 진정한 삶이고 정상적인 삶이라 주장된다는 이유로 그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비정상으로 치부되고 모욕 받아 마땅한 삶으로 처분되는 것에 아서는 반기를 든다. 세상은 그를 비정상으로 취급하지만 그는 이제 거꾸로 세상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려 한다.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라며 먹이던 약물들을 끊어버린 아서는 제정신이 아닌 세상에 총알을 먹이기 시작한다.

 

<조커>는 사실 앞부분 내내 답답하고 무거운 감정을 지워낼 수가 없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아서가 조커 분장을 하며 각성하기 시작하고 말미에 세상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장면에서 놀라운 해방감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가진 자들의 세상만이 정상으로 취급되는 현실에 못 가진 자들은 결코 정상적인 인물이 될 수 없다. 노력해도 그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온다.

 

여기서 저들의 시선으로 폭동이라 불리는 반사회적 행동들은 조커의 시선으로 보면 억압된 삶으로부터의 탈출로 그려진다. 이 부분은 아마도 이 이국의 낯선 영화가 우리를 열광하게 만드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가진 자들만의 웃음 속에 못 가진 자 조커의 거친 웃음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랄까.(사진:영화'조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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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 디테일 재주꾼 이병헌 감독

 

새로울 건 없다. 절친인 세 여성이 중심이 되는 드라마는 수없이 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적 캐릭터 구성이고, 그들이 어찌 어찌 하다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아예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멜로로 가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그 액면으로만 보면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롭다. 그건 캐릭터 구성이나 설정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들을 갖고 왔지만, 이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매력 덩어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의외의 말과 행동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멜로가 체질>은 이른바 ‘말맛’이 좋다. 평이한 대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이병헌 감독은 미묘하고 디테일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제작사에서 PPL을 담당하고 있는 황한주(한지은)와 신입사원 추재훈(공명)이 나누는 대화에서 대표를 “까칠하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보통 직원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대표라고 하면 뻔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표현은 그 캐릭터에 새로운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황한주와 추재훈이 대표를 보고 일어서자, “휴식시간도 지켜주지 않는 회사처럼 보이게 왜 이래?”라고 말하는 대표의 캐릭터를 콕 집어내는 대사.

 

또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마치 말로 치고받는 한 바탕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그런 연출도 돋보인다. 임진주(천우희)의 대본이 마음에 들어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손범수(안재홍)가 돌려 말하지 않고 대본을 비판하자 이를 두고 임진주와 손범수가 치고받는 대사는 마치 핑퐁게임처럼 경쾌하다. 대본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얼마나 줄거냐”는 속물적인 마음과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부딪치는 임진주의 속내가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임진주가 그렇게 소심한 척 할 얘기는 하는 말 방식을 갖고 있다면(그래서 작업실에서 쫓겨나지만), 다큐 한 편이 의외로 대성공을 거둬 벼락부자가 된 이은정(전여빈)은 거의 표정 없이 직설적으로 할 이야기를 또박또박 내놓는 시원시원한 말 방식을 갖고 있다. 두 사람과 비교하면 황한주(한지은)는 다정다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다. 그래서 PPL 하나를 하기 위해서 아이돌 출신 배우를 쫓아다니며 ‘기분 좋은 귀찮음’으로 설득하는 인물.

 

임진주와 드라마 작업을 하려다 술을 마시고 함께 하룻밤까지 보내게 되는 손범수의 에피소드는 ‘드라마 작업’이 마치 ‘연애 작업’과 묘하게 병치되는 느낌을 주며 로맨틱 코미디의 핑크빛 웃음을 만들어낸다. 손범수가 임진주에게 드라마 작업을 제안하며 “같이 해요 우리”라는 대사는 그래서 그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또 치킨 PPL을 하기 위해 애쓰는 황한주와 추재훈의 이야기가 곧바로 손범수와 임진주가 함께 치킨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갈 때 그 장면에 실제 PPL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역시 이병헌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PPL 갖고도 슬쩍 미소짓게 만들다니.

 

<멜로가 체질>은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갖고 오지만 남다른 말맛으로 시종일관 빵빵 터지게 만드는 드라마다. <극한직업>에서 이미 경험한 바지만,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밀도가 높다. 매번 대사 하나도 살짝 뒤틀어 웃음을 주려 작정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물론 그런 희극의 바탕은 비극이 있다고 했던가. 여기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전복시켜 놓은 캐릭터들이다.

 

‘노오력’은 있어도 ‘노동’은 없다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 현실적으로 말해 비정규직인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임진주가 그렇고, 벼락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가슴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은정도 그러하며, 어쩌다 여덟 살 아들을 혼자 키우는 이혼녀이자 워킹맘인 황한주가 그렇다. 이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래서 그들이 일과 사랑에 있어서 어떤 저마다의 행복을 찾기를 기대하게 된다. 90%의 코미디가 채우고 나면 10%의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멜로가 체질>. 많이 봤던 멜로 구도지만 새롭게 보이는, 이렇게 말맛 좋은 로맨틱 코미디라니. 참 오랜만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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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오래도록 연기자 김혜자를 기억하게 할 드라마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 가야 될 텐데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혜자(김혜자)는 눈을 쓸고 있었다. 혹여나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아마도 그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일 게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그 사실을 아들(안내상)은 평생 모르고 있었다. 그것 역시 세상 모든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머니 혜자. 어릴 적 사고를 당해 다리 한 쪽을 의족에 의지하며 살아온 아들. 뭐 하나 빛날 것 없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지고 살아온 두 인생이 서로 포개진다. 아들은 그토록 자신을 엄하게 내몰았던 엄마의 진심을 그제야 알아채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제 그만 쓰셔도 되요.” “아니에요. 눈이 계속 오잖아요.” 아들은 평생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진다. “아드님 한 번도 안 넘어졌대요. 눈 오는 날 내내 한 번도 넘어진 적 없대요.” 그러자 어머니의 환하게 펴진 주름진 얼굴에 기쁨이 번져간다. “정말이에요? 다행이네요.” 아들은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 “엄마였어. 평생 내 앞의 눈을 쓸어준 게 엄마였어.”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종영했다. 12부작의 짧은 드라마로 순식간에 끝나버렸지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처럼 지나간 드라마 한 편이 마치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은 먹먹함을 안겨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한 우리네 삶을 압축해 보여줬기 때문이며,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보통의 평범한 삶이라도 얼마나 그 삶이 눈이 부신가를 이 드라마가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는 장치를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고안해낸 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건 사랑했고 결혼해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지만 폭력적인 시대를 맞아 한 줌의 재로 돌아왔던 남편 준하(남주혁)를 되살려 다시금 청춘의 나날에 만나 사랑하고픈 그 마음이 담겨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웠던 사람. 하지만 혜자를 만나 아들을 낳고 그 평생의 어둠을 비로소 떨쳐낼 수 있었던 사람. 그는 시대의 아픔 속에 사라졌지만, 혜자의 기억 속에는 눈이 부신 날의 아름다운 청춘으로 평생 남아 있었다.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또 한 이유는 바로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이었다.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그 아들은 혜자의 아빠가 되었다. 사고를 당한 아빠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또 돌렸던 혜자. 아마도 그건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안고 살아온 혜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간절함이었을 게다. 그래서 한 순간에 늙어버렸다는 설정은 그래서 보기만 해도 아픈 아들 앞의 눈을 평생 쓸어온 어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눈이 부시게>의 혜자나 준하의 삶이나, 혜자의 아들과 그 며느리(이정은)의 삶 어느 것 하나 대단한 삶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삶은 고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의족을 떼어놓고 잠시 쉬는 아들과, 독한 염색약에 손이 다 갈라져버린 며느리. 눈이 부시기보다는 빛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살아온 것만 같았다. 과연 이런 고단한 삶에도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평생 아들 앞의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에게 아들이 묻는다. “대단한 날은 아니구.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 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 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 때가.”

아주 평범한 어느 하루가 평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말은 그만큼 삶이 고단했다는 걸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고단한 삶에도 남다른 행복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담아낸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조작은 그래서 불행이면서도 동시에 행복이 된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계신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담은 그 어떤 드라마가 이런 통찰을 보여줬던가.

<눈이 부시게>가 한 사람의 인생을, 그 한 평생의 기억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먹먹하게 만들었다면, 그 한 사람의 인생을 주름 하나까지 감동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연기자 김혜자다. 한지민이 이 드라마는 “김혜자 선생님을 위한 헌사”라고 한 이야기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안내상이나 이정은의 깊이 있는 연기와, 한지민, 남주혁은 물론이고 손호준, 김가은, 송상은 같은 젊은 배우들의 호연, 여기에 김희원이나 우현 그리고 요양원 어르신 역할을 했던 모든 중견배우들의 연기가 눈부실 수 있었던 건 그 중심에 김혜자가 있어서다. 아마도 오래도록 우리는 연기자 김혜자를 이 드라마로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마지막에 깔린 내레이션은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인 혜자이자 인생 선배인 김혜자가 동시에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위로가 되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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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웃다 울다 희비극에 안정감 주는 연기자들 호연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첫 회는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상큼 달달해지는 멜로였다. 삼겹살 먹는 게 꿈이라며 청테이프로 문틈을 모두 막아놓고 혼자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질식해 쓰러지는 김영수(손호준)가 실려 가기 전 고기를 뒤집어 달라고 하는 대목은 이 작품이 얼마나 코미디에 충실한가를 보여준다. 그가 계속 놀려대고 장난치는 동생 김혜자(한지민)에 술기운에 좋아하던 선배에게 고백하러 갔다가 분수처럼 토를 해버리는 장면도 그렇다. 

여기에 김혜자와 이준하(남주혁)가 여러 차례 우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은 상큼 달달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동네주민들(주로 할머니들)과 요양원 시설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거기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마치 그 곳에 온 준하의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는 에피소드는 참신했다. 동네 시위 현장에서 남녀가 만나는 설정은 어느 멜로에서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그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이 우동집에서 술에 취해 ‘불행 배틀’을 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의 설렘을 주는 멜로의 풍경이었다. 

2회에 들어서면서 <눈이 부시게>는 이 드라마가 그저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상큼 달달한 멜로로만 가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를 되돌리기 위해 봉인해뒀던 시간을 돌리는 시계를 꺼내 무한정 돌려 결국 아빠를 살려내지만 김혜자는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아빠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사고가 나는 걸 막으려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은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상큼 달달에서 눈물 철철로 바뀌는 대목. 배우 한지민의 만만찮은 연기 몰입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혜자(김혜자)는 그 충격에 자기 방문을 걸어 닫았다. 그 변신(?)을 부정하다 포기하게 되는 그 과정은 어찌 보면 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연기자 김혜자는 이를 절절한 비극으로 소화해낸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실감나게 해주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극의 장르적 특징이 급변하고 그 인물의 감정도 급변하기 때문에 다소 어색해보일 수 있는 대목이지만 김혜자는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변환시키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남다른 불행을 안고 사는 이준하 역할을 한 남주혁의 연기까지 더해졌다. 없는 게 차라리 낫다 여겨지는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할머니와 의지하며 살아가던 이준하는,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를 떨쳐내기 위해 자해를 한 후 가정폭력 신고를 한다. 결국 아버지는 잡혀 들어가지만 그 아들을 두고 볼 수 없는 할머니는 경찰서를 찾아가 그것이 자해극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이준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풀려나온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으며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는 질책을 듣는 이준하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눈이 부시게>는 타임리프 판타지가 섞여 있고 발랄한 코미디와 청춘 멜로가 더해져 있어 어찌 보면 가벼운 드라마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밝은 부분만큼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희비극은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는 것만 같다. 

중요한 건 이런 희비극이 우리네 삶의 정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드라마로서 납득시키는 건 다른 이야기라는 거다. 그래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김혜자는 물론이고 한지민이나 남주혁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이들의 눈부신 연기가 있어 인생의 희비극을 우리는 웃고 울며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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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온 마스’의 특별한 해피엔딩, 시즌2도 가나요?

역시 엔딩도 <라이프 온 마스>다웠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함께 공존하는 마무리. 의식을 찾고 현실로 돌아왔던 한태주(정경호)는 내내 무의식 속 코마상태에서 만났던 1988년 동료들을 구해내지 못하고 왔다는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무의식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은 건물 옥상에서 저편으로 뛰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조폭들에 둘러싸여 맞아죽을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는 결국 동료들을 구했고, 그들과 계속 그 곳에 남아있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여전히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서울 전출명령’이 내려지면서 그것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한태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마치 자신이 만든 또 다른 분신처럼 등장한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건가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한태주씨가 웃으면서 살아가는 곳이 바로 현실이에요.” 결국 그는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했고 강력3반 동료들과 계속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 곳이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시간을 오가는 설정의 장르물들이 꽤 많이 등장했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타임리프 판타지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독특한 설정의 장르물이었다. 사고로 의식을 잃은 동안 무의식 속에서 1988년을 겪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그 무의식을 그저 빠져나와야 할 망상으로 치부한 게 아니라, 그 곳에 머물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1988년에서 만난 강동철(박성웅), 이용기(오대환), 조남식(노종현) 그리고 윤나영(고아성)이 한태주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 속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의리와 정이 넘치는 강동철은 마치 형처럼 한태주를 챙겼고, 늘 투덜대며 명령조차 무시하곤 했던 이용기는 한태주에게 술을 따라주며 풀어진 마음을 드러냈다. 경찰보다는 미스 윤이라 더 많이 불리며 커피 타는 일을 더 많이 했던 윤나영은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줬던 한태주가 마음을 조금 열자 반색하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있어 이 드라마의 의식보다 더 끌리는 무의식의 이야기가 가능했다. 물론 <라이프 온 마스>는 수사 장르물로서의 결을 보여준 드라마지만, 또한 별 감흥이 없는 의식세계와 행복감을 주었던 무의식 세계 사이에서 한태주가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웃지 않고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삶이 코마에 빠져 행복감을 느끼는 삶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니 말이다. 

워낙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기 때문일까. <라이프 온 마스>는 시즌2에 대한 암시를 에필로그 속에 담아 두었다.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가 강력3반 동료들과 사건현장을 향해 떠나는 장면과 함께 에필로그는 죽은 줄만 알았던 김현석(곽정욱)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담았다.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리메이크 작품이었지만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라이프 온 마스>는 우리 식의 해석들이 참신하게 채워졌던 드라마다. 리메이크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대본과 연출의 완성도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정경호, 박성웅을 위시해 오대환, 고아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몰입감을 높였다. 이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함께 시즌2로 돌아올 수 있기를.(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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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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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0 11:05 신고 BlogIcon *lovem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들긴해도 돈벌면서 체험한다는 점은 너무 부럽습니다

'최고의 한방', 희비극이 잘 엮어진 예능드라마

짠한 데 웃음이 나고, 우스운데 짠하다. KBS <최고의 한방>은 희비극이 무엇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최우승(이세영)이 사귀던 남자친구가 자신의 룸메이트와 바람을 피우는 걸 박스 안에 숨어서 보다 들키는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과 짠함의 정체를 드러낸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우승이 박스를 뒤집어쓴 채 집밖으로 나가려 하고 그걸 막으려는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짠한데 웃음이 난다. 코미디가 가진 양면성, 즉 비극 속에 담겨진 희극적 요소가 주는 페이소스가 이 드라마에는 도처에 묻어난다. 

'최고의 한방(사진출처:KBS)'

힘겨운 공시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승은 일 년 간의 노력 끝에 들어간 시험장에서 갑자기 배탈이 나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그 상황 자체가 주는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배탈을 애써 버텨내려는 우승에게 시험 문제지의 글자들, 즉 ‘고비, 폭발, 쏟아지는, 산사태, 배출, 터져 나온다’ 같은 단어들이 그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웃음이 난다. 

매달 평가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기획사의 독종 연습생 혜리(보나)를 지훈(김민재)이 자꾸 자살하는 줄 알고 오해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시퀀스들도 코미디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죽도록 연습을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청춘들의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연습생을 하도 오래해 ‘조상’으로 불리게 된 지훈이 월말 평가에서 대놓고 떨어지라 요구받은 랩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는 모습은 그토록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엉뚱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버텨내고, 눈물이 흘러도 눈물샘이 막혀 생긴 질환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 이 청춘들이 어느 날 가로등 아래서 진짜 힘겨움을 슬쩍 드러낼 때 그 무표정이 사실은 온통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얼굴이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런 청춘들에게도 한 방의 기회는 과연 올 것인가. 

<최고의 한방>은 여기에 특별한 판타지 설정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1990년대의 아이돌 스타 유현재(윤시윤)가 그 시대에서 갑자기 20년을 뛰어넘어 현재로 타임리프한 것이다. 유현재는 당시 최고의 스타로서 화려한 청춘을 구가했지만, 20년을 뛰어넘은 현재의 그는 어쩌다 지훈의 옥탑방에 얹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왜 <최고의 한방>은 최근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는 타임리프 설정까지 굳이 집어넣어 90년대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을 연결시킨 걸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과거 한 때는 청춘이었던 지금의 중년들이 살아왔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지금의 현실은 과거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청춘 유현재가 현재의 청춘 지훈과 가까워지고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한방’의 실체가 되지 않을까.

짠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으로 그것을 전하려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힘겨워도 웃으며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밑에 깔려 있는 청춘들의 절망감이 공감된다. 유현재는 이제 중년이 된 시청자들의 시선이 되어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지훈과 우승은 지금의 청춘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 유현재와 지훈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청춘이라는 공유점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고의 한방>은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건 코미디적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잘한 코미디적 상황들이 숨기고 있는 ‘한방’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청춘의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라는 묵직한 메시지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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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동시에 껴안고 걸어가는

 

tvN 드라마 <도깨비>는 그 앞에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에 서서 다시 처음을 돌아보니 도깨비라는 캐릭터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쓸쓸하지만 또한 찬란하게 스러진다.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이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면서 가슴 한 켠에 꽂고 살아가는 쓸쓸함과 찬란함을 표징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 검이 뽑히는 날 누구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여타의 드라마였다면 죽음은 그 이야기의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깨비>는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여러 차례 죽었었다. 김신(공유)과 김선(유인나)은 이미 왕여(이동욱)의 지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바 있고, 그들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로 얽혀진다. 전생의 삶은 그렇게 이생의 삶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 김신의 죽음은 도깨비로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은 다시 도깨비신부를 만나 무()로 돌아가는 또 다른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버린 도깨비는 그것으로 끝일까. 마치 마지막 회처럼 몰아친 한 회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도깨비가 캐나다의 한 레스토랑에서 봤던 지은탁(김고은)이 누군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그래서 그 시작을 알리는 복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다른 남자인 듯 질투를 보이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어쩌면 그녀가 부르는 그 남자는 다시 시작된 삶을 살게 된 도깨비 자신이 아닐까.

 

<도깨비>가 흥미로운 건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수식어를 달은 것처럼 희극과 비극이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고 도깨비 신부를 만나는 그 과정은 삶의 행복이 묻어나는 희극이지만, 그 행복의 끝은 결국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칼을 신부가 뽑아내는 비극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삶이 찬란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그 끝인 쓸쓸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죽음이 드라마 속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극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의 시청률이 15.5%(닐슨 코리아)까지 상승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의 이런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밝고 경쾌한 이야기에 매료되면서도 거기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도깨비의 죽음이라는 극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또한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상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엔딩을 암시하는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도깨비>는 이 둘을 동시에 껴안고 끝을 향해 걸어간다. 도깨비의 죽음은 과연 새드엔딩일까. 그건 다시 벌어질 해피엔딩의 시작은 아닐까.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걸어가는 <도깨비>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시 살아 돌아오길 더더욱 간절히 기원하며. 이러니 다음을 기다리는 한 주가 900년 같다는 말이 나올 밖에.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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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 그 많은 경계들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가슴에 칼이 박힌 채 바로 그것 때문에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 간단해 보여도 이런 캐릭터를 도깨비에 부여한 건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참신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른 무게감을 이 캐릭터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뭔가. 혹부리 영감에게 속아 혹과 도깨비 방망이를 바꿀 정도로 아둔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도토리 깨무는 소리에 집 무너지는 줄 알고 줄행랑을 치는 겁많은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보면 도깨비는 인간을 살해할 만큼 악독하지 않고, 인간의 꾀에 넘어가 초자연적 힘을 이용당하는 미련함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신이지만 조금은 희화화되어 인간적인 면면을 가진 캐릭터가 바로 도깨비다. 김은숙 작가가 다른 시도 아닌 도깨비를 선택한 건 실로 탁월했다고 보인다. 도깨비라는 존재는 서구로 보면 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캐릭터일 수 있지만 또한 우리네 고유의 개성을 가진 신이라는 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 점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이 콘텐츠가 보편적으로 먹혀들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가슴에 박힌 칼로 인해 영겁을 살지만 그것이 또한 죽지 못하는 것으로서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는 희비극 설정은 자칫 허황될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설화 속의 도깨비는 그래서 희화화된 존재지만 이 드라마 속의 도깨비는 비극성을 껴안은 진중한 면면과 동시에 도깨비 특유의 장난기와 가벼움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 설정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것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걸 캐릭터로 구현해낸다.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전쟁의 신이었던 김신(공유)의 이야기가 현재로까지 이어진다. 김신은 죽지 않는 존재로 계속 살아 현재까지 무려 9백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지은탁(김고은)이나 써니(유인나), 유덕화(육성재) 같은 인물들은 현생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연기설 같은 것들이 끼어들면서 과거 고려시대의 김신과 그를 질투해 죽인 어린 왕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역시 죽음을 당한 왕비(김소현)가 현재 어떤 인물로 태어났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도깨비>는 자연스럽게 사극과 현대극을 뛰어넘는 장르적 퓨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설정이 더 흥미로워진 건 과거의 악연이 현재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단순구도가 아니라 과거에는 악연이었지만 현재는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구도가 예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저 도깨비 캐릭터가 가진 희비극적 요소가 어른거린다. 즉 인연은 설렘을 동반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진 사랑은 동시에 비극이 될 때 그 강도도 커지는 법이다.

 

이런 선택은 김은숙 작가가 마치 신데렐라 구박하듯 지은탁을 괴롭히는 이모네 집 사람들을 도깨비 김신이 벌주는 독특한(?) 방식에서 슬쩍 드러난다. 도깨비는 엉뚱하게도 벌이 아닌 금덩어리를 준다. 그래서 이모네 집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금덩어리에 좋아하지만 그것은 금세 지옥으로 바뀐다. 욕심이 상황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

 

이런 소소한 데까지 뻗어있는 이야기들의 면면들은 다름 아닌 김은숙 작가가 이제 인생을 좀 아는 고수라는 증거다. 행복은 비극과 연결되어 있고, 슬픔은 또한 행복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악연으로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굉장한 진중함이 사실은 가벼움과 공존할 수 있고,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는 이야기라는 장치 안에서는 쉽게 그 경계가 무너진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이론적인 말일 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도깨비>라는 작품을 보다보면 너무나 쉽게 희극이 비극으로 또 비극이 희극으로 이어지고, 어떤 즐거워 보이는 욕망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버리며, 사랑이 주는 설렘이 다가오는 비극의 불안감으로 변화하는 걸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삶의 진짜 양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것. 멜로 한 장르를 깊게 파왔던 김은숙 작가가 그간 꽤 많은 작품들과 세월을 통해 어떤 경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심증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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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19 05:43 신고 BlogIcon 베짱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작가라는 직업군은 대단한거같아요
    얼마전 MBC 더블유는 완전 충격이었죠

<도깨비>, 희비극을 공유한 매력적인 캐릭터들

 

정말 제목처럼 도깨비 같은시청률이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의 시청률이 무려 12.471%(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았다. 첫 회 6.322%에서 단 3회만에 두 배로 치솟은 이 시청률은 아마도 케이블 사상 기록적인 수치일 게다. 이 수치는 <도깨비>에 대한 입소문과 열광적인 반응이 폭발적인 수준이라는 걸 말해준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어찌 보면 황당한 판타지다. 고려시대에 전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전장에서 전공을 쌓았던 무장이 왕의 질투를 사 가슴에 칼이 박히고, 들판에 버려지지만 그를 따르는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 부활하지만 그건 축복이자 저주. 영원히 죽지 못하고 그 아픈 기억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이 도깨비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을 빼내줄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 이 영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의 간절한 기도 앞에 그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기도 하는 도깨비는 죽어야할 운명이었던 지은탁(김고은)을 살게 해주고 그 과정에서 그를 거둬가야 할 저승사자(이동욱)와도 인연이 얽힌다. 도깨비의 집에 저승사자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고, 도깨비는 도깨비신부라 여겨지는 지은탁과 얽히고, 저승사자는 삼신할매의 주선으로 써니(유인나)와 얽힌다. 도깨비와 저승사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멜로와 브로맨스라니.

 

그런데 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에 볼수록 빠져든다.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가 진중한 느낌마저 준다. 그건 이 판타지의 비현실이 현실의 아픔과 슬픔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캐릭터를 보라. 그는 불사의 존재지만 가슴에 자신의 검이 박혀져 있다. 즉 불사라는 능력은 어쩌면 그 가슴에 검이 박혀 있다는 고통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건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 그를 사랑하는 도깨비신부가 나타나 가슴의 검을 뽑아 주어야 그 저주가 끝나지만, 그건 또한 그의 영원한 죽음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희비극이 이처럼 캐릭터 하나에 온전히 얹어져 있기 때문에 이 캐릭터는 비현실적 판타지라고 해도 현실감을 준다. 즉 아픔이나 고통, 상처 같은 인간적 감각들이 신적 캐릭터에게서도 비춰지는 것.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희비극을 공유한 캐릭터들이다.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떤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저승사자의 면면을 보라. 이 캐릭터는 써니를 마주하는 순간 느닷없이 눈물을 흘린다. 저승사자의 눈물이라니. 그리고 써니가 손을 내밀고 다가오려 하자 그 손을 피한다. 혹여나 그녀에게 죽음의 기운이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내미는 손을 피해야 하는 존재. 저승사자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과는 상반되는 비극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스스로를 도깨비신부라 부르는 지은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들을 보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건 능력이 아니라 그녀를 특이한 사람으로 만들어 왕따 시키는 저주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저주는 아무 것도 아닌 더 큰 고통을 신탁으로 받고 있다. 그것은 점점 사랑하게 되는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검을 스스로 뽑아내야 하는 고통이다. 그것이 그의 저주를 풀어주는 것이지만 자신은 사랑을 잃게 되는 일.

 

이 희비극을 공유한 캐릭터들은 그래서 그 운명으로만 보면 엄청난 비극의 무게감을 갖지만 <도깨비>는 그 비극 속에서도 희극적 상황들을 연출한다. 부모가 죽고 이모집에 얹혀살며 신데렐라처럼 구박받는 삶을 살아가는 지은탁은 도깨비의 보호를 받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와 촛불로 도깨비를 부른다는 설정이 오징어를 굽다 불이 붙어 그걸 끄자 나타나는 도깨비의 에피소드로 그려질 때 그 기도와 촛불의 절절함은 슬쩍 희극 속에 감춰진다.

 

무슨 과거의 인연인지 알 수 없으나 삼신할매가 내놓은 반지를 집으려는 순간 나타난 써니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저승사자의 그 장면은 어떤 슬픔이 깃들지만, 그 순간 써니가 던지는 반지 하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냐는 말 한 마디는 그 슬픔을 희극으로 감춰준다. 마법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며 진중하게 말하는 도깨비에게 지은탁은 그런데 왜 말투가 사극 톤이에요?”라고 묻는 것처럼 드라마는 판타지를 현실과 버무린다. 드라마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런 희극적인 순간순간의 반짝임들이 있어 <도깨비>는 결코 그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좋은 캐릭터들은 배우들의 좋은 면들을 끄집어낸다. <부산행>에 이어 <밀정>으로 조금씩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공유는 <도깨비>로 과거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 제대로 된 캐릭터를 만난 느낌이다. 비극적인 신의 모습이면서도 때론 너무나 지질한 모습까지 담겨진 인간적인 캐릭터는 공유라는 배우의 조각 같은 면과 털털한 면을 모두 포착해낸다. 이동욱의 차가우면서도 쓸쓸한 이미지는 저승사자란 캐릭터와 만나 독특한 매력으로 피어나고, 유인나는 그 당찬 이미지 그대로 멋진 언니캐릭터로 거듭난다. 평범해 보이지만 소녀 감성이 묻어나는 김고은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건 이 희비극을 담은 캐릭터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캐릭터 속에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삶이란 희비극이다. 살아가는 건 즐거운 일일 수 있지만 또한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죽음은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또한 영겁의 고통스런 삶을 상정해보면 오히려 행복일 수 있다. 결국 그래서 의미는 그 순간에 남는다. 삶의 희비극 속에서도 마법처럼 다가오는 어느 짧은 순간이 주는 의미. 그래서 쓸쓸하고도 찬란할 수밖에 없는.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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