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는 어떻게 예능과 함께 진화해왔나

이제 김치는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낯선 한식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김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방송과 K푸드가 그간 해온 공생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을까. 

서진이네2

‘서진이네2’가 보여준 비비고 컵떡볶이 PPL

“아 떡볶이 먹고 싶다-”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점심 한 타임을 보내고 숨을 돌리는 시간, 직원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간식은 이들이 직접 해먹는 게 아니라 간편식으로 나온 컵떡볶이다. PPL로 들어간 이 장면에서 박서준은 친절하게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3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컵떡볶이를 시연해 보여주며 그 간편함을 설득한다. 컵떡볶이를 받아든 직원들 모두가 그 간편함과 맛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진짜 신기하다. 그냥 소스넣고 물넣고 렌즈 돌리면 이렇게 음식이 완성되는거야?” PPL이지만 최우식의 이 한 마디에는 이 음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 다 들어있다. 한국인들도 한번쯤 편의점 같은 곳에서 사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어보고픈 욕구가 생기는데, 외국인들은 어떨까. 한식이 전 세계에서 핫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만들어 먹기에는 어딘가 낯설었다면 이 간편함에 매료되지 않을까.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커다란 문구로 비비고가 새겨져 있고 ‘Tteokbokki’라고 영문으로도 적혀져 있는 건 이제 이 상품이 겨냥하는 건 국내만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이 컵떡볶이 PPL은 의외의 효과 또한 제공한다. 그것은 이 ‘서진이네’라는 프로그램이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한식 홍보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걸 가리는 효과다. 장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이 껍떡볶이 PPL은 이 프로그램 전체가 한식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물론 그렇다고 ‘서진이네’가 한식 홍보 이상의 예능적 재미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진이네’는 이서진의 성장사가 주는 묘미와 그가 동료 연예인들인 직원들(?)과 함께 낯선 타국에서 한식으로 장사를 하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보여주는 재미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그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전혀 홍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식 홍보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서진이네’ 첫 번째 시즌에서 멕시코 바칼라르로 갔을 때 시도했던 메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당시 ‘서진이네’ 음식점의 콘셉트는 분식이었고 그래서 등장한 음식들은 김밥, 떡볶이, 핫도그, 라면(일반 라면, 붉닭볶음면), 치킨이었다. 이 메뉴들은 어찌 보면 이미 전 세계의 K푸드 붐을 이끄는 음식들이라서 프로그램이 이를 수용한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비고가 컵떡볶이를 출시하듯이 간편식으로 상품화가 용이한 메뉴들이기도 하다. ‘서진이네’를 봐온 외국인 팬들이라면 첫 시즌에서 메뉴로 나왔던 떡볶이가 ‘컵떡볶이’로 나왔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만큼 자연스러운 한식 홍보가 있을까. 

 

K예능과 함께 하는 K푸드

‘서진이네’ 첫 시즌이 분식이라는 훨씬 진입장벽이 낮은 한식을 메뉴로 내세웠다면,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진 ‘서진이네2’는 이보다는 진입장벽이 좀 있는 한식들을 가져왔다. 추운 나라에서 뜨끈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을 열고, 꼬리곰탕, 뚝배기불고기, 소갈비찜, 돌솥비빔밥, 닭갈비, 순두부찌개, 육전비빔국수 등을 메뉴로 내놨다. 시즌1에 비해 보다 한식에 가깝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이 음식들을 주문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 출연자들의 미션도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한식을 꺼내온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제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한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적으로도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맛에 반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겠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서진이네2’에서는 확실한 성과로 돌아왔다. 즉 보통은 입소문이 나지 않아 한산했던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졌고, 음식들에 대한 만족도는 거의 모두가 최상급이었다. 그래서 ‘서진이네2’의 관전 포인트는 장사가 잘 될까 안될까 하는 불안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만 열면 오픈런하는 손님들의 주문들을 과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맞춰졌다. 일 잘하는 고민시가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이제 주방일에 익숙해진 출연자들의 부지런함에 사장인 이서진이 “쉬면서 해”라고 얘기하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 생겨났다. 즉 한식에 대한 좋은 반응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는 것. 대신 이 인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한식의 스토리로 떠올랐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복잡해 보이는 음식들도 대부분 간편식으로 상품화되는 추세다. 곰탕도 불고기도 비빔밥도 또 찌개도 이제는 저 ‘컵떡볶이’치럼 상품화가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K예능이 담아내는 음식 관련 콘텐츠들은 K푸드와 동반성장하는 시너지를 더욱 낼 수 있게 됐다. 그 간편식으로 한식에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은 직접 해먹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뉴욕에 뜬 한국식 기사식당의 위용

K푸드 열풍은 물론 드라마, 영화, K팝 같은 K콘텐츠가 촉발시켰다.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면이나 김밥은 외국인들이 먹고 싶어하는 한식이 됐고,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이 먹은 음식들 역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외국인들을 입맛 다시게 했다. 여기에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지분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나영석 사단이 ‘삼시세끼’에 이어 ‘윤식당’ 그리고 ‘서진이네’로까지 이어온 일련의 음식 관련 여행 예능프로그램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서진이네’ 시즌1은 아마존 프라임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 방탄소년단 뷔는 물론이고 ‘기생충’의 최우식 그리고 ‘이태원클라쓰’의 박서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포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또 백종원을 중심으로 내세운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프로그램도 외국 현지에서 한식을 선보임으로써 보다 친숙하게 외국인들에게 다가간 면이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을 CJ가 전면에서 끌어간 건 콘텐츠는 물론이고 푸드 산업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시스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K콘텐츠를 통해 낮춰진 한식 열풍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뉴욕 맨해튼에 지난 봄 등장한 한국식 기사식당이다. 어찌 보면 국내의 기사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돼지불백이나 계란찜 같은 한국식 백반을 메뉴로 하는 이 기사식당은 개점부터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화제가 됐다. 그저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이제는 일상화된 한식이 아니라 좀더 깊게 경험해보고 싶은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욕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욕에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만 7곳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서진이네2’에서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이 갖는 호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김치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한 때는 냄새 난다며 외국인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던 음식이 아닌가. 그만큼 한식에 친숙해진 이들은 김치 맛에 깊게 빠져들고 있는데 김치 맛을 안다는 건 한식을 그만큼 이들 역시 이해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근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나, 한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K푸드는 어느새 세계인들의 음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서진이네’ 같은 전혀 한식 홍보 같지 않지만 그 효과는 200%인 방송과의 시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글:시사저널, 사진:tvN)

‘서진이네2’, 이제 외국인들은 한식 문화까지 즐기려 한다

서진이네2

“닭갈비.” 한 외국인 손님이 그렇게 메뉴를 주문하자 그걸 받아적던 최우식이 “완벽한 발음이네요.”라고 말해준다. 실제로 그렇다. 이 외국인은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이 음식을 발음하는 게 낯설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자 마침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그 날 처음 만난 다른 손님에게 먹어보고 싶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닭갈비와 더불어 함께 나온 비빔면도 나눠준다. 

 

tvN ‘서진이네2’의 이 광경은 어딘가 익숙하다. 그건 함께 둘러 앉아 나눠 먹는 한식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주로 각자의 음식을 따로 먹는 외국인들의 음식 문화와는 사뭇 달라 때론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던 그 풍경을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 이름에 걸맞게 뚝배기에 나온 음식을 함께 자리에 앉은 친구나 가족이 맛을 보겠다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가져가 먹는 광경도 익숙하게 등장한다. 

 

그 닭갈비를 나눠 준 외국인은 함께 앉은 다른 손님들에게 자신이 한국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코로나 기간에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들 덕분에 한국드라마와 문화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또 친구들과 한국드라마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데 음식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먹어보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어 봤어요. 맛있었어요.” 

 

이건 어쩌면 외국인들이 이제는 한국음식에 점점 익숙해지게 된 중요한 이유일 게다. 영화나 드라마가 먼저 알려지고 그래서 그 콘텐츠들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거기 등장하는 한식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한식을 음식만이 아닌 그걸 먹는 방식, 즉 음식 문화에 대한 것 또한 이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진이네2’에 서진뚝배기를 찾은 손님 중에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도 있었는데 콘텐츠를 통해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나눠 먹는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점점 한국의 음식문화가 가진 ‘정’으로 느껴지고 자꾸만 다 먹고 나서는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말로 고마움을 표현하려 한다. 뜨끈한 국물과 더불어 소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건배를 한 후 한 번에 쭉 마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드라마 같은 데서 봤던 걸 따라하는 것일 게다. 어떤 손님은 다 마시고 나서 빈 잔을 머리 위에 터는 모습까지 보인다. 

 

‘윤식당’ 때부터 ‘윤스테이’를 거쳐 ‘서진이네’까지 나영석 사단은 지금까지 약 7년 동안 외국에서 한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줬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한식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들여다 봐온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봤던 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는 모습과 현재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숟가락을 쓰는 것도 낯설어 굳이 젓가락으로 힘들게 먹던(그것이 마치 예의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그들이 지금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뚝배기불고기의 국물에 살짝 담갔다 빼서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닭갈비를 비빔면에 싸서 먹거나, 육전과 비빔국수를 함께 해서 먹는 모습도 익숙하다. 그렇게 먹어야 음식이 더 맛있다는 걸 알려주기도 해서지만, 그렇게 함께 먹는 방식이 한식문화에는 익숙하다는 걸 이들도 알고 있는 눈치다. 맥주에 소주를 넣어 소맥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 이들 중에는 이렇게 콘텐츠를 통해 알게 된 음식 문화 때문에 한국에 직접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K콘텐츠의 저력이 느껴지는 ‘서진이네2’의 색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호불호 갈렸지만 ‘스위트홈’이 K콘텐츠에 남긴 것들

스위트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이 시즌3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반응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국내 크리처물이 이만한 성과를 가시적으로 냈다는 측면에서 호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시즌2부터 확장된 세계관을 그려내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확실히 시즌이 거듭될수록 대중적인 관심은 식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위트홈’이 시즌3까지 펼쳐낸 다양한 상상들과 그걸 구현해낸 성과들은 부정할 수 없다. 

 

시즌3의 서사는 괴물이 된 자들이 죽음과 부활을 거쳐 신인류로 등장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더해졌다. 신인류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되고, 그래서 중간 단계에 서 있는 특수감염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인류의 등장은 괴물화에 대한 반전의 인식들을 만들어낸다. 즉 시즌2에서 스타디움에 숨어 지내며 괴물이 되는 걸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괴물화 증상을 보이는 자들을 격리하려 했던 그 흐름은, 괴물이 되어야 그 다음단계인 신인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욕망을 더함으로써 뒤집혀버린다. 괴물화 증상은 숨겨야 할 사실이 아니라 드러내도 되는 일이 되고, 오히려 스타디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격(?)처럼 취급된다. 

 

물론 이건 이미 괴물화 단계에 들어선 이들의 입장이다. 괴물화 증상을 겪지 않은 인간의 입장은 또 그들과 다르다. 여전히 괴물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또 신인류로 돌아온 이은혁(이도현) 같은 인물은 죽지 않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로 욕망이나 두려움 자체가 없다. 이렇게 인간과 괴물 그리고 신인류라는 다양한 존재들을 동시에 세워 놓을 수 있었던 건 ‘스위트홈’이 가진 독특한 세계관 덕분이다. 욕망이 괴물로 탄생한다는 세계관. 

 

즉 이들이 괴물이 된 건 욕망 때문이다. 먹고 싶은 욕망,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강해지고 싶은 욕망,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망 등등 저마다 가진 욕망에 따라 괴물들은 그 형상도 능력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들이 죽어 부활해 탄생한 신인류가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의미를 갖는다. 욕망이 사라진 자들이라는 것. 즉 욕망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게 아니라 어떤 욕망을 갖는가가 다른 결과를 낼 뿐이라는 걸 ‘스위트홈’은 시즌3의 대혼전을 통해 그려낸다. 

 

임박사(오정세)처럼 인간이지만 괴물 같은 이들이 존재하고, 정반대로 탁상사(유오성)처럼 괴물이 되지만 인간편에 서서 그들을 구하려는 욕망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이든 괴물이든 아무런 경계를 세우지 않는 아이(김시아)가 있다면, 괴물이 된 후에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서이경(이시영)이 있고, 괴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 욕망을 되돌리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돌려놓는 능력을 가진 차현수(송강)가 있는 반면, 괴물의 다음 단계로서 신인류가 되어 무감해진 이은혁이 있다. 

 

‘스위트홈’은 인간과 괴물, 신인류가 서로 싸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종들이 버텨내려는 생존의 이야기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 인간과 신인류가 공존의 길을 찾아가고, 기다릴 곳과 돌아갈 곳으로서의 ‘스위트홈’이 필요하다는 걸로 끝을 맺는다. 기억은 있지만 감정이 없는 단계에 들어선 이은혁이 또 특수감염인으로서 살아온 차현수가 감정을 드러내는 미소를 짓는 엔딩신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돌아갈 곳이란 공간의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는 것 또한 그 장면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크리처물이 갖기 마련인 보기 불편한 장면들과, 시즌2부터 세계관이 확장되며 생겨난 복잡한 서사, 너무 많은 변종 크리처들의 탄생이 만들어낸 혼돈, 게다가 시즌3에 와서는 이들이 맞붙어 생겨나는 더욱 복잡한 서사들. ‘스위트홈’은 확실히 대중적인 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시도된 VFX 기술의 무한확장은 분명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구현되지 않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영역들을 ‘스위트홈’은 이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은 마치 ‘스위트홈’ 자체가 이러한 상상력의 확장에 대한 욕망에 의해 발현된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 같은 것들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점점 더 커진 욕망이 그 세계를 확장하면서 기괴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비판의 과정을 거치며 이제 감정도 배워나가는 신인류 같은 보다 안정된 K콘텐츠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걸 ‘스위트홈’은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스위트홈’이 시즌3를 거쳐 거둔 분명한 성과다. (사진:넷플릭스)

'유퀴즈'가 소개한 '조선의 힙', 해외에서 열광하는 이유

 

'범 내려온다'라는 곡으로 '1일1깡'에 이은 '1일1범'이라는 얘기를 만들어낸 이날치는 판소리 별주부전을 힙하게 재해석해냄으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밴드다. 이미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들은 최근 광고에도 나왔고, 한국관광공사의 서울 홍보영상은 조회 수가 무려 2억 건을 넘기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추석을 맞아 '조선의 힙' 특집으로 마련된 방송에서 이날치는 그 첫 번째 손님으로 자리했다. 이날치 밴드는 '범 내려온다'와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를 오프닝으로 불렀고, 그 곡에 유재석과 조세호는 절로 들썩이는 어깨춤을 참지 못했다. 우리네 판소리가 이토록 세련되게 재해석되고 그래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한국의 흥'에 빠져들게 만든 이날치 밴드.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이를 현대화함으로서 해외에서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 바로 그 지점이 K콘텐츠가 최근 해외에서 각광받는 이유가 아닐까.

 

이날치 밴드와 함께 독특한 안무로 주목받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퍼포먼스는 그 스타일 자체가 너무나 '힙'해 이들의 음악이 판소리가 맞는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세련된 안무 속에서도 우리 식의 어깨춤과 흥이 깃들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이러니 독특한 이날치 밴드의 판소리 재해석과 독특한 안무가 만들어낸 놀라운 시너지가 생겨날 수밖에.

 

이날 출연한 올레디 역시 K콘텐츠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미국 NBC <월드 오브 댄스> 시즌3에 참가해 최종 결선까지 올라가 4위를 차지했던 댄스듀오 올레디는 당시 심사위원으로 자리한 제니퍼 로페즈의 극찬을 받았다. 제니퍼 로페즈는 당시 심사 평에서 다소 평이한 선곡으로 기대감이 없었는데 이들의 엄청난 퍼포먼스로 노래를 아예 바꿔놓았다고 평했다.

 

올레디는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BTS '다이너마이트'의 커버 댄스 영상을 올렸는데 BTS가 'WOW'라는 댓글을 달아줘 너무나 감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코코로 활동하는 양사랑씨와 아이키로 활동하는 강혜인씨로 구성된 올레디는 이미 <월드 오브 댄스>에 나오기 전부터 유튜브에서 올라온 퍼포먼스 영상으로 유명한 팀이었다. 라틴 댄스와 스트릿 댄스를 결합한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를 보다보면 절로 환호할 수밖에 없는 춤 동작에 빠져들게 된다.

 

프로게임업계에서 롤의 황제로 불리는 페이커 역시 K콘텐츠이 가진 가능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조선의 힙'이었다. 롤드컵 3회 우승, LCK 9승, 총 127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그는 한국인이 게임을 잘 하는 이유를 묻는 유재석에게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며 'PC방'을 언급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었다.

 

늘 게임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 사실은 늘 경쟁 속에서 사는 일이라며 쉽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페이커는 유재석에게 계속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음으로써 자신 역시 그런 고민을 공유했다. 중국이나 미국에서 100억이 넘는 연봉을 제시하지만 가지 않았다는 페이커는 그 이유로 여기 가족과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K콘텐츠 분야에서 우리네 게임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건 페이커 같은 스타 프로게이머와 이들을 응원하는 단단한 팬들이 아닐까 싶다.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고, 남다른 열정으로 해외에서도 박수받는 K댄스의 저력을 보여주며 나아가 게임대회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이들은 확실히 우리의 미래를 밝게 보여주는 앞서간 힙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이런 도전이 있어 이미 열린 K콘텐츠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런 이들이 있어 K콘텐츠의 미래는 밝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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