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화된 <무한도전>, 뭐가 문제일까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에서 박명수와 프라이머리가 노래한 ‘I Got C’에 대해서 한예종 이동연 교수는 “교묘하고 노골적인 표절”이라고 질타했다. 네덜란드 가수 카로 에메랄드의 노래 세 곡을 짜깁기했다는 것. 국내 한 매체에 보낸 이메일에서 카로 에메랄드는 이미 ‘I Got C’를 포함해 프라이머리의 과거 몇몇 곡들도 자신들의 곡의 표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이머리 소속사 아메바컬쳐는 여기에 대해 “기술적으로 전혀 다른 노래다. 레트로 스윙 장르다 보니 유사하게 들리는 것일 뿐 표절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에메랄드 측은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표절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법적 대응을 해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게다. 실제 법적 판단이란 판단하는 당사자에 따라 애매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표절이어도 표절이 아니라고 나올 수도 있고, 표절이라고 나와도 우리의 경우에는 얼마 안 되는 벌금으로 넘어갈 뿐이다. 물론 그 사이 벌어들인 음원수익은 엄청날 것이지만. 이만큼 국내의 가요계에는 표절에 대한 일종의 불감증 같은 것이 걸려있다. 구조가 그걸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글은 프라이머리의 표절 논란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한두 해에 걸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보다 표절 논란에 대해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는 태도가 적절한가 하는 것이고, 과거부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무한도전>이 취해왔던 방식이 올바른 것이었나 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며, 또한 비판조차 하기 어려워진 성역화되고 권력화된 <무한도전>의 팬심이 과연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또 대중을 위해서도 좋은 일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함이다.

 

<무한도전>은 프라이머리와 박명수가 자유로 가요제에 낸 곡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지만 여기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김태호 PD가 트위터를 통해 쓴 내용은 스포일러성 기사에 대한 불쾌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아마도 표절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일 게다. 하지만 표절 문제는 결과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일단 이런 논란이 나온 것에 대한 입장 발표는 먼저 내는 것이 예의다.

 

프라이머리의 표절 논란은 현재 국내의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이면서 동시에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네덜란드 신문 ‘더 텔레그래프’는 ‘한국인이 카로 에메랄드를 상대로 좀도둑질을 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프라이머리라는 개인적인 표절 논란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한국인 전체, 즉 K팝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든 곡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가 가진 파괴력은 이미 자신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재석이 자유로 가요제에 앞서 굳이 음원제작자들에게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양해란 유재석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 가요계와 방송계가 음악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전쟁에서 이미 방송이 그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일 게다. 가요제가 끝나고 거기 나왔던 노래들이 음원차트를 점령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니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프라이머리와 박명수의 ‘I Got C’의 표절 논란에 있어서 <무한도전>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곡을 만든 것도 띄운 것도 또 소비하게 만든 것도 어찌 보면 <무한도전> 가요제니 말이다. 표절 논란의 초점을 프라이머리로 자꾸 맞추는 것도 정당하다 여겨지지 않는다. 과거 가요제로 노래가 떴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때는 오히려 멤버들이 부각되지 않았던가. ‘I Got C’라는 곡은 프라이머리와 <무한도전>이 함께 만든 합작품이란 점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한다.

 

<썰전>에서 허지웅은 본인이 <무도> 팬임을 스스로 밝힌 후, 최근 <무도>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미여관이 저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아닌데 색깔을 많이 바꿨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 같은 밴드에게 이런 기회를 얻는 것이 어렵다며 흐느꼈다”면서 “나는 그게 현재 <무한도전>이 처한 상황의 어두운 면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현재 <무한도전>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빅 재미가 없어서도 아니고 아이템이 고갈돼서도 아니다. 문제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주창하며 탈권력화의 통쾌함을 선사해줬던 <무한도전>이 스스로 권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이제 가요제를 해도 자유로 가요제 정도의 규모를 취할 수밖에 없는 위치가 되었다. 심지어는 과도하게 팽창된 팬덤으로 인해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마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무한도전>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력화를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멤버들 중 몇몇은 최근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정형돈은 함량미달 돈가스를 홈쇼핑에 팔아 논란이 됐었고, 길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임대 문제로 갑을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그만한 곡절이 있을 게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들은 이렇다 할 자숙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무한도전>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작은 논란 하나만으로도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네 연예계 아닌가.

 

<무한도전>은 과거에도 논란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오히려 프로그램 안으로 끌어들여 예능화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그것은 대단히 영민한 대응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사안이 가진 논점들은 사라지고 덮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건 <무한도전>이 아닌가. 이 정도의 영향력과 팬덤을 가진 프로그램이 덮어주고 지나치겠다고 하면 실제로 문제가 덮어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 한 번쯤 <무한도전>의 팬이 아니었던 사람이 있을까. 아니 거의 대부분이 나서진 않아도 심정적인 지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점점 성역화되고 권력화되는 것은 <무한도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과거 힘없던 시절을 괜스레 코스프레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위상 속에서 최소한의 지켜야할 초심을 버려서도 안될 것이다. 대중들에 의해 생겨난 힘에는 대중들에 대한 그만한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대중의 시대로 접어든 음악, 이제 주인은 대중이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인지도를 앞세워 음원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국내 음원시장의 독과점을 발생시켜 제작자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내수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한류의 잠재적 성장 발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단법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가 최근 음원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무한도전> 음원에 대해 내놓은 성명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한 논리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활용해 음원을 내놓으면 그것이 기존 음반 제작자들이 내놓는 음원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제작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내수시장을 교란하게 되며 또 방송 스토리텔링과 연관된 특정 장르의 음원들만 쏟아져 나와 다양성을 해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류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이 논리가 정당하려면 지금껏 기획사들은 방송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음원을 홍보하거나 소속 가수들을 방송 프로그램에 내보내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 활동만 해왔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그들 역시 방송의 힘을 활용해 음원 수익을 극대화하려 노력해오지 않았나. 지금껏 우리네 음원시장이란 몇몇 기획사들과 방송사 간의 담합에 가까운 관계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음원시장의 독과점은 이미 몇몇 대형 기획사들과 방송사의 밀월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르의 다양성?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연말특집으로 기획된 쇼 프로그램에서 몇몇 아이돌 그룹들이 타 그룹의 노래를 콜라보레이션하며 불렀는데 그다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는 웃지 못할 뼈있는 농담이 있듯이, 늘 비슷비슷한 코드와 춤의 반복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연제협의 이 얘기는 무언가 대단한 대의를 갖고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연제협의 논리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비판이 <무한도전>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연제협의 논리 속에 ‘대중’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대중음악이 아닌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대중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옳을 수밖에 없다. 음악의 퀄리티를 얘기하지만 퀄리티가 높다고 해서 대중들이 반드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오만이다. 도대체 음악의 퀄리티를 순위 매길 수 있는 기준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방송사가 늘 비슷비슷한 음악만 음원차트에 올라오던 것을 교란(?)한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방송사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내놓는 음원들이 그렇다. <나는 가수다>가 그랬고, <슈퍼스타K>가 그랬으며, 지금도 <K팝스타>나 <위대한 탄생>은 계속해서 새로운 음원들을 차트에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음원들은 과연 ‘교란’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기존 가요계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중들이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했던 것은 매번 판에 박은 듯이 찍혀져 나오는 기획사 음악들에 지치고 식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엄청난 가창력의 가수들을 복원해냈고 ‘듣는 음악’을 되살려냈다. <슈퍼스타K>나 <K팝스타>는 기획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직은 미완의 보석들을 대중들과 함께 찾아냄으로써 진정한 ‘대중가수’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음악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했다. 버스커버스커 같은 밴드를 어떻게 기존 기획사가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인가. 발굴했다 해도 기존 트렌드에 맞춰내느라 본래 색깔을 다 지워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음악의 다양성 운운하거나, 음악의 퀄리티를 운운하기 전에 가슴에 먼저 손을 얹을 일이다. 다양성과 퀄리티를 떨어뜨린 것은 오히려 기존 기획사들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한류와 K팝을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냐는 식의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그 질문을 되돌려보자. 과연 한류와 K팝을 만든 장본인들은 진정으로 몇몇 기획사들과 거기 소속된 가수들일까. 아니다. 그들 이전에 대중이 있었다. 우리의 한류를 만든 것은 그것을 소비해주고 때로는 꼼꼼한 비판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대중들이다.

 

그리고 바야흐로 그 대중들이 생산된 것을 그저 소비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스스로 생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누구나 카메라로 찍고 편집하고 올릴 수 있는 미디어 변화가 영상의 대중화 시대를 만들었듯이, 이제는 누구나 프로그램 몇 개를 받아 간단하게 작곡을 할 수 있는 음악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이제 음악을 즐기는데 있어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는 그만큼 얇아졌다. 문화의 일상화 경향은 대중의 시대가 보여주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다. 당연히 연제협 같은 기득권을 누리던 전문가 집단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번 박명수가 만든 일련의 곡들은 전문가가 같이 하지 않았던 순수 초보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시대는 수직적 사회 체계 속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일종의 필터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나 문화에 있어서 순위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과거 1등 짜리 곡이 음악적 성취도에 있어서도 1등이라고(사실 이런 순위 자체가 어렵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수직적 사회 체계에 대한 대중들의 수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누구나 작곡을 하고 싶으면 간단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컴퓨터만 갖고도(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곡 하나쯤은 뚝딱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순위 같은 수직적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다만 모든 것이 수평적으로 나열되고 그것이 다양성의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무한도전> 음원이 음원차트 상위에 랭크되면서 생겨난 논란과 잡음은 이미 접어든 음악의 대중화 시대로 인해 수직적 차트의 개념이 무의미해져 가는 시대의 징후처럼 보인다. 이미 많은 대중들은 음원차트 1위를 그 곡의 가치 순위로 바라보진 않는다. 100위의 곡이 나열되어 있다면 그저 다양한 100곡이 있을 뿐이다. 그 중에 일 년에 한두 번 올라오는 <무한도전>의 음원이 있은들 무슨 큰 문제일까. 제발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은, 대중들의 음악을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이번 기회에 다시 보길 바란다. 대중음악은 결국 대중들의 것이다.

2001년∼2012년, 싸이에게 어떤 일이...

 

싸이는 이미 2001년부터 준비된 가수였다. 당시 발표한 데뷔곡 ‘새’는 압도적인(?) 비주얼에 반전의 쾌감마저 주는 에너지가 넘치는 춤과 끼, 게다가 독특한 안무와 엽기적인 가사까지 싸이만의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세계를 벌써부터 펼쳐 보여주었다. 당대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 맞물려 싸이는 단박에 엽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후로 마약사건 및 군복무 문제 등 몇몇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가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싸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이미 준비된 자의 기다림이었다. 그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이'(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2012년 그 시대가 열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발표 후 몇 주만에 미국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곡이 되었다. ‘CNN’, ‘LA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허핑턴포스트’ 같은 매체들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한 아침방송이 진행자는 방송 도중 ‘강남스타일’의 안무인 말춤을 시연하기도 했다. 로비 윌리암스, 조쉬 그로반, 티페인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SNS와 블로그에 잇따라 ‘강남스타일’을 극찬하는 글을 올려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온라인에 쏟아져 나오는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들이다. 실제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물론 ‘강남스타일’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나온 곡이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에서 갑자기 ‘빵 터져버린’ 사건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저 우연한 행운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2001년 데뷔부터 2012년 사이의 흐름을 싸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012년의 싸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독특한 세계(이미 데뷔연도부터 준비된)가 하나하나의 음악적인 환경을 만나면서 드디어 폭발한 것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먼저 2001년도에는 없던 SNS 환경이 그렇다. 만일 당대에 ‘강남스타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미국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다. SNS 환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첫 번째는 SNS 환경으로 인해 다양성의 세계가 열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K팝이 해외에서 주목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주류 음악에만 머물지 않게 된 사람들은 무언가 색다른 음악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서 K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이었다.

 

싸이 같은 독특한 가수가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게 된 이유도 어찌 보면 이 다양성의 시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다양성의 세계에서 발견된 K팝이 어느 정도 해외에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가 눈에 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즉 두 번째로 SNS 환경으로 인해 촉발된 K팝이 2012년의 싸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국내에서 생겨나고 있는 B급 정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과 공감 역시 2012년의 싸이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작금의 개가수(개그맨+가수)들이 만들어낸 B급 정서의 폭발은 뭘 해도 잘 바뀌지 않는 답답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그 속에서 자기비하를 하거나 자기를 포함시켜 풍자해버리는 이 키치적 정서는 개가수들을 만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의 각종 가요제들이 열어 놓은 물꼬가 B급 정서 가득한 개가수들의 세계로 이어진 것. 본래부터 B급 정서의 본좌였던 싸이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남스타일’이 겨냥했던 것이 바로 이 자신의 장기였던 B급 정서로의 복귀였으며 이것이 엉뚱하게도 미국에서의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에게 ‘강남스타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코믹한 키치적 정서에 대한 재미적인 공감, 일렉트로닉 팝이라는 보편적인 트렌드, K팝은 아직은 낯설지만 ‘강남스타일’만이 가진 익숙한 느낌(미국식 B급 유머, 말춤에서 연상되는 카우보이, 퍼포먼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가수 같은), 하지만 싸이 특유의 개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너지+끼) 같은 것이었을 게다.

 

2001년부터 2012년 최근까지 K팝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을 염두에 두고 싸이의 이번 성공을 들여다보면 ‘강남스타일’은 말 그대로 ‘빵 터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을 들고 나오면서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 곡은 ‘초심으로 돌아간’ 노래다. 싸이는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위탄2', K팝은 과연 아이돌 음악일까

'위대한탄생2'(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2'의 세 번째 생방송 미션은 'K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K팝'이라고 미션을 지칭해놓고 보면 이것이 특정 분야로 분류되는 인상을 준다. 물론 'K팝'은 일본의 'J팝', 중국의 'C팝'처럼 각 나라의 대중음악을 분류하는 지칭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내의 오디션에서 미션으로 'K팝'이 지목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K팝'이란 한국의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혹 'K팝'은 한국의 아이돌 음악으로 한정되는 개념이었나.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K팝'은 SM, YG, JYP 같은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발굴해낸 일련의 아이돌 스타들로부터 그 세계적인 인지도가 생긴 게 사실이다. 따라서 SM의 보아나 동방신기, YG의 빅뱅이나 2NE1, JYP의 원더걸스나 2PM 같은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K팝을 동일선상에서 인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들의 노력이 K팝이라는 국가적 인지도를 높인 한류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열어놓은 'K팝'이라는 국가적인 브랜드를 아이돌 그룹 음악으로 한정지을 때는 그만한 한계가 생겨난다. 즉 그것은 결국 몇몇 대형기획사들의 상품적인 브랜드로 굳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아닌 음악들은 'K팝'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난 아이돌 이외의 대중음악들에 대한 대중적인 호응은 자칫 내수용의 찻잔 속의 폭풍에 머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K팝이 실제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라고 해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대중음악은 K팝이고 그 K팝은 한국의 기획사들에 의해 배출된 아이돌 음악이라고 인식시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대형 기획사들에 의해 화려하게 돋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에 K팝 하면 아이돌 그룹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K팝을 알게 된 외국인들이 차츰 한국의 다른 음악들, 예를 들면 인디음악 같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돌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2'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외국인들의 아이돌 음악 이외의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K팝스타'처럼 아예 대형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즉 그것은 애초부터 대형 기획사들이 어떻게 오디션을 하고 아이돌을 발굴해내는가 하는 점이 하나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참가한 지원자들은 아이돌만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거꾸로 K팝의 하나인 아이돌 음악에 대해 대중들(외국인들도 포함해)이 갖는 편견들(주로 외모가 아닌 가창력과 춤 실력에 대한)을 깨준다는 데서 오히려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2'처럼 오디션의 미션을 제시하면서 막연하게 아이돌 음악을 K팝으로 한정짓는 것은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자칫 김건모나 이소라, 신승훈, 임재범 같은 레전드급 가수들이나 국카스텐, 10cm 같은 인디가수들의 음악을 K팝의 하나로 끼워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그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한 하나의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의식에 살짝 각인된 그 무엇이 의식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에게 K팝은 도대체 무엇일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