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학교를 눈물 흘리게 하나

 

한 중학생 아이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했다. 아이의 엄마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내용이 유서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심지어 “무슨 소설을 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같은 또래 아이들이 벌을 세우고, 전선으로 목을 감고 끌고 다니고... 얼마나 그것이 고통스러웠으면 자살로 그 맞는 아픔을 더 이상 끝내고 싶었을까.

 

'학교2013'(사진출처:KBS)

<SBS스페셜>이 기획한 <학교의 눈물>은 사회면을 뜨겁게 만들었던 대구에서 벌어진 고 권승민군에게 벌어진 끔찍한 학교폭력과 자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우울증에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고, 특히 권승민군의 형은 “가해자 애들 다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여버리겠다”며 피가 나도록 벽을 주먹으로 쳐댔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나. 자신들의 일부 같은 가족이 그런 처참한 고통을 겪고 세상을 버렸는데.

 

문제는 가해자의 44%가 피해경험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 왕따를 심하게 당해왔던 아이는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가 배신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친구를 때려 가해자가 되었다. 그 아이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지만 결국 학교는 아이에게 자퇴를 권유했다.

 

한편 가해자가 되어버린 아이 역시 처음에는 아주 소소하게 시작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무려 십여 명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또 여전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담배 심부름을 하는 아이는 그 분노를 가족에게 풀기도 했다. 도대체 우리네 학교는 어째서 학생들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 뒤늦게야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걸까.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드라마 <학교 2013>은 그 단서를 제공해준다. 끝없는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조차 선생님에게 입시 관련 공부만을 요구하고, 학교는 오로지 명문대에 얼마나 많이 보내는가 같은 실적에만 혈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그들은 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분노를 품고 있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 청소년기에 품어야 할 꿈같은 것은 꿀 여유조차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마치 하루하루를 버텨내야할 시간으로 만들어버린 걸까. 일진이었다가 사고를 친 후 전학 와서 마음잡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고남순(이종석)이나, 그의 친구였지만 피해자가 되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된 박흥수(김우빈)나, 그저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송하경(박세영),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비뚤어져 버린 오정호(곽정욱),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김민기(최창엽) 같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어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이다.

 

<학교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폭력의 일차적 책임은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겁니다. 이 아이들 전부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닙니까.” 결국은 도무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아이들을 그 벼랑 끝까지 내몬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매질로 학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의 눈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학교의 눈물>이 실험하겠다는 ‘소나기 학교’에 자꾸만 희망을 걸게 되고, <학교 2013>의 이상처럼만 보이는 정인재(장나라) 선생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다큐 속의 명사, 예능 속의 명사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명사와 사랑에 빠졌다? 명사(名士).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 스포츠 스타들 같은 이름난 유명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물론 예술가들 같은 유명인들은 다큐멘터리에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는 그 명사의 대열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연예인들의 출연보다는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의 출연이 대중들의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MBC 스페셜'은 일찍부터 대중적인 스타들의 일상적인 얼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스타 이영애는 물론이고 여자 역도선수 장미란, 배우 김명민,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그리고 이번 주에 조명될 박찬호까지 'MBC 스페셜'은 명사 다큐라는 한 형식을 구축해낸 셈이 되었다. 물론 처음 다큐멘터리가 스타를 다루는 것은 낯설었다. 따라서 그런 시도가 단지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명사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면면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는 김명민이라는 한 배우의 조명을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존재의 문제까지도 포착해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는 제목대로 우리가 몰랐던 인간 박지성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 방영될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에서는 우리네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그가 슬럼프일 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는 박찬호의 모습을 통해, IMF시절에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스포츠인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끝없는 슬럼프 끝에 이제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의 끈질긴 노력은 마치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듯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이른바 명사다큐의 경향은 'MBC 스페셜'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다큐멘터리의 한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히트곡의 비밀코드'를 다룬 'SBS 스페셜'에는 국내의 작곡가들, 중견가수,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해 일련의 히트곡에 존재하는 특별한 요소들을 이야기했다. 아이템 자체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유명 스타들이 늘 보여지던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조명된다는 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 방영되는 '매력 DNA,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매력 DNA라는 명제 하에 히딩크나 인순이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이 가진 매력의 요인을 포착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보다는 예술가나 스포츠 스타를 게스트로 출연시킴으로써 더 큰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출연해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중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것은 토크쇼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발레리나 강수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소설가 황석영, 이외수 등등 '무릎팍 도사'가 초빙한 명사들은, '무릎팍 도사'가 펼쳐놓은 한바탕 신명나는 토크의 굿판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이것은 '1박2일'에서 박찬호와의 하룻밤을 통해 얻어냈던 공감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연예인이 아닌 명사를 섭외하기 시작한 이유는 연예인에 집중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흔히 '저들끼리 노는 걸 우리가 왜 봐야 하느냐'는 한탄조의 말들은, 프로그램이 대중들과 나누려고 하는 어떤 공감이 이제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때 가능한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탈신비주의화 되고 있는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명사들 역시 어떤 친근함을 통해 대중들과 더 소통하려 하는 욕구가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명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명사 출연이 그 엄격한 형식에서 좀 더 대중적인 것을 향해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의 명사 출연은 지나치게 낮아져 있는 형식에 어떤 격을 더하고 게스트의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하나는 내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올리려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재의 프로그램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중간지점을 향해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장르만을 들어서 어느 것이 격이 높고 어느 것이 낮다고 인식하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따라서 그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본연의 형식이 갖는 본질적인 틀은 깨서는 곤란하겠지만, 대중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한 퓨전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와 예능 속으로 들어오는 명사들은 그 변화의 징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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