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액션에 눈물이? '아저씨'가 건드린 시대감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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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에 눈물이? '아저씨'가 건드린 시대감성

D.H.Jung 2010. 8. 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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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액션, 뜨거운 감성, 스릴러적 쾌감까지

우리 시대의 아저씨들은 어떤 존재일까. 영화 '아저씨'라는 영화가 그 제목을 '아저씨'라 이름 붙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아무리 쓰레기 속을 뒹굴어도 여전히 멋있는 원빈이 연기하는 차태식이라는 인물은 영화 제목이 '아저씨'가 아니라면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저씨'라는 특정 세대를 지칭하자 영화는 이 세대가 작금의 현실에 갖고 있는 감성들을 끌어들인다. '아저씨'는 "도대체 네 정체가 뭐야?"하고 조폭 두목이 물었을 때, "옆집 아저씨"라고 차태식(원빈)이 말하는 장면에서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아저씨'는 전직 특수요원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세상을 등진 채 전당포를 꾸려나가는 차태식이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가 납치되면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지극히 공식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저씨와 소녀 사이에 끈끈한 감정의 고리가 연결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레옹'을 연상시킨다고 하지만, '아저씨'에서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레옹'의 마치 연인 같은 느낌이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 식의 감성이 들어가 있다. 마치 삼촌 같고 아버지 같은 가족애적인 감성. 아저씨 차태식이 사라진 소미를 찾기 위해 개미굴 같은 조폭들의 세계를 뒤지고 다니는 장면들에는, 연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기력한 아저씨들(아버지들)의 트라우마가 판타지로 피어난다.

차태식이라는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잔인한 조폭 일당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아저씨'라는 존재는 고개 숙인 이 시대 아저씨들의 억눌린 감성을 폭발시킨다. 물론 이 억눌린 감성은 단지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주는 위축감,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권위를 잃어가는 아저씨들의 감성을 포함한다. 차태식이 내뻗는 주먹과 휘두르는 칼끝은 여지없이 이 억압된 사회를 갈갈이 찢어놓을 만큼 위력적이다. 어두운 전당포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이 아저씨가 소미라는 소녀와의 끈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고, 그 세상의 폭력을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고 심지어 총을 쏘아대는 그 과장된 일련의 상황들을 관객이 어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건 그 감정적 지지 때문이다.

영화 '아저씨'가 그려내는 세상의 풍경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마치 하드고어 영화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들이 말하는 것은 극도로 물질만능주의가 되어버린 사회다. 납치와 장기매매라는 극단적인 설정들은 그 대상이 단지 어른들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세계가 가진 막장의 얼굴을 드러낸다. 이제 돈이 된다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짓도 하는 사회라는 것이 이 세계가 그려내는 풍경의 진짜 무서운 얼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스릴러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이런 절대악과 대비되는 강력한 아저씨 차태식을 세움으로써 그걸 파괴시켜나가는 쾌감을 선사한다. 동정심조차 사치처럼 여겨지는 그 인면수심의 어른들 앞에서 잔혹하게까지 느껴지는 차태식의 액션은 실로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내가 창피하죠? 그래도 괜찮아요.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좋아하는 사람 한 개도 없어." 소미의 이 대사는 관객으로 앉은 아저씨들의 마음 한 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한 마디는 이 이웃집 아저씨가 소미라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옥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 끄트머리에서 구원받는 것은 정작 소녀가 아니라 아저씨다. "모른 척 해서 미안하다"며 "한 번만 안아 달라"는 아저씨를 꼭 껴안는 소녀는 결국 아저씨를 구원시킨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마더' 이후 확고한 연기자로의 변신을 성공시키고 있는 원빈의 연기는 이정범 감독의 연출로 더할 나위 없이 '아저씨'라는 영화 속 차태식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내고, 소미라는 소녀를 연기한 김새론은 많은 관객들에게 저마다의 감정이입되는 대상을 만들어낼 정도로 이 차가운 액션에 뜨거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살 떨리는 폭력의 심상을 그려 넣은 김희원의 연기는 스릴러적인 쾌감을 덧붙인다. 차가운 액션, 뜨거운 감성, 스릴러적인 쾌감이 교차하는 '아저씨'.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이 시대가 가진 아저씨 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