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 왜 하필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일까
“넌 좋은 사람이야. 내 손 놓고 갈 수 있었는데 잡았잖아 여러 번.” 인어 심청(전지현)의 한 마디에 순간 허준재(이민호)의 눈빛이 흔들린다. 늘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놓는 머리 좋은 사기꾼 허준재는 여자에게도 진심보다는 허세와 너스레만 늘어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달콤한 거짓말에 넘어가던 여자들과는 달리, 심청의 말은 너무 진심이라 오히려 그를 뜨끔하게 만든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이 굳이 ‘어우야담’에 수록된 담령과 인어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런 ‘전설’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현재에 새로운 인어이야기를 이어가려한 이유는 뭘까. 그건 어째서 동서양을 망라해 어디서든 인어의 전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왔고 그 전설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어란 인간과 바다의 경계에 선 존재다. 거기에는 인간의 세계와 바다의 세계가 교차한다. 인어 전설이 말하는 것은 바다가 가진 자연 그 자체의 순수함과 대비되는 인간 세계의 욕망이고 그 부딪침과 상생의 길이다. ‘어우야담’에 기록된 담령의 이야기에서도 나오듯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를 잡은 양씨(성동일)는 “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무척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는다”며 “날이 갈수록 부패하여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연을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욕망을 채워줄 물질로 바라보는 시각.
그래서 인어 전설에 등장하는 인간과 인어의 사랑은 어찌 보면 단순한 연애담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을 묻는 심청에게 허준재는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그건 “항복”이고 “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욕망 자체가 없는 순수한 영혼의 심청에게 이기고 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녀는 바로 허준재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 말이 또 허준재의 가슴을 파고든다.
거짓말만 늘어놓지만 그 때마다 툭툭 던지는 심청의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를 흔들어 놓는다. 즉 허준재라는 사기꾼이 이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의 방식이라면, 자연을 대변하는 존재로 나타난 심청은 그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진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짐으로써 그 삶의 방식이 어딘지 잘못되었다고 알려준다.
요즘 같은 시국이 보여주듯이 말이라는 것은 진심을 담기보다는 진실을 가리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처음 등장한 심청이 말을 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게다. 그녀의 말 없는 진심은 허준재라는 사기꾼의 말 많은 거짓과 대립한다. 그러면서도 이 심청이란 존재는 허준재의 속 깊은 곳은 아직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믿고 그걸 끄집어낸다.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주고는 도망치려 했던 허준재의 발길을 돌려놓은 건 다름 아닌 그의 기억 속에 담겨진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세상의 끝’에서 자신에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 그 아픈 기억은 그에게 ‘세상의 끝’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소한 간다는 말이라도 해주기 위해 심청에게 돌아온 허준재의 그 마음 한 자락은 그래서 그 거짓으로 포장된 그에게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드러낸다.
심청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허준재의 장면은 그래서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가 가진 순수의 세계와 거기서 떠나왔던 인간의 세계가 손을 맞잡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허준재에게는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삶이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세상의 시작’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는 육지의 끝이 인어가 사는 바다의 시작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푸른바다의 전설>은 1600년대에 쓰인 ‘어우야담’의 한 대목을 가져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 엮어놓은 작품이다. 그래서 인어의 순수함은 ‘바보스러움’이거나 ‘늑대처녀’ 같은 말들로 표현되며 웃음을 주지만, 순간순간 그 인어가 꺼내놓는 진심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건 이 작품이 웃음 이면에 숨겨놓은 진지함이 그럴 때마다 슬쩍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의 시대, 욕망의 시대 그리고 상실의 시대.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순수함이란 ‘전설’로나 불리는 어떤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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