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이태원’ 박서준이 갑질 세상에 맞서는 방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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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이태원’ 박서준이 갑질 세상에 맞서는 방식

D.H.Jung 2020. 3. 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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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박서준이 오늘을 사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말

 

“괜찮아. 옛날에 우리 같은 공방에서 일할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용감한 사람이야. 누가 뭐래든 가장 용감하고 예쁜 여자야.” 단밤을 나와 장가로 간 장근수(김동희)가 TV 음식 오디션 프로그램인 <최강포차>에서 이기기 위해 단밤의 메인 셰프인 마현이(이주영)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폭로하자 쏟아진 차별적 시선에 박새로이(박서준)는 그렇게 위로한다.

 

<최강포차>에서 우승을 하는 조건으로 부동산 거물이었던 김순례(김미경) 할머니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한 단밤으로서는 마현이가 처한 이 상황은 커다른 위기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박새로이가 걱정하는 건 투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전정되면 단밤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마현이는 도망치지 않겠다며 용기를 낸다. 하지만 박새로이는 말한다. “도망쳐도 돼. 아니지. 도망이 아니지. 잘못한 거 없잖아. 그치? 저딴 시선까지 감당해야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야.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가 마현이에게 하는 이 말은 이 ‘청춘복수극’이 궁극적으로 대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는 힘이 있다고 갑질하는 세상, 또 자신과 다르다고 차별하는 세상과 맞서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박새로이가 당해왔던 세상이면서 동시에 그가 품은 단밤 식구들이 저마다 당해왔던 세상이기도 하다.

 

전과가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여겨온 최승권(류경수)이 그렇고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한 마현이가 그러하며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혼혈아인 토니(크리스 라이언)가 그렇다. 박새로이는 함께 장가의 뒤통수를 치기로 했던 강민정(김혜은)이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가 원하는 건 자유입니다. 누구도 저와 제 사람들을 건들지 못하도록 제 말 행동에 힘이 실리고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제 삶의 주체가 저인 게 당연한,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박새로이의 이 말은 이들의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이들이 처한 세상은 힘이 없으면 말도 행동도 맘대로 할 수 없고 부당함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또한 자신의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게 당연시 여겨지고, 소신에는 그만한 대가가 치러지는 현실이다. 박새로이는 이런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저들이 사는 방식과 저들의 엇나가고 부조리하고 부정한 시스템에 맞서 자신만의 올바른 방식으로 정당하게 맞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진정한 복수다. 이 부분은 <이태원 클라쓰>가 흔한 복수극의 차원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와 같은 처지를 겪었지만 다른 선택을 한 장근수라는 인물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단지 기성세대와 청춘들 간의 세대 대결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장근수 역시 서자라는 이유로 핍박받아 왔던 인물이다. 그는 단밤에 들어와 박새로이를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결국 단밤으로 돌아가자 장대희(유재명)가 해왔던 그 방식의 삶을 선택한다. ‘약육강식’이 삶의 모토인 장대희처럼 이기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하는 것.

 

장근수의 선택과 단밤 식구들의 선택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결구도가 단순한 신구 세대의 대결이 아닌 신구의 생각과 가치관의 대결이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어째서 스스로가 주체인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상이 던져놓은 문제집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야 할까. 그걸 벗어나기 위해 소신을 갖는 일에 어째서 대가를 치러야 할까. 박새로이의 일갈에 청춘들이, 아니 이 부조리한 세상을 버텨내는 모든 이들이 속 시원해지는 이유일 게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