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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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국민 욕받이 박해준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D.H.Jung 2020. 5. 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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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김희애는 늘 놀랍지만 박해준은 더 놀랍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종영했다. 마지막회는 28.3%(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시청률로 비지상파 드라마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남편의 불륜으로 시작해 질깃질깃하게 이어지는 한 가족의 파국을 보여주는 작품인지라, 결말에 대한 반응들은 분분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뭔가 주인공 지선우(김희애)의 해피엔딩과 이태오(박해준)의 파멸이라는 권선징악적 결말을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결국 모두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끝나버린 결말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또 지긋지긋한 애증을 옆에서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가출해버린 아들을 두고도 1년 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지선우의 모습에서 개연성 부족을 느끼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국을 통해 부부의 세계가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있을 수 없는 그런 관계라는 걸 드러낸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한때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던 이들은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지선우는 병원으로 돌아갔고, 이태오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들고 전전했으며, 여다경(한소희)은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공부를 시작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깊었던 관계만큼 패인 깊은 상처들을 하나씩 안고 그들은 살아갔다.

 

<부부의 세계>가 불륜의 파국을 통해 보여 주려한 건 이 세계가 가진 특이성이었다. 같이 살을 부비며 살아가고 그 사랑의 결실로서 아이까지 있는 친밀한 관계지만, 아주 쉽게 깨져버릴 수 있고 그렇게 깨지고 나면 모두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세계라는 것.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남는 질깃질깃한 애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내 순정을 난도질 했던 가해자. 내가 죽여버린 나의 적. 치열하게 증오했고 처절하게 사랑했던 당신. 적이자 전우였고, 동지이자 원수였던 내 남자. 남편.' 지선우의 내레이션이 담아낸 것처럼.

 

<부부의 세계>가 이처럼 파격적인 이야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로 배우들의 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부부의 세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머뭇거리지 않고 돌아가지 않으며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매번 그 빠른 속도감에 적이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의 반전에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재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이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걸 뛰어넘게 해준 건 그저 사건의 전개로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해낸 면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불륜치정극이 아니라 심리스릴러 같은 장르적 색채를 띠었다. 결국 이 부분에서 애증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김희애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폭주하는 드라마의 이야기를 애써 감정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이 계속 몰입하고 또 그 심리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김희애의 연기야 정평이 나 있고 해왔던 작품마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안겨주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더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준 건 상대역을 한 박해준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같은 망언 제조기로 주목받았던 이태오라는 인물의 지질하고 허세와 욕망에 휘둘리면서도 끝까지 뻔뻔하게 재결합 운운하는 그런 면모들이 박해준은 잘 표현했다. 역할 때문에 국민 욕받이가 되어버렸지만, 이 드라마 전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 건 바로 그였다. 김희애와 박해준이 있어 이 드라마의 팽팽한 긴장감과 애잔함 같은 것들이 훨씬 더 잘 살아날 수 있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