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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나빌레라' 칠순 박인환과 스물셋 송강, 이 조합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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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무겁디 무거운 박인환과 송강은 가볍게 날 수 있을까

 

상가에서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는 덕출(박인환)의 얼굴은 꽤 담담하다. 그 곳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노년의 쓸쓸함이 담겨있다. 친구 하나가 문득 술 한 잔을 비우며 말한다. "근데 왜 눈물이 안 나냐?" 그러자 덕출이 말한다. "늙으면 이별도 익숙해지니까."

 

tvN 새 월화드라마 <나빌레라>는 덕출이라는 이제 칠순에 들어선 인물의 쓸쓸함으로 시작한다. 그는 정년퇴직을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긴 하루 때문에 뭘 해야 할 지 알 수 없다는 그는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내며 지낸다.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평생을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그를 그리 살갑게 대해주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그를 찾아주는 이는 요양원에 들어간 교석(이영석)이다. 가족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교석은 그래도 사탕봉지를 들고 찾아주는 덕출과 절친이다. 평생 선박을 팔았는데 정작 자기 배 한 척 갖지 못했다는 교석은 '전진호'라는 배를 꿈꾼다. 그 배를 타고 큰 바다를 항해하며 고래를 만나고픈 꿈.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의 현실은 무겁디 무거운 육신과 함께 요양원에 묶여 있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어느 날 창밖으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전진호' 종이배를 만들어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날려 보낸다. 그러나 종이배는 훨훨 바다 위를 날아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그 무거운 육신을 툭 떨어뜨린다. 그렇게 그는 날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어려서부터 발레리노의 마치 날아갈 듯 가벼운 몸짓을 동경하던 덕출이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건 해본 적이 없이" 살아온 그는 칠순의 나이에 다시 날고 싶어진다. 이제는 발레 공연 무대에도 자신 같은 관객은 없는 나잇대지만, 종이로 만든 전진호만을 남긴 채 떠난 친구의 죽음을 마주한 후 그는 절실해진다. 그는 찾아간 발레 스튜디오에서 채록(송강)이라는 이제 스물셋의 발레리노를 만난다.

 

<나빌레라>는 조지훈의 시 '승무'에 등장하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나빌레라'는 '나비 같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훨훨 나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이 표현을 제목으로 가져온 건 '나비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가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함이었을 게다. 덕출의 무겁디 무거운 삶이 발레에 대한 꿈을 통해 나비처럼 훨훨 나는 가벼움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삶이 무거운 건 단지 칠순의 덕출만이 아니다. 이제 겨우 스물셋의 나이인 채록 역시 그 삶의 무게가 만만찮다. 아버지 무영(조성하)은 무슨 일 때문인지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하고, 그 과거는 고스란히 채록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 20대의 나이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육신을 가진 그지만 그 역시 발레리노로서 가볍게 훨훨 날지는 못하는 현실의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나빌레라>가 첫 회만을 통해 보여준 건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은 덕출과, 몸은 펄펄 날 것 같지만 마음이 그를 짓눌러 날지 못하는 채록이 만나 벌어지는 사건을 다룰 거라는 점이다. 칠순과 20대의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어, 꿈과 현실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나빌레라>는 최근 19금 드라마가 늘고 있고 그만큼 자극적인 수위와 표현, 소재를 담은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이질적일 정도로 차분하고 잔잔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잔잔함이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여겨진다. 특히 요즘처럼 누구나 무거운 현실을 매일 같이 마주하고 있는 청춘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우리네 삶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줄 위로와 감동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