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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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봐야해

돈돈 하는 세상이라 ‘웡카’의 울림 더 컸다

D.H.Jung 2024. 2. 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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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웡카’, 욕망과 맞서는 꿈의 마법

웡카

초콜릿은 당신을 꿈꾸게 하는가 아니면 욕망을 자극하는가. 아마도 초콜릿 사업자라면 큰 돈을 벌고픈 욕망이 꿈틀대겠지만 7년 동안 항해를 하다 어느 도시에 도착한 윌리(티모시 살라메)는 다르다. 초콜릿 제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데다 마법사 같은 면모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윌리가 만드는 초콜릿은 그저 달콤하게 혀만 자극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먹으면 몸이 붕붕 떠오르기도 하고, 없던 머리가 쑥쑥 자라나기도 하며, 심지어 없던 용기도 내게 만들어 하지 못했던 프로포즈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초콜릿이다. 

 

윌리의 캐릭터는 그래서 이것저것 특별한 재료들을 섞어 자신만의 실험 장치 같은 도구들로 ‘사랑의 묘약’ 같은 걸 만들어내던 연금술사를 닮았다. 언어 이전(혹은 이성이 아닌) 주술의 세계가 가진 마법적인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윌리는 그래서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 캐릭터가 신비로운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는 이 작품이 끝내 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그 반대편의 극단에 서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신비롭고 행복을 주는 묘약 같은 것처럼 여겨지지만, 갈수록 비싸져 하나를 사먹으려면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어른들의 자본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면 ‘돈되는 사업거리’로 비춰질 수 있다. 백지상태의 순수한 아이가 언어를 배우고 이를 통해 자본화된 세상을 배워가며 어른이 되면서 그 초콜릿은 그만한 돈을 지불해야(그것도 비싼) 살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꿈은 갈수록 욕망으로 변해간다. 

 

이건 어린 시절 마술을 마법처럼 여기며 신기해했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기술을 통해 펼쳐지는 ‘마술쇼’가 되는 과정이고, 하늘을 붕붕 날아오르는 것이 기분 좋은 공중부양이었던 것에서, 이제는 떨어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늘을 향해 끝간 데 없이 펼쳐지던 상상력은 그래서 갈수록 현실의 무게에 땅으로 떨어지고 때론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글은 이성을 일깨우지만 그럴수록 상상을 제한한다. 

 

<웡카>가 세우고 있는 대립항은 그래서 극도로 자본화되어 사기계약을 통해 노동을 착취하는 이들 앞에 손가락 걸고 하는 약속은 무엇이든 지키려 애쓰는 이들을 세워놓는 것이고, 초콜릿을 독점해 막대한 돈과 권력을 쥐려는 이른바 초콜릿 연합 카르텔 앞에 가진 건 없지만 모두가 초콜릿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꿈을 나누고 협력해 그들의 부당한 독점을 깨는 것이다. 또 초콜릿을 독점해 얻는 것이 과잉으로 인해 망가지는 몸과 정신이라는 걸, 초콜릿을 나눔으로서 더 커지는 행복을 통해 일갈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 욕망의 카르텔은 심지어 초콜릿에 윌리와 누들(칼라 레인)로 대변되는 사람들을 빠뜨려 궁극에는 죽이려 하지만, 윌리와 그와 함께 하는 협력자들은 그 독점에 의해 죽음의 향기가 물씬 피어나는 초콜릿의 물꼬를 틀어 세상 사람 모두가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꿈을 꾸게 하려 한다. 윌리의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이지만 그 마법의 꿈꾸기가 특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그래서 다름 아닌 ‘돈돈 하는 세상’이 그 대척점에 서 있어서다. 

 

눈만 뜨면 억억 하는 이야기들이 터져나오는 세상을 접하다 보니, 이제 수중에 겨우 12소버린만 달랑 들고 꿈을 위해 도시에 들어와 순식간에 그 돈을 모두 다 뜯겨 버리거나 누군가에 줘버려 빈털터리가 된 윌리가 그럼에도 뭐든 나오는 모자에서 차를 꺼내 마시며 여전히 꿈을 꾸는 모습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그가 계속 꿈꾸기를 바라게되고 그의 마법 같은 비현실이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기를 응원하게 된다. 관객들이 동화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 처음 마술을 보며 느꼈던 그 감정처럼 빠져들게 되는 이유다. (사진:영화'웡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