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로기완' 송중기와 최성은, 뿌리 뽑힌 청춘들의 절망, 사랑, 해방 본문

이 영화는 봐야해

'로기완' 송중기와 최성은, 뿌리 뽑힌 청춘들의 절망, 사랑, 해방

D.H.Jung 2024. 3. 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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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 탈북 난민, 청춘의 초상 그리고 이민자 정서

로기완

김희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탈북 난민 로기완(송중기)의 이야기다.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 공안에게 쫓기던 이 청춘은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한다. 어찌 보면 그에게 거의 유일하게 남은 정착지는 어머니였을 게다. 그래서 도주 중 차에 치어 죽어가는 어머니 앞에서도 도망쳐야 했던 로기완은 그 곳에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어머니의 핏자국을 닦아내다 손으로 어루만지며 오열한다. 마치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를 느끼듯이. 하지만 그건 로기완에게 이제 아무런 기댈 뿌리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뜻한다.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판 돈으로 로기완은 벨기에라는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난민 지위를 얻으려 하지만 자신이 탈북자라는 걸 입증해야만 하는 곤경에 처한다. 한 겨울 아무런 안전망도 제공되지 않은 채 길거리로 버려진 로기완은 몇 개월이 지나야 겨우 자격심사를 받을 수 있는 ‘생존의 시간’에 놓이게 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 낯선 이국의 문화와 언어, 타인을 배척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기완이 버티는 건 어머니가 남긴 유언 “살아남으라”는 말 한 마디가 그 이유다. 

 

그런 그의 삶에 마리(최성은)라는 여성이 들어온다. 벨기에 국적 한국인 사격 선수였지만 아팠던 어머니의 안락사를 아버지가 허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방황한다. 지하 조직이 운영하는 도박 사격대회에 선수로 활동하며, 마약에도 손을 댄 그녀는 죽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리는 참혹한 시간을 애써 버텨내며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로기완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어떻게든 살려는 로기완과 죽고 싶어하는 마리는 삶에 대한 입장도 사는 방식도 정반대 위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기완이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생존의 삶을 살아간다면, 마리는 돈과 마약의 욕망에 자신을 함부러 던져둔 채 아무런 희망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들의 삶은 공통점을 갖는다. 어머니의 사망으로 뿌리 뽑힌 채 흔들리는 삶이 그것이다. 

 

<로기완>은 그래서 탈북 난민의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흔들리는 청춘들에 대한 서사가 겹쳐져 있다. 기댈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들이 그래서 드디어 서로를 공감하게 되고 기대게 되며 행복을 생각하게 되는 과정은 고국을 떠나오게 된 난민이 타국에서 어떻게 서로를 의지해 뿌리를 내리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이면서, 또한 현실에 방황하는 청춘들이 더더욱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둥지를 만들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긴데 이런 내가 행복해질 자격 있는 거가?” 마리와 함께 로기완이 행복한 일상을 잠시나마 되찾았을 때 던지는 이 질문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것이 청춘이든, 난민이든 행복에 자격을 요구하는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다 뿌리가 뽑혀 버려 절망하다 사랑하게 된 이들은 이 지독한 현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강렬한 멜로이면서 인간의 조건을 새삼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회극적 요소가 더해진 <로기완>은 그래서 국가라는 범주가 구획한 속박으로부터 한 개인이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은 최근 들어 <성난 사람들>처럼 글로벌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민자 정서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