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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인물

나영석, 변화를 즐기는 카멜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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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생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한다.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그래서 과거에 트렌드라고 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어떤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트렌드는 가속도를 얹어 나와는 상관없이 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아 달려라 나는 걸어갈테니...’ 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시대의 삶의 지혜지만, 이런 삶에서 비껴 있는 이들도 있다. 트렌드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혹은 트렌드를 주도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예능PD는 바로 그 직업 중 하나다. 시대의 재미를 포착해내지 못하면 예능PD들은 때론 시대착오적인 불편함을 줄 수도 있고, 혹은 ‘노잼’의 굴욕을 맛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빨리 변화해가는 세상을 어떻게 따라잡는단 말인가. 

 

나영석은(뒤에 PD라 붙여야 할지, 크리에이터라 붙여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냥 이름만 쓴다) 그 누구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걸 해내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1박2일’ 조연출 시절부터 봐왔던 후배지만, 그가 현재의 이런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현재의 어떤 모습에서 하나씩 뒤로 시간을 되돌려 반추해가다 보면, 그 때의 어떤 모습들이 현재의 씨앗이 되었을 거라고 짜맞춰 볼 수 있을 뿐이다. 

 

먼저 최근 나영석의 행보를 보자. 최근 화제가 됐던 건 엉뚱하게도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의 팬들이 여는 행사인 ‘생카(생일 카페)’다. 4월8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이 생카에는 아이돌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팬들이 몰렸다.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이서진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것처럼 “진짜 연예인 병”이라고 걸린 걸까 싶지만, 현재의 팬들이 하는 생카 같은 트렌드에 다소 뻔뻔한 얼굴로 꽃다발에 화관을 쓴 킹 받는 콘셉트의 사진을 내건 나영석의 행보는 과감하면서도 놀랍다. ‘아워 땡 보이(Our Ddang Boy)’라는 문구로 표현된 그는 이제 PD라는 틀에서 벗어나 6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유튜버이자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라는 걸 이 행사 하나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본업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는 최근 ‘서진이네2’를 찍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다. 추운 날씨의 아이슬란드에 맞춰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한국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한다는 의도에 따라 ‘서진뚝배기’를 연다고 한다. ‘서진이네2’는 나영석에게는 tvN에서 방영되는 블록버스터급 예능으로서 본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본업과 부업 혹은 본캐와 부캐를 구분하는 일은 그 자체가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부업이 본업이 되고 본업이 부업이 되기도 하며, 일과 취미가 교차되는 일은 이미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며 일상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즐기다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된 빠니보틀이나 곽튜브 같은 이들을 보라. 본캐와 부캐의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시대 변화를 나영석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나영석의 나불나불’을 비롯해 ‘나영석의 와글와글’ 같은 일상적인 코너들을 하면서, 때로는 세븐틴과 함께 한 ‘나나투어’처럼 그 코너들이 발단이 되어 메인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여줬다. 채널 십오야에서 나영석이 하는 이 코너들은, 과거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위해 TV 토크쇼에 나가던 연예인들이 나가고 싶어하는 일순위 토크쇼로 자리잡았다.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1박2일’이라는 국민예능을 만들어내며 스타PD의 반열에 올랐던 그는, 케이블로 영상의 패권이 옮겨가는 시절에 CJ로 이적해 tvN에서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서진이네’ 등등 연달아 히트 프로그램들을 내놨다. 그리고 이제 플랫폼의 시대에서 콘텐츠의 시대로 바뀌는 시점에 CJ를 나와 에그 이즈 커밍이라는 콘텐츠 제작사에 둥지를 틀고 tvN에 맞는 콘텐츠는 물론이고 유튜브 콘텐츠도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로 전면에 세웠다. 그 일련의 변화과정을 보면 실로 카멜레온 같은 변신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계산된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대중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구한 결과에 가깝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은 어딘가 PD라기보다는 크리에이터 같은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다. 그는 대중들이 좀더 리얼한 진짜 여행을 원한다는 걸 알아챘고, 그래서 제작진 역시 ‘함께 여행’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그가 카메라 뒤가 아니라 카메라 앞으로 나와 복불복 게임을 주도하게 된 건 그래서다. 당시 강호동이 틀린 답을 이야기할 때 “땡!”하며 진짜 즐거워 했던 나영석의 크리에이터로서의 씨는 그 후로 여러 프로그램의 햇살과 비를 맞으며 싹을 틔워 현재의 ‘아워 땡 보이’가 됐던 것이다. 

 

이제 모두가 추종하는 트렌드의 시대는 지나고 있다. 그건 매스컬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들이다. 대신 저마다의 취향의 시대가 열렸다. 콘텐츠 소비만 봐도, 과거 가족들이 저녁에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TV를 함께 보던 그런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한 자리에 앉아도 저마다 가진 디바이스들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채널에서 보는 게 지금의 달라진 풍경이다. 하지만 취향의 시대로 들어왔어도 여전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매스컬처의 플랫폼들은 남아있고 이를 통한 소비도 여전하다. 여전히 1천만 관객 영화가 등장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박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러한 과도기에 양자에 걸쳐 살아가는 예능 PD들은 플랫폼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 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영석이라는 페르소나의 탄생은 과도기 같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 변화에 적응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나영석은 자신이 지금껏 계속 고수하고 있는 ‘여행’이라는 소재처럼,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움직여도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변수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이 변화에 놀라운 적응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심지어 적응이나 대처의 차원을 넘어서 이 변수들이 진짜 재미라고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그의 삶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행도 삶도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재미 없겠는가. 그러니 그 변화를 즐기라고.(글:국방일보, 사진:에그 이즈 커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