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이 만든 <라스>와 구라의 기막힌 재회

 

이건 마치 헤어졌던 연인이 어느 날 우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재회한 것만 같다. <라디오스타>와 김구라의 헤어짐과 만남(?) 얘기다. 물론 사전에 MBC 측과 김구라는 <라디오스타> 출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스타>의 대표선수격이 김구라이며,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 역시 <라디오스타>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복귀 후 케이블과 JTBC에서 맹활약한 김구라지만, 그 여세가 지상파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상파 바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김구라의 토크 방식이 지상파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화신>이나 <두드림>에서 김구라는 늘 하던 대로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로서는 편집되는 부분도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이런 편집된 방송은 김구라의 토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두드림> 같은 조금은 진중한 프로그램은 김구라가 들어감으로 해서 어떤 교조적인 분위기를 상당 부분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김구라만의 뾰족한 토크 스타일도 조금은 유화됐던 것도 사실이다. 즉 김구라와 <두드림>같은 지상파의 진지한 토크 프로그램과의 만남은 그다지 시너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화신>은 어떨까. <화신>은 김구라가 들어가면서 토크 형식을 바꾸었다. 공감 설문 토크 방식에서 벗어나 신설된 ‘한 줄의 힘’과 ‘풍문으로 들었소’는 연예인이 스스로 던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는 토크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서 김구라의 역할은 좀 더 과감한 ‘풍문’을 끄집어내는 일일 게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즐겨 하는 것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라디오스타>의 팀워크는 완벽한데 반해 <화신>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반면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이면서도 김구라가 자신의 토크 스타일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즉 김구라에게도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간 <라디오스타>에 복귀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김구라가 이해는 하면서도 늘 아쉬움을 표명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사정은 <라디오스타>도 마찬가지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가 빠져나간 후에도 그 독특한 색깔을 잘 유지해왔다. 대타로 들어온 유세윤은 김구라의 빈 자리를 특유의 콩트식 재연으로 채워주었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그러면서도 늘 김구라를 위한 빈 자리를 남겨두기도 했다. 규현이 정신적 지주라며 김구라의 인형을 꺼내 그의 존재감을 맥거핀화 하는 것은 <라디오스타>의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상파에 김구라가 입성한다면 제일 먼저 복귀할 프로그램이 <라디오스타>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김재철 MBC 전 사장이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에 대해 불가방침을 내려 돌아올 수가 없었고,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후에도 공석이 되어버린 사장 자리 때문에 김구라의 복귀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김구라가 <두드림>에 먼저 합류하고 <두드림>이 수요일 밤 편성이 되면서 사실상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는 물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드림> 폐지가 결정된 것은 김구라나 <라디오스타> 양측에게는 기막힌 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불운하게도 유세윤이 ‘음주운전 자수’라는 해프닝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MBC 내부에서도 <라디오스타>에 김구라의 복귀를 서두르는 것에 대한 확실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양측이 갖고 있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기막힌 우연이 따랐다는 점에서 이것은 실로 인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김구라는 지상파에 확실한 자기의 무대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또 <라디오스타>도 그간 잃었던 대표주자를 복귀시킨 셈이다. 그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유세윤이 아쉽긴 하지만 김구라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은 유세윤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그 빈 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김구라와 <라디오스타>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그간 팬들을 못내 아쉽게 했던 끝없는 어긋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김구라의 <라디오스타>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순신> 최고 시청률 얻었지만... 아이유 호연이 아까운 이유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KBS 주말극에 한 번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이유? KBS 주말극은 기본 시청률이 20%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당시 25%에 머물고 있던 <최고다 이순신>에 대해 누군가 한 마디 농담을 던졌다. “그럼 <최고다 이순신>은 시청률이 5%네?” 모두가 웃고 넘겼지만 그 농담이 남긴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아있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한때 MBC <백년의 유산>이 30% 시청률을 내면서 주말극 경쟁에서 KBS <최고다 이순신>을 따라잡았을 때만 해도 이번 KBS 주말극은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시작부터 불거진 이순신 비하 논란은 그 신호탄처럼 보였지만, 진짜 추락의 원인은 진부한 스토리에서 비롯됐다. 딸 부잣집 이야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고 노래할 것 같은 여주인공, 그를 구원해줄 잘 나가는 백마 탄 왕자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매들 등등.

 

하지만 이렇게 주말극이라고 해도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을 때, 슬슬 고개를 든 것이 ‘출생의 비밀’이다. 이순신(아이유)이 사실은 죽은 아버지의 숨겨둔 딸이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 김정애(고두심)가 그녀를 핍박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친모인 여배우 송미령(이미숙)이 그녀를 도와주는 척 하다가 다시 내치고 그 사실을 안 김정애와 송미령이 드잡이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드라마는 흘러갔다.

 

<최고다 이순신>이 최고 시청률을 회복하게 된 순간은 송미령이 막장 엄마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부터다. 그녀는 이순신이 자신의 딸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상처는 생각도 않고 세상에 그 사실을 공표해버린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자기 중심적인 행위에 시청자들이 드디어(?) 욕을 하며 드라마를 보았던 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이 송미령을 찾아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보복 심리를 자극했다. 또한 이순신이 처한 입장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게 만들었다. 친 딸이 아니지만 친 딸처럼 집 나간 이순신을 찾아 헤매는 김정애의 절절함이나,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이순신이 김정애를 만나 ‘그래도 자기가 여전히 엄마 딸’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찡한 아픔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최고다 이순신>이 지금껏 해온 이야기가 결국은 ‘출생의 비밀’ 한 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드라마들이 사용하면서 이제는 그 패턴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상투적인 코드의 반복. 무려 26회나 방영되면서 이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반복하는 드라마가 있을까.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말하듯 KBS 주말극이 시청률 프리미엄을 갖는다고 해도, 과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내 딸 서영이> 같은 작품은 저마다 분명한 메시지와 차별화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최고다 이순신>은 어떤가. 과연 스스로 칭하듯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청률이 조금 떨어질 때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대체로 극악한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속성이 있다. 송미령이라는 인물이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이러한 막장스럽고 상투적인 스토리를 어느 정도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송미령을 연기하는 이미숙은 그나마 어떤 품위를 지켜내고 있고, 김정애 역할의 고두심도 모성애와 분노가 뒤섞인 역할을 잘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건 애초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유의 연기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으로 충분히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스토리의 진부함이다. ‘출생의 비밀’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최고다 이순신>은 언제쯤 거기서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부터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걸까. KBS 주말극이 그간 쌓아놓은 고정시청층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거기에 기대 그저 그런 코드들로 꾸며진 드라마를 반복하다보면 그 고정층도 이탈할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무엇이 그녀들을 나쁜 언니로 만들었을까

 

이효리는 신곡 ‘배드걸’에서 “욕심이 남보다 좀 많은 여자. 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여자.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 있는”, 이른바 나쁜 여자가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보다, ‘TV속 청순가련 여주인공’보다 더 끌린다고 노래했다. 그녀가 말하는 ‘배드걸’은 “독설을 날려도 빛이 나는 여자. 알면서 모른척하지 않는 여자.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그런 여자다.

 

이효리와 김혜수(사진출처:MBC,KBS)

나쁜 여자라고 수식어를 달았지만 사실 여기서 나쁘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즉 흔히 사회적 통념이 요구하는, “화장은 치열하게 머리는 확실하게 허리는 조금 더 졸라매야” 하고 또 “표정은 알뜰하게 말투는 쫀득하게 행동은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나쁘다’는 표현일 뿐이다. 즉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이런 통념에 빠뜨리는 사회가 나쁘다는 뜻일 게다.

 

공교롭게도 씨엘이 솔로곡으로 발표한 신곡 ‘나쁜 기집애’에서도 나쁜 여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등장한다. 스스로를 ‘나쁜 기집애’라고 부르면서도 “당당한 지조, 고귀한 품위, 눈 웃음은 기본, 내 눈물은 무기”인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를 숨기지 않는다. 흥미로운 가사는 “남자들은 허니라” 부르고 “여자들은 언니라” 부른다는 대목이다. 걸그룹으로서는 특별하게 여성 팬층이 많은 2NE1에게 ‘언니’라는 지칭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른바 ‘나쁜 언니 전성시대’다. 이효리와 씨엘이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에게도 어필하는 부분은 ‘멋있다’는 평판 덕분이다. 즉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여성이 아니라, 이들은 독립적인 여성 자신으로서의 매력을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은 자연스럽게 기성 사회와의 긴장관계를 만들어낸다.

 

김혜수가 <직장의 신>에서 호평 받은 것은 그 캐릭터가 가진 이른바 ‘나쁜 언니 포스’ 덕분이다. 김혜수가 연기하는 미스 김이라는 캐릭터는 장규직(오지호)이라는 정규직 우월주의자와 부딪치면서 동시에 약자로 그려지는 정주리(정유미)를 보호하는 ‘언니’로 등장한다.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미스 김이 취하는 과감한 행보들은 기존 통념들을 뒤집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를 보는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특히 여성들에게 미스 김은 호감 가는 포스 강한 ‘나쁜 언니’로서 자리 잡는다.

 

청순가련형 혹은 공주 스타일의 착한 여성캐릭터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는 과거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대신 악녀나 독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주목도가 훨씬 높아졌다. <백년의 유산>에서 막장 시어머니에 대립하는 막장 며느리 역할로 주목을 받았던 심이영이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대비의 갖은 악행에 맞서 악녀로 변신하는 장옥정 역할의 김태희가 새삼 주목받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독한 세상에 맞서는 독한 언니들에 대한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결국 나쁜 언니 전성시대는 편견과 통념, 심지어 금기로 꽉 막혀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답답증 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급기야 이효리가 ‘배드걸’에서 말하듯, ‘착하게 살아봤자 남는 거 하나도 없는’ 현실에 대해 ‘이젠 못 참겠다’고 나선다. 최근 트렌드처럼 쏟아져 나오는 ‘나쁜 언니들’ 속에는 그래서 그들을 나쁘게 만든 나쁜 세상이 어른거린다.

장윤정 가족을 난도질한 <쾌도난마>, 과연 적절했을까

 

갈수록 가관이다.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는 전혀 게이트키핑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프로그램의 소개란에 들어가면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뜻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 얽힌 사물이나 비꼬인 문제들을 솜씨 있게 처리한다는 뜻. 그 칼을 손에 들고 나선 인물이 박종진이다.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선 프로그램이 아니다. 인상 쓰게 만드는 사회적인 모순과 행태들에 대해 풋 하고 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솔직한 대담, 신개념 시사토크를 박종진이 이끈다.’

 

'박종진의 쾌도난마(사진출처:채널A)'

과연 이 프로그램은 설명처럼 헝클어진 문제를 솜씨 있게 처리했을까. 오히려 손에 든 방송이라는 칼로 한 사람의 가족사를 난도질한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생방송으로 장윤정의 남동생과 어머니를 출연시킨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이 ‘풋 하고 웃어버릴 수’ 있었을까. 먼저 시사 프로그램에서 왜 장윤정의 가족사를 소재로 삼았는가가 의문이다. 그것이 과연 그토록 시사적인 이야기였을까. 혹 그저 자극적인 소재로서 장윤정의 가족사를 방송에 올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윤정이 <힐링캠프>에서 인정한 것들에 대해서 그 남동생과 어머니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은 마치 막장드라마의 한 대목을 보는 것처럼 자극적이었다. 남동생 장경영씨는 “장윤정의 억대 빚은 자신의 사업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차트로 지난 10년 간의 지출내역과 통장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장윤정이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했고, 사람을 시켜 죽여야 엄마와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는 장경영씨의 대목이나, "딸을 위해 내가 스스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장윤정 어머니의 말은 한 가족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심지어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할 수 있는 카카오톡 내용의 공개는 실로 이 프로그램이 자극을 위해서는 한 개인의 프라이버시조차 별 거리낌 없이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장윤정과 장윤정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 놓여진 갈등은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를 떠나 그저 개인의 가족사일 뿐이다. 가족 간의 갈등에서 어떻게 누구 한 사람의 잘못만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다 해도 그것은 결국 그 가족을 파탄으로 만들 뿐이다.

 

한 가족의 내밀한 갈등을 서로 부추기고 끄집어내 그 끝장을 보는 행태를 우리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를 통해 보곤 한다. 심지어 드라마 같은 허구에도 대중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 가족의 파탄을 바라보게 만드는 가학성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진실을 다뤄야 할 시사 프로그램이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될 누군가의 가족사를 난도질하는 것이 막장드라마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물론 이 프로그램은 장윤정 또한 출연시키려고 했다며 편파방송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굳이 가족 간의 싸움을 생방송 무대에 올리려 했다는 그 선정성이다. “전화주면 언제든 출연시키겠다”는 말에 대중들이 분노하는 건 그 때문이다. 특히 방송 마무리에 박종진 진행자가 던진 멘트는 이 프로그램의 기막힌 성격을 드러내준다. “오늘 어머님하고 동생 이야기를 들으셨는데 이 얘기가 사실이 아니다 싶으면 장윤정 씨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이 말은 애초부터 방송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증 절차 자체가 없었다는 자기고백인 셈이다. 과연 이게 방송이 할 일인가.

 

사실이 아니면 방송을 내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 설혹 사실이라고 해도 방송 프로그램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방송에 적합한가를 고민했어야 한다. 뭐든 시선을 잡아끌어 화제가 될 수 있으면 일단 던지고 보는 방송 행태는 카더라 통신과 전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런 막장드라마식의 방송으로 왜 대중들이 피로를 느껴야 하는가. <쾌도난마>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한 개인의 가족사에까지 칼을 휘두르는 막장드라마를 재연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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