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카페 차단에 대한 이중 잣대, 그 기준은 뭘까

 

<아빠 어디가>의 윤후 안티카페는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자체가 충격이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해당 포털은 카페에 대해 접근 차단 조치를 내렸고 운영자도 카페를 폐쇄했고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례적인 것은 대중들이 나서서 ‘윤후야 사랑해’를 실시간 검색어로 채워 안티카페의 흔적마저 지우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윤후 안티카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티카페는 윤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싸이 열풍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리틀 싸이 황민우군의 피해사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반응은 윤후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그는 <한밤> 인터뷰를 통해 “악플을 봤는데 베트남 엄마 꺼지라는 내용”이었다고 그 상처받은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SBS <한밤의 TV연예>에 이 문제로 출연한 박찬민 아나운서는 자신의 딸 박민하에게도 안티카페가 생겨 폐쇄신청을 문의했지만 “카페를 만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에 없앨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째서 윤후 안티카페는 포털이 나서서 접근 차단 조치를 내리면서 박민하 안티카페에는 그러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 이중 잣대는 어디서 나온 걸까.

 

윤후 안티카페의 차단 조치 이유에 대해 해당 포털은 “윤후는 연예인(공인)보다는 일반인에 더 가깝다고 판단해 카페에 대한 접근 차단을 결정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민하는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차단 결정이 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이 기준도 애매하다. 일반인 안티카페는 허용 안 되고 연예인 안티카페는 허용된다는 건 과연 상식적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릴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

 

놀라운 건 윤후 안티카페에 대해 모두가 공분했던 것과, 박민하 안티카페에 대한 반응이 사뭇 다르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박민하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반응들이다.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의 순수함을 잃었다는 식의 비판도 들어있다.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인피니트의 엘에게 박민하가 볼 뽀뽀를 한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윤후의 경우와 달리 갖가지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안티카페의 존폐는 아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인기와 호감에 비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안티카페’라고 치면 무수히 많은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는 이제 청소년인 연예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김유정 안티카페는 대표적이다. 김유정은 작년 <강심장>에 출연해 자신의 안티카페에 들어갔던 경험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 겨우 열 다섯 살. 그녀는 “어린 나이에 관심을 받아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윤후나 김민국, 황민우 같은 아이들의 안티카페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안티카페는 넘쳐나고 그 대상을 아이 어른 따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빠 어디가>로 급부상한 윤후의 안티카페도 생겼던 셈이다. 따라서 윤후 한 명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아이들마저 대상으로 삼는 안티카페의 문제를 해결했다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문제의 근원은 아이들까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방송 문턱을 드나들게 된 작금의 달라진 세태에서 비롯한다. 그 아이들은 천사 같고 예쁘기 그지없지만 방송은 똑같이 이들을 소비하기 마련이다. 인기를 얻게 된 그들은 그만한 팬들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빛과 함께 그림자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팬클럽은 언제든 방향만 바뀌면 안티로 돌아설 수 있다. 팬과 안티 팬의 차이는 그 방향성의 차이일 뿐이다.

 

기왕에 아이들이 방송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상, 이 흐름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겪는 남모를 고통을 방송에 들어왔다고 해서 아이들도 똑같이 치러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방송사든 포털이든 적어도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형돈 돈가스 논란, 무엇이 문제일까

 

‘연예인 돈가스’라는 말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정형돈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형돈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도니도니’라는 제품명, 게다가 정형돈의 캐릭터에서 비롯된 돼지의 이미지가 그를 마치 돈가스의 대명사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이름을 걸고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누구나 이 제품의 사업주가 정형돈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홈쇼핑에 직접 나와 물건까지 팔았으니...

 

정형돈(사진출처:현대홈쇼핑)

검찰이 함량 미달 돈가스를 판매해 76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한 축산물가공업체 대표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소식. 그 때 떠올랐던 ‘연예인 돈가스’라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던 검색어는 그렇게 유야무야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한 케이블 채널의 기자간담회에서 정형돈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정형돈은 “그 부분은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여기서 답변 드리기는 곤란하다”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대응방식은 옳았던 것일까.

 

사실 이런 식의 연예인이 참여한 상품 판매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연예인이 제품을 개발하거나 혹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체로 이름을 빌려주고 적당한 홍보를 해주며 제품 판매액의 몇 프로를 이익으로 가져가는 방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정형돈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이름을 빌려주고 상품을 파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제품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도니도니’라는 돈가스를 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형돈이라는 인물이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제품에서 정형돈의 이름과 ‘도니도니’라는 상품명은 알아도 그 회사명이 뭔지는 잘 모른다. 그만큼 소비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물건을 팔았다면 그 물건의 하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검찰의 함량 측정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모양이다. 즉 냉동상태의 돈가스의 무게를 그대로 재지 않고 흐르는 물에 녹이고 튀김옷을 제거하고 물기까지 짜낸 후 중량을 측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제기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등심 함량이 162g이라면 다른 걸 빼고 실제 등심의 함량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문제는 이번 돈가스 논란으로 불거진 연예인을 내세운 상품 마케팅이 정형돈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로부터 허위, 과장, 기만 등을 이유로 백지영-유리, 김준희, 진재영 등이 징계를 받은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연예인 홈쇼핑이나 쇼핑몰 관련 문제들은 이슈화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꽤 많은 수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을 쳐보면 피해사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연예인이 관련된 상품 마케팅에는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광고비가 결국은 제품 가격을 높여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을 내세워 하는 상품 마케팅이 결국 과도한 연예인 마케팅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상품과 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번 정형돈의 경우에도 홈쇼핑과 정형돈에 무려 35%나 떼주는 바람에 원가절감 차원에서 함량을 속였을 것이라고 검찰은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홈쇼핑에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른바 방송인이 다된 전문가들을 출연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종편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집단 토크쇼에 출연하는 변호사, 의사, 요리사 등등의 속칭 전문가들이 속속 홈쇼핑의 쇼 호스트로 투입되어 상품 판매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신뢰성을 상품 판매에 활용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진짜 전문가인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되는 방식은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방송인으로서 재미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자신의 명성을 빌어 어떤 상품의 대박을 기록했다면, 그만한 책임감도 똑같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연예인의 명성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로부터 받은 명성을 이용해 대중들을 속이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에도 용납되기가 어렵다. 그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관리까지가 책임의 범위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그 연예인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을 믿고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사업에 연루될 때는 훨씬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저 얼굴 빌려주는 것이라고 뛰어들었다가는 그 얼굴에 먹칠하는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성숙해진 언니 이효리는 왜 드센 언니가 됐나

 

5집을 들고 돌아온 이효리에 대한 호평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5집에는 지난 앨범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솔한 삶이 고스란히 손때처럼 묻어났기 때문이다. 트렌드 세터나 섹시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했지만 여기에 조금은 편안해진 스토리텔러 같은 모습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타이틀곡인 ‘Bad girls’도 좋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미스코리아’나 'Holly Jolly Bus', 'Special ' 같은 곡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갖고 나온 이효리에 대해 쏟아지던 호평은 단 몇 주만에 혹평으로 바뀌었다. 음악방송 출연을 2주만 하고 휴식기에 들어간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쏟아졌다. 이효리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여기에 이효리 측근이라는 사람의 쓸데없는 설명은 불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되었다.

 

한 매체는 이효리 측근의 얘기라며 음악방송 중단의 이유에 대해 “요즘 가요계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고, 음악 방송의 경우 아이돌 팬층이 대다수”라며 “이효리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부분과 다소 맞지 않고 고충이 있어 우선적으로 중단하게 됐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액면 그대로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의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 중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따라서 이효리 같은 아이돌을 벗어난(혹은 벗어나려는) 가수들에게는 어색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개념 있는 행보’라고도 볼 수 있는 이효리의 음악방송 중단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받았다. 이유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소비되면서 생긴 그녀의 왜곡된 이미지 때문이다. 똑같은 모습도 너무 많이 보이게 되면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이효리라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 것은 시청자들로서는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도 이효리, 저기도 이효리인 상황은 심지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효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자칭 타칭 예능 고수(?)인데다 실제로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니 그녀를 모시려는 프로그램이 줄을 서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이효리의 입장에서도 예전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있는 PD들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지만, 문제는 예능이 이효리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기 센 여자’로 캐릭터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해피투게더>는 제목에 걸맞게 여러 출연자가 함께 해피한 모습을 보여줘야 균형이 맞지만 이효리가 출연한 분량에서는 거의 그녀의 독무대처럼 그려졌다. “난 쿨한 여자니까.”라는 이효리의 전용멘트는 이런 상황에서는 쿨함을 넘어 ‘기 센 여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심지어 돌직구가 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순수하고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드센 느낌으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맨발의 친구들>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효리는 센 캐릭터를 잡는 더 센 캐릭터로 그려졌다. ‘강호동 잡는 이효리’는 ‘효리성 복통’을 앓는 강호동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센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또 <안녕하세요>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영자에게 독설을 날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이효리는 과거 이영자의 ‘안 좋은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예능이 일관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효리의 ‘기 센 여자’ 이미지는 과거처럼 쿨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는 음악 방송 중단 같은 소신 있는 행동조차 ‘너무 나대는 이미지’로 보이게 만든다. 측근의 설명은 그런 뜻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효리와 아이돌을 음악적으로도 비교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그녀에 대한 달라진 대중정서의 변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 센 여자’ 이미지는 이번 5집 앨범이 기대하게 만든 이효리의 보다 성숙한 이미지와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5집 앨범의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그저 ‘센 언니’가 아니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언니’를 기대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예전의 모습으로 반복 소비되고 있다.

 

새 음반을 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본격 활동을 나선 이효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순심이 같은 새로운 사회활동을 통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 그런 변화된 삶이 음악으로 뭉쳐져 결실을 맺은 5집은 그녀의 새로운 출사표지만 달라진 그녀를 받아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없었던 셈이다.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달라진 자신의 음악적 성향과는 잘 맞지도 않고 또한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의 자신 같은 가수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한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효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게다. 실로 우리네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아닌 싱어 송 라이터나 순위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음악인들이 음반을 냈을 때 그들에 맞게 노래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되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조금은 밀려난 시청 시간대에 남아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달라진 이효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이효리가 예능에서 효과를 봤던 ‘센 이미지’만을 불러와 소비시켰다. 물론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통해 화제도 얻고 시청률도 얻었지만 이효리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효리는 음원을 냈을 때의 호평이, 본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혹평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이미지 노출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효리처럼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에 이제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려는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 깔려 있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경두, 다만 기억 못할 뿐

 

“경두씨가 얼마나 바보 같은 남자냐면요. 자기를 버린 아버지의 여자를 돌봐요. 몸도 성치 않은 노인네를 어떻게 혼자 두냐며, 그쪽의 아버지를 돌본다구요!” 경두(유준상)를 짝사랑하는 연정(조미령)은 이현(성유리)에게 이렇게 외친다. 이현에게 이제는 경두의 정을 떼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연정이지만 그녀가 전하는 말 속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경두 같은 남자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출생의 비밀(사진출처:SBS)'

“나는 어디선가 마음이 베었을 때 경두씨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중략) 뭔가에 마음이 다쳐 가라앉아 있으면 경두씨 안절부절 못하죠.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해줘야 하나 어떻게 해주면 저 사람이 다시 웃을까 그 바보처럼 쩔쩔매는 모습만 봐도 벌써 위로가 되죠. 어떻게 세상에 그런 남자가 있을 수 있는지. 전 남편한테 맞고 살았던 나는 경두씨 같은 남자가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경두는 그런 남자다. 아내였던 이현이 딸과 자신을 버린 채 사라져버려도, 또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려도 그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좋아했던 만두를 챙기는 바보 같은 위인이다. 금쪽같은 딸 해듬이(갈소원)를 그녀가 데려간다고 했을 때도 그녀와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는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바보 중의 바보다. 그러면서도 수박 한 조각을 봐도 먼저 그녀를 떠올리고 혹 아프다는 얘기를 들으면 단박에 달려와 그녀를 위해 죽과 콩나물국을 끓여내는 남자다. 자신을 버리고 딸마저 데리고 떠난 여자의 아버지를 돌보는 남자. 연정이 말하듯 경두는 주변사람들을 웃게 해주기 위해 늘 쩔쩔맨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있을까.

 

<출생의 비밀>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경두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까. 그리고 이런 착하기 그지없는 인물을 내세우면서 왜 제목을 흔히 막장드라마들이 줄곧 사용하는 클리쉐에서 차용한 것일까. 즉 <출생의 비밀>은 제목과는 달리 막장드라마들이 사용하곤 하는 클리쉐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아니 정반대의 길이다. 경두라는 캐릭터가 말하는 ‘출생의 비밀’이란 현재 막장드라마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족을 파탄내는 그런 코드가 아니다. 오히려 파탄 난 가족을 다시 묶어내는 방식으로서의 ‘출생의 비밀’이다.

 

사실 친 부모는 누구였고 그 친 부모가 재벌가의 회장님이었다는 식의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식의 신분상승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출생의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출생의 비밀’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출생의 비밀’을 말한다. 누구나 ‘내가 어떻게 태어났지’하고 물을 때 갖게 되는 그 ‘출생의 비밀’, 바로 누군가의 절절한 사랑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희생이 있었기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 발을 동동대는 경두만 봐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그 캐릭터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어떤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 속에 어른대는 경두 같은 인물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기억에서 지워버린 그 출생의 비밀을 이 드라마는 그래서 경두라는 인물을 통해, 또 해듬이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 이현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녀가 차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도 어쩌면 각자 갖고 있었지만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갔던 경두 같은 인물의 끝없는 사랑으로 존재하는 자신, 즉 각자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경두가 해듬이에게 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자 해듬이는 엉뚱하게도 ‘가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 가지는 가지고, 오이는 오이고...(중략) 왜 가지는 보라색이고 오이는 연두색이고...(중략) 유전이를 공부하면 다 안댜.” 할아버지가 그랬듯 유전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경두가 해듬에게 ‘유전’이가 누구냐고 묻자 해듬이 말한다. “누구가 아니구요. 홍경두가 홍해듬을 낳고 포목점 할머니가 연정 아줌마를 낳고 태만이 아저씨네 개가 애기 개를 낳으면 애기 개가 엄마 개를 닮는 게 유전이여.”

 

실로 복잡하게 뒤엉킨 ‘출생의 비밀’을 자극적인 코드로 다루는 드라마들이 많지만 정작 진정한 의미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는 전무하다. 이것은 어쩌면 자극적인 것들만 기억에 남게 되어버린 작금의 세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태어나 닮아간다는 이 단순하지만 신비롭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드라마 <출생의 비밀>은 이렇게 현 세태가 오독시키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기분 좋게 뒤집고 있다. 실로 ‘출생의 비밀’을 다루겠다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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