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토크쇼, 왜 자꾸 만들까

 

왜 안되는 걸 자꾸 만들어내는 걸까. 토크쇼의 추락은 그 끝을 모른다. 그 신호탄은 유재석이 그토록 오래 이끌어왔던 <놀러와>가 폐지되는 것으로 이미 정점을 찍었다. 강호동의 KBS 예능 복귀작인 신상 토크쇼 <달빛프린스>가 5% 남짓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유재석과 강호동 같은 발군의 MC들이 투입되어도 추락하는 토크쇼를 보며 그다지 놀랄 필요는 없다. 그것은 MC들의 탓이라기보다는 작금의 토크쇼라는 형식 자체가 자초한 일이 더 크기 때문이다.

 

'놀러와'(사진출처:MBC)

작년 신상 토크쇼의 아이콘이 되었던 <힐링캠프>를 보라. 대선후보들이 줄줄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만 해도 <힐링캠프>는 승승장구 했었다. 하지만 단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이 토크쇼의 시청률은 거의 6-7%대까지 떨어졌다. 이경규라는 백전노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현정이 MC로 데뷔했던 <고쇼> 역시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더니 결국 종영하고 말았다. 캐스팅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따왔지만 시청자들은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MBC 목요예능의 고전을 일시에 해결해줄 것 같았던, 강호동의 복귀와 함께 재개된 <무릎팍도사> 역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시청률은 그렇다 치고 화제성면에서도 한참 못 미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놀러와>의 후속작으로 들어온 <배우들>은 심지어 2.3%라는 시청률로 곤두박질쳤다. ‘이럴 거면 왜 <놀러와>를 폐지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만한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토크쇼들은 하는 족족 추락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오는 걸까.

 

그간 토크쇼들이 해왔던 것은 이른바 연예인들의 사생활 끄집어내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강심장>처럼 아예 대놓고 누가 더 센 사생활을 폭로할 것인가를 내세우는 토크쇼나, <놀러와>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스스로 내밀한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토크쇼나 다 마찬가지였다. 또 <힐링캠프>나 <승승장구>처럼 1인 게스트와 좀 더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도 마찬가지고 북 토크쇼라는 새로운 형식을 차용한 <달빛프린스> 같은 신상 토크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그만큼 강력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 너무 많은 토크쇼들이 나와서 무수히 많은 연예인 사생활을 털어놓다 보니 그 신선함도 떨어지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네들 역시 일반인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제 아무리 강력한 사적인 이야기를 갖고 나온다고 해도 그게 연예인이기 때문에 프리미엄을 갖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제 식상한 연예인 이야기보다 오히려 <안녕하세요>에 나오는 일반인들의 사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로 옮아온 것이다.

 

토크쇼가 결국 소통의 쾌감을 주는 예능의 형식이라면 작금의 소통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인식을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연예인의 사적인 이야기나 신변잡기는 더 이상 소통의 쾌감을 주지 못한다. 그것보다 대중들은 이제 좀 더 가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가 훨씬 얇아진 현 세태에서 왜 연예인이라고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우리들이 들어줘야 한단 말인가. 이런 소통에 대한 변화된 대중들의 인식은 작금의 토크쇼들이 일제히 곤두박질친 가장 큰 이유다.

 

또한 작금의 대중들은 소통이 말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동반하는 진정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스튜디오에 앉아서 ‘인생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하는 이야기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좀 더 현실과 현장과 부딪치면서 말만이 아니라 몸과 땀으로 보여주는 소통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토크방식이 아닐까. 토크쇼는 좀 더 스튜디오를 벗어나 현실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연예인 사생활만 팔고 있을 것인가. 아무리 포장을 달리한다고 해도 한 꺼풀 벗겨내면 결국 연예인 사생활 끄집어내기로 일관된다면 유재석이나 강호동, 이경규 같은 발군의 MC들이 온다고 해도 토크쇼는 살아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중들은 진짜를 원한다. 진짜 소통이 되는 토크쇼, 진짜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토크쇼, 진짜 현실이 거기 묻어나는 토크쇼. 바로 그것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다.

강호동 복귀 첫 새 형식, <달빛프린스>가 성공하려면...

 

작년 말에 복귀했지만 첫 번째 새로운 예능 도전으로서 <달빛프린스>는 강호동에게는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콘셉트만 두고 보면 나쁘지 않다. ‘북 토크쇼’라고 지칭한 것처럼 교양과 예능을 한데 묶어내려는 시도는 꽤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강호동의 첫 도전치고는 시청률이 5.7%(agb닐슨)로 너무 낮다. 지난 주 종영된 <승승장구>의 시청률 9.3%에서 꽤 많이 하락한 수치이고, 경쟁 프로그램인 <강심장>이 9.1%로 오히려 시청률이 상승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지표는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달빛프린스'(사진출처:KBS)

그 이유는 아무래도 <달빛프린스>라는 토크쇼가 가진 양면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양과 예능의 하이브리드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갖고 있는 형식이다. 장점으로 보면 ‘책을 읽는다’는 대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책 속의 구절을 갖고 퀴즈 형식으로 내는 문제는 사실 문제 자체라기보다는 거기 출연한 MC들과 게스트들의 사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기 위한 훌륭한 장치로 기능한다.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첫 키스의 구절을 가져오면서, 이서진과 MC들이 농도 높은 첫 키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한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 흥미로움은 예능의 관점으로 보는 시청자들에 한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만일 책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관점을 갖고 있는 시청자라면 소설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결국은 MC들의 신변잡기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달빛프린스>는 본질적으로 교양이 아니라 예능이라는 점에서 웃음과 재미에 더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능적인 토크들이 너무 강하게 진행되다 보면, 마치 책 이야기는 저 뒤로 물러나고(그저 이용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책을 면죄부 삼아 더 강한 사생활 토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첫 회이기 때문에 그 적절한 균형과 조율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달빛프린스>는 사적인 이야기가 폭로와 신변잡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다가가게 하려는 장치들을 이미 갖추고 있다. 시청자들이 참여해 책을 읽고 문제를 낸다는 점이 그렇고 게스트가 문제를 맞출 때마다 얻은 상금을 좋은 일에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책이 갖고 있는 교양적인 이야기들이나 종종 뜬금없이 올라오는 명언 자막도 수위 높은 토크들을 눌러주고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교양과 예능이 가진 양면성은 결과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해 긍정 혹은 부정으로 반응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변수로 작용하는 건 새 프로그램에 등장한 강호동과 그와의 새로운 조합을 이룬 탁재훈이다. 그들이 가진 이미지는 프로그램에 역시 양면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이들 MC들에 대해 평상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시청자라면 그 이미지를 통해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프로그램마저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강호동은 여러 모로 이 부분에서 약점을 안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 세금 문제로 잠정은퇴라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은 강호동에게는 치명적인 이미지의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과거처럼 강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간 방송 트렌드가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미지의 타격으로 인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화요일 밤 경쟁 프로그램이, 자신이 갑자기 잠정은퇴하면서 힘겨워졌던 <강심장>이라는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강호동과 탁재훈의 조합은 토크쇼의 역학관계로 보면 괜찮은 시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애드립의 소유자인 탁재훈의 독주는 강호동처럼 강한 캐릭터와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해지는 특징이 있다(과거에 이 역할은 신정환이 해주었다). 하지만 이 토크쇼만의 특징인 교양과 예능의 접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호동과 탁재훈의 조합은 이 토크쇼 콘셉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식한 콘셉트로 시청자들을 휘어잡았던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이었고, 시종일관 변죽을 때리는 것으로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탁재훈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예능은 웃기는 재주가 아니라 진정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시대가 되었다. 탁재훈이 그토록 절정의 예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만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그의 캐릭터가 좀체 진지해질 수도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세금 문제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강호동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어찌 보면 탁재훈과 강호동은 이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달빛프린스>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달빛프린스>가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교양과 예능의 균형점을 잡아내야 하고,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좀 더 실질적인 과제를 <달빛프린스>는 갖게 된 셈이다. 또한 타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탁재훈과 강호동의 이미지 변신이 가능해져야 프로그램도 살아날 수 있다. <달빛프린스>는 여러모로 숙제가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 숙제들을 넘어설 수 있다면 예능의 새로운 장을 개척해내는 성취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강호동과 탁재훈에게도 하나의 큰 전기가 될 것이다.

<마의>와 <야왕>, 뒤바뀐 남자 캐릭터 왜?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을 보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고 노래 부를 법한 캔디 캐릭터다. 어린 시절 버려져 마의로서 자라오지만 그가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많은 인물들이 그를 도와주고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광현은 여복(女福)을 타고 난 인물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백광현 바라기일 정도다.

 

'야왕(사진출처:SBS)'과 '마의'(사진출처:MBC)

어린 시절부터 백광현을 그리워했던 강지녕(이요원)은 물론이고, 숙휘공주(김소은) 역시 그에게 연심을 품고 뒤에서 모르게 그를 돕는다. 그로 인해서 병을 고친 서은서(조보아) 역시 마음 한 구석에 그를 품고 사라진 그를 찾아다닌다. 사암도인의 제자였던 소가영(염현경)은 연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늘 백광현 옆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다. 즉 <마의>는 백광현이라는 남자 캔디 주변에 그를 사랑하거나 돕는 여성들이 배치된 드라마다.

 

이렇게 된 것은 드라마의 구조상 고난에 빠진 주인공과 그를 돕는 인물들을 병치함으로써 드라마가 균형을 잡히게 하기 위함이지만, 또한 달라진 남녀 관계의 세태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활동도 많아진 여성들과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성들은 그 남녀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도적인 여성과 어딘지 소극적인 남성. 한 때는 이것이 <대장금> 같은 여성 영웅의 성장과정을 공감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마의>의 남자 캔디 백광현은 그 역전된 남녀 관계가 점점 고착화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의>의 경쟁작으로 등장한 <야왕>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야왕>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주다해(수애)와 그를 몸 바쳐 뒷바라지 하지만 버림 받고 복수를 꿈꾸는 하류(권상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주다해를 위해 하류는 아낌없이 모든 걸 주는 인물이다. 주다해가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온 양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때 그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려하기도 하고, 그녀의 학비를 벌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몸을 팔기도 하는 인물이 바로 하류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70년대 전형적인 신파극 속에서 본 적이 있다. 남편 뒷바라지하기 위해 몸을 바치지만 결국은 남편에게 버림받는 그런 여성상. 헌신적인 여성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전형적인 신파극 속의 인물들 말이다. 78년에 김수현 작가에 의해 빛을 본 <청춘의 덫>은 99년에 다시 만들어지면서 심은하의 그 유명한 대사 “당신 부숴버릴거야!”로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런 여성 신파를 뒤집어 놓은 <야왕>의 하류라는 캐릭터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야왕>에서 주다해가 끝없는 욕망의 질주를 하는 능동적인 여성이라면, 하류는 그녀에게 종속된 남성이다. 과거 여성 신파극에서 그 여성이 남성에게 복수를 감행한 것처럼, 이제 하류는 주다해를 향한 헌신이 복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런 남녀 관계의 역전은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성 시청층에 주도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시각이 그 안에는 들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간 듯한 남자 캔디, 남자 신파는 확실히 작금의 남성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지금은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가 아닌가. 남성성의 시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여성성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남성들이 점점 사회적 약자가 되고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드라마를 통해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아빠 어디가', 이것이 바로 예능 비타민

 

“좋은 꿈꿔.” “아빠도 잘 자고요.” “고맙다 아들아.” “아빠도 절대로 감기 걸리면 안돼요.” “고마워.”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어이 내 아들. 아빠도 좋아.”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빠와 아들의 이 짤막한 대화에는 그 끈끈한 사랑이 느껴진다. 평소 아빠를 무서워하며 다가오지 못했던 성동일의 아들 준이. 조금은 자신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아빠 좋아”를 연발하는 아이 앞에서 아빠 성동일은 한없이 푸근해졌을 게다. <아빠 어디가>는 어쩌면 성동일처럼 일에 바빠 조금은 소원해졌던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만큼 아빠를 힐링시켜주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김성주의 아들 민국이는 첫 회에 아빠와 떠난 여행에서 가장 허름한 숙소가 정해지자 폭풍 오열을 했다. 두모리로 떠난 두 번째 여행에서도 최종 목적지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텐트를 치고 자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또 눈물을 쏟아냈다. 아마도 어른들만이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제 아무리 야외취침을 한다고 해도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아쉬워하는 장면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온다고 해도 그 진정성이 묻어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국이의 눈물을 그 자체가 진짜라는 점에서 보는 이를 웃음 짓게 만든다.

 

윤민수의 아들 후는 송종국의 딸 지아를 마음에 두고 있다. “어휴 이 귀염둥이!”라며 마음을 드러내고 삶은 계란 하나라도 지아를 챙겨주려 한다. 자신은 숨긴다고 숨기지만 다 드러나는 그 마음은 아빠들을 미소 짓게 한다. 후가 단 몇 차례의 방영만에 ‘국민 아들(?)’로 등극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본능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삶을 계란을 먹고 싶은 마음과, 지아와 민국이형과 나눠먹을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모습은 그 솔직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저녁 찬거리를 구하러 나온 길에서 만난 강아지나 병아리 때문에 좀체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지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빠 송종국을 딸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아이. 송종국이 지아의 발을 닦아주거나 어설픈 솜씨로 아침을 챙겨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이 땅의 모든 딸 바보 아빠들의 마음 그대로일 게다. 한편 이종혁은 아빠라기보다는 삼촌 같은 모습이다. 귀차니스트들이기 마련인 아빠들의 자화상과 그럼에도 친구처럼 아들과 놀고 싶어하는 나이 들어도 여전히 악동 같은 모습이 거기서는 묻어난다.

 

사실 <아빠 어디가>는 특별히 대단한 이벤트가 있는 예능이 아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떠나 하는 것이라고는 잠잘 방을 택하고, 저녁거리를 구해 챙겨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눈을 뜨며 한바탕 시골길을 걷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더해지기 보다는 빼는 것으로서 더 특별해진 예능은 그저 달걀 몇 알만 갖고도 충분한 웃음을 전해준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

 

무언가 많은 것을 설정하고 기획하기보다는 그저 아날로그적인 공간에 아빠와 아이를 함께 내버려두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담담히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예능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준다. <일밤>이 지금껏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웃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말 예능으로서 그 프로그램을 가족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아빠 어디가>는 그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놓았다. 이제 주말이 되면 이 아이들과 아빠들의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매번 부대끼면서 마음만은 그렇지 않지만 가족들과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지는 게 우리네 아빠들이다. 그런 아빠들에게 <아빠 어디가>는 비타민 같은 웃음을 전해준다. 그 아이들이 전하는 순수한 웃음은 그 자체로 아빠들에게는 힐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들의 가족과 아이를 돌아 보는 기회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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