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식스팩 좀 봐. 남자라면 모름지기 저렇게 관리되어 있어야 남자지." 이른바 짐승남이라 불리는 아이돌이 보기 좋게 셔츠를 쫙쫙 찢을 때마다 내 마음도 쫙쫙 찢어졌다. 그 때마다 불쑥 튀어나온 내 원팩은 한없이 초라해졌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관리하면 저렇게 할 수 있어." 괜한 호기에 등 떠밀려 덜컥 동네 헬스클럽을 끊어버렸다. 그래 꽃중년이 대세라는데 꽃중년은 못돼도 배불뚝이는 면해야지, 하며 찾은 헬스클럽. 하지만 하루 동안 트레이너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고 나자 생각이 달라진다. 이게 운동이야? 노동이지. 이러다 늙는다 늙어. 괜스레 반복적인 헬스보다는 특별강좌식으로 한편에서 매일 벌어지는 요가나 필라테스, 에어로빅 같은 게 눈에 들어온다. 저거라면 할 수 있겠는데... 마음은 굴뚝이지만 좀체 그 선을 넘어 들어가지 못한다. 온통 여자들뿐이기 때문이다. 왜 트레이너는 남잔데, 이런 강좌에 남자는 한 명도 없는 걸까. '남자들은 좀 즐겁게 운동하면 안돼?' 하는 괜한 트집이 생긴다.

사실 남자들이 몸을 가꾸기 위해(물론 건강도 챙기는 것이지만) 운동을 한다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남자의 불쑥 나온 배는 '인격'이자 '여유'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젠가부터 짐승남들이 등장했고, 쩍쩍 찢어놓은 셔츠 사이로 식스팩을 드러내면서 이 '인격'은 흉물이 되어버렸다. 과거 남자를 보던 기준은 능력이었고, 그래서 이 여유로운 뱃살이 그 능력의 한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매력이 기준이 되는 시대. 그러니 잘 가꾸어진 보기 좋은 몸은 남성의 또 다른 가치가 된 것. 하지만 TV 화면을 통해 짐승남들의 식스팩이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높아진 시선과, 실제 현실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미 여성들은 그 미적인 삶을 추구하고 영위하고 있지만, 과거의 잔상이 남아있는 나 같은 중년남성들은 헬스클럽 한 구석에서 짐승 같이 고통을 호소하며 뱃살이나마 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일찍 포기한 현명한 친구들은 저마다의 원팩을 두드리며 내게 말한다. "짐승남 되려고 짐승처럼 살아야겠냐? 먹어. 먹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헬스클럽을 나가지만 이 놈의 몸은 좀체 변할 생각이 없다. TV 속 짐승남들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며,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라 느껴질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면 여전히 진선미로 순위가 매겨지지만, 이제 그 순위는 역전되었다고. 진의 시대에서 선의 시대를 거쳐 이제 미에 도달한 지금, 미는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이 미의 여신 아래 연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헬스클럽 문턱에서 나는 여전히 햄릿처럼 갈등한다. 짐승남이 될 것인가. 짐승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글은 사보 모터스 라인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나가수', 경쟁말고도 할 이야기는 많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경연이다. 그 서바이벌이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생기고 최고의 무대가 생기며 최고의 가수들이 재발견된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경쟁에만 집중하게 되면 자칫 웃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 처음 '나는 가수다'라는 새로운 예능을 짤 때 가수만이 아니라 매니저로 개그맨들이 그들과 짝패를 이루게 한 것은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가수다'의 카메라가 지금껏 지나치게 무대에만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이 특별한 예능의 첫인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가수다'는 대중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수들은 긴장하고, 긴장한 만큼 최대치의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은 호응을 넘어서 감동한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 오르는 가수들이 가진 이야기들은 노래와 어우러져 깊은 감흥을 선사한다.

이 '신들의 무대'에, 개그맨들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자칫 나댔다가는 오히려 욕을 먹기 일쑤다. 대중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중인데, 개그맨들이 웃음을 주기 위해 툭 던지는 한 마디는 빵 터지지 않으면 긴장감만 뺏는 객쩍은 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경연이 벌어질 때 재미를 위해 하는 개그맨들의 순위놀이가 논란이 된 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어떤 균형을 잃고 예능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는 전조이기도 하다.

임재범의 등장은 '나는 가수다'의 득이면서 독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효과는 경연의 야생성을 임재범이 확실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헝그리 록커 같은 이미지로 정글 같은 무대에 올라 마치 죽을 듯이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는 물론 가수들마저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야생의 느낌은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터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가수들은 지쳐갔고 무대를 씹어 먹을 듯 피를 토하며 부르는 모습들은 처음에는 전율이었으나 차츰 피로감으로 변하게 되었다.

다시 예능으로의 귀환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 마침 임재범이 맹장수술로 하차하게 된 것은 물론 신정수 PD의 말대로 어떤 존재감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는 가수다'의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물꼬를 누가 트느냐는 것이다. 개그맨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은 대중들이 바라는 일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의 주인공은 개그맨이 아니라 가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설 수 있는 건 가수들이다. 김범수는 고맙게도 그 총대를 기꺼이 멨다.

고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고 비주얼에 집착하는 김범수의 변신은 그 신호탄이 되었고, 무대에서 쪼쪼댄스를 박명수와 함께 추려고 준비하는 김범수의 모습은 유쾌한 도발이었다. 한때 '얼굴 없는 가수'를 콘셉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가 거꾸로 비주얼을 강조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지금까지 경쟁의 긴장감으로 굳어진 '나는 가수다'의 어깨를 풀어주었다. 가수들은 웃었고, 조금 풀어진 분위기에서 개그맨들은 그간 참아왔던 애드립을 쏟아냈다.

애초에 이렇게 과도한 긴장감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가수가 바로 김건모다. 김건모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다 입술에 진짜 립스틱을 바르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건 그가 이 균형점(오디션의 긴장감과 예능의 이완)을 맞춰 보려한 시도였다. 물론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 시기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대중들에게 오롯이 긴장감이 넘치는 경연장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으니까. 즉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이 자신의 가창력을 완전히 대중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범수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이미 이 무대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소라의 '제발'을 재해석한 무대에서 경연 1위를 차지했고, 그 어려운 조관우의 '늪'을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마치 헤비메탈을 하듯 불러 대중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그러니 김범수는 이제 가창력이 아니라 가수의 또 다른 면모들을 보여줘도 되는 상황이다. 무대를 즐기는 것이 가창력 자랑보다 관객들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가진 가창력은 이미 확고하게(어쩌면 지나치게) 대중들의 인식에 자리했다. 하지만 이것은 가수의 정체성에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가창력 자랑을 넘어서서 가수의 또 다른 정체성을 끄집어낼 시기다. '나는 가수다'는 바로 그 다양한 가수의 매력을 하나하나 뽑아내 정체성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김범수의 댄스가 기대되는 건 '나는 가수다'가 지나친 경연의 피로감을 덜어내고, 이 다양한 가수의 매력을 볼 수 있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어떻게 현실과의 거리를 유지했나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과연 연애를 조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을 게다. 하지만 조작을 통해 성공했다고 해도 그건 진정한 성공이 아닐 지도 모른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패러디한 '무도 연애조작단'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영화와 실제 상황은 그만큼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영화에서는 결과가 중요할 지 모르지만, '무한도전'에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본래 '무한도전'은 도전의 성공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무도 연애조작단'은 역시 '무한도전'다운 결과물을 선보인 셈이다.

사실 '무도 연애조작단'이라는 소재는 자칫 잘못하면 자극적인 엿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마치 '치터스' 같은 타인의 사생활을 숨어서 바라보며, 그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도 연애조작단'은 만만한 아이템이 아니다. 성공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MC들이 개입했다가는 큰 논란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현실조작이 되는 셈이니까.

하지만 '무한도전'은 모든 과정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베테랑다운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강복씨가 의뢰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멤버들이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바로 그 여성을 찾아가 이 모든 걸 다 밝힐 것인지 아니면 일단 강복씨에게 그 의사를 물어볼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질질 끌지 말고 속전속결로 결과를 알아보자는 박명수와 달리, 정형돈은 강복씨와 그 여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맞섰던 것. 만일 여기서 고민 없이 행동했다면 그 결과는 의외의 파장을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중요한 건 이 기대와는 다른 결과들에 대해서 멤버들이 개입하기 보다는 저들끼리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과정 자체를 '무한도전'은 웃음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귀가 얇은 정준하는 박명수와 정형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을 보여주었고, 박명수가 유재석에게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정준하는 결국 유재석의 결정에 따르려는 박명수를 비꼬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이로써 며칠 후 강복씨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리고, 그녀에게 전화통화를 통해 이 상황을 전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오히려 강복씨를 걱정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는 훈훈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순수한 마음이 드러났고, 또 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이의 따뜻한 마음도 드러난 셈. 결과는 실패였지만 과정은 성공이었던 셈이다.

한편 오랜 친구로 지내오면서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은정씨는 무심한 척 보이는 남자친구 바울씨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애인인 척 연기자를 투입하기도 했다. 마치 숨어서 명령을 내리는 아바타 소개팅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무한도전'은 여기서도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았다. 박명수는 엉뚱한 명령을 내려 웃음을 주려고 했지만, 주변 멤버들이 만류한 것. 오히려 프로그램은 박명수를 '아바타 중독자'로 캐릭터화해서 웃음을 주었다.

영화관에서 모든 걸 밝히고 은정씨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장면도 편집을 통해 몰래카메라의 자극을 상쇄시켰다. 결국 친구로 남기로 함으로써 '연애조작(?)'이 실패했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후, 마지막에 후일담처럼 이 몰래카메라의 상황을 살짝 보여준 것. 흔쾌히 이 상황을 받아들인 바울씨의 사전 허락을 통해 이 모든 영상들이 방영되고 있다는 것을 그 편집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만일 방송이 좀 더 이들의 상황에 개입을 했다면 어쩌면 이 '연애조작'은 성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리얼이 아니고 말 그대로 조작이 된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조작'이라는 단어를 소재에 붙였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적절한 현실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모두가 바라는 판타지가 아니라 결국 실제 현실대로의 실패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다행스럽게도 지극히 '무한도전'다운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도 과정만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무한도전'은 '연애조작단'을 통해서도 보여주었다.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목소리에 침이 고이는 이유

'한국인의 밥상'(사진출처:KBS)

도대체 최불암의 목소리에는 고소한 참기름이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지 내레이션만 들었을 뿐인데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만일 내레이션에도 어떤 급이 있다면 최불암은 단연 최고 등급의 공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마치 밥처럼 담담하기 그지없는 프로그램에 때론 고소한 참기름 향내를 더해주고, 때론 훈훈한 밥의 온기를 전해주는 최불암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을 진수성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깔리는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잘 들어보면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듯 찰기가 흐른다. 그래서 그걸 듣는 사람 역시 똑같이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것일 게다. 전국에서 찾아낸 우리네 밥상 앞에서 마치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그래서 내레이션이라는 기능적인 장치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밥상을 소개하면서 그걸 보고 듣는 이들의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것만큼 가장 큰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식욕을 만들어낼 정도의 찰기 있는 목소리는 지나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심지어 담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찰기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또박 또박 한 마디 한 마디 마치 대사의 맛을 살리듯 읽어내는 최불암의 단단한 발성에서 비롯된다. 식욕이 느껴지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함을 주는 목소리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하면서도 기성의 시끌벅적한 음식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한다.

최근 '트루맛쇼'라는 다큐멘터리가 들춰낸 음식 프로그램들의 치부는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자극에 머물러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밥상'은 이 상품으로 전락한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가치로 복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결정 맛 대 맛'이나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음식 버라이어티쇼나, 저녁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VJ특공대'식의 음식소개 코너들이, 음식 자체를 제대로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욕망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밥상'은 지극히 담담하게 음식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집중한다. 마치 음식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의 맛이 아닌 슬로우푸드의 맛처럼 이 프로그램이 담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이 조금은 완고한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고함과 진지함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최불암이라는 존재다. 내레이션 중간에 갑자기 화면 속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처럼 거기 서 있는 최불암은 목소리에 연기까지 덧붙인다. 어느 시골길에서 혹은 어느 어촌 바닷가에서 혹은 어느 산사에서 마치 전국의 음식을 진지하게 연구하려 돌아다니다 멈춰선 듯한 최불암은 설명 중간 중간에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를 집어넣는다. 때론 허허로운 웃음을 내레이션에 넣음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꽉 찬 정보전달에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신들린 듯한 내레이션을 더더욱 맛나게 만들어주는 건 대사다. 마음으로 먹는다는 사찰음식과 스님들의 수행을 "억지로 물을 내지 않아도 익어가며 물을 내는 열무김치처럼" 같은 적절한 표현으로 쓰여진 대사는 최불암의 목소리와 착착 맞아 떨어지며 감칠맛을 더하게 해준다. 그래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맛좋은 상차림은 단지 음식이라는 소재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재와, 그걸 차근차근 정보적으로 담아낸 영상들과, 때론 정겹기까지 한 어느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물론 잘 준비된 재료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준비된 재료에 맛좋은 표현으로 손맛을 내는 최불암이라는 '한국인의 밥상'만이 가진 비기(?)다. 최불암.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는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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