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노래로 얘기한 옥주현의 '천일동안'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천일 동안', 힘들었던 걸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옥주현은 이 날 미션으로 제시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곡 부르기'에서 '천일 동안'을 불렀다. 그녀는 긴장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연습한 시간을 믿는 편"이라며 "긴장하지 않고 그 연습한 만큼 내가 생각하는 그 드라마가 잘 짜여져서 깨지는 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소망이자 소원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항상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연습과 기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옥주현이라는 가수가 가진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특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늘 비호감으로 치부되며 살아온 삶 때문이었을까. 그 무대는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이승환의 '천일 동안'이라는 노래는 옥주현이 부르자 그녀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어왔지만 '어리석게도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돌아서 버린 대중들을 향해 그래도 괜찮다며 그래도 당신을 사랑했다며, 또 천일이 지난 후에도 사랑할 거라며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다.

"그 천일동안 힘들었었나요. 혹시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었나요. 용서해요. 그랬다면 마지막일 거니까요." 옥주현은 그렇게 마지막 무대처럼 노래했고, 결국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감정을 폭발시켰다. "난 자유롭죠. 그날 이후로. 다만 그냥 당신이 궁금할 뿐이죠.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마요." 어느 순간부터 비호감이 되어버린 스타는 그렇게 대중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간절하게 노래에 담아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천일 동안'이라는 노래는 그렇게 옥주현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었다.

자신이 출연한다는 얘기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그녀. 이른바 '비호감 연예인'이 되어 무엇을 해도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바뀌어버리는 그녀의 처지. 그래서 인터넷의 '옥'자만 봐도 두려워 눈을 돌리게 된다는 그녀. 그런 사연들을 모두 짊어지고 올라온 무대에 긴장하지 않을 가수가 있을까. 그 극도의 긴장감과 그간의 회한이 겹쳐지면서 그 무대는 그대로 뮤지컬 같은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 4분여 남짓의 무대가 그녀가 짐처럼 갖고 있는 비호감의 이미지를 모두 털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이 '뮤지컬 같다'는 말조차 비난의 화살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니까. 왜 노래를 해야지 뮤지컬을 하냐는 거다. 이른바 이 모든 것이 연기였고 쇼였고 연출이었다는 거다. 따라서 이 감동은 거짓감동이며, 1등을 한 것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가수가 갖는 이미지는 똑같은 상황을 정반대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그녀는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일 게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짧은 4분여 남짓 동안 옥주현이 '천일 동안'을 통해 해준 이야기는 분명하다. 그녀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그 무대에 섰고, 그 회한조차 노래에 담아 불렀다는 것이다. 그게 뮤지컬 같다고 해서 그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진심이 그녀가 바랐던 것처럼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음은 한 쪽에서 전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녀는 이 무대를 통해 앞으로도 '천일 동안'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흐른 뒤에 많은 이들은 기억하지 않을까. 닫힌 대중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도하던 한 가수가 있었다는 것을. 방영되기도 전부터 또 방영된 후에도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옥주현의 무대. 가수는 그렇게 노래로 말하고 있었다.


 '최고의 사랑', 무엇이 독고진에 빠져들게 하나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범수),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파스타'의 최현욱(이선균),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 그리고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 이 또 한 명의 까칠한 남자가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전형적인 대스타지만, 실제로는 소심하고 심지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남자. 도대체 이 남자의 어떤 매력이 대중들을 앓게 만드는 걸까.

먼저 그가 대중스타라는 점이다. '최고의 사랑'은 제목에 과감하게 '최고의'라는 표현을 넣었듯이 이 시대 로맨틱 코미디에서 최고의 판타지를 제공하는 캐릭터를 세워둔다. 즉 이제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최고의 로맨틱 캐릭터는 경제적 부를 거머쥔 사장님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대중문화 시대의 영웅인 대중스타라는 얘기다. 독고진은 그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한물 간 스타로 등장하는 구애정(공효진)과의 로맨스는 연예계판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이 독고진이라는 캐릭터의 이상행동(?)이다. 그는 구애정 앞에 서면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수치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 수치스러움을 마구 구애정에게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나면 이 사내는 또 너무 했다 싶은 마음에 구애정의 반응을 눈치본다. 또 자신은 구애정 따위에는 눈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훈남 윤필주(윤계상)의 등장에 긴장하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하게 된다. 도대체 독고진이라는 남자는 구애정을 진짜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은 구애정도 마찬가지다. 독고진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신발경매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자신을 구원해주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비호감 이미지가 자칫 독고진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독고진과 거리를 두려 한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독고진은 자신의 사랑을 자기가 차고 있는 시계가 알려주는 심박수치로 확인하려 드는 인물이다. 그가 구애정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녀를 만나고 60/90의 안정된 수치를 넘겨버린 심박수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심장수술을 할 때 국보자매의 '두근두근'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 가슴떨림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독고진이라는 캐릭터는 그 연예인이라는 직업적인 위치 때문에 자신의 실체와 만나지 못하는 불운한 인물이다. 그는 늘 폼을 잡고 다니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큰 소리를 뻥뻥 쳐대지만 사실은 지극히 소심한 실체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조차도 자신의 실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 따라서 까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겉모습과 때때로 보이는 약한 모습이 교차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들의 열광이 생겨난다.

그것은 멋진 모습 이면에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구애정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행동을 보여주지만 둘 사이로 들어가면 거의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구애정의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가 된다. 최고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그가 그녀 앞에서는 코믹할 정도로 소심한 인간이 되는 모습은 이 캐릭터에 최고의 판타지를 부여한다.

'마이웨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독고진이 구애정을 잡기 위해 어린 시절 아팠던 심장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그가 최고의 스타인지는 몰라도 사랑에 있어서는 거의 어린이에 가까운 초보자라는 걸 보여준다. 심장 수술한 자국을 보여주며 "내 가슴은 찢어져 있어. 하트 브레이크. 내 심장이 네 앞에 뿌려주는 진달래꽃이야. 너무 아파."하고 엄살을 부리는 장면은 독고진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폼을 한껏 잡지만 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구애정의 이어지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청순가련하기에는 바디가 너무 짐승"인 그는 그래서 스타이면서도 사랑이라는 새로운 실체 앞에 어찌할 줄 모르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지금 불고 있는 '독고진 앓이'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스타들을 바라보고 또 보고 싶어하는 그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최고의 사랑'을 꿈꾸게 하는 최고의 캐릭터는 우리가 스타를 통해 바라듯이, 최고의 멋진 모습이면서 또한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사랑을 모른다면 그 사랑을 가르쳐주고픈.


남궁민, 최고 비운의 캐릭터를 만나다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마루 오빠... 더 이상 안 찾으려구요."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황정음)의 이 대사는 누구에게 한 것일까. 그것은 봉마루일까, 아니면 장준하일까. 봉마루였지만 이름을 버린 장준하(남궁민)에게 봉우리가 던지는 이 대사는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갑자기 "마루 오빠..."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 그것은 마치 거기 서 있는 봉마루에게 건네는 말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오빠로 서 있던 봉마루는 그녀의 말에 얼음처럼 얼어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이어진 "더 이상 안 찾으려구요."라는 대사는 거기 서있는 봉마루를 다시 장준하로 돌려놓는다.

봉우리의 이 짧은 대사 하나는 봉마루이자 장준하인 이 비운의 인물의 캐릭터를 모두 설명해준다. 한 때 봉우리의 오빠, 봉마루였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그는 봉마루가 아니라 장준하이고 싶어한다. 이 금기된 사랑을 앓는 장준하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돌아보기 싫다 해도 어떻게 또 하나의 삶이었던 봉마루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정신지체인 봉영규(정보석)의 아들로 자랐던 시절부터 갖게 된 모성부재의 애정결핍은, 아들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복수를 위해 그를 이용하려는 태현숙(이혜영)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의 비극적인 상황은 이 봉마루와 장준하 사이에 서 있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봉마루가 사실은 그가 지금 복수하려는 최진철(송승환)과 김신애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만일 이 복수가 이뤄진다면 그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갖게 되는 셈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눈을 찔러버리는. 그런데 이것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멈추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봉우리에게 자신은 원수의 자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다. 그 모든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된 봉우리는 그의 과거를 지워버린 채 장준하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마루 오빠를 찾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장준하가 가진 캐릭터에는 이처럼 고전 비극의 인물들이 겹쳐져 있다. 그는 히스클리프이면서 오이디푸스이며 로미오다. 봉마루로서의 아프지만 선량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못내 덮어버리고 장준하로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그의 갈구가 비뚤어진 욕망이 아니라 절절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건 그에게 겹쳐진 이 엄청난 비극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과 대적하는 비운의 영웅이다. 그것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

'내 마음이 들리니'의 주인공은 장준하가 아니라 차동주(김재원)다. 그런데 장준하가 오히려 더 주목되는 건 이 운명과 대적하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단지 복수를 꿈꾸는 차동주라는 캐릭터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봉마루이자 장준하라는 캐릭터는 그것을 연기하는 남궁민이란 연기자의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어느 멋진 날', '부자의 탄생'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영화 '나쁜 남자'나 '비열한 거리'에서 연기를 했지만 그의 존재감이 이처럼 두드러진 적이 있을까.

하지만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의 남궁민은 다르다. 그는 때론 악마같이 혹은 어린 아이 같이 욕망을 갈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우수에 찬 장준하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되어 있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열정과 냉정이 순간순간 오가는 그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기도 하다. 연기자는 연기력으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좋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 속에 꿈틀대는 연기자로서의 결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궁민이란 연기자는 장준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이 엄마가 온 몸으로 전한 위대한 모성의 진정성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이렇게 고통스런 삶이 있을까. '휴먼다큐 사랑'에 얼굴을 보인 고 최진실씨의 엄마 정옥숙씨. 힘겨운 결혼생활에 논일, 밭일, 뜨개질, 외판원, 심지어 포장마차까지 하며 살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아 스스로도 죽자 결심을 했던 그녀. 그 때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어린 최진실의 손이었다. 최진실은 훗날 한 인터뷰를 통해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건 가난이 아니라, "이러다 엄마가 떠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었다고 술회했다.

가난이 엄습해 급식비는 못내기 일쑤에다 학비를 못내 불려 다니고, 휴학으로 돈 벌기 위해 구로공단에 간 동생은 다리를 다친 채 며칠을 굻고 빵 한쪽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자식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지내다가 거미줄까지 쳐진 동네 연탄광에 모여 살면서도 그들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세 식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기자가 되어야겠다. 돈 벌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녀의 선택이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해 돈을 벌어 그렇게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행들. 자식들만큼은 아빠 없이 살게 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이혼만은 안 하겠다 버티며 힘겨워했던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세상이 나쁜 말들을 만들어내고 결국 사지로까지 딸을 몰아세울 때 무기력하게 울 수밖에 없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떻고. 그 서로의 버팀목이던 수족 같은 자식들을 하나하나 먼저 떠나보내며 겪었을 엄마의 찢어지는 가슴은 뭐라 표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엄마의 갈라진 손마디 마디가 못내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식을 따라가고 싶지만 남은 아이들이 있어 살아내야 하고, 그래서 죽어라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세월을 그 거친 손마디가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매일을 눈물로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도, 먼저 고인이 되어버린 최진실과 최진영을 고스란히 닮은 환희와 준희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엄마는 마흔 두 번째 딸의 생일날 묘소를 찾아서도 하늘에 있을 딸 걱정뿐이다. "네 아들 딸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너한테 받은 거만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랑을 못해줘서 마음이 아프다. 사랑한다 진실아." 그러면서 이 엄마는 그래도 "우리 딸하고 아들이 효녀 효자"라고 말한다. 자식들 없이 갔으면 자신이 저희들을 따라갈 줄 알고 자식들을 놓고 갔기 때문이란다. 또 먹고 살라고 재산을 남겨놓고 갔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대해 심지어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한다.

이 모성이 놀랍고 위대한 것은 심지어 자신 속에 가시처럼 박힌 한마저 지워내며 먼저 아이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혼으로 힘겨웠을 딸을 생각하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아이들 아빠. 그래도 그녀는 그를 받아들인다. 아이들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을 남겨주지 말고 다 잊어버리고 아빠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모성이 아니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 딸이 그렇게 사랑하던 두 아이를 나한테 이렇게 선물로 주고 갔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돌보고 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나는 견뎌야지 하면서도 정말 너무 딸하고 아들이 보고 싶어요. 세월이 빨리 흐르면 우리 환희, 준희도 빨리 클 것이고 나는 또 그만큼 우리 딸이 있고 아들이 있는 하늘나라로 다가가는 거니까."

아이들에게 소원을 하나씩 말하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진실이 엄마는 "하나님이 세상에 죽지 않게 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 받아들이기 힘든 절망 속에서 위대한 모성이 찾아낸 한 줄기 긍정이 아닐까. '휴먼다큐 사랑-진실이 엄마' 편이 보여준 것은 절망의 끝단에서도 보살필 가족이 있어(어쩌면 그 희망과 기쁨 때문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모성의 위대함이다. 그리고 이 온 몸으로 전한 위대한 모성의 진정성은 연예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루머에 대해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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