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투표로 흐르면서 사라진 각본 없는 드라마

'위대한 탄생'

'위대한 탄생'의 톱3가 결정됐다. 김태원 3인방 중 미라클맨 손진영이 탈락했고, 이태권, 백청강, 쉐인이 살아남았다. 많은 이들은 이 결과에 대해 그다지 놀라거나 화제에 올리지 않는다. 당연하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눈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톱3가 결정된 것 치고는 그 반응이 너무 미지근하다. 작년 '슈퍼스타K2'에서 톱3로 장재인과 존박, 허각이 남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본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뒤로 갈수록 긴장감도 높아지고 화제도 커지기 마련이다. 시청률도 당연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은 어딘지 생기를 잃은 모습이다. 누가 합격하고 누가 탈락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떨어진 상태다. 그러니 시청률도 오를 수가 없다. '위대한 탄생'의 시청률은 지난주 21.3%(agb닐슨)에서 오히려 1% 정도 하락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일까.

가장 큰 것은 결과가 이미 예상된다는 데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무리 기량을 갖고 있어도 당일 무대에서 실수를 하거나 제 실력을 못 보여주게 되면 떨어질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당일의 무대는 그다지 당락과는 상관없는 오디션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위대한 탄생'은 당일의 오디션에 대한 투표라기보다는 인기투표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기투표 역시 대중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 날의 무대와는 상관없이 팬들의 인기투표로 결정된다면 오디션은 하나마나한 것이 되어버린다. '위대한 탄생'이 맥 빠지는 오디션이 된 이유는 바로 이 하나마나한 오디션이 되면서 무대의 긴장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무대에 서는 경쟁자들 역시 점점 도전적인 무대보다는 안정적인 무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은 더 무기력해진다.

인기투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이 시스템의 더 큰 문제는 심사위원의 권위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긴장감은 당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의 냉정한 심사에도 있다. 심사위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경쟁자들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미를 갖게 된다. 즉 혹평을 받았을 때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여주고, 또 호평을 받았을 때 그 평이 세간에 화제가 되는 것은 사실상 심사위원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에서는 이은미와 방시혁이 백청강의 무대에 제 아무리 혹평을 하고 낮은 점수를 줘도 긴장감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유는? 심사위원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결국 인기투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사위원의 심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의미도 별로 없다. 왜 심사위원이 필요한가, 하는 볼멘 네티즌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오히려 심사를 하지 않고 매번 '감동'과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김태원이 당락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이런 심사위원이 불필요해진 '위대한 탄생'이라는 이상한 오디션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톱3가 결정되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음 회에는 누가 떨어질 것이고 최종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예측은 대체로 맞아떨어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양상이 벌어진다면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정해진 대로 굴러가는 반전 없는 드라마로 실망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과연 '위대한 탄생'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나가수', 음악 듣는 귀를 살려낸 비결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2006년 한 가수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올랐다. 그녀는 노래를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작된 '거위의 꿈'. 바로 인순이가 재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끼는 듯 했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게시판에 호평이 쏟아지고 그녀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로 퍼 날라졌다. 인순이는 과거에도 그렇고 그 때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다. 하지만 그 무대 이전까지 인순이는 평가절하 되어 있었고, 그 무대에 선 이후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 후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아이돌이나 힙합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가 되었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작곡가나 작사가 혹은 가수 그리고 프로듀서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에 의해 음악은 완성되고 그것을 우리는 선택해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이 음악 역시 그 완성은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소리와 음과 비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걸 듣는 귀다. 인순이의 노래가 달리 들린 것은 노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걸 듣는 대중들의 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인순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더 집중해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늘 배경음악처럼 훅 지나가버리던 음악은 대중들의 귀에 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면 깊은 감동이 몰려오다가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그 라이브가 주는 직접적인 음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TV라는 공짜 미디어가 갖는 산만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돈 내고 음악을 들으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이미 그 귀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저 틀어놓으면 흘러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귀는 좀체 준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중견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을 말한다. 맞는 얘기다. 이 오디션 형식의 무대는 중견 가수들조차 잔뜩 긴장하게 만들어 그 집중력을 높여놓기 때문이다. 곡에 대한 해석이 과감해지고, 짧은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해 부르는 그 무대에서 가수들의 가창력은 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창력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프로그램의 힘이다. 본 경연이 시작되기 전, 서로의 심경이나 그간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당일에 차에서 내려 자신의 대기실에 대기하면서 갖는 긴장감을 포착하면서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놓는 이 프로그램의 전반부는 그래서 경연 무대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또 경연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가수들의 반응과 관객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느슨해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TV라는 매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려 끊임없이 대중들로 하여금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중견가수들의 무대는 늘 있어왔다. 즉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은 늘 중견가수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무대가 '나는 가수다'만큼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가수도 있고 노래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귀를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의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듣는 음악을 지향하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라라라'나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자정에 편성됨으로써 대중들의 주목에서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가수다'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서나, 편성시간대를 통해서나 대중들의 TV를 통해 음악을 듣는 귀를 되살려놓은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박2일'에 새로운 시점을 던져준 엄태웅

'1박2일'(사진출처:KBS)

흔히들 '1박2일'의 엄태웅을 말하길,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라고 한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력의 문제다. 즉 어떤 기술적인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엄태웅이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성정과 행동이 대중들에게 어필한다는 얘기다. 투입된 지 몇 주가 지난 것뿐이지만 이미 이 '기분 좋은 캐릭터'로 자리하고 있는 엄태웅. 도대체 어떤 점이 엄태웅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엄태웅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그다지 예능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1박2일'에 첫 출연하고 처음으로 낙오 미션을 했을 때, 엄태웅은 우연히 만난 대학생에게 열심히 조언을 듣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하는 이 순박한 연예인보다 더 전문가(?)인 대학생은 어쩌면 '1박2일'의 팬들이 엄태웅을 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러니 그렇게 진지하게 조언을 들어주는 엄태웅은 일단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첫 여행에서 강호동이 엄태웅을 "특별한 재능은 없어 보이지만 다행스러운 건 승부욕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 후의 울릉도와 남해에서 보여준 그의 미션에 대한 열성은 '1박2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선하고 순박한 웃음을 만면에 짓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존재감을 남기는 '순둥이' 캐릭터가 우선 부각되었지만, 사실 숨겨진 엄태웅만의 장점은 바로 이 바로 이 미션에 빠져드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그에게 특히 돋보이는 '몰입의 능력'이다.

이 능력이 도드라진 건 무섭당과 바보당으로 나뉘어 게임을 맞춰가며 칠갑산 천문대를 찾아가는 미션에서다. 이 미션에서 엄태웅이 보여준 진지함과 즐기는 모습은 무섭당에 함께 한 은지원 대장(?)과 이승기와 잘 어우러졌다. 즉 그는 내내 '1박2일'의 미션들이 주는 새로운 경험들이 '즐겁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일까. 미션을 얘기하면서, "만약에 우리가 이겨서 퇴근 두 명을 해야 돼. 진짜 갈거야?" 하는 은지원의 질문에 "가면 심심할 텐데... 가야지 뭐."하는 엄태웅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1박2일'은 몇 년 간 같은 멤버들의 미션들이 반복되면서 미션에 대한 체감이 상당히 둔감해진 게 사실이다. 처음에 연예인들의 야외 취침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야외취침이나 밥을 굶기는 복불복은 하나의 게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계곡만 보면 입수하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며, 게임 하나에 스텝 전원의 입수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수위를 계속 높일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첫 경험을 하는 엄태웅의 이러한 몰입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이미 야생에서 다져진 백전노장들 사이에 들어가 함께 미션을 하는 엄태웅이라는 존재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고 짜릿한 엄태웅의 시선이다. '저런 멤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움의 판타지를 엄태웅이라는 새로운 감정이입 대상으로 갖게 되는 셈이다.

엄태웅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그저 그가 선하고 호감가는 캐릭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이제 '1박2일' 멤버들을 통한 몇 년 간의 대리충족으로 똑같이 베테랑이 되어있는 팬들이 조언하고픈 엄태웅이란 막내가 있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강한 미션에 둔감해진 팬들에게 다시 첫 경험을 상기시키는 엄태웅이란 감정이입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1박2일'을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진짜 몰입해서 즐기고 있는 그 자세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천국보다 낯선'

낯선 곳에 가는 걸 원체 좋아하질 않는다. 그런 내가 20대 중반에 혼자 12시간 비행을 해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그 때는 영어가 젬병이었다) 멜버른의 그것도 한참 외곽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를 찾아갔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모험이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포비아(Phobia)를 경험했다. 탑승시간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이국의 공항에서 길 잃은 청년이 겪었을 공포감을 생각해보라. 가까스로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에 도착해서 택시 타고 물어물어 기숙사에 도착했는데, 마침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면 주변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거의 이틀을 굶다시피 살아야 했다. 문밖을 나서면 외계인이 달려들기나 하는 것처럼, 기숙사 방에 콕 박혀서. 그 때 기숙사 벽 한쪽에는 내가 가져간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이란 영화는 영화보다 포스터를 먼저 알게 되었다. 영어로 'Stranger Than Paradise'라고 크게 적힌 포스터 속에는 두 남자가 차 밖에 서 있고 차 안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선글라스를 낀 그 모습에 유난히 풍성한 뭉게구름이 피어난 하늘은 정말 이국적이었다. 영화는 못 봤어도 그 포스터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딘가 떠날 때 갖게 되는 막연한 설렘 같은 것들이 거기에서는 느껴졌다. 말 그대로 막연한.

멜버른 다운타운에서 빌려와 본 '천국보다 낯선'은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헝가리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와 그 친구인 에디와 함께 클리브랜드를 여행하면서 철도길에서 하는 대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엄청 멀리 온 것 같은데, 여기도 똑같네." 그러니까 포스터에 있는 그들은 그렇게 멀리까지 천국처럼 낯설 것이라 여겨진 미국을 찾아왔지만, 여전히 다를 바 없는 스산한 거리에 서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보고 나니 그간 멜버른 생활에 적응해온 나 자신이 다시 보였다.

사실 피부색만 조금 달라도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여기며 눈을 피하던 나는 어느새 동네 펍(Pub)에 앉아 주민들과 맥주를 마시며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농담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이 때 음주영어를 한 탓에 술을 마셔야 영어가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반응? 낯선 것을 워낙 싫어하는 나만큼 별의 별 포비아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힘겨워 평생 친구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귀는 나로서는, 신종 인플루엔자니 방사능이니 하는 각종 살벌한 이질적인 것들의 틈입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도 그나마 이정도 버티고 사는 건 아마도 그 때 멜버른에서 겪었던 '천국보다 낯선' 경험 덕분일 게다. 세상에 어디 낯선 곳(것)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 이 곳에 있으면 저 곳이 저 곳에 있으면 이 곳이 낯설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년 후 밟은 한국땅에서 그 낯설음에 일순 포비아를 느꼈다. 맙소사! 인간의 간사함이라니.
(이 글은 사보 모터스라인에 게재된 글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