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 수애와 정우성의 액션 멜로 역학관계

'아테나'는 정우성이 아니라 수애와 차승원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윤혜인(수애)이 정보 요원의 뒤를 쫓다가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플라잉 니킥을 선보이는 액션은 그녀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인지시켰다. 또 화장실 변기와 유리 등이 마구 부서져버리는 추성훈과 차승원이 화장실에서 벌이는 사투 장면을 통해 손혁(차승원)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부각됐다. 하지만 정우성은 달랐다. 그가 연기하는 이정우는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일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상대적으로 이정우(정우성)가 1회에 약하게 그려진 것은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들이다. 어딘지 빈 구석을 만들어놓아야 혜인과의 멜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테나'가 가진 재미의 핵심이 이정우와 혜인이 벌이는 팽팽한 액션과 멜로의 뒤섞임이라고 볼 때, 이정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힘 조절(?)은 필수적이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이정우의 초반 캐릭터는 '아이리스'에서 김현준(이병헌)이 그랬던 것처럼 혜인과의 어떤 계기를 통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나'는 그저 액션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흐름 속에 심리적인 고려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폭풍처럼 흘러가는 액션의 연속은 시청자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때론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망명한 북한의 핵물리학자를 구출하려는 권용관(유동근) 국장이 요원들을 끌어 모아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손혁과 혜인이 요원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교차 편집된 장면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연출에 있어서도 단지 그림을 찾기보다 심리적인 고려를 한다는 얘기다.

폭풍 액션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이정우가 용의자(박철민)를 취조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배치한 것도 이런 심리적인 고려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숨을 돌린 후에 드라마는 멜로 설정으로 들어간다.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이정우가 혜인을 만난 후, 다시 국정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동시에 손혁과 혜인과의 관계도 노출시킨다. 이들의 멜로적인 관계 속에 대결구도 역시 고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속을 알 수 없는 혜인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정우와 손혁 양쪽에 걸쳐진 멜로는 이중스파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이리스'가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본 아이덴티티'의 영상을 끌어냈다면, 2회의 첫 도입부 20분 간을 장식한 이탈리아에서의 액션신은 007 시리즈를 오마주한 듯한 영상을 선보인다. 클래식과 록이 배경음악으로 교차되면서 우아함과 강렬함이 뒤섞이고, 긴박한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까지 구사하며 총을 쏠 때는 사정을 두지 않는 냉혹함을 보여주는 이정우는 숀 코네리 시절의 007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액션이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카메라의 과도한 흔들림을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성이 덧붙여진 액션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탈리아 액션 장면들이 이정우의 꿈이라는 설정 역시 의도적이다. 확실한 이정우의 액션 질감을 보여준 후, 다시 본래 목적이었던 혜인과의 멜로구도로 회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전반적으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굴러가지만 전반의 폭풍 액션과 후반부의 멜로 구도를 병치하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액션과 멜로의 교집합. 이것은 '아테나'라는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액션이 앞에서 강렬하게 끌고 나간다면 멜로는 그 강렬함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면서 부드러움을 집어넣는다. 정우성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수애와 차승원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그 후에 정우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과정은, 바로 이 멜로와 액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와 액션의 병치는 다분히 우리네 드라마 시청 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너무 지나친 마니아적 액션들은 고른 시청층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테나'의 성패는 바로 이 액션과 멜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그 열쇠는 그래서 이 둘 사이에서 변화할 정우성에게 다시 돌아간다.

'괜찮아 아빠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괜찮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만큼 슬픈 말이 있을까. 자신은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일 것이다.

'괜찮아 아빠딸'의 아버지 기환(박인환)이 그렇다. 그는 딸들의 결혼에만 목매는 아내 숙희(김혜옥)와 철없이 명품백 타령이나 하는 채령(문채원), 어른스럽지만 아직은 아버지의 그늘을 찾는 애령 그리고 만년백수로 소심한 빨대(?) 하나 들고 "2만원만"을 연발하며 허풍만 떨며 살아가는 처남 만수(유승목)까지 모두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자식의 허물조차 자신의 죄라며, "이건 내 잘못이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냐."하고 말하는 기환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표상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 땅에 그냥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인 아들 딸들의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좀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그저 신파적인 아버지의 애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기환이라는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는 자신과 오래 동고동락한 직원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만인의 아버지며,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해코지를 하려한 덕기(신민수)를 용서하며 "너도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그를 감복시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인물, 그가 바로 기환이다.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이 모두 기환과 같은 건 아니다. 혁기(최진혁)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툭하면 손찌검을 하는데다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그걸 통해 돈이나 뜯어내려는 부성애를 상실한 아버지다. 진구(강성)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병원장이지만 망나니 자식 때문에 골치를 썩는 아버지고, 종석(전태수)의 아버지는 변호사지만 심지어 자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아버지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은 그렇게 늘 손만 벌리면 뭐든 쥐어주는 아버지들을 당연한 듯 잊고 사는 세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사회에서 어떤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 같다. 즉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삶은 이 드라마에서는 '정의'와 연결된다. 가지고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또 사회적인 위치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기환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환이 어느 날 갑자기 휘말리게 되는 사건 속에서 누군가의 누명을 벗겨 주어야할 법은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어주거나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이용된다. '괜찮아 아빠딸'은 그래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 사회극의 단서들을 집어넣는다. "괜찮아 아빠딸"이라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저 가족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기환이 그렇게 말할 때, 공감과 함께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의 정의를 지켜주고픈 마음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추진력이다.

'우결'과 노래는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낼까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정용화는 서현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며 들려준다. 이것은 아마도(어쩌면 분명히) 용서 커플의 노래로 발표될 지도 모른다. 지금껏 수많은 '우결'의 출연진들이 그래 왔기 때문이다.

조권과 가인은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를 불러 각종 음원 차트에 올렸다. 곡도 좋았지만 조권 가인이 참여한 가사가 다름 아닌 '우결'에서의 두 사람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 가사는 '우결'에 출연하면서 둘 사이에 생겨난 설렘과 두근거림을 담았다.

'우결'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스토리를 익히 알고 있는 대중들에게 이 노래는 더 친숙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마치 '우결'의 번외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노래와 스토리가 만나면 이런 강력한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결'과 노래가 인연이 깊은 건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대부분 가수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노래와 프로그램이 만났을 때 생겨나는 내적 외적 효과가 그만큼 극대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래에 스토리가 얹어지고, 가수들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그 프로그램을 연상하게 만든다.

아마도 '우결'에서 가장 처음 이런 효과를 보인 커플은 알렉스와 신애 커플일 것이다. 알렉스는 신애를 녹음실로 불러 러브홀릭의 '화분'을 불렀다. 워낙 좋은 노래지만 그다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 노래는, 알렉스 특유의 자상함과 신애의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굉장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후 크라운제이와 서인영은 'too much'를, 앤디와 솔비는 '러브 송'을, 환희와 화요비는 '사랑해'를, 전진과 이시영은 '바보처럼'을 그리고 김용준과 황정음은 '커플'을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우결'에서 노래와 관련된 스토리들이 잘 전달되었을 때 그만큼 노래의 화제성도 커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만든다거나 혹은 불러준다거나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그만큼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가 나오는 시점은 대부분 커플들이 상당히 가까워진 시점일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용서 커플이 이제 그들의 노래를 발표할 시점이라는 것은 그들 역시 초반의 어색함을 벗어내고 이제 가까워졌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이들은 이제 대화에서도 편해졌고 스킨십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아마도 쿤토리아(닉쿤과 빅토리아) 커플도 좀 더 가까워진다면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자들은 이것을 그저 마케팅의 한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수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노래는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부정적으로 보면 가상 결혼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로 전한다는 것이 가식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분히 그런 위험성이 있다. 만일 진정성이 의심이 된다면 그것은 거꾸로 가수들에게나 프로그램에게나 득보다는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상결혼이라고 해서 그저 설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실제 부부처럼 모든 걸 나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 자체가 거짓일 수는 없을 테니까. 만나다 보면 누구나 좋은 감정이나 미운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수인 이들에게 노래는 또한 자신들의 좋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결국 진정성은 노래에 담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노래에 느껴졌을 때 대중들의 마음은 움직일 것이다. '우결'의 몇몇 노래들이 그런 파장을 일으킨 걸 보면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출연진들의 마음이 그 진심을 담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닐까. 아마도.

수애의 니킥 한 방이 만들어낸 '아테나'에 대한 기대감

한 배우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들까. 물론 몇 년이 걸려도 쉽지 않은 게 이미지 변신이다. 게다가 여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수애가 그런 배우다. 꽤 오랫동안 단아한 이미지에 고정되어 있던 자신을 깨뜨리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가진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이미지 변신에 드는 시간은 단 몇 초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아테나'의 예고 동영상에서 수애가 플라잉 니킥을 날리는 장면이 그렇다. 한껏 날아올라 무릎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가격하는 그 시원스런 니킥 한 방은 그녀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꾸어놓았다. 그 니킥은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산산이 부서뜨릴 만큼 파괴적이었다.

물론 수애의 변신은 이미 영화 '심야의 FM'에서 예고된 바 있다. 그녀는 마치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것처럼 처음에는 우아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라디오를 듣는 대중들을 사로잡다가 아이들을 인질로 그녀를 조종하려는 스토커와 맞서면서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여배우로서, 그것도 수애처럼 단아한 기품이 하나의 아우라로 고정되어버린 여배우로서 그 껍질은 그녀에게 너무나 무거웠을 것이다. '가족'에서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그 가녀린 이미지로 고정되어버리고는, '그 해 여름', '님은 먼 곳에'까지 그녀는 주욱 그런 이미지였다. '님은 먼 곳에'는 작정하고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군인들 속에서 얇은 슬립 같은 차림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해도 거기에서는 슬픔이 먼저 느껴졌다. 그런 그녀는 '심야의 FM'을 통해 비로소 변신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 노력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으로 보상받았다.

바로 이런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수애가 날린 니킥 한 방이 영화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수애의 재발견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전쟁의 여신'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아테나'에서 수애의 잔상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아테나'에서 수애가 연기할 윤혜인이라는 캐릭터는 따뜻한 미소로 시작해서 섬뜩한 잔인함과 차가운 냉철함으로 변해가는 인물이다. 이 이중적인 이미지는 그녀가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 방긋 웃거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히면 한없이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면서도, 액션 속에서는 강인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수애라는 연기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드레 수애도 고맙지만 이젠 액션 수애로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그만큼 새로운 이미지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그녀의 변신이 기대된다. 그것은 또한 '아테나'라는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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