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피쉬2', 논란이 아닌 문제제기로 봐야

'정글피쉬2'에 대한 반응은 양분되어 있다. 청소년드라마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들은 자살, 원조교제, 빵 셔틀, 청소년 임신 같은 실로 민감한 부분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비판하는 쪽은 청소년드라마가 아니라 막장드라마라고까지 부르며 이런 드라마를 공영방송인 KBS에서 방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 이 드라마는 막장일까? 단지 건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먼저 거꾸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과연 청소년들이 느끼는 진짜 현실은 어떤 것일까. 우리네 교육현실이 과연 그토록 건전한가. 아침부터 새벽까지 말 그대로 입시기계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 청소년들의 현실 자체가 막장이지 않은가. 물론 자살이나 원조교제 같은 극화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드라마의 속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청소년의 현실이 빠져있는 드라마를 청소년 드라마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글피쉬2'는 오히려 진지하게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고민하며 어떤 문제를 던지고 거기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해주는 진짜 청소년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임신이나 자살이라는 사건 자체가 엄청난 자극으로 도드라져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사건들에 대한 해법을 '선생님의 지도'가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찾아내는 그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정글피쉬2'는 마치 '여고괴담'을 보는 것처럼 미스테리한 구성으로 효안(한지우)이라는 한 여고생의 죽음을 추적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 여고생을 중심으로 함께 지내왔던 친구들의 고민들이 횡으로 펼쳐진다. 효안이 자살하던 날 자신이 그녀를 잡아주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자책하는 남자친구 민호수(홍종현), 자퇴생이라는 것 때문에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 바우(이준), 성적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워하는 서율(지연), 뮤지션의 꿈을 꾸지만 남자친구와 열애 중 덜컥 임신을 해버린 이라이(신소율), 가난해 급식비도 내지 못하고 일진들 빵 셔틀을 하는 태랑(김동범)... 이들은 효안의 죽음 앞에 모였다가 다시 자신의 문제 속으로 들어간다.

자살한 효안와 자신에 대한 뜬소문이 끝없이 생겨나고 증폭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민호수의 에피소드가 그려진 '이방인a' 편은 이 드라마가 단지 자극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말해준다. 이 편에서 민호수는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자신이 효안에게 돈을 벌어오라며 원조교제를 시켰다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루머로 공격을 받는다. 친구들은 신고하자고 말하지만 민호수는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어느 날 빵 셔틀을 하는 태랑의 집에 가게 된 민호수는 사람은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는 태랑의 말에 어떤 위안을 받는다. 어느날 효안의 어머니가 전해준 유품에서 민호수는 효안이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친구들을 기억하고 걱정하는 효안의 목소리를.

이 에피소드는 단지 자극적인 신상털기와 인터넷 공개를 다루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청소년들이 겪는 소통의 문제를 담고 있다. 즉 민호수가 겪는 소통 단절의 고통을 풀어주는 것은 결국 친구들이다. 그것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가 남긴 마지막 말이 호수의 마음 속에 있던 응어리를 풀어준다. 누군가 아무런 가책 없이 마구 써 갈긴 비방과 죽은 친구가 남긴 진심어린 말 한 마디는 이렇게 병치되면서(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과거 '호랑이 선생님'이나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같은 드라마는 자신들의 세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작금의 현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글피쉬2'가 그려내는 세계는 적어도 이 현실에 정직하다. 청소년드라마는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마치 청소년들을 계도라도 하겠다는 듯이 만들어 어른들끼리 공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지만 지금 건전한 청소년 드라마라는 말은 그다지 건전해보이지 않는다. 그런 현실이다.

학교의 재발견, '학교란 무엇인가'

선생님이 울었다. 아니 참회했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열정이 지나쳤던 지 선생님의 입에서는 자신도 좀 심하다 생각되는 그런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좋은 선생이 되고자 용기 있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겠다고 나섰지만,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다큐가 제안한 이 코칭 프로그램이 자신을 이토록 아프게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선생님은 녹화된 자신의 수업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했는가를 깨닫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부정했다. 코칭을 해주는 교육전문가는 선생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선생님의 수업에는 학생이 없다는 것이었다. 녹화된 영상에서 선생님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팔짱을 낀 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결국 코칭 프로그램을 그만 두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선생님은 그러나 며칠 후 교육전문가에게 SOS를 청했다. 다시 만난 교육전문가 앞에서 선생님은 말없이 울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표현이 되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자각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의 고투 끝에 선생님들은 더 활기차게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늘 조심조심 아이들을 배려하며 얘기하고 있었고,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기 위해 심지어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비로소 아이들과 한 반에서 선생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코칭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교육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네요. 선생님들께서 조금 변하셨어요. 근데 그 결과로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네요. 학생들 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된다는 것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흔히들 학교는 위기라고 말한다. 그 위기의 원인을 혹자는 아이들에게서 찾고 혹자는 권위가 사라진 선생님에게서 찾고 또 혹자는 입시교육으로 인해 학원으로만 몰리는 현 교육 정책에서 찾는다. 모두가 누구누구의 탓을 할 때,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이는 드물다. EBS가 교육대기획 10부작으로 제작한 '학교란 무엇인가'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교육 다큐멘터리다. 5부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는 이 다큐가 가진 접근방식을 잘 보여준다. 내부의 문제를 부정하지 않고 먼저 자각하고, 그런 후에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은 그 발견과 성장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다.

1,2부를 통해 보여주었던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의 길로 인도하려 노력하고, 엇나가는 아이들조차 학교가 품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서는 선생님들의 노력과 헌신은 우리의 학교에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3,4부에서 이우학교의 실험과 민족사관학교를 포함한 미국, 인도의 최고 고등학교를 소개하면서 어떤 교육의 대안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는, 5부에서 선생님의 변화를 촉구하고는, 6,7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칭찬의 역효과와 책읽기의 중요성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8,9부를 통해 이른바 상위 0.1%의 공부 방법을 소개하면서 우리네 사교육의 문제와 자기주도형 학습의 필요성을 강변한 후, 10부에서 서머힐 학교를 예로 들어 배움의 미래를 살펴보았다.

마치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들의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듯한 이 다큐는 바로 그 해법의 중심에 '학교'가 있다는 것을 재발견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곳이 학교라는 사실. 입시교육이 가져오는 그 잘못된 욕망들로 인해 공부가 왜곡되면서 차츰 학교라는 존재 또한 왜곡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지내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왜곡된 교육의 틀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것이 아닌가. 이 다큐멘터리는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짐으로써 본연의 학교를 되찾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실험과 설문조사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실제로 담겨진 수많은 사례들이 깔끔한 연출로 정돈된 이 교육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그저 하나의 TV 프로그램 그 이상을 담아낸다. 잘못된 길로 접어든 교육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노력과 변화의 흔적들이 그 속에는 그대로 녹아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 숨 쉬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이 그동안 억눌리고 막혀있던 교육에 대해 소통하면서 실제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다큐가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매리는 외박중', 어른 없는 세계를 꿈꾸는 드라마

"우리 아빠 때문에 미안해." "우리 엄마 때문에 미안해." 무결(장근석)의 엄마 감소영(이아현)과 매리(문근영)의 아빠 위대한(박상면)이 다투고 나자, 무결과 매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 다툼에 대해 얘기하듯.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작고 귀여운 세계에 어른들은 외박중(?)이다. 위대한과 감소영은 둘다 그럴 듯한 직업이 없다. 어찌 보면 이 두 어른들을 돌보는 건 거꾸로 매리와 무결이다. 매리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아빠를 위해 100일 결혼 계약을 하고(그래서 떡볶이집 사장이 되기도 했다), 무결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엄마가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정인(김재욱)의 회사와 계약을 한다. 물론 정석(박준규)도 마찬가지. 여전히 매리의 엄마를 잊지 못해 매리를 며느리로 들이려는 그는 좋게 말해 로맨티스트다.

어른 없는 세계에 오롯이 서 있는 네 인물, 매리, 무결, 정인(김재욱), 서준(김효진)은 저들끼리 어른들의 세상과 맞서보려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정인의 아버지는 사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황혼을 완성하기 위해 아들을 메리와 결혼시키려 하고, 위대한은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사랑은 아랑곳없이 결혼을 시키려 한다. 무결의 엄마 감소영은 아들이 겪는 사랑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어른들을 뒤로 밀어낸 이 드라마는 그래서 그 위에 청춘들의 드라마를 세우려 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가상 결혼 설정이 그것이다. 매리는 오전에는 정인과 오후에는 무결과 함께 지내면서 쿨하지만 풋풋한 일과 사랑을 꿈꿔나간다. 그래서 매리가 해보는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은, 흔히 막장드라마로 도드라지게 그려지는 어른들의 세계, 즉 결혼하면 늘 등장하는 정략결혼 같은 것과 대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이 장난 같고 심지어 대책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사랑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매리의 아버지는 무결을 그저 그런 한량쯤으로 여기고, 정석은 자신의 아들 정인을 마치 자신의 욕망을 위한 소유물처럼 다루면서 사랑 또한 강요한다. 하지만 이런 막장스런 어른들의 강권 속에서도 아이들은 저들끼리 귀엽고 예쁜 사랑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 속의 네 청춘들이 만들고 있는 음악드라마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다. 시청률 때문에 편성이 되지 않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게 고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인과 매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매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정인이 채택한 사전제작 방식은 그래서 이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드라마가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

이 작품에서 네 명의 청춘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기성 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심지어 만화적이고 동화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문근영은 귀여움의 극치를, 장근석은 귀차니스트와 자유로움의 극치를, 김재욱은 신사다움의 극치를, 그리고 김효진은 스타답고 여성스러운 매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리는 외박중'이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기성 드라마의 자극적인 공식에 익숙해졌다는 얘기도 된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점을 뒤집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 없는 세계, 막장 없는 드라마, 동화 같은 판타지 같고 심지어 만화 같지만, 그래도 청춘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드라마.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드라마가 꿈꾸는 세계는 시청률이라는 잣대로는 드러나지 않는(혹은 드러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일하는 여성을 보는 사회의 이중잣대

"아들에게 미안해서 무릎 꿇고 빌었어요." '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한 이경실은 끝내 참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아들 보승이가 4살 때 안 좋은 일이 벌어져 신경을 써주지 못했고, 심지어 아들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아이에게 다른 모습을 투영해 더 크게 혼을 냈다는 말을 꺼내는 이경실의 눈은 붉게 충혈됐다. 아마도 자식 가진 모든 부모의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조혜련도 "나와 우주의 관계가 그렇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경실을 비롯한 많은 개그우먼들은 그 직업상 '대가 센' 여성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이경실이 스스로 밝힌 대로 직업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다 보니 자신의 사적인 불행한 일에서도 눈물을 감추고 심지어는 쾌활한 척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사생활이 다 노출된 개그우먼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참 독하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진짜 그런가. '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한 이경실의 눈물은 개그우먼으로 산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이경실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바퀴'에서 이상용이 '우정의 무대'에서 부르던 '그리운 어머니'를 부르면서 애끓는 사모곡을 내레이션으로 말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개그우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박경림이 그랬고, 그 엄마들이 군대 간 아들에게 하는 말이 "깻잎 나오냐? 너 좋아하는 거."라는 이상용의 말에 이경실이 "그 말이 더 슬프다"며 울었다. 그러자 진행자인 박미선도 따라 울었다. 그 눈물 속에서 이경실이 농담처럼 던진 "남자들이 뭘 알아"하는 푸념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도 살아가야 하는 개그우먼의 고충이 담겨져 있었다.

이경실을 포함해 이영자, 정선희 같은 개그우먼들이 더 도드라지게 '대가 센' 여성으로 이미지화되는 것은 그녀들이 불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을 겪으면서도 웃음을 주기 위해 그걸 억누르는 모습을 '독하게'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려 애쓴 고 이주일씨의 아픈 사연을 들으면서 우리는 모두 그 프로정신에 박수를 쳤던 적이 있다. 속으로 울면서도 내색없이 웃겨야했던 코미디언들의 삶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

하지만 개그우먼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여기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우리네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이를 갖고 출산하는 것조차 업무의 손실로서 여기는 게 우리 사회 워킹우먼들이 겪는 일상사가 아닌가.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게다. 예능 프로그램이 그동안 마치 금기시된 것처럼 웃음만을 강요했던 개그우먼들을 통해 진심어린 눈물을 보여주는 것에서도 그 작은 변화를 느끼게 한다.

불행 앞에서 밝게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는 개그우먼들은 '대가 세다'거나 '독한' 여성들이 아니다. 그녀들은 그만큼 자신의 일에 있어서 프로라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불행을 감출 줄 아는 천상 모성애들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이경실의 눈물은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개그우먼, 아니 나아가 워킹우먼들의 그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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