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여자 캐릭터, 왜 성공의 공식이 됐나

작년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켰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윤은혜라는 연기자를 재탄생시켰다. 그간 윤은혜는 가수 출신 연기자로서 수많은 연기력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적이 있다. 베이비 복스 멤버로서 첫 연기 도전을 했던 ‘궁’은 그 자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유독 윤은혜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후에 출연한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가수 출신 연기자에게 연기력 논란이 많을까
연기력 논란은 연기자보다는 가수출신 연기자들에게 더 많은데, 그 이유는 이들이 연기력으로서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 연기자들보다 그 잣대는 더 냉정할 수밖에 없다. 조금 엇나가는 대사만 해도 “가수나 하지”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온다. 게다가 캐릭터가 특징적이지 않고 전형적일 경우에는 잘 소화해내고 있어도 연기자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연기자의 성격에 맞췄다는, 따라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본래 성격이 그렇다는 섣부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은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이란 남장여자 캐릭터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먼저 짧게 머리를 커트 한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에서 여성스러움을 버렸다. 자장면 다섯 그릇을 거침없이 먹어대고 사내 한 명 정도는 너끈하게 둘러업을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하며 때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는 털털 그 이상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궁’과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도 털털한 이미지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연기력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이미지가 동일했고, 그만큼의 파격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남장여자는 ‘털털한 척 하며 예쁜 척 하는 듯 보이는’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버리기에 충분히 강한 캐릭터였다.

허이녹은 고은찬을 닮았다
이것은 ‘쾌도 홍길동’에서 허이녹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유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기 시작한 ‘어느 멋진 날’과 ‘눈의 여왕’에서의 그녀 역시 청순가련형의 과거형 캐릭터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캐릭터로는 그녀의 가수로서 누려온 이미지의 연장일 뿐,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허이녹은 저 고은찬과 유사하게도 먹는 것을 무지하게 밝히며, 남자들처럼 건들대기도 하고, 때론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캐릭터다. 우는 장면에 있어서도 예쁘게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 콧물이 뒤범벅되면서 마구 울어버리는 그런 캐릭터. 여기서 ‘예쁜 척’이란 발목을 잡는 여성스러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다지도 여성스러움을 버리는 것일까. 그것이 단지 가장 파격적인 변화를 통한 연기력 검증을 받기 위한 선택일까. 그렇지 않다. 여성 캐릭터의 여성스러움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거부감이 많기 마련이다. 게다가 멋진 남성 캐릭터 옆에서 예쁜 척하는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거부감을 넘어 비호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남장여자는 다르다. 일단 보이시한 매력이 여성들에게도 어필하는 면이 있다. 예쁘다기보다는 그 털털한 면이 귀엽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 시청자들을 ‘남장’이란 장치로 충분히 감정이입 하게 만든 상태에서는 이제 그 드라마 속의 본래 역할 ‘여자’로 돌아가도 그것은 하나의 매력으로 변한다. 고은찬이 드라마 후반부에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면서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남장여자 캐릭터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이것은 연기하는 당사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고은찬 역할로 보이시한 매력을 어필했던 윤은혜가 드라마가 끝나고 섹시한 이미지의 사진을 선보였을 때 나오는 반응은, 과거처럼 ‘또 예쁜 척 하네?’가 아니라 ‘이런 면도 있었어?’라는 호의적인 반응이다.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로 굳어져 있어 연기변신에 난항을 겪고 있는 문근영이 남장여자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도 바로 이 캐릭터의 이런 장점들을 활용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에서 성숙한 역할을 선보였지만 어필하지 못한 것은 그 역할 또한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를 뛰어넘기에는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연기력 논란이나, 이미지 변신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연기자가 있다면 ‘남장을 하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남장여자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그 후에는 그에 필적하는 강한 캐릭터에 도전하거나, 남장여자 캐릭터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남장여자 캐릭터 또한 연기자라면 깨고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기 때문이다.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된 ‘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라는 토크쇼의 미덕은 말이 가진 표현에 천착했던 점이다. 스타에 관한 재치가 넘치는 댓글들을 방 한 가득 붙여놓고 거기서 몇 개를 골라 스타의 이면을 얘기하는 포맷 속에는 기본적으로 네티즌의 참여와 그 참여한 네티즌의 재치 넘치는 댓글이 힘을 발휘한다. 이 토크쇼에서의 대화는 따라서 저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닌 네티즌이 참여된 이야기가 된다.

이 미덕이 발전적으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세대공감 올드 앤 뉴’이다. 여기서 말은 코너의 중심주제로 부각되었다. 젊은이들의 언어와 기성세대의 언어를 끄집어내면서 세대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취지가 있었기에 토크쇼라면 응당 있기 마련인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인정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취지를 살리듯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노현정이라는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아나운서가 자리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잘못된 표현은 거침없이 수정하고,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노현정 아나운서는 오락프로그램의 말장난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게 되었다. 문제는 점차 노현정 아나운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인화 되어갔다는 점이다. 이 도무지 어느 국적의 사람들인지 의심케 만드는 출연자들의 말장난을 수정하고 교정해주는 역할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

이것은 만일 이 코너의 취지가 말 그대로의 잘못된 언어사용이나 세대차이가 나는 언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대로 된 언어사용을 하는 아나운서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잘못된 언어들의 공격을 통한 재미였다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빠지고 백승주 아나운서나 최송현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앉자 이런 상황은 더 가속되었다. 아나운서가 해야 할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는 적어도 아나운서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웃음을 주었지만, 나머지 두 아나운서는 그런 역할이 강조되지 않았다. 함께 출연진들과 웃고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아나운서들은 말 그대로 말발 센 개그맨들 앞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새로운 포맷으로 시작하는 ‘놀이의 탄생’은 이제 ‘상상플러스’가 댓글과 같은 언어의 세계를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놀이의 탄생’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은 재치 있는 말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따라서 이 포맷의 재미는 아이디어 자체라기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몸 개그다.

‘상상플러스’는 ‘야심만만’처럼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를 잃어가는 토크쇼들 속에서 몸 개그로의 전환을 하려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저들만의 이야기, 신변잡기식 토크쇼에 물린 탓이라는 점이다.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되어버린 ‘상상플러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애초부터 시청자 참여를 이끌며 나가려 했던 ‘상상플러스’만이 가진 말에 대한 감수성이 아쉽기 때문이다.
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사극이 사랑을 그리는 방식

사극이 사랑에 빠졌다. ‘이산’의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이 그렇고, ‘왕과 나’의 성종(고주원)과 어을우동(김사랑) 그리고 윤소화(구혜선)가 그러하다. 그런데 똑같은 사랑이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사극과 만나 빛을 발하고 있는 멜로라고 해도 어떤 것은 호평을 받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섬세한 사랑, ‘이산’
이산과 성송연의 사랑은 가까이 앉아 속삭이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궁 하나를 두고 있는 거리에서의 사랑이며, 세손과 다모라는 신분이 말해주는 거리에서의 사랑이기도 하다. 둘이 가까워지는 것을 저어한 혜경궁홍씨(견미리)에 의해 심지어 성송연은 그것도 모자라 이역만리 청국으로까지 보내진다. 이렇게 먼 거리를 두면서 그들은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산이 처한 생존의 상황 속에서 그에게 성송연이란 어린 시절의 순수함으로의 회귀이다. 칼바람이 도는 현실의 무거움 속에서 신분도 잊고 그저 동무라 부를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고 그 그리움은 성송연이라는 인물로 실제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아무리 격무에 시달리던 이산이라도 성송연 앞에 가면 그 목소리가 애틋하게 변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이 동무로서의 그리움인지 아니면 연인으로서의 그리움인지를 알게 되는 것은 성송연이 청국으로 떠난 이후이다. 사랑의 표현이 극도로 우회적인 수밖에 없는 이 두 인물의 신분적 거리로 인해서 사랑은 더 애틋하게 표현된다. 이산은 갑자기 일을 작파하고 청으로 떠난 성송연을 붙잡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며, 성송연은 이산만을 생각하며 그 수만 리 길을 걸어 되돌아온다.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사를 통한 사랑표현은 극도로 절제된다.

‘이산’이 그려내는 사랑은 따라서 사극으로서의 역사적 사건들과 조우하면서 커다란 무리 없이 흘러간다. 세손과 일개 다모의 사랑이야기에 공감이 가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자체가 가진 판타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극도로 섬세하기 때문이다. 그 키워드는 ‘애틋한 그리움’으로 축약된다.

자극적인 불륜, ‘왕과 나’
이산이 아내인 효의왕후(박은혜)를 두고 성송연을 사모하는 것이나, ‘왕과 나’에서 성종이 본처인 윤소화를 두고 어을우동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비슷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왕과 나’ 다루는 사랑은 순수함보다는 육체적인 욕망으로서의 사랑이다. 성종이 어을우동에게 끌리는 것은 그 도발적인 자태가 불지른 욕망 때문이다. 가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찾아가게 만드는 그것은 우리가 흔히 현대물에서 말하는 그 불륜이다. 이 불륜이라는 단어에는 육욕의 뉘앙스가 늘 포함된다.

따라서 상황은 자극적으로 치닫는데 이것이 실제로는 새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미 현대물에서 목도한 장면들의 사극 버전 정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소화가 일개 어을우동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은 불륜드라마에서 본처가 애첩에게 사정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왕의 용안에 상처를 내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왕과 나’가 사랑을 그리는 방식은 이처럼 자극적이고 통속적이다.

이것은 ‘왕과 나’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내시의 사랑을 다룬다고 했을 때, 혹자는 그것이 정신적인 플라토닉사랑을 그릴 것이라 예측했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거세된 자의 사랑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사랑을 마음껏 하는 왕의 모습이 대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사랑의 감정으로 봤을 때, ‘이산’이 손 한번 잡는 것으로 설렘을 만들 수 있었다면 ‘왕과 나’는 합궁에서조차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극에 있어서 그것도 왕과 연결된 멜로를 그림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할 점은 자칫 왕의 권위 자체를 흠집 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출에 있어서 왕이 버젓이 불륜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아무리 퓨전사극이라 해도 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왕과 나’의 경우 그 초점이 왕이 아닌 나에게 아무리 맞춰져 있다 해도, 있지도 않는 사건까지 끌어들여 실존인물인 왕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그 자체로 어떤 재미를 준다면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다지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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