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유’, 일드지만 한드 같은 이 드라마 왜 재밌지?

아이 러브 유

“뭐야! 이 능숙한 태오의 검지손가락!! 엄지손가락을 끌어당긴다는 건 최고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일본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 출연한 채종엽에 대한 일본 반응이 심상찮다. 극 중 남자주인공인 연하의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채종협)가 초콜릿 숍 사장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는 장면에 대한 일본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시 엄지로 손도장을 찍는 한국식 약속 방식에서 윤태오는 유리가 어떻게 할 줄 모르자 검지로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끌어 도장을 찍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인들은 이런 약속 방식이 특이하면서도 특히 극중 윤태오의 매력과 더해져 가슴을 설레게 했다고 반응한다. 그것이 마치 상대를 끌어당겨 껴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켰다는 것. 

 

이 장면과 이 장면에 쏟아진 반응들은 <아이 러브 유>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지점을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일본드라마지만 상당히 한국 멜로드라마 속 클리셰들을 차용하고 있다. 그 근거는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가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처럼 자신을 챙겨준 일본인을 따라 일본에 유학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멸종위기 동물을 연구하는 인물이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를 초콜릿 숍 사장 유리가 한국음식을 배달시키면서 만나게 되고 인연을 이어간다. 그래서 시작부터 비빔밥이나 부침개, 라뽂기 같은 한국음식들이 등장하고 윤태오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대화를 한다. 또 유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동료가 있어 윤태오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 러브 유>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등장인물들에 의해 한국문화와 일본문화가 겹쳐져 등장하는 크로스 컬처의 흥미로운 지점들이 등장한다.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찍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본 시청자들에게는 특별하게 다가가는 그런 지점들이 생기는 것. 

 

특히 한국 멜로드라마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지만 여지없이 여심을 강탈하는 장면들을 이 드라마는 오히려 일본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한다. 갑자기 넘어질 때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끌어 안는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 아주 천천히 뜸을 들이는 일본드라마의 남녀 관계와는 달리, 빠르게 관계가 진전되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라간다. 그래서 일본 시청자들의 반응에는 ‘진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제목이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인 건 유리가 사고를 당한 후 갖게 된 능력 때문이다. 유리는 상대방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사고로 의식은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속이야기를 듣는 것이나, 초콜릿 숍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되지만, 일상의 삶에는 불편한 일이 된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유리는 윤태오를 보다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 한국사람이라 말은 일본어로 하지만 속마음은 한국어로 들려서다. 물론 이 윤태호의 마음의 소리는 자막으로 번역되어 일본 시청자들에게는 그대로 전해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가 유리 앞에서 속으로 “귀여워”라고 생각할 때 그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 유리를 보며 가슴 설레는 상황을 맞게 되는 이유다. 

 

어찌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의 클리셰들이 가득한 드라마지만, 이것을 마치 진짜처럼 만들어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하는 건 채종협이라는 멍뭉미 가득한 매력 덕분이다. 그의 직진하는 멜로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그런 남성 캐릭터들이 별로 없는 일본의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국의 남성이라 문화적 차이로서 허용되는 적극적인 멜로는, 한국드라마가 일본인들을 저격했던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한다.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이러한 다국적 문화를 담은 협업 프로젝트로서 이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넷플릭스 TV부문 순위가 일본에서는 6위, 한국에서는 7위로 글로벌 반응도 좋다. 물론 한국의 옛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크로스 컬처의 색다른 지점들이 더해져 이것조차 추억과 향수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화려하고 세련된 다양한 장르물들로 채워지고 있는 한국드라마들 속에서, 일본드라마가 맞는데 한국드라마 같은 <아이 러브 유>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넷플릭스)

‘살인자o난감’의 장난감 형사로 돌아온 구씨

살인자o난감

끔찍한 살인자와 그를 추적하는 형사는 역할이 다르지만 때론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마동석)를 떠올려 보라. 산만한 덩치에 건들건들 사건 현장에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조폭인 줄 알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곤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살벌해 보이는 이가 사실 민중의 지팡이(마석도는 민중의 몽둥이라고 말하지만)이고 그래서 더 살벌한 범죄자들을 때려잡을 때 우리는 더 큰 반전의 안도감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살인자와 형사는 겉으로 보고는 구분할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살인자o난감>이 그리는 세계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경계 구분을 할 수 없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식)은 어느 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니 이유가 어떻든 그는 살인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살해된 자가 희대의 살인마였다? 여기서 조금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탕은 살인자인가 아니면 희대의 살인마를 죽인 영웅인가. 

 

전직 형사 송촌(이희준)은 정의를 꿈꿨다. 하지만 믿었던 선배 형사마저 부정한 일에 손을 대는 걸 목격한 후 절망하고, 절망은 세상에 대한 엇나간 분노로 이어진다. 끝내 광기에 사로잡힌 그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사적으로 처단하는 살인마가 된다. 그는 정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그저 살인마인가. 그 살인마를 추적하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단죄하려 한다. 하지만 극심한 분노 속에서 저들에 대한 살인충동을 느낀다. 그는 여전히 형사인가 아니면 저 살인마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인가. 이처럼 평범한 대학생과 형사 그리고 살인마 사이의 경계는 얇고도 얇다. 언제든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 누구나 그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게 <살인자o난감>이 그리고 있는 아이러니 가득한 세계다. 

 

‘살인자 이응 난감’으로 읽는 독특한 제목에 들어 있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 장난감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인물은 그 중심에 서 있다. ‘난감’이라는 이름만 보면 이 인물이 처한 세상이 얼마나 ‘난감한가’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장’이라는 성이 들어감으로써 ‘장난감’으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마치 장난감처럼 그를 휘둘리게 해 끝낸 난감하게 만드는 욕망들로 가득 채워진 세상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대신 세상사람들의 욕망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우연과 필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장난감처럼 휘둘리다가는 어느새 살인자 같은 범범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세상의 폭력성을 드라마는 ‘장난감’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예측 불가 전개에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상 형사 장난감이 살인자들을 추적하며 마주하게 되는 ‘난감한 세상’에 대한 통찰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보면 형사 장난감 역할을 맡은 손석구의 남다른 존재감이 느껴진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손석구는 유독 범죄자와 형사를 오가는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에서는 문형사 역할을 연기했고 <D.P.>에서는 임지섭 대위로 군인이지만 탈영병을 잡는 헌병대 장교였다. 또 <지리산>에서는 마약반 형사 역할이었으며 <카지노>에서는 필리핀에 파견된 한국인 경찰이었다. 반면 첫 드라마 연기였던 단편 <나청렴의원 납치사건>에서는 사채업자를 연기했고,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마더>에서는 이설악이라는 냉혹하고 잔인한 아동학대 범죄자를 연기했다. 또 <나의 해방일지>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구씨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전직 조폭이었으며 영화 <범죄도시2>에서는 필리핀 관광객을 연쇄적으로 표적납치해 살해하는 잔혹한 범죄자였다. 그의 연기 필모그래피를 보다 보면 범죄자와 형사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이리도 쉬운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손석구가 연기하는 역할들이 선명한 선과 악으로 나뉘는 인물들이라기보다는(물론 그런 역할도 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인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서 그가 맡은 오승훈이라는 형사는 처음에는 카지노 대부인 차무식(최민식)과 서로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형사 본업으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차무식과 그 일당을 소탕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D.P.>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즌1에서 그가 맡은 임지섭 대위는 오로지 승진에만 목을 매는 얌체 상사의 모습이었지만, 시즌2에서는 마지막에 법정 증인으로 나서 소신발언을 하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즉 그가 해석하는 인물은 타고난 선이나 악이 아니라, 그 경계 언저리에 있어 때론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연의 임무를 찾아가는 그런 인물이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런 모습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게 <나의 해방일지>로 인해 생겨났던 ‘구씨 신드롬’이다. 경기도 외곽쯤되는 산포라는 곳에 홀연히 나타난 이 인물은 낮에는 싱크대 일을 하고 밤이면 술을 사다 마시는 걸로 하루하루를 소일한다. 일을 할 때는 평범해 보이지만 매일 마신 술이 방 한 가득 채워져 있는데다 나이도 이름도 숨겨 그저 ‘구씨’라 불리는 이 미스테리한 인물에게서는 묘하게도 범죄의 냄새가 난다. 어딘가 선을 넘어버린 느낌이 그것이다. 늘 선 안에서만 챗바퀴 돌 듯 살아가는 염미정(김지원)이 그에게 이끌리는 건 바로 그 ‘탈선’이 ‘구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신 또한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라고나 할까. 구씨의 이미지는 그래서 마치 한때는 세상을 두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쩌다 동물원 철창 같은 일상의 늪에 갇혀 버린 야생동물 같은 면면이 겹쳐져 있다. 

 

<나의 해방일지>의 손석구 신드롬은 그래서 답답한 일상을 한 달음에 뛰어넘는 그 탈선의 시원함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이미지는 ‘해방’이라는 단어와 너무나 잘 어울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인자o난감>에서 손석구는 해방의 또 다른 면이라 할 수 있는 ‘탈선’ 앞에서의 치열한 갈등을 보여준다. 갇힌 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과 이를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이성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해방과 탈선. 어쩌면 우리는 욕망이 부리는 이 아슬아슬한 양면 사이를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가며 걸어가는 장난감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아가기 두려운 길이지만 그렇다고 회피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 두려움을 인지하고 탈선이 아닌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 <살인자o난감>에서 손석구가 그 처절한 연기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닥터슬럼프’, 자존감 바닥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멜로

닥터 슬럼프

“너 잘못 산 적 없어. 네 잘못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보다 위로와 응원은 아니었을까. 정우(박형식)가 하늘(박신혜)에게 건네는 말은 갈수록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말 같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슬럼프>가 건드리는 감정의 실체도 바로 그것일 게다.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있지만 속은 밑바닥에 떨어져 울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드라마는 말한다. 네 잘못 아니라고. 

 

멜로드라마가 사랑 타령에 머무는 것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멀어진 건 그것이 현실과 너무나 유리되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멜로는 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올 즈음, 멜로드라마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뒷면을 들여다보면 현실에 지쳐 힘겨워 하는 우리들에 대한 응원과 위로의 목소리들이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닥터슬럼프>의 전작이었던 <웰컴투삼달리>를 떠올려 보라. 그 멜로드라마는 조삼달(신혜선)과 조용필(지창욱)의 멜로를 그렸지만, 드라마를 가득 채운 건 누명을 쓰고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제주도 삼달리로 내려온 조삼달이 변함없는 고향 같은 따뜻함을 지닌 조용필과 삼달리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을 받고 회복해가는 이야기였다. 

 

tvN에서 방영됐던 <무인도의 디바>는 어떤가. 그 드라마 역시 목하(박은빈)와 기호(채종협)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 안을 가득 채운 건 가정폭력 피해자 혹은 세상이 소외시킨 이들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었다. 목하의 노래와 사랑이 특히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건 거기서 무인도 같은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져서다. 

 

<닥터슬럼프>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력해 성공했고 유명해졌지만 의료사고가 터지면서 억울하게 그 사고의 책임까지 떠안고 모든 걸 잃게 된 정우에게 술에 취한 하늘이 “누명”이라고 말해주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그에 대해서도 “너가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나쁜 짓하고 뻔뻔하게 우길 놈은 아니니까”라고 말해주는 대목에서도 우리의 가슴은 촉촉해진다. 잘 나갈 땐 모두가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한번 미끄러지면 모두가 등돌리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마주하던가.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변치않는 마음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건 각종 갑질들을 견디다 못해 선배를 들이받고 병원을 나오게 된 하늘이, 그 사실 때문에 어떤 병원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자 “잘못 산 것 같다”고 말하자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정우의 대사에서도 느껴진다. 어려움에 봉착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어딘가 내가 잘못 산 거 같다고 여기곤 하지만, 그럴 때 잘못된 건 네가 아니라 비틀어진 현실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가. 

 

<닥터슬럼프>와 더불어 최근의 멜로드라마들의 경향을 들여다 보면, 확실히 사랑보다 우리가 더 원하는 건 위로와 응원인 것 같다.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 슬럼프에 빠져버린 정우와 하늘이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울며 때론 무너지는 그 서로의 어깨를 지지해주고,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하는 하소연들을 들어주는 장면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설레고 흡족해지니 말이다. 물론 그 위로와 응원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테지만.(사진:JTBC)

8부작 드라마인데 한 편의 영화 같은 ‘킬러들의 쇼핑몰’

킬러들의 쇼핑몰

무려 8부작 드라마인데 한 편의 영화 같다. 디즈니+ <킬러들의 쇼핑몰>은 정지안(김해준)이 있는 집을 공격하는 일단의 무리들의 장면들로 시작한다. 군부대가 인근에 있어 사격연습을 한다는 고지가 들려오지만 그건 사실 이 무리들이 갖가지 무기로 무장한 채 벌일 공격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다. 작은 움직임에도 스나이퍼의 총알이 날아들고, 드론 공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척 봐도 만만찮은 훈련과 실전 경험이 있는 용병들이 집을 공격한다. 

 

그 1회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8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즉 이 8부작은 집을 공격해 오는 용병들과 사투를 벌이는 정지안의 하루(아마도 그 정도의 짧은 시간) 정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매 번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는 순간들 속에서 정지안은 먼저 사망한 삼촌 정진만(이동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잘들어 정지안.”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한 후 이런 일들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견이라도 한 듯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정지안은 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면서 삼촌 정진만의 목소리를 따라 어린 시절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집을 난입한 용병들과 그를 구하러 왔던 정진만의 동료가 끔찍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보는 등 충격적인 일들을 겪은 후 말도 기억도 잃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정진만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을 되찾았던 순간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새총 대신 총 쏘는 법도 배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정지안의 집을 무차별 공격하는 용병들과 맞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져 있지만, <킬러들의 쇼핑몰>은 그래서 순간 순간 정진만의 목소리를 따라 플래시백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그러면서 정진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과거 용병이었으며, 바빌론이라는 조직의 일원이었다가 나오게 되어 이 집에 쇼핑몰(총기)을 꾸리고 고객(용병들)을 상대하게 됐던 사연들이 하나하나 풀어져 나온다. 

 

그 서사 하나하나가 밀도 있게 그려져 있어, 한 편의 영화를 8부작으로 늘려 놓은 느낌은 전혀 없다. 대신 8부작짜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구성만으로도 흥미롭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그 경계가 흐려져 간 드라마와 영화가 탄생시킨 작품처럼 보여서다. 

 

그 촘촘한 8부작을 채워놓은 건 물론 다양한 무기들을 활용한 공격들과 이에 맞서는 액션들이다. 특급 킬러 소민혜(금해나)가 불꺼진 창고에서 수십 명의 용병들을 무너뜨리는 신출귀몰한 액션을 펼친다거나, 마치 개의 형상을 한 듯한 로봇의 무차별 공격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 그리고 파신(김민) 같은 진짜 태국 사람처럼 보이며 무에타이 액션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들이 드라마를 꽉꽉 채워놓는다. 

 

그러면서 정지안이라는 인물의 성장담을 통해 이 무차별 액션이 그저 볼거리의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삶에 대한 은유라는 걸 담아내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정진만이라는 보호자가 없는 세상에서 시시각각 물어 뜯으려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용병들 속에서 정지안이 스스로 행동을 선택하고 저들과 맞서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생존경쟁 속에 내던져진 현재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드라마의 질문 같다. 

 

8부작으로 끝을 맺지만, 드라마는 말미에 시즌2에 대한 여지를 다시 활짝 열어 놓았다. 일단의 용병들과의 사투가 끝이 났지만 그것이 단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시즌2가 기다려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8부작 드라마다.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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