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고구마를 먹어도 레스토랑처럼, '삼시세끼' 유머의 매력

 

시작부터 쉽지만은 않다. 던져놓은 통발에는 고기 한 마리 없고,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해도 물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는다. 물론 첫 날 물 빠진 해변에서 전복을 따와 맛있는 한 끼를 먹었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 이어지진 않는다. 거북손을 잔뜩 따와서 부쳐 먹고 잔치국수에도 넣어 먹었지만, 갑자기 급변하는 섬 날씨와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들어온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은 저녁거리가 막막하다.

 

tvN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5는 코로나19 때문에 만재도가 아닌 무인도 죽굴도로 들어갔다. 재료가 없어도 그나마 주민들에게 도움도 받고 때론 만재슈퍼에서 쇼핑(?)도 하던 건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오롯이 이 세 사람이 이 섬에서 차승원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수렵, 채취 등등으로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다.

 

비도 축축하게 내리고 배도 고파지는 저녁, 요리할 재료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유해진은 고구마와 감자를 삶고 구워 저녁을 해결하자며 때 아닌 레스토랑 놀이를 시작한다. 메뉴를 받아 적는 시늉을 하며 대뜸 P와 SP가 있고 그걸 스테이크나 되는 듯 어느 정도로 익힐 것인가를 묻는다. 차승원과 손호준은 그런 유해진의 놀이에 적극 참여해 미디엄 웰던이니 미디엄 레어니 하며 죽을 맞춰준다.

 

P와 SP는 다름 아닌 Potato(감자)와 Sweet Potato(고구마)를 농담처럼 일컫는 지칭. 유해진은 그렇게 슬쩍 별 것도 아닌 감자와 고구마를 삶고 구워낸 음식을 P니 SP로 부르며 대단한 것이라도 하는 것처럼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피워놓은 아궁이로 고구마와 감자를 삶고 굽는다. 다 요리된 고구마와 감자를 예쁜 접시에 깍두기 김치를 놓아 세팅하고 손님이 원하는 굽기에 맞춰 내놓는다.

 

그저 놀이에 불과하지만 차승원은 진짜 레스토랑이나 온 것처럼 목에 냅킨을 걸고 칼과 포크로 고구마와 감자를 마치 스테이크나 되는 양 썰어 먹는다. 실상은 먹을 게 마땅치 않아 '구황작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챙겨먹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이들 특유의 유머 감각 때문이다.

 

사실 무인도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채 며칠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만만하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게다. 물론 텃밭이 있고 쌀이 있어 챙겨 먹으며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 즐거움이나 힐링까지 바라긴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그 막막할 수도 있는 섬 생활을 시청자들이 힐링으로 느끼며 바라보는 건 없어도 그걸 즐기며 농담으로 넘기는 유해진과 차승원 그리고 손호준 덕분이다.

 

없지만 있어 보이게 만들고 그 없는 것을 유머로 바꿔놓는 건 유해진과 차승원을 당할 자들이 없는 것 같다. 각종 도구들과 운동기구가 있는 창고에 '아뜰리에 뭐슬'이라 이름붙이고 입구에 도어락을 흉내 낸 고리를 만들어 놓고 유해진은 키가 177cm 이상은 입장불가하다고 써붙인다. 천장이 낮아서 그렇다지만 차승원 출입은 안된다고 농담 삼아 붙인 것. 그러자 차승원은 대뜸 멤버 가입해야겠다며 호텔식 헬스장이라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뷰를 자랑하는 호텔식 헬스장.

 

<삼시세끼>가 주는 유쾌함과 힐링의 이유는 어쩌면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곳에서 지내는 이들의 긍정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해먹을 게 마땅찮아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 먹어도 레스토랑에 있는 것마냥 한껏 풍족한 느낌을 갖는 것. 너스레와 농담으로 불편함이나 부족함을 웃음으로 채워 넣는 것. 늘 좋지만은 않은 삶의 신산함 속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어 우리는 웃으며 살아가는 지도.(사진:tvN)

‘외출’, 어째서 세상 엄마들만 죄인처럼 살아야할까

 

“왜요? 우리 엄마가 왜? 왜 죽어야 하는데요? 왜 다들 우리 엄마만 잘못이라고 하는 건데? 왜 우리 엄마가 내 딸을 봐줬어야 했는데요? 왜 그랬어야 했는데?” tvN 단막극 <외출>에서 한정은(한혜진)은 자신의 엄마 최순옥(김미경)을 향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시어머니에게 누르고 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 그 아이를 돌봐줬던 친정 엄마 최순옥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아이의 엄마인 한정은은 아이의 죽음과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 속에서 힘겨워한다. 감기약을 먹고 잠시 잠든 사이 사고가 벌어진 줄 알았으나 찾아온 아빠를 만나러 잠시 외출한 사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한정은은 그것 역시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엄마는 치매 증세를 갖고 있었다. 사고가 난 날, 외출했던 엄마는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면서도 집을 기억하지 못해 행인들을 붙들고 도와 달라 애걸하는 최순옥은 마치 우리네 엄마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 힘겨운 육아를 딸을 위해 떠맡으면서 잠시 외출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을 감당하는 엄마들.

 

<외출>은 아이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건을 다루지만, 이런 비극이 최순옥에서부터 한정은 그리고 그의 딸 유나로 이어지는 여성들이 겪어온 비극이라는 걸 그려낸다. 육아는커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듯 살아온 엄마 최순옥이 살아온 세상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 또한 떠안으며 살아가야 하는 한정은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워킹맘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적 육아 시스템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회사는 대놓고 워킹맘들을 차별한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 된다니까. 맨날 집안 핑계나 대고 에이.” 계약직 사원 신소희(윤소희)를 정규직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평가를 내리는 조부장(손경원)은 대놓고 여성이 정규직이 되는 걸 꺼려한다. 그것이 회사로서는 리스크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듣고 지나치던 한정은은 그러나 조부장의 그 말에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팀장님. 애기 키우느라 퇴사한 사람을 재고용하는 게 하이리스크라고 하셨죠? 근데요. 애기 키우며 직장 다니는 여직원들 책임감은 더 강하면 강했지 덜하진 않아요. 애초에 그런 직원들을 퇴사하게 만드는 게 진짜 큰 손해고 리스크인 걸 모르시나 봐요. 직장생활은 다 의지로 하는 거라구요? 여기 의지 없는 사람 없어요. 근데 그 의지가요, 집에서 애기 봐주는 친정엄마 생각하면 자꾸 약해져요.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왜 엄마들은 항상 죄인이 되는 걸까요? 몰랐다고 하지 마세요. 그것도 죄예요. 그리고 모르지 않으셨잖아요.”

 

도대체 유나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억지로 서울 집까지 오게 해 대신 아이를 맡아줬던 엄마일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 워킹맘 한정은일까? 이런 사고가 벌어지면 항상 엄마들이 그 죄인이 되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사건이 벌어지게 된 진짜 원인들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여전히 육아는 엄마들만의 몫이라 여기는 인식, 하이리스크라고 욕하기만 하면서 워킹맘들의 복리를 위한 육아 시스템은 마련하지 않는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 등등. 진짜 원인들은 그런 것들이다. 여기 죄 없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책하는 엄마들이 아니고.

 

2부작이었지만 <외출>은 단편이 가진 압축적인 이야기로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아마도 워킹맘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던지는 공감의 폭이 훨씬 더 컸을 게다. 한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육아문제와 성차별적 사회에 대한 진중한 화두를 던졌다. 친정엄마에서 그 딸로, 또 엄마가 된 그 딸이 또다시 그의 딸로 이어지는 그 삶이 더 이상 비극의 유산이 아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드라마는 묻고 있다.(사진:tvN)

‘개훌륭’, 강형욱이 그건 자율이 아닌 방임이라 한 까닭

 

“방임해서 키우고 있다는 거예요.”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외부인을 공격하는 보더콜리 뚱이에게 ‘자율’이라며 점심 후 개들이 마음껏 산에서 뛰어 놀게 한다는 견주에게 강형욱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자율이 아니라 방임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자율이라고는 해도 차를 보면 마치 양떼를 몰던 그 습성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 타이어를 향해 돌진하고, 외부인을 공격하며, 산으로 들어가서는 불러도 돌아오지 않아 견주가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뚱이는 그렇게 ‘자율(?)’ 산책을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다리를 다쳐 수술까지 받아야 했었다.

 

왜 다쳐서 돌아왔을 것 같냐는 질문에 견주는 “싸워서?”라고 추측했지만 강형욱의 답변은 단호했다. “보호자님이 풀어줘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건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 “예견된 사건”이었다는 것.

 

물론 견주의 생각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마음껏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픈 마음이 있었다는 거였다. 강형욱은 도시에서도 그렇게 뛰지 않고 지내는 보더콜리가 있다고 했지만, 견주는 그런 개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견주 가족은 풀어놓는 것이 개들의 자유를 위해 좋은 거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강형욱은 거꾸로였다. 풀어놓은 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그는 강변했다.

 

그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견주 가족에게 강형욱은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 개가 누구를 물고 다닐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만약에 풀어놓은 개가 여기로 와서 문지(개 이름)를 물면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그러다 아빠가 도와주려고 삽자루 들고 가서 탁 쳐서 그 친구가 어디 다쳐서 도망갔어요. 그러면 그 주인이 어떤 나쁜 놈이 내 개를 때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자신들이 키우는 개를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자유를 부여하려 할 정도라면, 역지사지로 그 자유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라는 강형욱의 조언이었다. 견주의 어머니는 교육을 통해 영역을 벗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개들보다 영리한 개들이라며. 하지만 거기에도 강형욱은 단호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울타리를 반드시 쳐야 하고 산책에는 반드시 목줄을 함으로써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강형욱의 솔루션이었다.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뚱이는 역시 영리한 개인 것만은 분명했다. 강형욱 앞에서는 덤비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 뒷모습을 보이면 달려드는 행동양식을 보였다. 또한 자율운동이 많다보니 규칙을 배우는 걸 힘들어했다. 하지만 강형욱의 지도로 뚱이는 조금씩 규칙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타인이 와도 기다리라는 주인의 말에 기다리는 모습을 금세 보일 정도로.

 

아마도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들이라면 이 집의 보더콜리처럼 마음껏 뛰노는 그 모습이 어떤 로망처럼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형욱이 강조한 건 그런 자율이 아니라 분명한 통제가 되는 상황 하에서 반려견과 사람들이 나름의 관계를 통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것은 반려견인 이상 야생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려견은 이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지칭 때문인지 우리는 가끔 반려견을 사람처럼 대하려 하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을 우리 식대로 이입하고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강형욱이 강조한 건 가족이긴 하지만 반려견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저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무한한 자율이 아닌 통제를 통한 사회화가 전제되어야 반려견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강형욱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사진:KBS)

'개그콘서트'의 한계 분명하다면 대안을 고민해야

 

갑작스레 터져 나온 폐지설이었지만 사실 놀라운 건 아니었다. 그간 KBS <개그콘서트>는 여러 차례 새롭게 단장하려 노력해왔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추락한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편성 시간을 금요일로 옮기고 나서는 시청률이 2%(닐슨 코리아)대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금요일이 방송사들의 격전지가 되어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개그콘서트>의 이런 편성은 사실상 '버리는 카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다.

 

폐지설이 나오고 KBS 측에서는 입장이 정리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KBS측은 "개그콘서트 폐지와 관련해 논의된 바가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KBS 제작본부장은 "폐지에 대해 신중히 논의 중이며 다음 주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혼돈을 줬다.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지만, KBS 내부적으로는 <개그콘서트>의 존폐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개그맨 이용식씨는 페이스북에 폐지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을 올리며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과거 <웃찾사> 폐지 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당시에도 <웃찾사>는 폐지되었다. 이용식씨가 걱정하는 건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개그맨 후배들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개그콘서트>를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유지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에 몸담고 있는 개그맨들을 수용할 대안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그콘서트>는 여러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그 한계가 드러났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즉 최근 달라진 대중들의 감수성에 <개그콘서트>는 대안적인 웃음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면이 있다. 이것은 KBS라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더더욱 엄격해진 잣대 하에서 소재나 표현이 제한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모비하, 가학성, 혐오발언, 성인지 감수성 등등 <개그콘서트>는 많은 논란의 소지들을 피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무려 21년을 유지해온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설이 나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도 한계를 드러낸 프로그램을 무한정 끌어안고 손실을 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과 작가, 코디까지 200명에 가까운 인력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는 게 어렵다면 적어도 이 인력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고민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개그콘서트>는 현재 폐지든 변화든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MBC <개그야>, SBS <웃찾사>가 폐지되면서 이런 위기 상황은 예고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폐지나 유지보다 먼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되고 활동하는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더 중요하다. 어째서 KBS는 지금도 이렇게 많은 가능성을 가진 개그맨들을 어째서 좋은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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