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9>, 손석희가 하니 뉴스도 다르네

 

손석희라는 이름 석자의 위력이 이렇게 컸던가. 그가 앵커로 나선 <뉴스9>은 확실히 달랐다. 17일 방송된 <뉴스9>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문제로 점점 불안감이 높아지는 수산물 아이템으로 구성된 묶음 뉴스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news9(사진출처:JTBC)'

먼저 손석희는 일본을 연결해 후쿠시마 현장을 직접 취재한 영상으로 그 방사능의 위험성을 눈으로 확인시켰다. 유령도시로 변한 그 곳의 새로운 주인들로 등장한 야생동물들은 실로 충격적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항구에서 조업을 서두르는 어부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방사능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뉴스는 실로 입체적이었다. 손석희가 진두지휘하는 스튜디오에서 일본의 특파원이 연결되고 그 특파원은 일본의 후쿠시마 취재 현장과 토쿄에서의 여론 취재를 각각 소개함으로써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에 대한 다각적인 입장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이어진 것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인터뷰다.

 

이 인터뷰는 손석희 특유의 집요함이 돋보였다. 국민들이 실감하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와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사이에 얼마나 큰 온도차가 있는가를 손석희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보여주었다. 기준치를 언급하며 수입금지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는 윤진숙 장관에게 손석희는 꽤 많은 방사능 수치가 보고되고 있는 도쿄나 홋카이도 역시 수입금지 지역으로 포함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결국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의 우려를 이유로 제시하는 윤 장관에게 손석희는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사안인데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것 아니냐”는 따끔한 한 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흔히 장관을 모셔놓고 적당한 질문과 답으로 넘어가는 식의 인터뷰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이나 의혹이 있는 점 등을 피해가지 않고 직접 던지는 그런 인터뷰. 이런 자세야 말로 국민들을 대변하는 투명한 매체 역할로서의 앵커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식의 다양한 시각을 담는 입체적인 접근법은 다른 묶음 뉴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에 관련한 사안도 <뉴스9>에서는 좀 더 포괄적인 입장에서 청와대의 너무 잦은 인선에 대한 잡음의 문제를 거론하는 측면에서 다뤘고, 나아가 현재 공무원 인사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행정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부작용까지를 꼬집는 식으로 훨씬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뉴스9>이 형식적으로 바꾼 가장 큰 것은 앞 부분에 묶음식의 기획뉴스들을 배치하고 스트레이트성 뉴스를 뒤로 놓은 점이다. 그리고 이 기획뉴스를 스튜디오와 현장, 인터뷰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묶어 훨씬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손석희 특유의 날카로운 지적과 민감한 사안도 에둘러가지 않는 질문이다. 이것은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더해주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시작 단계고 좀 더 지켜봐야 <뉴스9>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 보여주고 있는 손석희의 새로운 뉴스 실험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저녁 8시, 9시면 여기저기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곤 있지만 믿을 수 없어서, 또 너무 나열식으로 아무런 초점을 잡아주지 않아 오히려 복잡하고 혼동만 줘서 뉴스를 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그런 뉴스들 속에서 손석희의 뉴스는 확실히 뉴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모쪼록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길, 그래서 그 변화가 다른 뉴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JTBC로 앵커 복귀하는 손석희, MBC는 왜?

 

손석희가 앵커로 복귀한다. 지난 2000년 MBC <아침뉴스 2000> 이후 13년만의 앵커자리 복귀다. 그런데 그가 복귀하는 곳은 친정인 MBC가 아니라 JTBC다. 앵커로서 또 시사교양프로그램과 라디오 MC로서 손석희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 아나운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런 아나운서를 놓치는 건 방송사로서는 크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즉 MBC를 떠나 JTBC에 새로운 둥지를 튼 손석희 사장은 그 거취 자체로 그간 MBC의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가를 말해준다.

 

'JTBC 뉴스 시사(사진출처:JTBC)'

손석희의 앵커 복귀로 JTBC의 시사 보도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물론 지금껏 채널A나 TV조선 같은 종편 채널들의 시청률에 목맨 마구잡이식 보도 행태로 종편 전체의 시사 보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손석희가 JTBC의 보도 부문 사장으로 영입되고 온전히 그의 손에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 맡겨진 상황이니만큼 얼마나 다른 방송이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 또한 높아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손석희가 아닌가.

 

손석희가 앵커로 복귀할 <뉴스9>이 뉴스의 패턴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미 속보전에서 뉴 미디어에 밀려버린 TV 뉴스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뉴스 보도 패턴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 <뉴스9>은 이러한 관행적으로 해온 리포트의 백화점식 나열을 자제할 거라고 한다. 대신 당사자나 전문가 인터뷰, 심층취재를 강화해 TV 뉴스만의 경쟁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

 

이밖에도 시사 부문에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 교수가 <정관용 라이브>를 맡고, MBC에서 퇴사해 프리선언을 한 문지애 아나운서가 일일 교양 프로그램 <당신을 바꿀 6시>의 진행자로 나선다고 한다. 여기에 역시 MBC에서 퇴사해 프리랜서가 된 오상진 아나운서는 이미 <비밀의 화원>이라는 프로그램에 MC로 활약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손석희, 문지애, 오상진 모두 MBC가 밀어낸 아나운서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사적인 네트워크의 시각을 볼 필요는 없다. 프리선언한 아나운서들이야 방송이 생계일 수밖에 없고 문지애나 오상진은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된 아나운서들이 아닌가. 그러니 이들이 JTBC로 가든, 아니면 케이블 방송을 하든(오상진은 실제로 여러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것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을 게다.

 

다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왜 MBC는 이렇게 촉망받는 아나운서들을 모두 온전히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밀어냈던가 하는 점이다. 아나운서들은 사실상 방송 배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존재감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직업군들이다. MBC 사태에 대해 그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냈던 문지애나 오상진이 방송국 내에서 어떤 처지였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무수한 선배들이 아직도 프로그램 하나 맡지 못하고 외곽으로 떠돌고 있지 않은가.

 

보통의 회사원들이 사표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MBC 아나운서들이 줄줄이 사표를 쓴 것 역시 물론 개인적인 사정이나 진로가 있었을 것이다. 즉 문지애 아나운서나 오상진 아나운서가 류승룡이 소속된 프레인 TPC에 모두 전속계약을 한 것은 이들 역시 나름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사표를 내는 이들을 관리하지 못한 건 역시 회사의 책임이 크다. 손석희를 비롯해 최일구, 문지애, 오상진 등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빠져나가면서 MBC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도 상당부분 놓친 게 사실이다.

 

한때 서민들의 입과 귀를 대변해주었던 <MBC뉴스데스크>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고,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 2580> 같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인기도 시들해진 상태다. 교양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다큐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 때 금요일 저녁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MBC스페셜>은 근 몇 년만에 그 존재감을 상실한 상태다.

 

결국 방송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특히 방송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 시사 교양 프로그램, 그 중에서도 얼굴인 아나운서의 위치는 그래서 중요하다. 결국 그 얼굴들로만 보면 MBC는 JTBC보다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뉴스 시사 프로그램이 사실상 방송의 신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것은 MBC로서는 치명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MBC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을까. 물론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앞으로 손석희가 이끄는 JTBC 뉴스 시사 프로그램의 행보는 MBC에게는 그 자체로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것이> 309동 성폭행 편 후폭풍 거센 이유

 

<그것이 알고 싶다> ‘수상한 조서-309동 성폭행 사건의 진실’편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성폭행 사건은 조서를 통해 실제 벌어진 사건으로 둔갑했다. 그것도 그 조서로 인해 가해자가 된 이들은 이제 겨우 중학생들이었다. 마치 토끼몰이 하듯이 협박과 회유를 통해 없던 일을 있는 것처럼 조서를 꾸며 결국 아이들의 미래까지 파탄내버린 해당 경찰은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한 지적 장애 2급의 소녀를 중학생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으로 데려가 집단으로 강간했다는 이 충격적인 조서는 제 아무리 가해자들이 철부지 아이들이라고 해도 용서하기 힘든 내용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사건일수록 그 진위를 보다 정확히 밝히는 것이 경찰로서 아니 그저 어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상식일 것이다. 그 진실 여부는 자칫 한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서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 어디에도 이런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미 결과를 상정해 놓은 틀 안에서 장황하고 자세한 설명이 붙은 질문이 던져졌고 아이들은 그저 체념하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가끔씩 질문에 반박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서에서는 빠져 있었다. 이미 경찰의 머리 속에 그려진 대로 조서는 꾸며졌을 뿐이고, 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다 털어놨다는 거짓말에 속아 그 조서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을 뿐이다.

 

이런 식의 조서 과정을 우리는 익숙하게 영화나 소설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범죄자를 추궁하는 형사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그래서 <투캅스> 같은 영화에서처럼 하나의 클리쉐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영화이고, 하나의 풍자 코미디이기에 웃을 수 있었지만 만일 그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과연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범죄도 아닌 ‘집단 성폭행’ 같은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다면 그건 피눈물이 날 일이 아닌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고 절대 현실에서는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것도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 같은 약자에게 자행된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조서 내용에는 아이들의 실제 진술과는 달리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저질스런 단어들이 씌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은 실로 당시 피해자인 지적 장애 2급의 소녀가 사실은 동네의 아저씨들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유린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피해자인 지적 장애 2급의 소녀나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아이들이나 모두 어른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방송 이후 경기지방경찰청 게시판에 비난이 쇄도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대중들이 분노하고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일이 조서 과정을 담은 영상을 분석하고 그것을 조서와 비교해 그 과정의 문제를 드러낸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다. 덮여진 진실을 꺼내 공개하는 과정은 억울한 당사자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을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간 영남제분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온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국제중학교의 편법과 비리를 파헤친 ‘수상한 배려-귀족학교 반칙스캔들’처럼 이번 ‘수상한 조서’ 역시 그런 언론의 기능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여겨진다.

 

정치적 사건이든 경제적 사건이든 혹은 사회적인 문제든 세상에 알고 싶은 진실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것들은 언론을 통해 잘 보여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다 찍어놓은 방송분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붙여져 방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알고 싶다. 거기 숨겨져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루는 소재는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은 분명 언론이 왜 필요하고 존재하는가를 에둘러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진실. 대중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싸이가 되려면 크레용팝이 넘어야할 것들

 

몇 개월 전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크레용팝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놀랍기까지 하다.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세계무대로의 한 발을 내딛은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닷컴은 아예 대놓고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 엔터테인먼트)'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크레용팝이 내놓은 ‘빠빠빠’는 여러 모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다. 늘 섹시나 큐티 같은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걸 그룹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재 크레용팝이 내건 B급 걸 그룹 이미지는 실로 충격으로까지 여겨진다. 헬멧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걸 그룹이라니. 그 자체로 참신하지 않은가.

 

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멋을 느끼기 어려운 동작들은 차라리 체조나 캐릭터 코스프레 동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도적으로 허술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색한 동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의 앙증맞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빈 구석이 많다는 것은 채워 넣을 구석도 많다는 이야기. 바로 이 완전체 걸 그룹이 아니라는 점은 크레용팝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수한 패러디들이 만들어지고 SNS상의 화제가 생기는 건 대중의 자리를 남겨놓는 크레용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교되는 건, 그 유사성 때문이다. 일단 노래가 단순하면서도 쉽게 귀에 달라붙는다. 여기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직렬5기통춤’은 싸이가 했던 말춤의 걸 그룹 버전처럼 따라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활용한 전파 방식도 유사하다. 유튜브 없는 싸이가 존재할 수 없듯이, 크레용팝 역시 단순한 음악 위에 얹어진 유니크한 비주얼로 무장함으로써 유튜브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패러디처럼 팬들의 참여가 중요한 인기요인인 점도 그렇고, 유튜브에 얹어진 만큼 글로벌하게 이어지는 반응도 유사하다. 물론 노래가사가 외국인들조차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런 많은 장점들과 유사성들은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과연 크레용팝의 세계무대 진출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일단 일본 시장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시장 같은 곳에 진출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음악적인 실력이다. 유튜브가 띄운 싸이는 마치 비주얼적인 것만 강조된 바가 크지만 그는 음악적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작곡능력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가창실력을 갖춘 데다 무엇보다 그는 무수한 라이브 경험을 통해 관객과 함께 놀 줄 아는 가수라는 점이다. 이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싸이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끄덕였던 셈이다. 크레용팝이 이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갖추었는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싸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가능한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언어능력보다 중요한 건 그의 유머감각이다. 미국의 토크쇼 같은 데 나와 그가 언어적인 장벽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영어를 잘한다기보다는 순발력 있게 나오는 유머 덕분이다. 크레용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크레용팝이 넘어야 할 것은 이미지 관리 능력이다. 물론 팬들과의 잘못된 소통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수 있지만 크레용팝은 여전히 일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음악적인 호평도 이런 식의 정치적 색채를 띤 논란에 휘말리면 덮어지기 마련이다. 이념이나 정치성을 넘어서 모두가 응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언제건 크레용팝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크레용팝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늘 비슷비슷한 걸 그룹들의 홍수로 지칠 대로 지친 대중들이라면 이 재기발랄한 걸 그룹의 탄생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어렵게 탄생한 만큼 롱런하는 크레용팝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크레용팝은 차분히 본인들이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자체도 팬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크레용팝의 매력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세계무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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