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MBC 스페셜’의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의 ‘목숨 걸고 편식하다' 편은 꽤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습관적으로 말하는 “건강을 위해 골고루 먹으라”는 그 상식을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약을 끊게 하는 대신 식이요법을 시키고, 대장암으로 시한부인생 판정을 받았지만 식습관을 고쳐 삶을 되찾고,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서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면역억제제를 끊고 대신 금욕적인 삶과 먹거리로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 강도로만 보면 어느 르뽀보다도 고발 프로그램보다도 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과영양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편식하라’는 말은 과영양 시대의 역설을 담고 있다.

하지만 ‘MBC 스페셜’은 이 소재를 르뽀나 고발 프로그램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에 집중하는 것으로 모든 메시지에 대한 강변을 대신한다. 대신 이야기는 마치 ‘인간극장’이나 ‘휴먼 다큐 사랑’처럼 일상 속의 특별함 정도를 말해주는 것 같은 편안함과 친근함을 갖게 된다. 이처럼 강변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다큐의 진짜 미덕인지도 모른다. ‘MBC 스페셜’의 다큐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중심에 늘 사람을 놓기 때문이며, 또 메시지를 스스로 강변하기보다는 다큐 속의 인물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만드는 것 때문이다.

‘MBC 스페셜’의 연중 기획이랄 수 있는 ‘휴먼 다큐 사랑’은 바로 이런 점이 폭발력을 가지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적절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인물에 대한 집중과 거리두기가 꽤 잘 균형을 잡고 있다. 실제 메시지는 따라서 늘 뒤편에 서 있게 마련이지만(예를 들면 워킹맘을 다루면서도 그걸 전면에 세우지는 않았던 ‘풀빵엄마’처럼)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그 메시지야말로 진정한 공감에 이르게 하는 묘책이 되기도 한다.

‘MBC 스페셜’이 다루어왔던 일련의 셀러브리티(celebrity) 다큐 또한 연예인이나 스포츠맨 같은 유명인사들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함을 포착함으로써 호평을 받아왔다. 김명민 편이 그렇고 박지성 편이 그러했다. ‘최민수, 죄민수 그리고 소문’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억울한 근거 없는 소문으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최민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포착하면서도, 동시에 소문에 대한 사회심리학적인 객관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 ‘MBC 스페셜’은 특별한 보통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늘 보여왔다. ‘곰배령사람들’에서는 도시에서 살다가 곰배령에 들어와 살게 된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포착함으로써 거꾸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 같은 것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해녀’는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해녀들의 삶과 애환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두 측면의 메시지를 모두 담아냈다.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그 인물이 처한 환경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기법은 종종 환경 다큐멘터리로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인물 대신 북극곰을 카메라의 중심에 놓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문제를 드러낸 ‘북극의 눈물’이 그 대표작이 될 것이다. ‘북극의 눈물’은 이로써 시리도록 아름다운 북극의 자연을 보여주면서도 감동적으로 환경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새로운 환경 다큐멘터리의 한 지점을 그려냈다.

‘MBC 스페셜’은 7월3일 밤 ‘노견만세’라는 제목으로 죽기 전까지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은퇴견들과 그들과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해온 사람들 간의 눈물겨운 마지막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것은 역시 지금까지 인간-자연(동물)에 집중해온 ‘MBC 스페셜’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휴먼다큐 사랑’의 동물 버전처럼 여겨지는 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은 지금까지 ‘MBC 스페셜’이 걸어온 그 길이, 강변하지 않으면서도 늘 우리에게 어떤 감동으로서 메시지를 전해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상시대의 다큐는 아무리 사소해도 역사가 된다

우리네 TV에는 현재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도가 너무 높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그 영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뒤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TV의 비중으로 보자면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TV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이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재미와 오락을 선사한다면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은 매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다큐멘터리가 주목되지 못했던 건, TV의 오락적 기능에 우리가 편향되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도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그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다큐에 대한 달라진 인식
변화의 한 축은 대작 다큐멘터리들의 잇따른 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EBS에서 제작한 '한반도의 공룡', MBC의 '북극의 눈물', KBS의 '누들로드'는 모두 명품다큐라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중 특히 '북극의 눈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수출됐고, 극장판으로도 제작되어 환경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러한 특집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다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반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MBC스페셜'은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고, KBS '다큐3일' 역시 참신한 포맷으로 주말 밤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충분히 대중적인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워낭소리'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과거 '비상'이라는 축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4만여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그만큼 극영화 같은 허구가 아닌 리얼 스토리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에 대한 요구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이것은 또한 대중들의 영상에 대한 리얼리티와 진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흔히들 TV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리얼 토크쇼다 하면서 너나없이 리얼리티를 부르짖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과거처럼 짜여진 틀 안에서의 영상이 대중들에게 소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TV는 이미 일찍부터 리얼리티 영상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주창하고 나선 '무한도전'이나 그 영향으로 등장한 여행 버라이어티 '1박2일'은 모두 이 TV의 리얼리티 경향에 영향받은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박2일'은 사실상 다큐멘터리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길에서 만나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웃음의 코드로 엮어내는 방식은 다큐멘터리가 갖게 되는 진정성의 울림을 전해주기도 한다. 또한 '라디오 스타'나 '무릎팍 도사' 같은 일련의 리얼 토크쇼를 표방한 프로그램들 역시 다큐적 영상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토크쇼는 예정된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의외의 질문에 걸려드는 답변에서 리얼리티를 뽑아낸다. 심지어 TV의 리얼리티 경향은 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그것이다. 과거에는 대충 찍어냈던 의학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지금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드라마의 리얼리티 경향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는 그러한 전문성까지 드라마로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무엇이 대중들을 리얼리티에 집착하게 했나
대중들이 과거와 달리 이렇게 리얼리티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상의 대중화 때문이다. 과거의 영상이란 그 제작기술을 갖고 있는 특정 전문인들의 것이었다. 그만큼 기술도 복잡했고, 기술을 안다고 하더라도 방송장비가 어마어마한 고가였다. 다 찍는다 해도 편집이 또 장난이 아니었고, 그렇게 영상을 찍어냈다고 해도 그걸 방영할 플랫폼을 갖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전문가들에게만 부여되었던 특권이 영상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들에게 대부분 넘어간 상황.

우리는 누구나 조그마한 HD급 캠코더로 영상을 찍어서 프로그램으로 편집하고 인터넷에 게재할 수 있다. 이 사용자가 제작자의 역할을 함께 하게 되는 상황은 영상이 가진 신비적인 부분을 벗겨 내버리고 그 진면목을 드러나게 한다. 이제 모든 게 빤히 다 보이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 과거와 같은 영상을 대본에 맞춰 찍어낸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은 방송이 살아남기 위한 한 몸부림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영상에 대한 리얼리티 요구가 지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등장한 것이라면, 왜 그 동안 그 핵심이랄 수 있는 다큐멘터리는 영상의 중심에 자리하지 못했고, 이제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대중들의 시선이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던 탓에 다큐멘터리의 변화가 그만큼 늦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늘 그 고매한 위치에 진중한 무게를 갖고 누가 뭐라든, 하긴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하지만, 같은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하면 뭔가 대작이거나 가르치려는 듯한 뉘앙스, 그런 것들이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에 대중들의 눈길이 닿기 시작하면서 그 변화는 좀 더 빨라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부는 변화의 바람, 그 가능성
'인간극장' 같은 경우, 소소한 일반인들의 일상들을 잡아내면서 대중들의 호응을 끌어냈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이제 과거처럼 어깨에 힘을 잔뜩 주는 바로 그 거품을 걷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미 영상을 체험한 대중들에게 너무나 진지한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대착오적으로도 느껴지게 마련이다. 최근 호평을 받았던 '휴먼다큐 사랑'의 경우, 바로 그 낮은 시선으로 바라본 보통 사람의 위대함을 끌어냈기에 대중적으로도 성공했고, 사회적인 반향도 컸다.

한편 다큐멘터리의 접근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다큐 3일' 같은 프로그램은 통상적으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수개월의 제작기간이 걸린다는 단점을 새로운 프로그램 형식으로 차용해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단 3일 간의 취재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은 어쩌면 수개월 동안 취재해 찍은 영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적인 진실을 담아내기도 하니까. 게다가 최근에는 '30분 다큐'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해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열었다. 사실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는 PD들에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소소한 모든 것들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포획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의 다큐멘터리는 대중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시선을 한참 낮추고 있다고 보여지고, 이것은 향후 다큐멘터리가 TV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실로 영상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상의 다큐멘터리들이 하나하나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큐 3일'과 'MBC스페셜'이 찍은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은 연일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면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자시대의 역사란 글이 그 매체가 되는 것이지만, 이미 영상시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역사란 영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귀공자에게서 발견하는 서민적 모습, 이승기

'1박2일'에 처음 이승기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을 지도 모른다. 이승기가 가진 귀공자 이미지가, 거친 야생을 표방하는 '1박2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묘한 이미지의 엇갈림은 '1박2일'에서 이승기만의 독특한 매력을 끄집어내게 했다. 그것은 아무리 야생에서 생고생을 하면서도 꼭 냉수라도 머리는 감아야 하며, 얼굴 관리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이승기에게 그루밍족(자기을 가꾸는데 적극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오히려 강화시켰다.

김C나 이수근처럼 도무지 관리를 할 것 같지 않은 캐릭터들과의 대비효과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승기는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이 짓궂은 형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했다. 그간 '누님들 사이에서의 이승기'라는 이미지에서 '형들 속에서의 이승기'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이승기라는 캐릭터가 가진 인물의 스펙트럼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확장되기 시작했다.

'돌아온 일지매'의 캐스팅이 거론되었을 때가 이승기의 최대 고비였다. 사실 일지매라는 역할은 이승기에게는 무리수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연기를 해본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연기자들도 어려워하는 사극 연기는 연기자로서의 첫발로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지매가 갖는 고독한 이미지는 '1박2일'로 넓혀온 그의 이미지를 자칫 다시 고정된 이미지로 한정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승기가 '돌아온 일지매'를 고사하고 '찬란한 유산'을 첫 연기(이전에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상의)의 발판으로 선택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승기가 확보해놓은 이미지의 연장선으로서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우환이 이 드라마를 통해 변화해가는 과정은 저 '1박2일'에서의 이승기의 변화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재벌집 상속자로서 황제의 삶을 살아온 선우환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당한 채, 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저 '1박2일'의 이승기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연결된다.

설렁탕집에서 손님들 앞에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나, 고은성(한효주)에게 "주임님"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주면서도 선우환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승기의 매력을 끄집어내게 한다. 한편으로 고은성에게 조금씩 흔들리고 빠져가는 남성으로서의 이승기는 멜로의 주인공으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가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승기의 연기가 마치 '1박2일'에서의 그 빠른 적응력처럼 빠르게 드라마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조금은 굳어있는 듯한 그의 얼굴은 이제 제법 화를 내기도 하고,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 얼굴로 풀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연기의 세계 속에서의 '찬란한 유산'을 통한 이승기의 성공 역시 일정 부분, '1박2일'의 공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끝없는 도전 상황에 그저 내던지고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연기자의 기본 전제가 아닌가. '1박2일'은 그간 이승기에게 충분한 그 연습상대가 되어 주었던 셈이다.

'30분 다큐', 일일 다큐 시대를 열다

다큐멘터리를 음식으로 치면 어떤 것에 가까울까. 무언가 판타지를 제공하는 눈이 즐거운 화려한 색감의 음식이나, 톡 쏘는 향신료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어딘지 밋밋해도 재료 맛에 정직한 음식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30분 다큐'는 그 맛에 가장 근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지나친 자극도 없고 지나친 눈요깃거리도 없다. 하지만 이 지나치게 담담하게 우리 생활 주변을 낮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30분 다큐'를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거기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를 장식한 아이템은 '배PD가 108배를 하게 된 까닭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코너는 제목처럼 배용화 PD가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108배가 좋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 효과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직접 프로그램의 관찰자이자 주인공 역할을 한다는 점은 그만큼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쉽게 만든다. PD의 관심사와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의 그것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108배의 운동효과가 궁금하다고 해서 전문 무술인이나 한의사를 찾아가 소견을 묻고, 심지어 108배가 숙취해소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하지는 않는다. 즉 처음 시작은 일반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관심사항을 만들었지만 차츰 그 관심은 PD로서의 좀 더 전문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어 간다. 이 서민적인 눈높이에서 전문가의 눈높이까지 이행하는 친절한 전개는 '30분 다큐'가 가진 미덕이다. 이 코너 이외에도 '30분 다큐'에는 방송에 나간 맛집을 찾아가는 PD,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로 떠나는 PD,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여행해보는 PD 같은 안내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형식은 어찌 보면 느슨한 느낌마저 준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일반인들이 찍는 UCC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흔히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어딘지 엄밀함이나 진지함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주로 대작들이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이나 '누들로드', 혹은 '한반도의 공룡' 같은 것들. 아니면 자연 다큐멘터리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연상되는 그림들. 그것도 아니면 역사 다큐 같은 철저한 고증을 전제로 하는 엄격한 잣대들. 우리에게 그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이상할 정도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만을 다큐멘터리의 본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지금 시대를 포착해주는 한 단면을 거기서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훌륭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단면이 학문적인 영역이 아닌 생활의 영역 속에서라면 그 기록은 박제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함까지 가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30분 다큐'가 가진 일상의 기록으로서의 다큐가 가진 가능성은 그저 만만히 볼 성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30분 다큐'는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다큐의 특성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이라면 어딘지 부담이 되는 그 다큐의 시간은 30분으로 줄어들면서(실제 영상의 시간은 25분 정도가 된다) 어깨에 힘을 빼게 된다. 일상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한 편의 다큐가 될 수 있는 이 축소된 시간은 따라서 바로 그 일상을 잘 포착할 수 있는 형식이 된다. 게다가 이 여유(?)는 엉뚱한 시선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때 모든 카메라의 시선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가 있었지만, '30분 다큐'는 엉뚱하게도 그 대통령을 좇는 카메라들의 취재경쟁에 가 있었다.

'30분 다큐'는 그 짧은 시간제약을 통해 일상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열었다. 물론 '인간극장' 같은 일일 다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0분 다큐'가 갖는 시사성 있는 소재의 다양성이 갖게 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번뜩이게 만드는 상상력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일 다큐멘터리로서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0분 다큐'라는 거품을 뺀 다큐의 맛이 거창하지 않아도 입에 물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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