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다리 보다 든든한 가족을 가진 세진이의 희망가

세진이는 참 없는 것투성이다. 먼저 두 다리가 없고 오른손 손가락이 없다. 태어났을 때는 가족도 없었다. 남들 다 가는 유치원도 34번이나 퇴짜를 맞았고,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친구도 없었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왕따에 심한 놀림을 받기 일쑤여서 차라리 학교가 없었으면 했을 정도였다. 수영을 배우려 했지만 수영할 수영장이 없었고, 가르쳐줄 코치 선생님이 없었다. 외국에 수영대회를 나갈 때면 동행해주는 코치나 감독도 없어서 현지 적응하는데 애를 먹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세진이가 가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나 그를 안아준 엄마였다. 엄마를 만나고 나서부터 두 다리도 생겼고 손가락도 생겼다. 그리고 가족이 생겼다. 학교도 다닐 수 있었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춤도 배우고 스키도 타고 볼링도 치고 마라톤도 완주하고 록키산맥도 등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영을 배울 수 있었다. 엄마는 없는 수영장도 만들어주었고, 가르쳐줄 코치 선생님도 찾아주었다. 외국에 수영대회를 나갈 때도 늘 엄마가 옆에 있었다. '거위의 꿈'과 '나는 문제없어'를 응원가처럼 부르는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 뛰어난 코치이자 감독이었다.

'휴먼다큐 사랑-로봇다리 세진이'편에서는 저 스스로를 무서운 엄마, 나쁜 엄마라고 부르는 양정숙씨와, 그 엄마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세진이의 희망가를 들려주었다. "병신자식 데려다가 앵벌이 시킨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마는 세진이 앞에 저 스스로 모진 현실이 되어야 했다. 남들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 먼저 넘어지는 법을 가르쳤고, 한창 예쁜 말들을 배워야할 때, 병신, 등신, 장애인 같은 나쁜 말을 가르쳐야 했다. 그만큼 혹독한 현실 앞에 세진이를 당당하게 서게 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세진이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넘기에는 너무나 모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없는 두 다리를 만들기 위해 쓰러진 아이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워야 했고, 병신소리에 가둬놓고 때리고 온갖 모욕을 주는 학교에 가기 싫다 우는 세진이를 "오늘은 아닐 거라고 매일 달래서" 학교에 보내야 했다. 없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세진이는 안간힘을 써야 했고, 밤마다 자기 전에 보통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를 해야 했다. 수영장 물 더러워진다고 소독해놓고 가라는 수모를 받으면서도 엄마는 하루 여섯 시간을 수영장 청소를 해가며 세진이에게 수영장을 마련해주었고, 그렇게 만날 손이 부르터가지고 오는 엄마를 보며 세진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원한 것은 세진이가 애기였을 때 말했던 것처럼 그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엄마에게 세진이는 이제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그냥 우리들 앞에서 울어. 가족이 있는 한 가족 앞에서 풀어야 돼. 그게 가장 좋은 약이야." 엄마와 함께 '거위의 꿈'을 노래하던 세진이는 이미 그 엄마 뱃속 같은 물속에서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거위가 날아오르는 그 꿈을 말이다. '휴먼다큐 사랑-로봇다리 세진이'편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채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갖게 된 세진이를 통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칫 소중함을 잊고 지내왔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주었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가족이란 실로 그 어떤 로봇다리보다도 든든한 존재가 아닌가.

나이를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그들

햇수로 19년이 흘렀지만 한결 같이 저녁 6시면 들려오던 그 털털한 목소리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7000회를 맞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철수는 7000이라는 숫자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방송을 할 뿐"이라는 것. 하지만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팝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DJ로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만일 당대 스무 살로 처음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청취자가 됐던 분이라면 지금 불혹의 나이가 되어 있을 터(필자가 그렇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그 자체적으로 20년 터울의 세대가 갖는 차이 따위는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배철수라는 청년정신의 소유자 덕분이다.

이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배철수가 가진 세대를 넘는 흡인력에 놀라게 된다. 그는 때론 사뭇 진지하게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해대다가도 특유의 어눌한 목소리로 자신 역시 그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젠 채 하지 않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이 화법 속에는 자신 또한 한 명의 샐러리맨이라는 동류의식이 담겨 있다.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에 대해 배울 것은 배우는 자세로 듣다가도 할 얘기는 따끔하게 하는 그 모습은 선생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의 목소리로 친근하게 다가간다. 배철수를 들으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세월이라는 어찌 보면 잔인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청년일 수 있다는 그 편안함.

이런 한결 같은 청년정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아니 벌써'로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한 그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며" 인디 밴드들과 나란히 소극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동생의 죽음으로 산울림을 해체하고 작년 김창완 밴드를 재조직한 그는 인디 정신을 통해 청년을 수혈 받은 듯, 초창기 산울림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은 그의 현재가 단지 산울림을 추억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여전히 도전적이다.

김창완은 또한 연기라는 영역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열어놓았다. 김창완은 드라마의 조역으로 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 역할을 해오다가, '하얀거탑'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용길 부원장이라는 정치적인 인물을 연기하며 그는 조직 내에 늘 있게 마련인 직장 상사의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능글능글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편안함에서 나오는 그의 연기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귀차니스트 홍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내조의 여왕'에서 김홍식 이사 역할로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배철수나 김창완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물론 현재도 김창완은 활동중이지만), 음악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배철수가 송골매라는 그룹사운드로 한국적인 록의 세계에 한 획을 그었다면, 김창완은 포크 록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산울림을 통해 때론 동요적이고 때론 우울하며 때론 반항적인 록의 자유분방함을 구가해왔다. 아마도 이들이 지금껏 청년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록이 갖는 도전정신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이들 청년(?)의 행보가 우리 문화에 어떤 궤적으로 남을 지 자못 기대되는 대목이다.

모성애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는 힘, 가족

(아직도 어제 보았던 최정미씨의 젖은 눈과 앙다문 입,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보며 짓던 미소와, 은서의 그 작은 손과 초롱초롱한 눈, 엄마를 온 몸으로 감싸안는 그 행동들이 눈에 선합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그 가녀린 손짓들과 몸짓들이 전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미 칼럼으로 쓴 글을 블로거 뉴스로 다시 발행합니다.)

저 작은 고사리 손이 얼마나 많이 엄마의 발을 주물렀을까.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두 아이의 싱글맘, 최정미씨의 발을 매만지는 맏딸 은서의 손은 제법 야무지다. 이 일곱 살 아이의 손은 엄마가 잠시라도 누워있으라며 대신 설거지를 하고, 동생 홍현이의 목욕을 시켜주고 밥을 차려준다. 주중 동안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에서 지내야 하는 동안, 은서의 손은 엄마의 손을 대신해 동생을 살뜰이도 돌본다. 그렇게 엄마의 손을 대신하면서도 아이는 엄마한테 잘 해준 게 없다고 한다. 애들이 잘 때 그래서 아이는 그 고사리 손을 모아 매일 기도를 한다. 엄마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그래서 함께 지내게 해달라고.

'휴먼다큐 사랑'의 풀빵 엄마 최정미씨는 은서의 그 야무진 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리다. 아이가 너무 빨리 커버린 것만 같고, 자기가 해야할 몫을 자꾸 아이한테 하나씩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암 투병에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풀빵 장사만으로도 최정미씨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독한 항암제를 맞느니 치료를 포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은 두 아이의 엄마니까. 그녀는 입만 열면 자신이 '아이들의 그늘막'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은 없어져도 되는데, 아이들의 그늘 되어줄 사람이 없어지는 건 상상하는 것만으로 암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한다.

'휴먼다큐 사랑'이 늘 같은 감동적인 얼굴로 우리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다큐가 가진 진정성의 힘을 온전히 인간이라는 존재에 조명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똑같은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제목 그대로의 휴먼다큐. 풀빵 엄마 최정미씨의 이야기는 인간의 사랑이라면 가장 먼저 지목될 모성애를 그려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데다, 아빠 없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싱글맘으로도 충분히 힘겨운 삶에, 위암 말기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서도(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최정미씨는 더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모성애는 가족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얼마나 큰 희망과 힘이 되는지를 또한 말해준다. 한겨울 풀빵 장사를 위해 손이 꽁꽁 어는 길가에 서 있다가도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스크 쓴 얼굴 너머로 환하게 웃게 만드는 그 힘은 바로 그 가족이 준 힘이다. 위를 잘라내 잘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자꾸만 "엄마 밥 먹었어?"하고 묻는 딸 은서 때문에 그녀는 힘겨워도, 억지로라도 조금씩 음식을 넘기려 노력한다.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설날 떡국을 그 고사리 손이 챙겨 입에 밀어 넣어주었을 때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 넘기다가는 울컥하는 감정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가 더 이상 눈물 흘릴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그 와중에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도 휴지를 챙겨다주는 은서의 그 작고도 야무진 손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롱잔치에서 엄마에게 한 마디 하라는 말에 이렇게 말하고 훌쩍이는 은서 앞에서 엄마는 절대로 희망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늘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볼 때면 말기 암 환자라는 것도 잊는다고 한다. 엄마가 얼마나 살기 위해 노력했고, 또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하는 최정미씨는 이미 아이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휴먼다큐 사랑'의 풀빵엄마 최정미씨의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족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기적인가.

- 늘 낮은 곳에 계신 분들의 아름다운 삶이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보다 값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길가에서 지나다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풀빵 장수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님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인디문화는 어떻게 대중들과 만났나

누구나 싸구려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달달한 맛이 제 아무리 맛좋다는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강한 중독성이 단지 싸구려 커피가 가진 설탕물에 가까운 달달함 때문만일까. 아니다. 싸구려 커피는 어느덧 하나의 문화 감성이 되어 있다. 거기에는 서민들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대중들의 노곤한 감성이 들어있고, 단 몇 백 원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여유가 들어있다. 장기하가 부르는 ‘싸구려 커피’에는 우리가 흔히 대중문화라고 불러왔던 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좀 더 본질, 진정성에 가까운 대중의 감성이 녹아 들어있다.

‘싸구려 커피’같은 비주류로 취급되던 인디 감성의 문화가, 주류를 치고 들어오는 현상은 단지 불황을 맞은 탓만은 아니다. 즉 경제적인 논리로 보자면 인디 문화가 가진 저투자 고효율은 불황이 요구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단지 대중문화를 숫자적인 관점, 즉 양적 잣대로만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다. ‘싸구려 커피’의 주류 진입 성공의 이유는 오히려 질적인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류가 가진 상업적인 접근은 자본으로부터 생겨나고 자본이란 투여되는 순간부터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품’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쓰게된다. 개성은 이 잣대로 보면 때로는 리스크가 된다. 바로 이 부분은 왜 주류문화가 대부분 비슷비슷한 마치 대량생산된 통조림 같은 맛을 내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자본에서 독립되어 개성을 리스크가 아닌 무기로 장착한 ‘싸구려 커피’는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오는’ 맛이지만 좀더 진심에 가까운 맛을 낸다. ‘싸구려 커피’의 성공을 불황 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불황이 오히려 진정성을 더 요구하는 시대적 정황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싸구려 커피’같은 인디 문화들이 주류로 치고 들어오는 풍경을 적지 않게 목도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기적(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이다)이 그저 하나의 예외적 사례로 남지 않는 것은 그 뒤를 충분히 이을만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같은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셋집까지 뺀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 투자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본이 들어오면 그간 함께 일해오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만일 그 때 투자를 받았다면 똥파리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하고, 영화 연출도 어쩌면 익숙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지금 같은 ‘똥파리’만의 아우라를 갖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독립영화의 시험대로 불리고 있는 이 영화가 실제로 관객몰이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인디문화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제 인디 문화가 더 이상 싸구려라는 오명으로 불려지는 시대는 지났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잣대가 자본의 양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질적인 판단을 유보한다. 싸구려라는 말은 적은 돈(오히려 이 성격이 다른 돈이 질을 만들기도 한다)이 들어갔다는 의미로서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 대중들은 ‘워낭소리’나 ‘똥파리’,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밴드를 통해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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