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

어쩌면 자연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HD 방송을 HDTV로 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색의 감동이다. 그 선명한 색들 속에서 자연의 생명들은 진짜 살아서 꿈틀꿈틀 화면 밖으로 기어 나올 것만 같다. 국제 환경회의인 람사르 총회를 맞아 특집으로 방송된 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에서는 순천만 갯벌에 사는 도둑게를 비롯해, 짱뚱어, 망둥어, 낙지 같은 갯벌생명들을 멀리 떨어진 이 TV 앞까지 생생히 전해주었다.

도둑게는 갯벌에서 뚝방을 넘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와 음식을 훔쳐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HD 영상은 도둑게가 거의 직각에 가까운 뚝방을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기어오르는 장면과, 닫혀진 부엌문을 넘지 못해 닭똥, 심지어 개 사료까지 훔쳐먹는 장면들을 잡아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갯벌의 모습은 고속촬영으로 찍어 흔히 겉보기에 잠잠하게만 보였던 갯벌의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을 그려냈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것을 내시경 카메라 같은 시야를 확장해주는 장비는 세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장비를 이용해 갯벌 위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하는 카메라들이 발견하려 하는 것은 거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생존 경쟁이 있고, 사랑이 있고, 끔찍한 공포가 있으며, 즐거움이 있다. 그것들은 짱뚱어들이 서로 툭탁거리며 싸우는 모습에서, 게들이 짝짓기를 하는 모습에서, 또 낙지가 수많은 알을 낳는 장면에서 찾아낼 수 있다.

특히 갯벌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같이 잡아줌으로써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영상을 통해 느껴지게 만든 점은 이 프로그램의 덕목이다. 먹이를 잡기 위해 갯벌 위에 긴 족적을 남기는 생물들을 먼저 보여준 후, 자그마한 판자처럼 생긴 배를 끌고 갯벌로 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족적을 연결하자 거기 생태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과거의 자연다큐가 그저 그 곳에 사는 생물들의 신기한 삶의 방식들을 포착했다면 이제 HD로 생생히 살아난 자연다큐는 거기에 미학적인 영상을 통해 철학적인 울림까지를 전달한다. 실제 리얼리티에 가까운 영상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또 그 모습이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자연과 유리되어 살아왔던 도시인은 바로 자연의 일부로 되돌려진다.

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제 다큐멘터리가 이 HD를 만나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한 예감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진짜 힘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혹은 인간의 시야로는 잡아낼 수 없어서, 또 잡아낸다 해도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없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영상 자체의 생생함이다. HD로 인해 이제 저 바깥의 자연과 세상은 우리네 안방으로 조금씩 다가오게 되지 않을까. 마치 저 도둑게가 인가로 기어 들어오는 것처럼.

결국은 상업적인 선택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나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오나. 한 때 드라마는 방송사의 얼굴이었다.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고 얼마만큼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느냐는 그 자체로 방송사에 수익을 올려주면서 동시에 방송사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주었다. 하지만 경제상황 악화로 광고시장이 위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으로 드라마는 상업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떨어져 가는 수익성은 방송사에 이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드라마는 더 이상 수익도 이미지도 올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빠진 자리에 채워질 것이 예능 프로그램이란다. MBC는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를 폐지하는 대신 그 자리에 ‘명랑히어로’를 전진 배치하고, ‘무한도전’은 5분을 더 연장시킨다고 한다. 금요드라마가 사라진 SBS는 대신 그 자리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할 예정이다.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예능이 대안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고, 안 돼도 기본 시청률은 하는 그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대안이 굳이 예능이었어야 하며, 또 예능 역시 지금 드라마와 같은 경쟁으로 천정부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방송사가 외치는 건, 결국 돈돈돈일 뿐이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많고 경쟁 또한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  속에 비아냥의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 사라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늘 있어왔던 드라마 시간대 이외에 추가로 배치되었던 드라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BS 금요드라마는 그간 없었던 금요일 시간대의 드라마였고, MBC의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도 예능의 자리를 차고앉았던 것이었으며, 또 상업성을 노리고 KBS2에 신설되었던 일일드라마도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이 드라마들의 폐지는 드라마 세상에 낀 거품을 제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약화와 함께 방송사가 일제히 들고 나온 건 결국 상업성이다.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이니 수지가 맞는 예능으로 눈을 돌린 것뿐이라는 것이다. 평균 잡아 회당 6천만 원, 적게는 3천만 원 정도만을 갖고도 최소 10%에서 20%까지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으니 예능은 여러모로 드라마보다는 확실히 되는 장사다. 드라마에 낀 거품이 가져온 수익성의 약화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방송국의 상업성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그 빈자리에 참신한 교양이나 다큐 같은 것을 배치하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인가.

덩치 커지는 예능,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덩치가 커져 가는 예능의 버라이어티화는 드라마의 부실만큼 큰 뇌관을 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SBS의 ‘일요일이 좋다’는 회당 제작비로 1억3천만원이 투여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역시 회당 제작비가 1억2천3백만원. ‘해피선데이’가 방송3사 주말 예능 중 가장 적은 제작비를 기록했으나 그것도 미술비와 협찬을 제외한 비용으로 9천2백만원을 기록했다.

물론 모든 예능들이 이처럼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상대적으로 적은 6천5백만원, ‘스친소’는 6천3백만원, ‘개그야’5천8백만원, ‘스타킹’5천7백50만원, ‘야심만만-예능선수촌’5천6백80만원이 회당 제작비로 들어간다. 하지만 점차 버라이어티쇼에 입맛을 들이게 만드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상업적인 선택을 좋다고만 볼 수 있나
제작비를 좌우하는 연예인의 출연료와 야외촬영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즉 누가 출연해 어딜 가느냐가 관건이 된 예능 시장은 점차 이 부분에 대한 제작비 투여를 어떤 식으로든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캐릭터 중심에 이야기가 매회 구성되는 버라이어티쇼는 점차 드라마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항간에는 벌써부터 웰 메이드 드라마보다는 광고주 입맛에 맞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든 프리미엄 드라마보다 욕은 먹어도 시청률은 나오는 투자대비 효율이 높은 그런 드라마들이 판을 칠 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다. 앞으로 TV에서 좋은 드라마는 점점 사라지고, 반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더 많아지며, 그 중간을 상업적으로 무장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장악한다? 상상만 해도 TV가 풍길 돈 냄새가 물씬 퍼지는 느낌이다.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방송사가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TV가 온통 상업적인 색채를 띄게 되는 것 역시 좋다고 볼 수 있을까. 프로그램 몇 개 없애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수지가 맞는 예능을 채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진짜 문제는 드라마든 예능이든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거품들, 예를 들면 과도한 출연료나 작품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다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그런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이 위기의 상황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드라마틱’에 이은 ‘매거진T’의 휴간, TV비평은 어디로?

TV가 가진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TV비평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내 유일의 드라마 전문 비평 오프라인 잡지였던 ‘드라마틱’이 2008년 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데 있어, 온라인 TV비평웹진인 ‘매거진T’ 역시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잠정적인 휴간을 결정해 많은 애독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편집장, 백은하씨가 27일 남긴 글에 의하면 ‘매거진T’가 재정적자에 이른 이유로, ‘충분한 재화로 보상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웹 기사의 가치’그리고 수금체계 자체가 없는 ‘공짜정보’로서의 웹진이 가진 한계를 들었다. 백은하 편집장은 “지난 2년 5개월은 단 한 걸음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며 그 힘겨움을 토로했다.

‘매거진T’가 가진 TV비평지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하나의 웹진 그 이상이다. ‘매거진T’는 진지한 비평에서부터 가십성의 글, 그리고 매니아적인 정보까지 두루 갖춘 웹진으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 전문적이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가벼운 TV 프로그램에 관한 글들 속에서 늘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TV를 단순히 오락기 혹은 바보상자로 취급하며, 저 스스로를 평가절하 해온 TV비평은 사실 지금 같은 매체의 시대가 응당 그 가치를 복원해야할 어떤 것이다. 쌍방향 시대의 뉴미디어로 진화되고 있는 TV는 이제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지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매거진T’가 가진 TV프로그램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바로 그 TV비평의 가치를 이 시대에 복원시킨 공이 있다. 또한 지나친 엄숙주의로 비평의 이론에만 갇힌 학계의 비평과 결을 달리해 즐겁게 대중들의 눈높이를 찾아간 것도 ‘매거진T’만이 가졌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매거진T’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연예기사들의 바다 속에서 어느 정도의 격과 재미를 갖추고, 이리저리 휩쓸리던 대중들에게 어떤 등대 역할을 해준 점도 가치거니와, 우후죽순 등장하는 예비 비평가들에게 그 상징적인 가치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매거진T’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른 돌아오라”며 “자발적 구독료 운동을 하자”는 댓글을 달고 있는 네티즌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모쪼록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이 정상화되어 복귀하기를 기원한다.

신드롬 만드는 수목 드라마들, 그 힘의 원천은?

거침없는 독설 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따뜻한 면모로 순식간에 전국에 강마에 바이러스를 퍼뜨린 MBC ‘베토벤 바이러스’. 그리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천재 화원 신윤복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SBS ‘바람의 화원’. 이 두 수목드라마는 지금 단순한 드라마 그 이상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 신드롬을 촉발시킨 것일까.

고급예술이라고? 서민들거야!
이 두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그동안 고급예술로 치부되어 왔던 클래식과 고미술이다. 드라마는커녕 TV라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그리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이 두 소재는 그러나 이들 드라마로 들어오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클래식과 고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서민들과 만나는 지점은 수해를 입은 주민들과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는 시향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 상황에 무슨 놈의 클래식”이냐고 항변하는 주민대표에게 강마에(김명민)는 차분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듣게된 오케스트라의 음률에 지휘자가 된 사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구원이었죠. 위로였구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클래식은 배부른 자의 여흥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구원이자 위로이자 힘이라는 것을 강마에의 입을 통해 드러낸 셈이다.

한편 ‘바람의 화원’은 그 중심에 신윤복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고미술과 서민들의 만남을 예고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홍도와 같은 풍속화가이면서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양반의 허위적인 모습을 비꼬고, 당대 금기시 되던 기생들을 화제의 중심으로 삼아 ‘미인도’같은 미의 결정체로 그려낸 신윤복은 가장 서민과 함께 호흡한 화원이 아니었을까. 이런 드라마의 서민적인 면모는 김홍도가 중국의 고사를 그린 ‘군선도’를 보고 정조가 감탄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군선도에서 어찌 조선의 향취가 느껴지는가”하는 정조의 질문에 김홍도는 “사람들은 조선의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라 답한다. 저잣거리의 서민들이 바로 신선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대중들을 사로잡는 캐릭터, 그리고 호연
예술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두 드라마는 연출과 연기, 대본 어느 면으로 봐도 완성도가 높다. 특히 신드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강마에와 신윤복은 그 캐릭터가 매력적인데다, 그걸 연기하는 김명민과 문근영의 호연 덕택에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강마에는 말은 많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는 이 지도력 부재의 시대에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직설어법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다. 달콤한 거짓말보다는 괴롭더라도 현실을 알게 만드는 독설이 지금 필요한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독설 뒤에는 상대방을 위한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한편 신윤복은 남장여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당대의 억압을 지금을 살아가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해낸다. 즉 여자지만 남자로 살아가야 하는 그 운명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여성성을 희구하는 사회에서, 현실은 점점 더 경쟁적인 남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과 공감하게 만든다.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억압된 사회 속에서 오히려 당당했던 성 의식, 새장 안에 매몰되어 있던 당대 화단에서 저 스스로 새가 되려 했던 자유분방함은 지금 세대의 솔직함과 잘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물론 강마에 신드롬이나 신윤복 신드롬의 기저에는 고급예술을 스스로 향유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의식이 자리한다. 하지만 저 음반가게에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꺼내들고,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기 위해 간송미술관 앞에 늘어선 인파들의 마음 속에는 답답한 사회 속에서 이들 두 인물들이 주는 어떤 속시원함이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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