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드라마, 각본 없는 인터뷰를 만나다

KBS ‘단박인터뷰’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다. 지금껏 10%대에도 진입하지 못한 시청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단박인터뷰’가 20일 15.7%(AGB 닐슨)의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 이 날 ‘단박인터뷰’는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과 ‘KBS 뉴스’에 이어 전체 시청률 3위를 기록했다.

이유는 그 전 날 인터뷰 상대였던 역도의 이배영 선수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으로 끝내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쓰러지면서까지 역기를 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배영 선수. 그는 ‘단박인터뷰’에 나와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싸늘한 반응을 보이던 중국 관중들마저 아낌없는 박수를 쳐준 이배영 선수의 투혼에 대한 김영선 MC의 질문에 그는 ‘올림픽 정신’에 대한 진솔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전쟁이잖아요. 금메달 전쟁. 하지만 올림픽 정신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한 무한경쟁과, 금메달 따는 장면을 잡아내기 위한 방송경쟁, 금메달리스트에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 같은 퇴색된 올림픽 정신을 그 한 마디는 꼬집고 있었다.

이배영 선수에 대한 인터뷰는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고, 그 관심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에게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장본인인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 선수에 대한 다음 인터뷰로 이어졌다. 8년 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최민호 선수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라면을 맘껏 먹고 있다는 소박한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실로 전 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치고는 너무나 순박한 모습이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실신한 정도로 연습을 해왔다는 최민호 선수의 이야기는 그가 금메달을 땄을 때, 후배들이 “당연한 일”이라 말하며 눈물지었다는 솔직한 말에서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그 자랑 아닌 자랑(?)에는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어렵게 연습을 해온 자의 진정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단박인터뷰’가 이렇게 갑작스런 관심을 받는 것은 단지 그 출연진이 올림픽 스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인터뷰는 특유의 ‘단박함’으로 기름기(?)없는 인터뷰를 추구한다. 질문은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없으며 답변 또한 꾸며진 것이 없다. 게다가 인터뷰 말미에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보고 한 소절 부탁하는 것은 ‘단박인터뷰’만이 가진 매력이다. 그 노래 속에는 노래하는 자의 인생이 묻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한다면 인터뷰 역시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할만하다. 거기에는 꾸며지지 않은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가 들어 있다. 스포츠와 인터뷰의 이 ‘각본 없음’ 속에 묻어나는 진정성. 이것이 ‘단박인터뷰’가 올림픽스타들을 인터뷰하며 보여준 인터뷰의 참 맛이다.

시청자인가, 방송사인가

연예대상, 연기대상. 연말만 되면 각종 상들이 난무한다. 한 해를 정리한다는 의미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올해의 각종 시상식들 역시 오래된 병폐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유난히 많은 공동수상은 바로 그 부분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특히 MBC 연기대상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부문에서 공동수상이 나왔다는 점은 이 시상식의 목적을 의심케 만들기에 충분하다. 공동수상은 과거 나눠먹기식 시상식의 노골적인 형태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수상의 변으로서 방송사의 주장은 단순하다. 너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드라마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한 명에게 상을 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지나친 자화자찬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 해 동안 자사에서 방영된 드라마들이 이것도 좋았고 저것도 좋았다는 식의 이야기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럴수록 좀더 엄정하게 시상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그것이 좀더 그 상이 있게 한 시청자들에게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

일단 그 상을 누가 주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MBC 연기대상은 시청자가 투표해서 뽑는 베스트 커플상, 남녀 인기상, 올해의 드라마상을 빼고는 그 시상기준이 모호하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들을 세워놓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이것이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방송사가 시청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후보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송사는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후보들을 선정했을까.

애매하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론 심증은 있다. 그것은 드라마의 방송사에 대한 기여도다. 여기에는 시청률이란 잣대가 최우선이 될 것이며, 시청률이 조금 떨어져도 방송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다음이 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것은 현재 진행형인 드라마의 홍보이거나 앞으로 시작할 드라마를 위한 사전 포석(예를 들면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 대한 의미 없는 후보 거론 같은)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들을 사랑해주었다는 방송사의 말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심증에 불과하다.

이처럼 시청자의 의견이 빠져버린 시상식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뿐더러, 나아가 누가 누구에게 상을 주는가 하는 점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실제로 연기자나 드라마에 상을 주는 것은 시청자들이야 함이 분명한데, 방송사가 마음대로 연기자에게 상을 주는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소외된 시청자들은 방송사의 목적(?)에 이용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저들의 말대로 많은 사랑을 했고, 그래서 기꺼이 누군가의 수상에 박수를 쳐야만 하는(실제로는 저들끼리만 박수를 치는 경우가 많다)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각종 시상식의 통합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망은 이런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방송사간의 경쟁이라도 있어야 그 공정성이 유지될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TV를 가득 메우는 각종 시상식이 전파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 시상식을 하려면 시청자가 소외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만약 방송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공동수상을 남발할 정도라면, 저들만의 시상식보다는 한 해 동안 사랑해주었던 시청자들을 위한 쇼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시상식 자체를 쇼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더라도 그 쇼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가수 인순이, 극중 박인순 그리고 모두의 인순이

편견을 넘어 날아간 거위, 인순이
그녀는 혼혈아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는 그녀를 냉대했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그녀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 고등학교는 그녀의 꿈이었다. 노래를 한다는 것도 그 당시엔 딴따라라 불리는 또 하나의 비아냥이었다. 피부색, 인종, 학력, 직업. 그녀는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든 편견을 다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노래가 있었다. 때론 아픔을 달래주고 때론 그 아픈 마음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노래. 그녀는 노래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세상에 날려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편견으로 가득한 이 사회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한 것이다. 혼혈아가 아니고, 못 배운 중졸 혹은 딴따라가 아닌 인순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그녀의 마음이 담긴 노래는 세상의 편견을 녹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부른 ‘거위의 꿈’은 10년 전, 이적이 만들고 불렀던 곡이지만, 긴 시간을 돌아 노래 주인을 찾아왔고, 덕지덕지 편견의 족쇄에 묶인 채 날지 못했던 거위는 세상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그녀가 날자 세상 저편에서 푸드득하고 변화의 날갯짓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왔다.

전과자도 스타도 아닌 자기 이름 박인순
같은 이름을 가진 KBS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인순이는 전과자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친구를 죽였다는 죄로(물론 후에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교도소에도 갔다. 긴 수감생활 끝에 수갑을 벗고 사회에 나왔지만 사회는 그 수갑을 벗겨주지 않았다. 엄마도 없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정붙일 곳 없는 처지에 직업마저도 가질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던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부른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상우다.

상우를 통해 다시 살게된 인순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났던 엄마를 다시 만나 새 삶을 시작하지만 편견은 바깥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엄마조차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선택하려던 자살. 그 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플랫폼 밑으로 떨어진 취객을 구하게된 인순이는 순식간에 ‘지하철녀’란 이름으로 스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순이가 불려지길 원하는 이름은 전과자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그저 자기 이름 박인순일 뿐이다.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 ‘거위의 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이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지하철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박인순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부를 때이다. 노래는 형편없다 못해 방송사고 수준. 짤막하게 부르고 끝냈어야 할 그 노래를 그녀는 끝까지 불러버린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만’ 끝까지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노래부르게 했을까.

이 ‘나도 모르게 그만’은 그러나 드라마 속 음치인 박인순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그녀, 가수 인순이에게서도 벌어졌다. 지난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의 일이다. 조금은 피곤한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곤 시작된 ‘거위의 꿈’.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꼈을 것이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드라마 속 박인순을 엉망이지만 끝까지 노래하게 한 것도, 가수 인순이가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 노래를 하다 끝내 음정을 놓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도 모두 그 ‘거위의 꿈’이 전하는 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찢겨지고 남루해도 보물처럼 간직했던 꿈, 누군가 뜻 모를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던 꿈, 이미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헛된 것이라고, 독이 될 뿐이라고 말하던 꿈. 그 꿈 하나 부여잡고, 벽처럼 서 있는 편견 가득한 무거운 세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순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또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려 살아가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꿈은 멀고 현실은 너무나 무겁기에 우리는 종종 자격지심과 우월감으로 ‘꿈을 가진 나’를 버리려 한다. 그 나를 폄하하거나 과장하려 한다. 그럴 때면 한번쯤 자신으로 돌아와 남루한 실력이나마 자신만의 ‘거위의 꿈’을 불러보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순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위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사보 '원우'에 실린 글입니다)

정치광고 속 후보들의 이미지 전략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흘러내리던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쐐기를 박는 말.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 TV광고는 이미지가 정책보다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정치광고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대중들이 그 광고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이 담고있는 반전, 무신론, 무정부주의 등의 사상을 보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고 속에는 아무런 정책이나, 적어도 정책에 관련된 뉘앙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왜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것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대선 광고는 이미지 전쟁 중이다.

좋은 대통령 정동영, 네거티브 전략
정동영의 광고전략은 네거티브 전략이다. 메인 타이틀로 ‘좋은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은 반대로 ‘나쁜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인 셈. ‘프리허그’를 차용한 첫 광고는 서로 안아주는 장면들과 정동영이 등장하면서 ‘이제 희망을 안으세요. 여러분의 희망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연결되고 거기에 사람들의 “좋은 대통령 되세요”라는 말에 정동영이 “따뜻하고 행복한 나라 함께 만드시죠.”라고 하며 끝난다. 광고 컨셉은 따뜻하고 행복한 이미지를 프리허그를 통해 보여주면서 여기에 정동영 후보의 모습을 넣어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행복을 꿈꾸는 소년’편 역시 이 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의 행복을 꿈꾸는 정동영과 그간의 정치행적을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약속하는’ 말로 집약적으로 풀어내면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정동영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광고들은 본격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끄집어낸다. 다분히 젊은 세대의 표심을 의식한 ‘랩 배틀’편은 랩이 가진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컨셉을 이명박 후보의 ‘나쁜 대통령’ 이미지를 끄집어내는데 활용한다. 또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락 버전으로 흘러나오면서 ‘나쁜 대통령’의 거짓말을 부각시킨 ‘거짓말’편도 이 맥락을 거의 이어가고 있다.

정동영의 광고는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에, 상대편 후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병치한다.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가운데, 정동영 후보는 이에 대해서 “상대편이 워낙에 문제가 많다”는 쪽으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정동영 후보의 광고는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상대방이 나쁘니까’ 라는 진술방식은 자칫 국민의 선택을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몰고 가는 정치적 냉소주의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경제 대통령 이명박, 다 나빠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
정동영 후보의 공세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그 자체로 답변을 담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편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왜 하필이면 이명박 후보가 찾아간 인물이 욕쟁이 할머니여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광고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먼저 욕쟁이 할머니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을 감정이입시키는 부분에서부터 살아난다. 이명박 후보는 그것이 뭐든 이 광고 속에서 욕을 먹는다. 이것은 현실에서 그 자신이 이런 저런 구설수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광고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 욕은 욕쟁이 할머니라는 캐릭터로 들어오면서 부정을 위한 욕이 아닌 긍정을 위한 욕으로 치환된다.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이것은 욕쟁이 할머니의 입으로 나오는 국민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욕들은 조금씩 색깔을 달리한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욕을 먹던 이명박은 이 부분에서 밥을 먹는다. 즉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어지는 이명박 후보의 ‘살려주이소’편도 결국 경제 이야기다. 여기서는 “살려주이소”라는 말의 힘에 기대어,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부각시키면서‘경제를 살려달라’는 의미를 끄집어낸다. 시장과 서민들의 이미지에 눈물을 보태면서 이명박 후보는 상대적으로 허점이 될 수 있는 구설수들을 ‘경제를 살리라’는 지상과제 아래 불식시킨다. 한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 다른 한편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넣어 지역배분까지 고려하는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치밀한 전략과 한 가지 메시지에 천착하는 힘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컨셉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놓고 보면 위험한 발상은 아닌가 짚어봐야 할 것이다.

반듯한 대통령 이회창, 아직도 반듯한 이미지?
광고 전략으로서 개인의 이미지보다는 정책이 가진 이미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의 광고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 된다. 광고는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 무너진 교육을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마음, 어려운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가장의 마음을 안다는 진술 끝에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출마선언과 낙방을 ‘국민의 마음을 알게된 계기’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로써 이 광고는 가정, 교육, 사회, 경제 전반을 모두 담으면서 거기에 ‘반듯하다’는 한 마디로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를 세워놓는다.

감정적인 소구를 하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내용을 담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하지만, 이미지 정치광고가 한창인 요즘, 광고로서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광고에 힘을 쓰지 못했던 이회창 후보의 광고가 다시금 떠오르는 건, 당시에 보였던 정책적인 뉘앙스들이 여전히 광고 속에 스며있고, 이회창 개인의 이미지가 지난 대선과 거의 다르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똑같은 반듯한 이미지가 이번에는 힘을 발휘할지 두고볼 일이다.

광고의 이미지, TV토론으로 이어지길
문국현 후보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실제로 국민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함, 글로벌 경제인, 존중하는 인물로 내세운다. 문국현 후보가 광고로 세우는 이미지는 ‘믿을 수 있는 경제대통령’, 즉 경제도 알고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서 끌어온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점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광고 중간 이후부터 컨셉이 하나로 집중되기보다는 문국현 후보의 다양한 일면을 나열하고 있어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권영길 후보는 그 칼날을 삼성에 직설적으로 겨누면서 정치가 혼탁하고 경제가 어려운 것이 ‘60년 부패 고리’에 있으며 그것을 끊는 자신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삼성을 대변하는 TV와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터뜨리는 장면은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하지만 경제적 이슈가 최고의 가치가 된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이런 이미지가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권영길 후보는 광고를 통해 확실한 자기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정치광고시대에 대선 후보들의 광고는 이제 어떤 이미지를 내세우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감성적인 이미지로서 후보를 어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언어가 영상이 된 영상시대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광고 이미지들이 정책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시대에 광고가 아닌 정책 대결을 보여줄 수 있는 TV토론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광고의 이미지가 TV토론에서의 정책과 잘 맞물리는지, 유권자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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