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에 화제성까지 가져간 ‘하얀거탑’, 드라마 관계자들 반성해야

어째서 11년 전 드라마인 <하얀거탑> 재방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걸까. 11년 전 드라마를 다시 틀어주는 건 MBC 파업의 후유증으로 인해 결방된 월화극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재방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만만찮다. 

첫 회 시청률도 4.3%(닐슨 코리아)로 낮은 편이 아니다. 물론 동시간대 타방송사 드라마와는 격차가 있다. KBS <저글러스>가 8.2%, SBS <의문의 일승>이 7.7%를 기록했다. 하지만 <하얀거탑>이 재방 드라마인 걸 감안하고 보면 이만한 성적과 특히 여기 쏟아지는 화제는 결코 작다 말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건 지금 현재 지상파의 드라마들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월화극은 어디에 채널을 고정시켜야 할지 확실한 승부수를 찾기 어려운 드라마들로 배치되어 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저글러스>만 봐도 그렇다. 비서와 상사 사이의 직장 내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11년 전 드라마인 <하얀거탑>보다도 더 퇴행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저글러스>의 여성 캐릭터만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능동적인 면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사내 연애가 들통 나며 갖가지 오해와 추문이 생겨나는 위기를 맞이한 좌윤이(백진희)는 집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닫아걸고 울며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남치원(최다니엘)이다. 이건 신분을 속이고 비서로 입사했다 상사에게 들통 난 왕정애(강혜정)도 마찬가지다.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본인이 아니라 그의 상사인 황보 율(이원근)이다.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는 물론이고 기승전멜로 같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도 이 드라마에서는 그대로 드러난다. 어찌 보면 직장 내의 성차별이나 권력 다툼 같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충분한 드라마지만, <저글러스>는 그런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사회적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 차원(멜로)으로 넘어서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11년 전 <하얀거탑>이 처음 방영됐을 때도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전문직이라고 내걸고는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라거나 ‘가운 입고 연애하는 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나오던 이른바 의학드라마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기승전멜로의 틀로 장르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멜로드라마였다는 비판을 받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얀거탑>은 그래서 당시 이런 환경 속에서 우뚝 홀로 서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온전히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에만 집중해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천재 외과의사의 성공을 향한 무한질주와 좌절에만 집중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11년 후인 지금 <하얀거탑> 재방에 쏟아지는 관심과 호평은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남긴다. 그건 마치 지금의 지상파 드라마들이 무려 11년 간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때의 그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면 새로움을 시도하기보다는 안전한 선택 안에서 어딘지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본격 장르물 같은 시도들이 잘 보이지 않고, 로맨틱 코미디 같은 가벼운 드라마들이 부쩍 늘었다. <하얀거탑> 재방에 쏟아진 관심은 어찌 보면 그 반작용처럼 보인다. 11년 전에도 나타났던 그 반향이 지금도 반복된다는 사실을 지상파 드라마의 관계자들은 한번쯤 곱씹어봐야 할 듯싶다.(사진:MBC)

‘황금빛 내 인생’ 나영희, 재벌가라도 이런 시어머니라면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면 들어가고 싶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신혜선)네 집안에 불어닥친 불행의 시작은 갑자기 해성그룹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사업 실패 후 그 사실을 숨긴 채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왔고, 첫째 서지태(이태성)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 자체를 꿈꾸지 않았으며, 서지안은 어렵게 인턴으로 해성그룹에 들어가 일하고 나서도 낙하산으로 뚝 떨어진 금수저 친구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상처를 입었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 딸이 내 딸이라고 나타난 해성그룹 사모님 노명희(나영희)의 등장 앞에 이 집안은 균열을 일으킨다. 엄마의 거짓말 때문에 친 딸인 줄 알고 들어갔던 서지안은 진실이 밝혀지자마자 그 집안에서 쫓겨나고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친 딸로 다시 들어간 서지수는 가족이 아닌 사관학교 같은 그 집안의 공기를 적응하지 못한다. 겨우 자신이 사랑하던 선우혁(이태환)과 좋은 관계가 되었지만 그 집안이 오히려 발목이 되어 그들은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 지안, 지수의 엄마인 양미정(김혜옥)은 두 딸 모두로부터 버려지다시피 했고,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차라리 죽음이 축복이라 받아들이는 힘겨운 현실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반 이후부터는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 진정한 행복을 찾아 해성가로부터 탈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지안은 쫓겨나 극단의 선택까지 가게 되지만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게 되었다. 해성가의 후계자인 최도경(박시후) 역시 해성가로부터 빈털터리로 쫓겨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고, 하다못해 막내 딸인 최서현(이다인)도 서지호(신현수)와 만나 함께 창업을 해가며 제 손으로 일해 돈을 버는 그 경험들을 해나간다. 

흔히들 재벌가 하면 누구나 신데렐라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신데렐라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최도경의 구애를 오히려 서지안은 거부한다. 그는 노명희 앞에서 당당히 “제가 싫거든요”라고 말했듯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 집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선을 긋는다. 그건 불행한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건 서지수를 사랑하지만 그가 해성가의 딸이라는 걸 알고는 이별을 통보하는 선우혁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이들은 모두 재벌가가 싫단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그것이 불행이라는 걸 확증시키는 인물은 역시 노명희라는 인물 그 자체다. 그는 해성가의 딸로 자라나 최재성(전노민)과 결혼했고 그래서 지금도 실권을 쥐고 있지만 행복이 없다. 최재성이 말하듯 노명희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사람이 없다. 스스로는 그것이 약한 자들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외로움을 가리려는 변명처럼 보인다. 최재성은 가난하게 자라나 재벌가의 딸인 노명희와 결혼했지만 해성가로 들어온 그 삶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황금빛 내 인생>에 ‘황금빛’처럼 보이는 재벌가의 모습은 불행 그 자체로 그려진다. 

물론 극화된 이야기일 것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면은 최근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에 대한 양가감정을 투영해내고 있다. 즉 많이 가진 그 화려함에 눈이 멀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이 빛을 내는 이면에 놓여진 섬뜩한 돈의 논리들이 주는 진저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 제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저런 시어머니 아니 어머니라면 그 누구라도 진력이 날 수밖에 없는 재벌가의 민낯을.(사진:KBS)

‘나쁜 녀석들2’, 주인공급 김무열의 죽음이 예고하는 것

OCN 주말드라마 <나쁜 녀석들2>는 8회 만에 서원시를 쥐고 흔들던 조영국(김홍파)과 그와 결탁했던 비리검찰 이명득(주진모) 검사장이 모두 검거됐다. 우제문(박중훈) 검사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고, 또 희생도 컸던 이 사건이 이제 겨우 중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마무리됐다는 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된 우제문과 함께 했던 이른바 ‘나쁜 녀석들’은 그러나 여전히 그 사건 이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양필순(옥자연)의 살해범을 장성철(양익준)은 계속 추적하고 있고, 허일후(주진모)는 제 손으로 조영국(김홍파)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생업을 하며 알게 된 한 소녀의 실종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박창준(김정학)의 죽음이 조영국의 사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진평이 그 사건을 수사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일이다. 그는 죽기 직전 우제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진범을 찾았다.”며 검찰 내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특히 조영국-이명득 사건을 수사할 때 함께 했던 “특수 3부 사람들”이. 

노진평은 조영국-이명득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를 맡았던 인물이다. 검찰총장이 이 모든 사건이 조영국으로 인해 생긴 일이라 주장하는 이명득과, 그게 아니라 이명득이 오히려 악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반준혁(김유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노진평이 던진 한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쪽팔리지 않게 해달라”며 “법대로만 해달라”고 요구해 검찰총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검찰총장이 반준혁의 손을 들어줘 이명득은 검거되게 됐다.

그래서 사실상 주인공이라 여겼던 노진평이 이렇게 드라마 중반에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16부작으로 아직도 8회 분량이 남은 시점에서 왜 <나쁜 녀석들>은 거의 주인공의 무게를 갖던 노진평의 죽음을 그려낼 수밖에 없었을까. 그건 이 드라마가 나쁜 놈들 몇몇을 잡는 것으로 ‘적폐청산’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인물은 바뀌어도 ‘악의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래서 이명득이 나간 자리에 이제 실세로 서게 된 반준혁이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팀이 해체된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내건 검찰이 특수 3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이 ‘악의 시스템’이 인물만 바뀌어도 되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수 3부는 이른바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결국 노진평의 죽음은 이 ‘악의 도시’가 갖고 있는 공고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으로서 후반 남은 8부 동안의 싸움이 더 치열해질 것을 예고한다. 그것은 가지를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뿌리를 건드리는 일이 될 것이니 말이다. 

적폐청산이 어려운 건 그 적폐가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내부의 적도 포함하고 있어서다. 그러니 그건 제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나쁜 녀석들>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선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소외된 이들이기 때문에 안과 밖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게 된 것.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노진평의 죽음이 이해되는 건 그래서다. 그의 죽음은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사진:OCN)

‘황금빛’ 나영희, 가진 자들의 착각 혹은 오만

“너였구나. 우리 도경이 집 나가게 한 게 너였어. 서지안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쳤구나. 네 엄마 아버지로 부족해서 너까지. 배포가 아주 크구나 너. 그 엄마에 그 딸이야. 들어와서 팔자 바꾸려다 안되니까 다른 길을 찾은 거니? 도경이한테 붙으면 해성가에 다시 들어올 줄 알았어? 이번엔 엄마 아버지까지 같이 머리 모아 기획했니? 서태수가 네 연락처 안 가르쳐줄 때 수상했어. 우리 도경이 어딨어. 경고하는데 그 입에서 또 한 번 한 마디라도 거짓말 나오면 가만 안둔다 지안아.”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인생>에서 해성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다짜고짜 서지안(신혜선)을 찾아와 집 나간 아들 최도경(박시후)이 너 때문이 아니냐며 몰아세운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가진 착각과 오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아들 최도경이 자신들의 그 숨 막히는 세계로부터 탈출해 나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다. 대신 서지안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착각하는 것.

착각과 오만은 그게 끝이 아니다. ‘감히’라는 표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이 뼛속까지 들어차 있다. 그래서 서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 속에는 핏줄에 따라 그 사람도 다르다는 그의 이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돈 좀 있다고, 그래서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

그래서 노명희는 해성가 같은 재벌가라고 하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안달난 줄 안다. 그래서 서지안을 몰아세운다. 마치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냐고 강변하듯. “언제부터였니 니들. 네가 아닌 거 알고 나서지? 그래서 너 도경이한테 먼저 말했지? 도경이 욕심나서. 도경이를 가지면 해성을 가질 수 있을 줄 알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정도면 노명희는 ‘재벌가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 같다. 

이어지는 서지안의 일갈은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아놓는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최도경 씨하고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최도경 씨 이용해서 얻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특히 해성가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전. 제가 싫거든요.”

서지안의 이 한 마디는 이른바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전형적인 틀을 깨는 발언이고, 오히려 ‘재벌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노명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말이다. 정신 좀 차리라는 것.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그 재벌가를 끔찍하게 경험한 서지안에게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건 지옥 같은 일이다. 게다가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 다시 살아난 그는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일궈나가는 길이 진짜 잘 사는 길이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노명희가 살아가는 삶이 ‘황금’으로 둘러쳐진 화려한 삶일지라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지만, 집을 나와 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조금씩 제 인생의 빛을 찾아가는 서지안의 삶이 훨씬 행복해보이는 이유다. 그러고 보면 서지안을 걱정해 전화한 아버지가 한 말이 유독 큰 울림으로 남는다. “네가 어떤 아이였는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만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네 길의 불빛은 너만 비출 수 있는 거야 결국.”(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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