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큰 울림, ‘세상에서’ 같은 리메이크 더 없을까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님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그 놈 대학갈 때, 정수 대학 졸업할 때, 설날 부침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이제 떠날 것을 직감한 인희(원미경)가 남편 정철(유동근)에게 자신이 언제 보고 싶을 것 같냐고 묻자, 남편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오르는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전부 다 아내가 그리울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것이지만, 그 그리움의 순간들은 무슨 대단한 일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함께 해왔던 일들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고, 앞으로는 많은 날들을 혼자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리게 다가온다. 

다음 날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인희를 발견한 정철은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는 그들이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벽에 붙어 있는 바다에서 가족이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집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창 밖 풍경, 나란히 놓여 있는 신발, 널어놓은 빨래들, 함께 앉아 있던 의자, 남편이 읽어주던 책, 바다에서 사진 찍던 그 날의 기억을 훑어나간다. 마치 떠나는 인희가 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듯.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담으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게다. 죽음에 이르러 누군가의 한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소박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시한부의 삶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시선으로 인해 짧은 4부작임에도 큰 울림을 전해 주었다. 

사실 199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그러니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지금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구심으로 다가왔던 리메이크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픈 몸에도 치매를 앓는 노모를 걱정하는 자기희생적인 주부의 면면들은 윗세대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메이크 작품이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노희경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그런 가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리메이크작으로 남은 건 4부작이라는 압축미 때문이었다. 본래 1996년도에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4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지만, 그 압축적인 스토리는 리메이크작에도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만일 이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장편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해보라.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또 하나 거둔 성과는 단막극이 가진 그 짧은 형식만의 가치다. 갈수록 단막극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이 작품은 어째서 단막극이어야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짧은 인희의 삶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었듯이.

향후에도 이 작품처럼 거장들의 명작을 짧은 리메이크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미니시리즈나 장편이라도 단막극 형식으로 압축적인 리메이크를 통해 재탄생한다면 아마도 그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명작을 리마인드하고 단막극의 가치도 살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같은 명작 단막극 리메이크가 더 나올 수 있기를.(사진:tvN)

‘나쁜 녀석들2’의 높은 수위, 드라마 시청자들은

돌아온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는 첫 회부터 상상 이상의 강렬함을 남겼다. 물론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과연 드라마가 맞는가 싶을 정도의 유혈이 낭자한 폭력이 거의 첫 회 분량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영화 같은 액션이 주는 몰입감의 즐거움이 그 절반의 반응이라면, TV로 보기엔 폭력과 선정성이 너무 과하고, 반면 스토리는 전편에 비해 너무 앙상해졌다는 지적이 나머지 절반의 반응이다.

<나쁜 녀석들> 시즌1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그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와 함께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시대정서 때문이었다. 워낙 지독하게 나쁜 놈들이 많으니 그들과 대적하는 더 나쁜 놈들(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착한 구석이 발견되지만)을 내세운다는 그 이야기 설정이 주는 흥미로움이 존재했다. 일종의 안티 히어로들이 갖는 당대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들 캐릭터들에 기꺼이 빠져들게 했던 것이다.

<나쁜 녀석들2>는 시즌1과는 달리 극명하게 나뉘는 두 조직의 대립상황으로 시작한다. 그 한 조직은 현성그룹 회장 조영국(김홍파)이 이 서원이라는 악의 도시에 구축해놓은 ‘적폐 세력’이다. 조직폭력배와 얽혀 있고 도시의 재개발 사업과도 연결된 이 그룹은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적폐청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또 하나의 조직 검찰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조영국은 검찰의 이런 위협에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 인물이다. 

적폐청산을 이야기하는 서원지검장 이명득(주진모)에게 검찰 역시 적폐라고 말하는 인물이 바로 조영국이다. 그 누구도 검찰을 믿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이 악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성그룹과 검찰 사이에서 저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지지하는 세력이 나뉜다. 이 곳에 부임하게 된 노진평(김무열) 검사에게 신주명(박수영) 수사관이 재개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뉜 시민들의 모습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지점이 드러난다. 노진평은 “법대로 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신주명은 “그러면 저렇게 된다”며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잃고 밀려나는 이주민을 가리킨다. 

법은 이미 서민들의 편이 아니고 서민들 역시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니 이렇게 대립하는 거대한 두 조직(어쩌면 똑같이 적폐라 불리는) 사이에서 당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법보다 주먹이 된다. 첫 회에 그토록 몰아친 전쟁 같은 조폭과 검찰의 액션은 바로 서원이라는 악의 도시가 처한 상황을 직접 보여주기 위함이다.

선과 악은 더 선명해졌고 액션은 더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연출되어 차라리 영화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남는 아쉬움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갖는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것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TV드라마가 갖는 인물들의 디테일한 이야기가 수위 높은 액션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러한 호불호가 나오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이런 아쉬운 지점들을 채워주는 건 첫 회부터 강렬한 캐릭터로 눈도장을 확 찍어놓은 양익준이나 오랜 만에 드라마 출연 자체로도 화제가 되었고 실제로도 묵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박중훈 같은 배우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등장은 <나쁜 녀석들2>를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쁜 녀석들2>는 무비드라마라는 그 특징에 걸맞게 영화와 드라마가 걸쳐진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수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마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일일 게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오히려 어떤 틀에 박힌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탄성이 나올 수 있는.(사진:OCN)

‘흑기사’, 장미희와 서지혜가 바로 숨은 흑기사

사실 판타지 장르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도깨비’나 ‘저승사자’ 캐릭터는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결국 두 역할을 소화해낸 공유와 이동욱이 그 캐릭터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면 그 작품은 애초 성립 자체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라는 판타지 드라마를 성립시키는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서지혜와 장미희가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가 가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200년 넘게 불멸하는 존재가 갖는 남다른 시간관념, 그래서 전생과 후생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관점 등이 모두 가능해진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라는 두 신비한 존재가 납득되고 있어서다.

장미희는 사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변함없는 미모와 스타일을 보여줌으로써 <흑기사>가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이해시키는 면이 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외모는 이 작품이 가진 ‘불멸의 존재’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장미희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 역시 현실감을 뛰어넘어 이야기에 신비한 느낌을 부여한다. 

그가 연기하는 백희는 사실상 문수호(김래원)와 정해라(신세경)의 흑기사 같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수호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다가와 앞으로 모든 일들이 다 잘될 것이고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실제로 수호가 큰 성공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의 성공이나 실패가 어쩌면 “운이 좋거나 나빠서 생긴 일”일 뿐이니 거기에 교만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희는 문수호와 정해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덕담과 기도를 반복함으로써 진짜로 그들이 행복해지는 삶의 신비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그런 덕담과 기도가 늙지 않는 천형으로부터 자신을 변화시켜 나이 먹기 시작한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훨씬 원숙해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장미희가 아니라면 이만큼 잘 소화해내기가 어려운 캐릭터다. 

하지만 <흑기사>에서 진짜로 더 칭찬을 해주고 싶은 배우는 바로 서지혜다. 물론 과거 자신의 잘못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살아가는 벌을 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샤론은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판타지적 느낌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서지혜는 이 캐릭터가 가진 차가움과 쓸쓸함 그러면서도 어딘지 아이 같은 천진함 같은 것들을 실제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샤론양장점은 그래서 이 캐릭터 자체처럼 느껴진다. 전생의 악업을 끊어내기 위해 옷을 만드는 샤론이란 인물은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주고, 마치 그의 시종처럼 일하는 양승구 역할을 소화해내는 김설진은 현대무용의 대가답게 일상과 춤동작들을 엮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판타지적 느낌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건 역시 서지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대신 해주는 인물로서 ‘흑기사’를 지칭하곤 한다. 그런 뜻에서 보면 장미희와 서지혜는 이 드라마의 확실한 흑기사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겪는 판타지적인 사랑과 운명의 이야기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이 드라마의 숨은 흑기사들이라고 느껴질 만큼.(사진:KBS)

‘흑기사’가 말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 이 드라마 수상하다. 판타지 로맨스인데 난데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자본화 현상이 거론된다. 최근 들어 부쩍 많이 등장하는 이 용어는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고 결국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문수호(김래원)가 한국에 들어와 벌이고 있는 사업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원주민들을 지켜내는 사회사업이다. 그는 특색 있는 전통을 유지한 동네에 건물과 집들을 사들여 예술가들에게 장기 임대를 해주고 이를 여행 상품으로도 만들겠다고 했다.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그렇게 맥락 없는 설정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정해라(신세경)가 절망하게 되는 사건으로 이모가 반전세금을 빼고 대출까지 받아 오래된 한옥집을 덜컥 사버린 일이 이미 이 드라마가 공간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는 사전포석이었기 때문이다. 재개발 자체가 묶여버린 그 한옥집을 결국 문수호가 사고 정해라와 이모가 머물 셰어하우스를 제공하는 스토리 전개도 그래서 그냥 전개된 것이라기보다는 의도된 것이라 보인다. 

도시 한 가운데 남아있는 샤론양장점이라는 다소 고풍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판타지적인 공간도 그래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양장점’이라는 문구가 드러내는 전통적인 방식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기성품의 자본적 냄새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샤론(서지혜)은 그래서 그 공간과 하나 된 인물처럼 보인다. 200년을 죽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존재. 물론 죽고 늙고 하는 생멸의 문제는 다소 세속적인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지켜지고 있는 ‘전통’이라는 의미에서 그 공간의 상징은 남다르다.

그러고 보면 슬로베니아에서 문수호와 정해라(신세경)가 만난 기사의 성이 그런 공간이다. 사람은 100년을 넘어 살기가 힘들지만 그런 성은 몇 백 년을 그 모습 그대로 버텨내기도 한다. 물론 그 성 이전에 공간은 더 오랜 세월들을 머금었을 게다. 다만 그 위에 인간들이 나타나고 누군가는 집이나 성을 짓고 또 누군가는 그걸 부수고 새로 짓고 하는 걸 반복했을 따름이다. 

불멸의 존재와 수백 년을 버티고 있는 건물들은 그래서 그 존재 자체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도시의 자본화 현상을 마치 허망한 짓이라는 듯 비웃는다. 100년을 못사는 인간의 얕은 욕망이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파괴의 양상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드라마가 내세우고 있는 문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에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공간에도 어떤 울림을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것에 휘둘려 욕망과 자본이 몰리고 그래서 예술가들 같은 원주민들이 밀려나지만, 알고 보면 그 곳이 그렇게 생기를 갖게 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가들의 혼 같은 것이다. 만일 공간과 건물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사람의 흔적이나 온기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이 퇴적해 만들어진 총체라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그걸 밀어버리거나 그 안의 사람들을 내모는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이것은 <흑기사>가 그려내는 판타지적인 사랑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지만, 또한 거기에는 사랑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있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자기 존재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가던 정해라에게 문수호가 당신은 귀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그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꾸고 그게 마치 실제 있는 일이나 되는 것처럼 빠져드는 건 눈앞에 보이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비정한 세상이 그저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비참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어찌 보면 결국은 모두가 사멸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저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몇 세기를 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흑기사>의 판타지 로맨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얘기하는 건 엉뚱한 일이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눈에 보이는 세속적 현상이라면 판타지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일 수 있으므로.(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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