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러스’ 백진희, 신데렐라 로코물에 담긴 불편한 현실

보스를 위해 양손과 양발로 수십 가지 일을 해낸다? 우리가 흔히 ‘비서’라고 부르는 지칭을 어째서 KBS 새 월화드라마는 굳이 <저글러스>라 이름 붙였을까. 거기에는 일종의 인식차가 존재한다. 좌윤이(백진희)는 그것이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라며 ‘저글러스’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어느 때곤 단물 빠지면 팽 당할 처지에 놓이는 비서일 뿐이라는 것.

좌윤이는 봉상무(최대철)의 비서로서 별의 별 일들을 다한다. 심지어 상사의 애인까지 챙기고 봉상무의 아내(정영주)의 의심으로부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007 작전 같은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흔히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릴 정도의 선을 넘어버린 일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상사의 성공이 바로 자신의 성공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결국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으며 팽 당하기에 이르지만.

그 정도면 자신이 저글러스가 아닌 그저 지나치게 충성하는 비서이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성장을 한다는 것이 환상이라는 인식을 가질 만하지만, 회사에서 다시 그를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점으로 돌아간다. 남치원(최다니엘)의 프락치로 조상무(인교진)가 자신을 그의 비서로 붙인 것이라는 걸 좌윤이도 알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인물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남치원을 잘 보좌하고 하나하나 챙기려는 이른바 ‘서포터 정신’이 아예 습관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결국 <저글러스>라는 드라마는 바로 이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수동적으로만 살아오는 것이 타성화되어 버린 좌윤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그 틀은 조금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은 좌윤이가 보좌하게 되는 남치원과의 갑을 관계를 넘나드는 말랑말랑한 썸 타기가 이 드라마의 또 한 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뻔한 신데렐라 코드를 조금 다르게 만드는 건 남치원이라는 인물이다. 무슨 일인지 등에 화상을 입고 있는 이 인물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철벽을 치며 살아간다.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는 결국 이 상처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멜로 코드로서 철썩 달라붙으려는 좌윤이와 철벽을 치는 남치원의 관계가 주는 밀당이 존재하지만, 그것보다 주목되는 건 남치원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자신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는 좌윤이에게 어떤 변화를 예고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상사밖에 모르는 삶을 타성화해 온 좌윤이와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트라우마 때문에 살아가는 남치원은 그래서 각각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멜로적 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성장시켜줄 수도 있는 상보적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저글러스>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면서도 참신해 보이는 지점은 바로 이 캐릭터들 덕분이다. 

사실 <저글러스>의 시작점으로서 좌윤이가 보여주는 비서로서의 삶은 보기에 불편한 지점들이 많다. 모든 비서들이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사적인 것들까지 상사를 챙기고, 상사는 마치 하인이나 되는 듯 비서를 마구 대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당연한 상사와 비서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드라마는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극화되어 관계를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는 건 그것이 상사와 비서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 어디서나 보여지는 상하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 불편함들이 좌윤이가 겪는 난관들 속에서 피어오르고, 시청자들이 심지어 이 인물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한 면을 느끼게 만드는 건 사실은 향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좌윤이는 종속적인 인물이 아닌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저 단순한 신데렐라가 아닌 진짜 이 인물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사진:KBS)

지상파 월화극, 조정석과 윤균상이 살아나려면

등장하는 주연들만 놓고 보면 이만한 기대작이 없다. MBC <투깝스>의 조정석이 그렇고, SBS <의문의 일승>의 윤균상이 그렇다. 전작이었던 작품들 속에서 이 두 배우가 거둔 성취는 도드라진 면이 있어서다. 조정석은 <질투의 화신>으로 코미디 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고, 윤균상은 <역적>을 통해 감정 선이 남다른 카리스마와 액션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투깝스>와 <의문의 일승>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데는 아마도 이 배우들의 지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뜩 기대감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 드라마는 어쩐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투깝스>에서 조정석은 사기꾼인 공수창(김선호)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차동탁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라면 공수창은 어딘지 뺀질이에 바람둥이 캐릭터인지라, 이 둘을 오가는 조정석의 1인2역이 이 드라마가 주는 코미디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수창 역할을 맡은 김선호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가장 큰 수확은 김선호의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딘지 남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영혼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도 좋지만 그 속에 깔린 페이소스나 지향점 같은 것이 없는 코미디는 그저 휘발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깝스>가 그 괜찮은 연기조합에도 불구하고 조금 황당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이런 문제는 <의문의 일승>도 마찬가지다. 윤균상의 역시 믿고 보는 몰입도 높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설정이나 개연성은 너무 허술하다. 감옥을 들락날락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그 사형수 김종삼(윤균상)이 가짜 형사로 신분 세탁이 되어 비자금 천억 원의 행방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도 어딘지 황당하다. 물론 그 비자금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뉘앙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이건 이야기나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의 문제로 보인다.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빨리 전개하고 그 속에 반전과 위기를 넣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쪽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디테일이 부족해지고 그 부족한 디테일은 개연성 부족으로 다가온다. <의문의 일승>이 보완해야 할 건 이야기의 속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개연성이 아닐까. 

그래서 <투깝스>나 <의문의 일승>은 조정석이나 윤균상 같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2% 부족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투깝스>가 그 코미디 속에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만큼 이를 납득시키고 몰입시키는 디테일들이 부족하다. 이 각각의 부분들이 향후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가 월화극 지상파 성패의 향방을 가르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에 웃는 배우는 누가 될까. 조정석일까 윤균상일까.(사진출처:MBC, SBS)

‘황금빛’,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까닭

가족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인가. 지금껏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어딘가 수상하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양태는 결코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층 가족도, 또 돈 걱정 없는 재벌가 가족도 무엇 하나 따뜻하거나 부러워할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째서 <황금빛 내 인생>은 그간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왔던 그 가족의 면면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잘 나가건 회사의 사장이었으나 부도를 맞고 전국의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해온 서태수(천호진)는 그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숨겨왔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놓는다. 가족을 위해 뭐든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집 나간 딸 지안(신혜선)에게서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하냐”는 독한 말을 듣고 그는 모든 걸 놓아버린다. 아들 지태(이태성)에게 안하던 화를 쏟아내는 그는 이제 가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내 양미정(김혜옥)이 그간 잘 지내왔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금의 힘겨운 시기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나고, 서지안도 서지수도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그 시절을 마치 모두 잊은 듯 그를 대하는 모습에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결혼은 결코 안하겠다 소리쳤던 지태의 외침 또한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들로 남아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챙기려 했던 그 삶이 어딘가 잘못됐었다는 걸. 그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가족은 어떤가. 가족이라기보다는 마치 회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해진 대사들을 말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의 결혼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만나 그 날 약혼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건 하나의 계약 사항 같은 것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간 뒤늦게 찾은 딸 서지수(서은수)는 그래서 이 재벌가 가족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에 이 이상한 가족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이 가족의 삶이다. 서민가족의 삶이 그 곤궁함으로 인해 결혼조차 포기하려 했고, 어떻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결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재벌가의 남녀가 만나자마자 마치 모든 게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결혼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까지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이 가족들의 양태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양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정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같은 곳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현실이다. 없는 자는 없어서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며 심지어 굴레가 되는 가족을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족 체계를 굳이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가족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불변의 가치로 여겨왔던 가족주의라는 틀에 대한 균열을 말하고 있다. 핏줄과 혈연으로 얽혀진 가족이라는 틀이 한때는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끈끈함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따로 ‘내 인생’을 세우고 또 같이 나아가는 진정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할 가족의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사진:KBS)

'감빵생활'이 건드린 '노오력'과 최선 요구하는 사회“나 이제 그만 노력할래.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프로야구 슈퍼스타인 김제혁(박해수)은 의외로 선선히 은퇴를 선언했다. 김제혁 선수가 슈퍼스타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내의 아이콘’이고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깨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재활치료를 통해 재기할 거라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었지만 김제혁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심지어 “야구만 은퇴하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김제혁의 이 은퇴선언이 담는 함의는 작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포기보다는 노력을 통한 극복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선선히 포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김제혁이 어쩌다 듣게 된 의사와 팀 매니저들 사이의 대화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그 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만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굴레로 스스로 하고픈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결국 은퇴선언 방송이 되어버린 감방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김제혁이 요구한 건 담배 한 대였다. 운동선수로서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아왔던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김제혁이 마침 감방 동료들이 벌이는 술판에서 “저도 술 잘 마셔요”하며 합류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담배도 필 줄 알고 술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다만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극도로 절제했을 뿐.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어딘지 느리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아채기 힘들게 된 것도 모두가 그에게 희망하는 슈퍼스타로서의 면면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때 아닌 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가게 되고 또 거기서 교도소로까지 오게 됐으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구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 드라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제혁은 이처럼 끝없이 현실적인 추락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성공하는 인물이 아닌 추락하는 인물로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건 섣불리 성공이나 꿈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사회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꿈과 노력으로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현실인가. 이런 현실을 마주한 청춘들은 그래서 그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김제혁은 자신이 그런 ‘노오력’의 아이콘이 되어 누군가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헛된 희망으로 남기보다는 소소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그동안 절제하며 살아오느라 놓쳐온 많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노오력’을 해오느라 무표정했던 삶에 표정을 찾아보기로 한다.

김제혁의 선택은 사회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선택이고 패배자 같은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선의 ‘슬기로운 선택’이다. 없는 희망은 애써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빨리 포기하고 현실적인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청춘들이 막막한 현실과 맞닥뜨려 갖게 된 ‘슬기로운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도대체 현재를 희생시키고 포기하면서 얻는 미래의 성공과 꿈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도 불확실한 미래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김제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건 ‘부정의 긍정화’다. 즉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를 깨쳐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빨리 긍정하는 것이라는 걸 이 인물은 보여준다. 실로 감방생활을 닮은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나름 저마다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따뜻하게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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