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안전한 행복? 이상해도 괜찮아

 

안은영(정유미)에게만 보이는 또 한 겹의 세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는 이상하고 기이하다. 그 세계에는 욕망의 기운들이 젤리의 형태로 흔적을 남긴다. 그 기운들은 때로는 너무나 커져서 거대한 괴물이 되어 모두를 집어삼키려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옴처럼 여기저기 돋아나 온 학교를 뒤덮기도 한다.

 

목련고등학교 보건교사인 안은영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이 젤리들을 퇴치함으로써 학교를 보호하는 숨은 히어로다. 그의 무기는 남다른 기운이 담긴 장난감 칼과 플라스틱 총. 그래서 학교를 집어삼킬 듯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채 학생들을 빨아들이는 괴물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안은영의 모습은 이상하고 기이해 보인다.

 

또 그렇게 퇴치한 괴물이 산산이 조각나 하트 젤리가 되어 비처럼 떨어지는 장면이나, 남다른 기운을 가진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에게 기 충전을 받기 위해 손을 잡는 모습은 다소 유아적인 상상 같은 느낌마저 준다. 홍인표와 안은영이 힘을 합쳐 젤리 괴물들과 싸우는 그 모습들은 유아적이지만, 괴물이 등장하는 학교와 그 학교의 억압에 의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학생들의 모습은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자아내게 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교훈을 가진 이 학교에서 홍인표의 할아버지인 이 학교의 설립자 동상은 기괴할 정도로 과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아침마다 교장을 따라서 겨드랑이를 두드리며 몸이 건강해진다는 체조 같은 걸 한다. 웃으라는 교장의 말에 따라 학생들은 웃고 있지만 결코 그 웃음을 짓는 학생들이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젤리괴물들은 바로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억압된 욕망에 의해 탄생한다. 학교는 '안전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삶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안은영의 눈에는 더 많은 젤리들이 커져간다. 그 젤리를 터트려 하트 젤리 비를 떨어뜨린다는 그 상상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담는다. 억압된 그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 괴물을 만들게 아니라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다소 유아적인 것처럼 보이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상상력은 그 자체로 사회와 학교에 대한 의미심장한 풍자를 담아낸다. 뭐든 다 상상하고 이상하더라도 표현했던 그 어린 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와 어느 순간 억압된 시선으로 재미없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 어른이라면 그 젤리가 주는 낯선 풍경이 의외의 통쾌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 이상한 안은영이라는 캐릭터를 제 옷 입은 듯 천연덕스럽게 잘 연기해낸 정유미와, 도발적인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인 정세랑 작가 그리고 이 낯선 세계를 기이하지만 아름답게 연출해낸 이경미 감독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별 생각 없이 '병맛' 유머를 즐기듯 보다가 어느 순간 저 세계가 저격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의 억압들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작품.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을 뒤집어 하나의 세계를 독창적인 스타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사진:넷플릭스)

'비밀의 숲2', 부조리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 사회의 모든 치부를 다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다.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2>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두고 벌이는 대립상황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나, 죄를 짓고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는 부정청탁, 전직 고위 검사들이 변호사가 되면 당연한 듯 벌어지는 전관예우, '내로남불'하는 조직 이기주의, 같은 조직 내에서도 파벌을 나누는 줄 세우기 등등 어두운 우리네 사회의 그림자들이 도처에 드리워져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가 결국은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날아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힌 두 친구를 통영 바닷가로 데려가 사고로 위장한 채 죽이고 그 사건을 다시 들춰내려 한 서동재(이준혁)를 납치 감금한 김후정(김동휘)의 아버지는 전직 판사 출신의 변호사였다. 그래서 김후정을 추궁하는 황시목(조승우)과 한여진(배두나)에게 으름장을 놓고 판사에게 청탁을 넣어 압력을 행사해 아들의 죄를 덮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마한다고 해도 죄가 없어질까. 경찰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죄가 드러나자 김후정은 결국 죄를 자백한다. 그를 괴물로 만든 건 오랜 괴롭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자식의 문제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부모의 무책임이기도 했다. 밖에서는 검사에 변호사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승승장구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한 세상 속에서 정작 그의 아들은 괴물이 되어버렸다.

 

김후정을 잡고도 판사에게 줄을 대 압력을 행사하는 그의 아버지 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모두 곤혹스러워진다. 검찰이 영장을 내주지 않으면 풀어줘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만들어진 건 다름 아닌 검경의 수사권 대립이 그 이유다. 그들이 만든 상황 속에 그들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격이다. 결국 서동재 사건을 두고 검경은 공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본래 검찰과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드라마는 말해주고 있다.

 

서동재 역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건들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이 위협이 되어 납치 감금되는 일을 당하게 됐다. 그는 검찰 형사법제단 우태하 부장검사(최무성)에게 잘 보이려 그런 일을 했지만, 결국 그는 경찰과의 수사권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검찰의 희생양으로 활용됐다.

 

서동재 납치 실종사건이 벌어진 후 그의 넥타이를 잘라 메시지를 사진에 담아 보낸 이가 김후정이 아니었고, 경찰임을 드러내는 시계를 일부러 노출하고, 거짓 목격자 전기혁(류성록)까지 나서서 경찰을 지목했던 그 상황은 결국 검찰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동재가 납치 실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사보다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우태하였다.

 

흥미로운 건 황시목이 전기혁의 배후에 검찰이 있을 거라는 심증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경찰들의 추궁에 꼼짝도 하지 않던 전기혁이지만, 검사인 황시목이 나타나 마치 '같은 편'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자 그가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그것이다. 결국 전기혁은 경찰과 검찰이 서로 공조하지 않고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자신은 검찰의 사주를 받았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비밀의 숲2>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치부들을 끄집어내고, 그 원인으로서 검찰과 경찰 같은 사법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조리한 시스템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전관예우에 부정청탁은 물론이고 이제는 그렇게 잘못된 방식으로 쓰이는 권력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형국이다. 이러니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다. 아이들은 범죄에 가까운 짓들을 저지르고, 부모들은 힘을 이용해 그걸 무마시켜주는 것처럼, 조직원들의 비리를 조직의 이익을 위해 덮으려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걸로 과연 끝나는 일일까. 그들이 저지른 일들은 결국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비밀의 숲2>는 경고하고 있다.(사진:tvN)

'앨리스'의 시간여행, 예언서와 클리셰에 담긴 메시지들

 

시간여행에 평행세계. 다소 복잡한 세계관을 갖고 있지만 9회까지 방영되면서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의 세계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간단하게 보면 2050년 시간여행 시스템 앨리스를 가진 미래인들이 과거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평행세계의 부딪침을 다루는 드라마다.

 

이야기 구조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는 이유는 순방향으로만 흐르던 시간이 앨리스 시스템에 의해 역방향으로도 돌아가게 된 세계관 때문이다. 미래인인 윤태이(김희선)는 연인인 유민혁(곽시향)과 함께 2050년에서 1992년으로 온다. 예언서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예언서를 갖고 있는 장동식(장현성)이 살해되고 윤태이는 그의 어린 딸을 구해낸다. 그런데 윤태이가 구해낸 그 딸은 바로 어린 나이의 자신이다.

 

그런데 그 딸을 구한 미래인 윤태이는 마침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시간여행으로 방사능에 노출될 것을 꺼려하며 그 시간대에 남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윤태이는 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 박진겸(주원)을 낳고 홀로 키운다. 그러니 미래에서 온 윤태이(박선영)와 장동식의 딸로 성장하는 과거인 윤태이가 그 세계에 공존하게 된다. 과거인 윤태이가 자라나 대학생이 되던 2010년 거대한 달이 뜨던 날 박선영은 살해당한다. 박진겸은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 고형석(김상호)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형사가 되고 어느 날 드론을 쫓다가 교단에 선 괴짜교수 윤태이를 만나고 놀란다.

 

만일 세계가 하나만 존재한다면, 이 이야기는 계속 빙빙 도는 이상한 세계가 되어버린다. 즉 미래에서 과거로 와서 구해낸 윤태이가 자라서 다시 미래인 윤태이로 성장하고 그는 앨리스 시스템을 만들어 다시 과거로 가는 그런 과정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말한다. 평행세계의 이론이 그러하듯이 여러 가능성의 세계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미래에서 과거로 와 과거를 바꿔놓으면 다른 선택지의 미래 세계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 복잡한 세계관을 <앨리스>는 의외로 쉽게 풀어냈다.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박선영과 박진겸의 모자관계, 그리고 과거인 윤태이를 다시 만난 박진겸의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연인으로서의 애정이 묘하게 얽힌 감정 변화,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의 그리움 같은 다소 익숙한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코드들을 활용한다.

 

중요한 건 이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이 무얼 지향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기 위함인가 하는 점이다. 그 지향점이 없다면 이야기의 동력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앨리스>에는 과거인들이 있고 앨리스 시스템으로 시간여행을 통해 미래에서 과거로 온 미래인들이 있다. 그리고 역시 미래에서 온 알 수 없는 어떤 세력이 윤태이와 박진겸을 위협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드라마 초반부터 지금까지 찾고 있는 건 바로 '예언서'다. 도대체 이 예언서가 뭐기에 이렇게 모두가 집착하는 걸까

 

예언서는 말 그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역사처럼 기록된 책일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빼앗기 위해 괴한이 찾아들었을 때 장동식 박사는 예언서의 맨 마지막장을 찢어 어린 딸(윤태이)에게 준 바 있다. 왜 책의 어느 특정 부분도 아닌 마지막장을 찢어 줬을까. 그것은 시간여행이라는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또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여행할 수 있게 되는 세계라면 가장 중요한 건 그 끝이다. 보통의 삶은 어떻게 끝날지 모른 채 시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끝을 알게 된다면 그 운명을 바꾸려는 욕망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저마다의 욕망의 부딪침은 혼돈과 파멸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윤태이도 박진겸도 박선영이 남기고 간 타임카드를 가진 채 우연한 사고를 겪으면서 시간여행을 경험한다. 박진겸은 2010년 자신의 어머니인 박선영이 죽던 날로 돌아가지만, 그는 그 살인을 막지 못한다. 윤태이는 2021년으로 넘어가지만 박진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절망한다. 과거로 가도 미래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다만 일어날 일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이미 벌어진 일을 알고는 절망하는 걸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2020년 현재로 다시 돌아온 윤태이와 박진겸은 모두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미래로 갔던 윤태이는 거기서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지만 그들 사이에는 1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그래서 2020년으로 되돌아온 윤태이는 현재를 함께 겪어가는 자신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진정으로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애초에 시간여행을 소재로 가져오면서부터 어쩌면 <앨리스>는 그런 시간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행위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많은 일들을 겪고 또 시간을 넘나들어도 이들에게 남은 소중한 것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나눴던 어찌 보면 틀에 박힌 가족드라마나 멜로드라마 속 클리셰 같은 일상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지배하고 그 끝을 알려고 하는 건 오히려 그 일상들을 모두 헛되게 만들고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만들 뿐이니.(사진:SBS)

'악의 꽃', 스릴러에 사랑의 위대함 담은 명품 드라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이 종영했다. 이미 지난주 15회에서 이 작품 최고의 악역 백희성(김지훈)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는 그것으로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회는 총에 맞아 기억상실이 된 도현수(이준기)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채워지면서 이 드라마가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담아내려던 사랑의 위대함을 보다 완벽하게 그려냈다.

 

이게 가능해진 건 깨어난 도현수가 과거 백희성의 차에 치었던 시절로 기억이 돌아가 차지원(문채원)과 지낸 15년의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15년 전의 백희성은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학대를 받아 스스로도 귀신이 씌였다 믿던 상태였다. 자신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거짓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 이용하는데 능숙했다고 여겼다.

 

결국 도현수가 15년 전으로 돌아간 이 상황은 거꾸로 말해 차지원과의 15년이 그를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스스로를 감정 없는 괴물로 여기던 도현수를 가족을 사랑하는 인물로 바꿔 놓은 건 바로 차지원과 그의 딸 백은하(정서연)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심지어 차지원은 15년 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도현수를 자유롭게 놓아주려 할 정도로 사랑이 깊었다. 도현수는 차지원의 이 깊은 사랑을 알아가면서 없다 생각했던 감정이 차 오르는 걸 느꼈고 결국 차지원과 백은하를 끌어안았다.

 

<악의 꽃>은 이처럼 스릴러와 멜로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흔적 없이 봉합해내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도현수에게 악영향을 끼쳐온 범죄들(아버지, 마을 사람들)과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차지원의 사랑이 첨예한 대결구도로 서 있어서다. 드라마는 악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스릴러로 풀어내면서, 그 속에서도 어떻게 악을 무너뜨리고 사랑이라는 꽃이 피어나는가를 멜로로 담아냈다. 이 절묘한 구도가 이 작품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준 이유였다.

 

먼저 이 야심찬 작품이 <맨몸의 소방관>이라는 4부작 드라마를 썼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유정희 작가의 이 만만찮은 필력은 향후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역시 <공항 가는 길>부터 <마더>까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을 균형있게 연출해낸 김철규 감독의 공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드라마의 완성도는 대본만큼 연출력이 중요해졌다는 걸 김철규 감독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섬세한 심리까지를 담아낸 연출로 보여줬다.

 

좋은 작품은 좋은 배우들을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이토록 모두가 인생캐가 된 작품이 있을까 싶다. 달콤과 살벌을 마음껏 오가는 모습으로 이준기는 이 작품의 중심을 세워주었고, 문채원은 그 어느 작품보다 놀라운 몰입으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했다. 김무진 역할로 확고한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꺼내놓은 서현우나 비운의 인물을 소화해냄으로써 색다른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장희진도 빼놓을 수 없다.

 

차지원의 동료형사 역할로 주목받은 최재섭 역할의 최영준이나 백희성의 부모 역할로 소름돋는 스릴러의 긴장감을 만들어낸 남기애, 손종학, 도현수의 딸로서 끝까지 이 이중적인 인물을 신뢰하게 해줬던 정서연 역시 이 작품이 발견해낸 연기자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 강렬한 힘을 부여한 건 게임체인저 백희성 역할을 연기한 김지훈이었다. 주말드라마의 황태자 딱지를 확실하게 떼어낸 김지훈은 이제 미니시리즈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연기영역을 갖게 됐다. 그가 있어 스릴러가 가능했고, 그와 대적하는 멜로 역시 가능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다. 뭐 하나 뻔하게 다루지 않았고 그래서 클리셰를 벗어난 색다른 이야기가 주는 묘미가 있으면서도 공감가는 심리묘사 덕분에 낯설지 않았다. 보는 맛에 생각하는 맛도 있는 드라마였다. 스릴러를 보면서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드라마라니. 종영이 벌써부터 아쉽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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