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SF판타지지만 익숙한 멜로와 가족이 있는 건

 

윤태이(김희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 '수사반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윤태이와 박진겸(주원)을 태이 부(최정우)와 태이 모(오영실)는 마치 사윗감이라도 되는 양 이것저것 묻는다. 그 장면은 우리네 가족드라마에서 항상 등장하곤 하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사귀는 건 아니지만, 어딘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남녀를 우연찮게 부모님이 보게 되고 두 사람 사이를 연인 관계처럼 오인함으로써 실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그런 스토리.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는 미래인과 과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간여행과 평행세계가 겹쳐진 다소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예언서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그 시간여행이라는 단서에 다가가는 윤태이와 박진겸을 중심으로 그들을 돕는 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모종의 세력 간의 대결이 펼쳐진다.

 

종횡무진 과거의 여러 시간대를 오가는 전개 또한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20대부터 40대까지의 시간대를 마음껏 오가며 다른 모습을 연기해내는 김희선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아직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미래에서 온 이들이 과거에 어떤 영향을 주어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은 드라마를 쉽지 않게 만든다.

 

무엇보다 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살해된 박진겸의 엄마가 미래에서 온 인물이고, 그 시간대에 20대의 윤태이가 공존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윤태이는 바로 드라마 시작에 등장했던 예언서 때문에 살해당한 장동식(장현성)의 딸이었다는 사실 또한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스토리의 뒤틀림을 만든다.

 

즉 장동식의 딸 윤태이가 아버지가 예언서 때문에 사망한 후 보육원에 보내졌다가 지금의 양부모들에 입양되어 자라났고, 괴짜 과학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성장해 '앨리스'라는 시간여행 시스템을 만들어낼 인물이다. 그런데 미래에 그 시스템을 만든 윤태이가 예언서를 찾기 위해 과거로 와서 장동식의 딸을 구한 것이다. 그러니 평행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미래인 윤태이가 과거인 윤태이를 구한 셈이 되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세계관이지만 <앨리스>는 영리하게도 시청자들이 익숙한 설정들을 드라마 속에 담아 놓았다. 그 첫 번째는 박선영과 박진겸 사이에 만들어놓은 모자 간의 끈끈한 애정이다. 엄마를 잃은 박진겸이 그 살인자를 찾기 위해 형사가 되는 과정이 이 익숙한 설정을 통해 설명된다.

 

게다가 SF 장르물에서는 좀체 잘 등장하지 않는 가족들을 주인공들 주변에 포진시켰다. 물론 친 부모들은 모두 죽었지만, 박진겸을 돌봐준 형사 고형석(김상호)과 김인숙(배혜선)이 그 부모 역할을 함으로써 가족 같은 관계를 구성하고, 윤태이 역시 죽은 아버지 대신 그를 입양한 부모들을 통해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족드라마적인 설정들이(부모가 딸 남자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여기에 윤태이와 박진겸이 이제 미래인들의 위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 역시 등장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그 많은 멜로드라마 코드에서 봤던 설정이다. 흥미로운 건 그 함께 동거할 집으로 박진겸이 제시한 곳이 과거 박선영과 지냈던 집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래인 윤태이(박선영)과 모자관계로 지냈던 그 집에서 이제는 과거인 윤태이와 연인관계로 지내게 된다.

 

어찌 보면 <앨리스>의 이야기 중 박진겸과 윤태이의 이 특별한 관계는, 익숙한 가족과 멜로 코드를 SF판타지와 연결시켜 탄생시킨 색다른 구도처럼 보인다. 복잡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져왔지만 익숙한 드라마 코드들을 활용하고, 그럼에도 식상한 전개가 아닌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방식. <앨리스>의 영리한 선택이 가져온 시너지가 아닐까 싶다.(사진:SBS)

"내가 무조건 이기게 돼있어. 네가 나를 경찰에 넘겨도 내가 이기고, 네가 날 죽여도 내가 이겨. 넌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야."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백희성(김지훈)은 도현수(이준기)에게 그렇게 말한다. 백희성의 도발에 도현수는 이성을 잃어버린다. 도현수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켜내려 했던 아내 차지원(문채원)을 그가 죽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애초 경찰에 신고하려 했던 계획은 이성을 잃어버린 도현수가 백희성에게 살의를 드러내면서 어그러진다. 백희성의 말대로 도현수는 어떻게 해도 그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론 백희성이 죽였다 생각한 차지원은 살아있고, 그를 대신해 칼을 맞은 도해수(장희진)는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하지만 도현수은 그토록 꾹꾹 눌러왔던 살의를 끄집어내게 되었다.

 

사실 <악의 꽃>이라는 스릴러에서 공포감을 주는 건 백희성 같은 연쇄살인범만이 아니다. 그가 그런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애써 숨기려 살아왔던 부모 백만우(손종학)나 공미자(남기애)의 진실에 대한 외면이 무섭고, 제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진 함정 때문에 차지원마저 그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무섭다. 게다가 무엇보다 공포감을 주는 건 모두가 괴물이라 의심해왔지만 끝까지 버텨내던 도현수가 백희성이 끄집어낸 살의에 의해 진짜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긴장감과 공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백희성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백만의 집 비밀 공간에 산소호흡기를 한 채 누워만 있던 그는, 그 호흡기를 그의 엄마 공미자가 떼어내는 순간부터 드라마에 스릴러의 기운을 풀어놓는다. 떼어낸 산소호흡기에 죽기보다는 거꾸로 깨어난 백희성은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이는 마치 '좀비' 같은 공포감을 만들어낸다.

 

가사도우미가 사실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을 그만둔다며 돈을 요구하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백희성이 슥 일어나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결국 도망치는 가사도우미를 죽이고, 대신 도현수가 그를 죽인 것처럼 꾸미는 백희성의 행위들은 그것이 너무나 철저하게 짜인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악의 꽃>이 멜로와 스릴러가 오가는 장르적 퓨전을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무엇보다 뒤로 갈수록 스릴러의 색깔을 짙게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백희성이다. 그는 대사에도 나오듯 도현수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도현수는 연쇄살인범인 아버지 도민석(최병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고 그래서 백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려 했지만 그 백희성이 또 다른 그의 그림자였다. 백희성은 도민석 때문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도현수 역시 그렇게 하게 만들겠다고 말한다. 자신을 죽이라는 것. 백희성은 그렇게 도현수를 자신의 그림자 안에 가두고 자신처럼 만들려 한다.

 

백희성이라는 이 드라마 속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 역할을 이토록 소름 돋게 연기해낸 배우 김지훈이 다시 보인다. 그간 우리에게는 MBC <왔다 장보리>로 '주말드라마의 황태자'로 불리던 김지훈은 <악의 꽃>을 통해 그간 저평가된 배우였다는 걸 증명해내고 있다. 늘 밝은 이미지로만 굳어져왔고 그렇게 소비되던 김지훈의 연기를 깨워낸 건 백희성이라는 희대의 악역이다. 그래서 아마도 김지훈의 이번 놀라운 연기를 염두에 두고 보면 <악의 꽃>이라는 작품의 제목이 다른 의미로 읽힌다. 악역으로 피워낸 연기의 꽃 같은.(사진:tvN)

'악의 꽃'의 멜로 스릴러가 가능했던 건, 완벽한 인물 구성 덕

 

평범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분을 세탁하고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던 인물이 도현수(이준기)다. 그의 실체를 알게 된 아내 차지원(문채원)으로서는 그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형사가 아닌가. 그런데 차지원은 남편 도현수가 연쇄살인범 도민석의 아들로 그 마을 이장을 살해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것조차.

 

사실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차지원 같은 인물의 감정 변화를 납득시키는 건 쉽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연쇄살인범의 아들에 살인 용의자로 신분을 숨기며 살아온 남편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악의 꽃>은 이 부분을 선선히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킨다. 거기에는 물론 그 섬세한 감정 변화를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 연기한 문채원의 공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부분은 이 드라마가 애초에 인물 구성을 통해 도현수라는 인물이 가진 양면성의 균형을 잘 맞춰놓은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백희성의 딸 백은하(정서연)는 그다지 드라마에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이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빠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준다.

 

이런 점들은 도현수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도현수의 행동이나 말들은 극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극 초반부터 친구 김무진(서현우)을 작업실 지하에 감금하는 장면은 그가 진짜 연쇄살인범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심지어 아내 차지원은 도현수에 대한 감정이 계속 신뢰와 의심을 오간다. 그의 정체를 알아채고 의심하게 되지만 괴로워하다 떠나라고 말하는 갈등 이후 이장을 죽인 게 도해수(장희진)이고 그걸 동생인 도현수가 뒤집어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신뢰를 회복한다. 하지만 깨어난 진짜 백희성(김지훈)이 도현수가 그 집의 가사도우미를 살해한 것처럼 꾸며놓자 차지원은 다시 도현수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빠를 "언제 오냐"고 애틋하게 부르는 백은하의 모습은 도현수에 대한 일말의 신뢰를 갖게 만든다. 수갑을 채우려는 차지원에게 오히려 칼을 들어 위협하며 CCTV화면을 끄게 만드는 장면으로 끝난 지난회에서도, 어떤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건 도현수 주변에서 변함없이 그를 믿어주고 신뢰해주는 백은하나 누나 도해수 같은 인물이 있어서다. 실제로 그 장면은 차지원을 공범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도현수가 꾸민 것이었다.

 

도현수에 대한 의심과 신뢰가 계속 오고가며 드라마는 스릴러와 멜로를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의심보다는 신뢰가 커져간다. 그걸 만들어내는 건 깨어난 백희성(김지훈) 때문이다. 그의 치밀하지만 광기어린 살인 행각들은 이제 도현수가 그 피해자라는 걸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현수가 진짜 공범(백희성)을 직접 대적하겠다고 나서는 순간은 그래서 차지원의 신뢰가 회복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악의 꽃>이 겹쳐 놓고 있는 멜로와 스릴러의 변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한 건 도현수에 대한 신뢰와 의심이라는 양축을 오가는 차지원을 세우고, 그러면서도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도해수나 백은하 같은 인물들을 세워둠으로써 극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이루게 한 덕분이다. 물론 그 중심에 서서 그 다양한 감정 변화를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는 이준기와 문채원의 공이 가장 크지만.(사진:tvN)

가진 게 없다고 꿈도? '브람스'가 멜로에 담은 진짜 메시지

 

"저 언니 계속 꼴찌래. 서령대에서 바이올린 한다고 다 바이올리니스트인가?" 같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하지만 유명 변호사 딸 조수안(박시은)은 채송아(박은빈)를 그렇게 낮게 바라보며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놓는다. 구두를 가져오지 않아 채송아가 자신의 구두를 빌려주고 슬리퍼를 신고 무대 뒤에서 서 있는 동안, 조수안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 장면은 가진 것과 꿈 사이에 놓인 엄청난 현실적 격차를 그 자체로 보여준다.

 

뒤늦게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갖게 되어 다니던 경영대를 포기하고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온 채송아(박은빈)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아해서"라는 것. 너무 좋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는 채송아는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평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그의 절친이자 바이올린 스승(?)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접고 악기를 만드는 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 더 이상 연주가 설레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 들어간 '브람스'라는 단어에 담긴 것처럼 서로 엇갈린 남녀들이 겪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 멜로 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메시지는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다. 채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가 좋아해 더 나아지려 노력하려는 바이올린 연주를 평가하고 때론 모욕적인 말로 그 꿈이 현실성이 없다고 짓밟는다. 그는 가난해 가진 것도 없고 재능이 특별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도 가난해야할까.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박준영(김민재)은 안타깝게도 음악은 재능이 중요하지만 꿈을 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에서 채송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인 양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 중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는 박준영의 말에 채송아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말한다. 좋아하고 노력해도 재능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 재능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박준영이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라고 말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재단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그것은 그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처지 때문에 또 사업에 보증을 잘못 서 끝없이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는 하고 싶어서 연주를 한 게 아니었다.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연주를 했던 거였다. 그는 재능은 있지만 좋아서 연주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재단을 찾아와 자신의 아이가 오디션에 왜 떨어졌느냐고 따지는 지원 엄마가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던 채송아에게 자신의 아이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자 채송아는 이렇게 말해준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원이는요.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어머니. 지금 오디션에서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지원이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콩쿨과 오디션 중요하죠. 그렇지만 저는 지원이가 등수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지원이를 묵묵히 믿고 지켜봐주신다면 반드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채송아는 "그렇게 재능이 있고 잘하는 걸 좋아하지 못하게 되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채송아는 알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는 데 있어 재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재능이 있어도 '좋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박준영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디션, 합격, 성적 같은 것들로 누군가의 삶을 무례하게 재단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좋은 것을 하고 싶어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걸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디 꿈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세상은 그가 가진 것들로 재단한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저 혼자 포기하려던 채송아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된 박준영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각별히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어쩌다 우리는 꿈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의해 재단되는 세상에 살게 된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래서 단순한 청춘 멜로로만 볼 드라마는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꿈과 사랑을 제 멋대로 가로막고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울컥 눈물이 터지게 되는 건 그 음악 언저리에 어른거리는 냉정한 세상에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서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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